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조금은 방에서 나와 볼까
모험가들이 숲을 떠나고 벌써 2주가 흘렀다.
그동안 우리들의 삶에 큰 변화는 없다. 이런 숲속에서 변화라고 해봐야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비가 오는 계절 말고 변할게 뭐가 있을까.
“곰. 곰.”
「숲은 심심하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아. 생각해 보니 아이들의 행동이 조금 변한 것 같기는 하다.
핀은 숲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바위나 땅을 부수고 다닌다. 그동안 벨룸의 힘을 수련해 왔었는데 요즘은 숙련된 모양인지 굉장한 일을 벌이고 다닌다.
손가락으로 쿡하고 찌르니 바위가 가루가 된다거나…….
발로 땅을 살짝 디뎠는데 개미지옥처럼 땅이 모래가 되어 움푹 파인다거나…….
게다가 최근엔 마력을 가느다랗게 뽑아서 주변에 뿌리는데, 거기에 닿기만 하면 폭탄처럼 펑펑 터지면서 가루가 된다. 벨룸의 기술을 마력과 합친 것일까?
신기하다는 감상보단 무섭다. 인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겠다더니 싸울 준비가 만반이잖아.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평화란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니까. 그걸 위한 거겠지. 그런 거지? 핀?
“곰. 곰.”
「그렇다. 평화란 힘이 있을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핀이 열심히 수련하며 숲의 국방력(?)을 높이고 있는 동안 필로우 역시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는데, 이전의 스타일을 버리고 새롭게 자신만의 싸움법을 연습하고 있었다.
이전의 필로우는 속도 하나만을 믿고 상대에게 달려들었다.
확실히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그것뿐이다. 곰과 싸우면서 곰에게 유효타를 먹인 적이 있던가? 상대의 공격을 흘리는 것이 특기인 곰이 귀찮아서 흘리지도 않을 정도면 말 다했지.
그래서 새롭게 연습하고 있는 것이 바로 ‘포박술’.
전에 모험가들과 싸우기 전부터 연습하고 있었는데 모험가를 이긴 후론 확실히 포박술이 본인에게 맞는다고 생각했는지 숲에서 연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즘은 그냥 상대를 포박하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는지 끈을 다루는 법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지금도 나무 이곳저곳에 끈을 걸어두고 그 위를 거미처럼 돌아다니고 있다.
거미인간, 아니 거미토끼냐. 은근히 끈 위가 마음에 드는지 가끔 낮잠을 잘 때도 그 위에서 자고 있다.
“곰. 곰곰.”
「쟤는 그냥 바보다. 저런 걸로 어떻게 싸운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리고 곰은 요즘 들어 자꾸 내 옆에 붙어서 말을 건다. 참으로 눈치 빠르게 내가 아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할 때마다 용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채고 코멘트를 단다.
나? 나야 뭐 오늘처럼 좋은 날씨엔 정령으로 나와 일광욕이나 하면서 애들을 지켜보고 있지. 참으로 한가하기 그지없다.
“고오오옴!”
「나는 그게 끝이냐아아아!」
“……곰. 왜 자꾸 그러는 거야.”
“곰곰! 곰! 곰!”
「전에 내가 싸우는 모습도 안 봐주고! 나도 좀 관심 좀 가져달라! 내 분량도 늘어났으면 좋겠다!」
“무한×전이냐! 분량은 무슨 분량!”
네가 무슨 정×돈이냐. 현실이 만화나 시트콤도 아닌데 분량 타령을 하고 있어.
그런데 어째 곰의 말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최근 들어 느낌이 쎄한 게 뭔가 관심받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소설이나 만화로 따지자면 다른 등장인물 이야기에 집중되어서 우리들 이야기는 등장하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곰 때문에 나까지 이상한 기분이 들잖아. 현실은 만화라거나 소설이 아니라고. 정신 차리자.
“곰. 곰. 곰.”
「으음. 주인님. 근데 가만히 있어도 되나.」
“무슨 소리야. 설마 또 분량이야기야? 곰. 살면서 꼭 뭔가를 해야 되는 건 아니잖아.”
“곰! 곰.”
「그 뜻이 아니다! 인간들이 오면 어떻게 할 거냐는 뜻이었다.」
“아. 인간…… 그러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래. 모험가들을 놔줬으니 인간들이 찾아올지도 모르는 일이지.
