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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소문은 일상에서 시작된다(3)
“하암…….”
턱이 빠질 정도로 크게 하품을 하는 남자의 입가에 파리 한 마리가 들러붙었다.
뜨끈하고 습기 찬 그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던 파리는, 재빠르고 정확한 남자의 손가락에 잡혀 ‘뿌직’ 소리와 함께 그 생을 달리했다.
“심심해 죽겠네…….”
남자는 손가락에 묻은 파리의 잔해를 아무렇지도 않게 옷에 슥슥 문질렀다.
뒤에 있던 여직원이 끔찍한 걸 봤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그의 이름은 샤이넬. 직업은 모험가 승급원 총괄 책임자. 45세. 노총각.
오늘도 하염없이 모험가들을 기다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 할 일없는 승급원 원장이었다.
“로벨린. 오늘은 몇 명이나 왔어?”
갑자기 뒤를 돌아 여직원, 로벨린에게 말을 거는 샤이넬. 로벨린은 아까의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드러냈지만, 그 표정을 보고도 로벨린은 손가락을 씻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알면 좀 도와주실 겁니까?”
“그럴 리가. 우리 각자 담당하는 일이 있잖아.”
“하…….”
능글능글하게 웃는 샤이넬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고픈 욕구를 참아낸 로벨린은 바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그를 무시하고 하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바쁜 것은 그녀의 사정, 심심했던 샤이넬은 지켜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그녀의 뒤를 쫓아갔다.
“에이. 그러지 말고. 잘 하면 내가 도와줄지도 모르잖아.”
“그렇게 말씀하신 게 대체 몇 백번이신지 기억은 하십니까.”
“글쎄. 몇 번이나 했지? 로벨린 양. 혹시 다 세고 있었어?”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쓸 정도로 전 한가하지 않습니다.”
샤이넬을 무시하고 정리가 끝난 서류를 다른 직원에게 넘겨주러 가던 로벨린은, 뒤에서 쫄래쫄래 따라오는 그의 발등을 뒤꿈치로 쥐 잡듯이 찍어버렸다.
붉게 물든 얼굴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발을 잡고 구르는 샤이넬을 보면서 그녀는 속이 시원하다는 표정으로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끄응. 참 쌀쌀맞다니까. 그게 또 매력이지만.”
로벨린은 샤이넬 다음가는 승급원의 책임자. 그녀는 D급 모험가부터 B급 모험가까지의 승급시험을 담당하고 있었다.
승급을 보기 위한 시험료가 올라가긴 했지만 낮은 랭크의 모험가들의 수는 상당히 많았고 승급하고자 하는 갈망 또한 굉장했기에 그녀의 하루는 바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럼 이제 뭐한다. 다른 직원들 구경이나 할까.”
그녀뿐일까. 전 직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이 바로 승급원. 그곳에서 유일하게 바쁘지 않은 남자는, A급 모험가의 승급시험만을 담당하고 있는 샤이넬뿐이었다.
사실 그가 해야 할 잡다한 업무까지 다른 직원들이 하고 있어서 한가한 것도 있지만.
샤이넬은 일상의 한가함을 손에 넣은 대신 직원들의 존경심을 잃었다.
물론 그걸 신경 쓸 만큼 그는 섬세한 사람이 아니었다.
“원장님.”
“오. 로벨린. 내가 보고 싶어서 온 거야?”
오랫동안 멀리 떨어졌던 연인을 만난 듯 반가운 얼굴로 로벨린에게 다가간 샤이넬이 그녀의 허리춤에 손을 감싸려 했지만 그의 성희롱은 팔뚝을 냉랭하게 쳐내는 로벨린의 손길에 막혀 버렸다.
샤이넬은 아쉬운지 혀를 날름거리며 엄살을 부리며 팔뚝을 쓰다듬었다.
“아야. 그래도 내가 상사인데 너무한 거 아니야?”
“됐습니다. 그것보다 원장님도 일하셔야겠습니다.”
“나도 하고 싶지. 하고 싶은데 요새 A급 모험가들은 승급에 도전을 안 하더라고. 현실에 안주한다고 할까. 패기도 없지. 나 젊었을 적엔…….”
“시끄러워.”
