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80화 (8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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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도구가 나쁜 게 아니야. 쓰는 사람이 나쁜 거지

『어째서 어머니의 마력이 이 녀석에게?』

왜 드렌 왕자가 어머니의 마력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녀석은 어딜 보나 완전한 인간인데? 아니, 종족을 떠나서 천 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력이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다른 세계수의 마력이라고 하기엔, 드렌 왕자가 가진 세계수의 마력은 너무 순수하다.

나나 핀조차 이런 순수한 마력이 아니다. 어머니를 제외한 다른 세계수는 아버지의 마력이 섞여 이 정도의 순수성을 가지지 못한다.

이것은 분명 어머니의 마력이다. 그렇다면 이걸 어디에서?

……한 가지, 어머니의 마력을 가질 방법이 있다.

바로 용사들의 무기.

그러나 지금은 녹고 사라진, 드렌 왕자가 가지고 있던 검에는 어머니의 마력이 깃들어 있지 않았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 마력의 출처는 어디인가?

하지만 그걸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어머니의 마력은 드렌 왕자의 머리 부근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자마자, 다시 왕자의 뇌 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드렌 왕자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핀의 공격에도 지치면 지쳤지 이렇게 고통스런 비명은 지르지 않았었는데.

머리를 붙잡고 땅을 구르는 드렌 왕자. 그는 금방이라도 죽을 듯이 심하게 몸부림 치고 있었다.

“아, 아아아! 나는…… 아버지……. 『아버지의 명령에 복종』……! 하지만!”

계속해서 드렌 왕자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세계수의 마력. 이대로 두면 자칫 잘못했다가 드렌 왕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게 내버려 둘쏘냐. 일단 살리자. 살리고, 저 마력을 어디서 얻었는지 정보를 캐내자.

나는 세계수의 마력을 끄집어내기 위해 드렌 왕자의 머리를 살폈다. 세계수의 마력은 거의 정체를 감추며 머릿속으로 숨어버리고 있었다.

『놓치지 않는다.』

어머니의 마력에 의해 고통당하고 있는 드렌 왕자는 더 이상 나의 접근을 막지 못했다. 나는 왕자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어머니의 마력을 쫓아갔다.

어머니의 마력은 그의 두뇌, 육체를 넘어선 깊고 어두운 곳.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은 어둡고, 습하다고 느껴졌다. 보는 것만으로 나까지 우울해진다. 끔찍하게 끈적거리는 기운이 넘실거렸다. 한여름 장마철에 문을 꼭꼭 닫아둔, 습기 찬 지하방 같았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빛나고 있는 것은 은은하게 빛나고 있는 어머니의 마력뿐이었다.

이것이 영혼인 걸까? 영혼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었지만 나는 이곳이 드렌 왕자의 영혼이라고 느꼈다.

『끔찍해…….』

드렌 왕자의 영혼을 보고 한 말이 아니었다. 어머니의 마력이 저지르고 있는 짓을 보고 난 뒤의 감상이었다.

세계수의 마력을, 나는 남을 치료하고 돕는 것에 특화된 마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다.

물건을 옮기거나 바람을 만들어 낸다거나 하는, 물리적인 행위보다 누군가를 치료하는 데 마력을 쓰는 것이 훨씬 쉽고 마음이 가벼웠다.

무엇보다 남을 치료하는데 마력을 쓰는 순간 마다 ‘이것이 바른 것이다’라며 내 마음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세계수의 마력이 지금 드렌 왕자의 영혼을 뒤틀고 부수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흰색의 마력이 암 덩어리처럼 드렌 왕자의 영혼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마력이 고동칠 때마다 왕자의 영혼은 조금씩 뒤틀렸다. 그리고 더 어두워지고, 끈적끈적하게 점성이 올라가듯 더 진득해졌다.

『조심히 뜯어내면 되려나.』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지금 세계수의 마력은 드렌 왕자의 영혼에 들러붙은 기생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드렌 왕자가 미친놈이 된 데에는 이 마력이 큰 영향을 준 것이 분명했다. 영혼이 이 모양인데 인격이 정상인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

나는 우선 가장자리에서부터 천천히 마력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산에 난 잡초처럼 영혼에 뿌리내린 마력은 끈질기게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섣불리 힘을 주면 오히려 영혼도 함께 떨어질 것만 같았다.

그냥은 떼어낼 수 없겠는데. 이걸 어떻게 떼어내야 할까. 괜히 영혼에 상처가 나면 지금보다 더 미친놈이 될 것 같은데.

아. 그렇지. 그 방법을 써볼까.