핀이 그들에게 숲에 대해선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약속이란 그리 믿음직한 것이 아니다.
수십 년을 함께 알고 지낸 친구사이에서도 쉽게 깨지는 것이 약속 아니던가. 그날 처음만나고 싸운 모험가들이 그 약속을 진심으로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흐음. 인간이라…… 아니,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종족들도 올지도 모르겠네.”
생각해 보니 꼭 인간으로 한정지을 필요는 없잖아. 여기는 판타지 세계고, 인간 말고 다른 종족들도 있으니까.
아인(牙人)들이 올수도 있고, 마족이 올수도 있고, 엘프들이 올지도 모르지.
“……만나면 뭐라고 이야기하지.”
지난번 모험가들이 왔을 때처럼 웬만하면 나는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세계수라는 걸 들키면 여러모로 생존에 위협이 가해질 것 같으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대로 지낼 수는 없지 않은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인간 말고 다른 종족은 딱히 세계수를 돈으로 보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만나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근데 나, 인간일 적에 집에 틀어박혀 지냈었는데. 제대로 대화가 가능할까?
아이들이야 내 가족이니 대화에 문제는 없는데 낯선 사람들이랑 대화할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이거 중증이네. 으으. 방구석 폐인으로 너무 오래 살았었어.”
대화는 아직 무리다.
적응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할까. 내가 방 안에 틀어박혀 산 것이 거의 5년이 넘었었는데 모르는 사람이랑 대화하긴 아직 용기가 나지 않는단 말이야.
인터넷처럼 채팅이나 글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글씨로 필담이나 나눌까. 아버지의 기억 덕분에 이 세계 언어는 알고 있으니까 문제는 없겠지만…….
“아니야. 그건 안 돼. 그 시절이랑 다른 게 하나도 없잖아.”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매일 침대에 누워 노트북만 하다가 배가 고프면 땅거지처럼 미리 택배로 주문한 인스턴트를 먹고, 다시 누워서 인터넷을 하다 졸리면 밤낮 구분 없이 잠을 자던 나날들.
그렇게 나무늘보처럼 자고 먹고 눕는 생활만 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숨 쉬는 것마저 귀찮아지지 않았던가.
나는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번에 모험가를 봤을 때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들을 보고 인간을 만났다는 기쁨이나 같은 종으로서의 친밀감은 들지 않았다.
세계수로 환생했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상태로 나태하게 사는 것은 안 된다. 정령체 없이 쭉 나무였으면 모를까 이제 난 움직일 수 있는 수단이 생겼잖아?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본체 주변에서 일광욕이나 하는 것은 정령화를 한 보람이 없잖아.
인간처럼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적생명체라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아를 깨우친 생명체로서 저질러선 안 되는 기본 예의가 아닐까.
그러므로 지적 생명체 중 으뜸인 인간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롤 모델로 삼아서 바른생활을 해보실까!
……라는 이유가 3할 정도고, 요즘 핀이 나의 시야를 공유하면서 내가 정찰보단 놀고 있는 걸 알아채기 시작한 후론 어째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딸한테 백수취급 받고 싶진 않단 말이야.
그래. 마음을 다지자. 새로 태어났으니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아야지. 과거의 실수는 반복하면 안 되는 거잖아?
“좋아! 지금부터 인간…… 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인간답게 살아보자!”
이거 새 출발을 하려니 흥분되는걸!
좋아. 보통 방구석 폐인에서 벗어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조깅이지. 어디 숲을 달려볼까!
“우선 저기 보이는 산까지이이이…… 이이…… 흐에에엑…….”
아아. 흥분해서 숲으로 달리다가 이제야 기억났다. 나, 내 주변에서 멀리 못 벗어나지…….
인간처럼 살기는 개뿔이. 나는 나무라고…… 내게 바른생활이란 일광욕이나 하는 거잖아……!
아아, 이대로 바닥이랑 하나가 되고 싶다…….
“아빠?”
“으헉! 아. 핀?”
“뭐하고 계세요?”
휴. 다행이다. 핀이 쓰러진 날 안고 본체 쪽으로 와준 덕분에 무기력이라는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정말 무섭군. 하마터면 작심삼일이 아니라 작심삼분이 될 뻔했어.
“그냥 운동이나 해볼까 하고. 너무 나태하게 사는 것 같아서.”
“에이. 아빠는 이 상태가 딱 좋은걸요.”
베실베실 웃으며 핀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쪽이 더 귀여워요’라며 중얼거렸다.
핀. 너 근육이 있어야 남자라며. 아빠는 남자도 아니니? 아빠니까 상관없는 걸까.
“그런가. 그래도…… 운동은 무리지만 다른 거라도 해볼까.”
“어떤 걸 해보시게요?”
“글쎄…….”
아. 그러고 보니 이 몸으로 해본 적 없는 일이 떠올랐다.
나무로 살면서 지금까지 허기를 느껴본 적이 없었다.
햇볕을 쬐고, 비를 맞고, 마력을 흡수하는 것으로 살아가는 나는 음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연하겠지만 나무는 입이 없으니 앞서 말한 것 외에는 섭취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정령으로서의 나는 보통의 어린아이 모습이다. 당연히 입도 달려 있고 맛을 느낄 수 있는 혀도 있다. 그것은 평범하게 다른 인간들처럼 음식을 섭취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닌가.
“그래. 운동이라니. 그건 너무 허들이 높았어. 작은 일부터 시작해야지. 우선 음식 섭취부터 시작한다.”
“앗. 아빠가 음식을!? 잠시 만요!”
나를 내려놓고 헐레벌떡 숲으로 뛰어가는 핀.
뭘 준비하려는 걸까? 설마 요리라도 해주려는 건가. 첫 스타트부터 요리는 좀 그런데. 아직 각오가 되지 않았단 말이야.
“고호홈.”
「그럴 줄 알고 준비했다.」
“깜짝이야. 곰. 놀랐잖아.”
“고오옴!”
「계속 곁에 있었다!」
으음. 그러냐. 미안. 이상하게 너 요즘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자꾸 분량이야기 꺼내면서 다급했던 거니? 조금 더 신경을 써줘야겠군.
곰이 돌덩이 같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두툼한 곰발바닥 위에 이름 모를 열매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시푸른 색과 시뻘건 색의 열매가 뒤섞여 눈이 조금 즐거웠다.
“곰. 곰.”
「공복에 기름기는 좋지 않다. 간단한 과일부터 시작이다.」
“……헬스 트레이너냐.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하네.”
나는 빨간색 열매를 하나 집어 코앞에 가져다 댔다. 살짝 시큼한 게 레몬 향과 비슷했다.
갑자기 조금 걱정된다. 보통 신 냄새를 맡으면 입 안에서 신맛이 감돌며 침이 고여야 하겠지만 그런 자연스러운 반응조차 없었다.
침이 나오긴 했군. ‘나 나무인데 열매를 먹어도 되나’라는 걱정에서 나오는 불안한 맛의 침이.
생각해 보면 이거 동족의 자식을 먹는 거잖아!
‘나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나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자기 합리화 시도! 이건 내 몸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이야. 그러니까 조금은 먹어봐도 괜찮아. 나 자신을 알기 위한 자아실현이잖아.
따지고 보면 약육강식을 따르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문제 될게 뭐가 있겠어.
-아삭.
작은 열매를 입에 넣고 한입 깨물었다.
상쾌한 소리와 함께 과육이 단단하게 씹혔다. 크기는 작았지만 사과를 압축한 듯한 탄력이었다.
잘게 부서진 과육에서 시큼한 과즙이 흘러나왔다. 혓바닥이 창으로 찔리는 것처럼 따끔거렸다. 하지만 그리 나쁘지 않은 고통이었다. 신 과즙을 희석하기 위해 침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꿀꺽.
목 넘김이 시원하다. 시큼한 과즙이 목을 자극하며 뼈가 시릴 만큼 차가운 물을 마신 것처럼 느껴진다. 아직도 입 안이 얼얼하며 입에서 신 내가 풍겼다.
그래서 나의 최종 감상은…….
“맛없어.”
맛은 확실히 느껴진다. 하지만 맛있다거나 더 먹고 싶다는 느낌은 없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사람마다 맛에 대한 취향이 있기에 언제나 호불호가 갈린다. 똑같이 달달한 케이크를 먹더라도 달아서 좋다, 달아서 싫다, 더 달았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의견이 갈린다.
나는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맛은 느껴지는데 뭔가 거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것이 태생의 한계인가. 나무로 태어난 나의 한계일지도.