나는 우선 세계수의 마력을 한껏 뜯어냈다. 뜯어낸 부위에서 영혼이 갈라지며 틈이 벌어졌다. 그 틈새에 나는 내 마력을 집어넣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마력은 영혼에도 효과가 있는지 갈라진 틈새에 무사히 안착하여 틈새를 메꿔주었다.

그래. 이 방법으로 쭉 진행하자고.

계속해서 세계수의 마력을 뜯어내고 내 마력을 틈새에 채워 넣는 작업을 반복했다.

이거 꼭 건물 보수공사 하는 느낌이 난다. 미장이가 되어서 부실공사로 갈라진 건물에 시멘트를 바르는 것 같군.

간신히 영혼에 들러붙어 있던 세계수의 마력을 전부 떼어냈다. 나는 세계수의 마력을 드렌 왕자의 영혼에서 끄집어냈다.

“끄아아악!”

드렌 왕자가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발광하는 드렌 왕자는 곧 의식을 잃고 시체처럼 잠잠해졌다.

혹시나 죽은 게 아닐까 확인해 봤지만 미약하게나마 숨은 쉬고 있었다. 그냥 고통에 기절한 것이었다.

『으음? 어머니의 마력이…….』

어머니의 마력이 꿈틀거리며 진동했다. 그러다가 갈 곳을 잃은 아이가 집을 발견했다는 듯이 내게로 흘러들어 왔다.

드렌 왕자의 영혼을 그런 꼴로 만든 마력이었지만 그 본질은 깨끗하고 순수했다.

나는 아무런 거부감 없이 어머니의 마력을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마력을 받아들일 때마다 겪었던 일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마력에 서린 기억의 편린을 보는 것. 하지만 적은 양의 마력이라 그런지 기억이 드문드문 끊어진 흑백영화의 필름처럼 내게 떠올랐다.

‘괴물 같은 놈…….’

‘전하. 경축할 일이 아니옵니까?’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 속의 사람들은 붉은색의 털로 짠 망토를 두르고 왕관을 쓴 젊은 왕으로 보이는 남자와, 흰색의 소매가 넓은 가운을 입은 노인이었다.

노인의 품에 한 아기가 들려 있었다. 연한 황금색 머리카락과 갈색의 눈동자. 드렌 왕자인 걸까?

‘경축? 경축이라고 했나? 인간이 지녀선 안 되는 힘을 가진 아기가 태어났는데 경축이라고?’

‘전하. 전하의 아이옵니다! 어찌 괴물이라고…….’

‘그럼 괴물이지 뭐겠나! 태어나자마자 마력을 다루는 아기가 괴물이지 또 누가 괴물이란 말이더냐!’

‘이것은 재능이옵니다. 분명 후일 위대한 왕이 될지도…….’

‘시끄럽다! 당장 나가거라!’

‘전하! 대체 아기를 어쩌시려는 겁니까!’

‘밖에 아무도 없느냐! 이 늙은이를 당장 끌고 나가거라!’

왕으로 보이는 남자가 노인의 품에서 아기를 거칠게 빼앗았다. 노인은 병사들에게 끌려 방 밖으로 쫓겨났다.

왕은 아이를 데리고 어딘가로 향했다. 화려하고 큰 침대가 있는 방이었다. 왕이 머무는 처소일까.

그곳에서 왕은 아기를 내팽개치듯이 침대로 던졌다. 아기는 깜짝 놀라며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지만, 왕은 매정하게도 아기에겐 관심도 주지 않았다.

‘안 돼. 이런 녀석이 태어나면 안 된단 말이다.’

무엇이 그렇게 불만인 것일까. 자식이 뛰어나다는 것이 그렇게 싫은 것일까. 내 자식이 천재라고 한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또 없을 것 같은데.

혹시 왕이라는 직책 때문인 것일까.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왕이란 자리가 무엇인가. 최고의 권력을 지닌 정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시시때때로 그 자리를 노리는 정적들로부터 그 자리를 사수해야 하는 투쟁의 자리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가 알고 있는 왕이란 그렇다. 물론 출처는…… 인터넷에서 본 게 다지만.

그렇다면 혹시 뛰어난 능력을 가진 아들의 안위를 걱정해서 이러는 게 아닐까?

왜 그런 거 많잖아. 갓 태어난 아들이 너무 뛰어나서, 다른 후궁들이 자기 자식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뛰어난 왕자를 독살하는 이야기. ‘내 자식이 왕이 되어야 해. 어디서 천한 년의 자식이 감히!’, ‘그래. 이걸 왕자에게 몰래 먹이 거라. 그럼 아무도 모르게 잠자듯이 죽겠지’, ‘우리 아들이 왕이 돼야 해. 어떻게 키운 아들인데!’.