“곰. 미안한데 다른 열매는 못 먹겠어.”
“고옴…….”
「그렇다면 뭐…….」
“아빠! 기다리셨죠!”
핀이 헐레벌떡 뛰어오며 나를 찾았다.
평소라면 눈치채지도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내 뒤로 다가와 껴안았었는데, 이번엔 뭔가를 들고 오느라 평범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었다.
“핀? ……그거 생선이니?”
“네! 헤헤. 배고프시다면서요. 그래서 요리해 봤어요.”
“아니, 딱히 배고프다는 말은 안 했다만…….”
손에 들고 있는 프라이팬. 어디서 많이 봤다 싶었더니 필로우가 모은 모험가들의 잡동사니에 끼어 있던 거였다.
그래. 모험가도 사람인데 요리 정돈 해먹고 살겠지.
“근데 핀. 프라이팬 그거 녹슬지 않았었니?”
“걱정하지 마세요. 마력으로 코팅해서 썼으니까 괜찮을 거예요.”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근데 어째 요리의 상태가 불안하다.
생선…… 이었던 무언가가 프라이팬 위에 담겨 있다는 것은 알겠다. 핀이니까 불도 마음껏 만들 수 있고, 그걸로 잘 구운 거겠지.
근데 왜 새하얀 거냐.
까맣게 탔으면 ‘아, 태워먹었구나’라고 요리가 실패했다고 여겼을 텐데. 꼭 내일의 ×처럼 생선이 제 몸을 새하얗게 불태운 거야.
“……핀. 이거 어떻게 조리했니?”
“으음. 우선 생선을 잡고, 열매로 즙을 내서 뿌린 다음에, 풀이랑 버섯을 넣고.”
“재료는 괜찮은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사랑을 넣었답니다!”
“……사랑?”
“네! 제 마력을 듬뿍 담았어요! 헤헤.”
“그랬구나…….”
마력을 넣어서 조리하면 원래 결과물이 이런 것일까. 아니면 마력은 상관없이 핀이 요리를 못하는 것일까.
살짝 손으로 생선살을 떼어냈다. 겉도 하얗고, 속도 하얗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파레트에 짜둔 하얀 물감, 깜빡 파레트를 씻지 않고 놔두었다가 다음 미술시간에 딱딱하게 굳은 그것을 떼어낸 것만 같다.
솔직히 먹고 싶지 않다. 나무의 본능을 떠나서 이건 인간의 관점으로 봐도 썩 괜찮은 요리가 아니다.
“어서 드셔보세요. 아빠.”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길로 내가 먹기를 바라는 핀의 기대를 거부할 수가 없다.
생각을 해봐. 딸이 날 위해 해준 요리잖아. 모든 아빠들의 꿈이잖아.
“그래…… 그럼 어디.”
나는 코로 숨쉬기를 포기한 채 입으로 살점을 넣었다. 코로 숨을 안 쉬면 맛이 좀 덜 나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어.
* * *
“후우. 수련이란 참으로 고되고 힘든 것이외다.”
“아빠! 안 돼! 정신 차리세요!”
“고, 곰!”
「대장이 주인님을 독살했다!」
홀로 숲 속에서 수련하고 있는 필로우가 숲이 시끌벅적해지는 소리를 들었다.
주공이 위험한 것일까. 하지만 필로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씨의 음식을 드신 게로군.”
핀이 만든 첫 요리를 먹은 대상은 다름 아닌 필로우. 필로우는 처음 핀의 요리를 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그래도 조금은 실력이 느실 줄 알았거늘. 그대로인가 보오…….”
필로우의 마음속에서 위그드라실에게 미리 경고하지 못했다는 작은 죄책감이 고개를 슬그머니 내밀었다.
“어쩔 수 없었소이다. 아씨가 필사적으로 요리하시는 모습을 보니 그만…… 주공의 넓은 아량으로 소인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가족은 닮는다더니. 위그드라실처럼 자기 합리화를 끝마친 필로우는 현실을 외면하기 위해 다시 수련에 매진했다.
“고, 곰! 곰곰!”
「조, 좋은 생각이 났다! 기절할 만큼 충격적인 맛이었으니 다시 먹이면 충격으로 깨어날지도 모른다!」
“정말 그럴까?”
매일 똑같은 풍경이 계속되던 숲에서 벌어진 평범하지 않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