……오랜만에 나도 모르게 망상회로를 가동해 버렸군. 어쨌든 그런 정적들의 타깃이 될까 봐 걱정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저런 놈이 내 아들이라니……. 역사가 나를 어떻게 기록할지 벌써부터 두렵군. 분명 후세인들은 나를 무능한 왕으로 기억하겠지. 뛰어난 왕이 나오기 이전의 왕은 언제나 평가가 박하단 말이다!’

……내 믿음을 산산조각 내는 구나. 고작 그런 이유 때문이었냐.

뛰어난 아들이 왕이 되면 자신이 초라해 진다는 것이 싫어하는 이유라니. 너무 유치한 이유이지 않는가.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생각하기엔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도 그런 경우가 자주 있었기에 그를 한심하겐 생각해도 마냥 비웃을 수는 없었다.

왕이 뛰어나고 국민들에게 인기 있는 후계자를 질투하는 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몇 번이나 있었으니까.

심지어 고의로 독살한 게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왔었지 아마.

그러나 이런 나의 생각은 곧 왕이 꺼내든 한 자루의 지팡이를 보고 충격에 멈춰 버렸다.

‘이건 다 네 녀석 탓이니 날 원망하지 말거라.’

그가 꺼내 든 지팡이. 오래된 나무로 만든 것 같은 낡고 허름한 지팡이.

그것은 아버지의 기억 속에서 본 용사 중 한 명이 사용하던 지팡이였다.

그래. 그랬군. 용사의 후손이었던 것인가.

지팡이를 든 왕이 아기인 드렌 왕자에게 손을 얹고 중얼거리며 주문을 외기 시작했다. 지팡이에서 하얀 세계수의 마력이 흘러나왔다. 마력은 왕의 주문에 춤을 추듯 움직이다가 왕자의 이마로 향했다.

‘괴물 같은 녀석. 아기인데도 나의 마법을 거부하는 것이냐.’

본능적으로 왕이 자신에게 악의(惡意)를 품고 있음을 감지한 아기가 자신에게 들어오려는 마력을 억지로 막았다.

하지만 아무리 천재라도 아기는 아기인 것일까. 아니면 왕의 역량이 그 질투와 탐욕만큼 강했던 것일까. 결국 아기는 왕의 마법을 막지 못하고 흘러들어오는 마력을 허락해버렸다.

‘이것으로……. 네 녀석은 훌륭한 왕이 되지 못할 것이다. 훌륭한 왕? 큭. 인간 백정이라 불리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서럽게 울던 아기는 마력을 흡수하고 나서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새근새근 잠들었고, 거기서 기억은 끝을 맺었다.

『이 녀석도 결국 피해자 같은 건가.』

나는 기억 속 아기처럼 잠이든 드렌 왕자를 보며 마음 한구석이 착잡했다.

왕이 건 마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왕이 왕자에게 품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왕자의 영혼의 상태를 보건데 드렌 왕자가 미친놈이 된 건 왕 때문인 것이 확실했다.

‘알고 보니 이 녀석도 좋은 녀석이었어’의 다른 버전으로 자주 나오는 ‘알고 보니 이 녀석도 피해자였어’로군. 흔해 빠진 스토리의 클리셰잖아.

“흐응. 결국엔 왕이 나쁜 놈이네요.”

지난번처럼 마력에 깃든 기억을 함께 공유한 핀이 드렌 왕자의 볼을 찌르며 말했다. 드렌 왕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다른 쪽으로 신경이 쓰였다.

『핀. 발가벗은 남자한테 그렇게 쉽게 다가가는 거 아니야.』

“이 녀석은 남자가 아니라 적인걸요. 앗. 설마 아빠. 지금 질투하시는 거예요?”

『……그냥 네가 걱정돼서 그렇단다. 질투가 아니야.』

“맞는 거 같은데.”

핀이 나를 놀리듯이 행동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드렌 왕자의 볼을 찔렀다. 이 녀석이 진짜. 자꾸 다른 남자를 만지지 말란 말이야. 한 마디 따끔하게 해줘야겠어.

……참고로 이건 질투가 아니라 딸아이에 대한 예절교육이다. 부모라면 당연히 해야지.

하지만 그 순간 드렌 왕자가 눈을 떴다.

“어? 깨어났다.”

눈을 뜬 드렌 왕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드렌 왕자의 눈동자를.

“그런데 원래 파란색이었나?”

갈색이던 그의 눈동자가, 파란색으로 변해 있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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