“응? 뭐라고?”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그것보다 빨리 나오시죠. 원장님이 말씀하신 그 ‘패기’ 있는 모험가가 왔으니까.”
샤이넬은 잠깐 동안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이해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요 몇 년 동안 A급 모험가가 승급시험에 도전하는 경우는 없었기에 생소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A급 모험가의 승급시험 신청입니다.”
* * *
A급 모험가의 승급시험이 다른 등급에 비해서 신청하는 인원이 드문 이유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째는 A급까지 올라온 모험가는 자신의 분수를 잘 알고 있기에, 스스로 S급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고 쓸데없는 일에 돈을 쓰지 않았다.
두 번째는, A급 모험가의 승급시험은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했다. 닳고 닳은 모험가인 A급조차 목숨이 위태로운 것이 S급으로 승급하기 위한 시험의 관문인 것이다.
하지만 길드는 이런 위험한 방식을 끝까지 고수하고 있었다.
S급이란 무엇인가?
만 명의 모험가가 있으면 구천구백구십 명의 모험가가 B급 이하이고, 남은 열 명 중 아홉 명의 모험가가 A급이다.
그럼 남은 한 명이 S급의 모험가일까? 아니다. 그 한 명이 S급 모험가가 되기 위하여 승급시험에 도전한다. 그리고 열 명이 도전하면 다섯이 포기하고 넷이 죽는 것이 A급 모험가들의 승급시험인 것이다.
그리고 단 한 명만이 시험을 통과하고 S급 모험가라는 영광스런 이름을 얻는다.
이런 위험한 시험이기에 많은 이들이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다.
어쩌면, 불타는 마음을 가지고 도전하러 왔다가 포기하고 돌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A급 시험담당관이라는 관문 앞에서.
“자네 콧수염은 여전하구만. 아주 멋져.”
“감사합니다. 그럼 이제 시험을…….”
“응? 뭐가 그리 바쁜가. 간만에 왔는데 우리 같이 점심이라도 먹자고.”
“아뇨. 오늘은 시험을…….”
“아아. 시험? 그래. 시험도 좋지. 근데 그 시험을 치르려면 우선 배가 든든해야지. 안 그래?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아, 지금 말은 그냥 넘겨듣게나. 하하.”
“그것도 좋지만 우선 시험을…….”
“안 돼! 절대 안 돼!”
샤이넬이 비명을 지르며 대장의 말을 잘라 버렸다. 뒤에서 로벨린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A급 모험가의 승급시험을 담당하는 자에겐 단순히 시험을 주관하는 역할만 있는 것이 아니다.
A급 모험가란 무엇인가? B급 이하들만큼 의뢰비가 싼 것도 아니요, S급 모험가만큼 귀족들도 부담되는 의뢰비도 아니다. 그 사이에 낀, 적당한 완충제 역할을 하는 길드의 주요 수입 창출원인 것이다.
그런 인물이 의뢰 도중 사망하는 것도 아닌, 시험을 보다 사망한다면 길드 입장에선 여간 손해가 아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S급으로 승급시켜 그 격을 떨어트릴 수는 없는 법. 그래서 길드에선 승급 담당관에서 어떻게든 회유시켜 시험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을 쓰고 있었다.
“내 행복을 망가트리지 마! 제발 그냥 가줘! 밥 사줄게. 아니, 원하는 거 있나? 뭐든 말하게. 다 사줄 테니까 시험은 보지 말아줘.”
하지만 이런 식으로 회유하라는 것은 아니다. 샤이넬이 하는 방식은 회유가 아닌, 동정을 포함한 호소에 가까웠다.
몇 년간 업무에서 손을 뗀 그는 이미 상대를 회유하는 언변술을 잊은 지 오래였다.
“그렇게 말씀하셔도 저는 오늘 반드시 시험을 봐야겠습니다.”
“제발. 그러다가 자네가 죽으면 내 실적에 금이 간단 말이야. 월급이 깎인다고!”
“궁상 좀 그만 떠시죠. 자, 시험을 원하시면 이쪽으로.”
“감사합니다.”
이젠 소리 지르다 못해 눈물을 글썽이는 샤이넬을 뒤로한 채, 로벨린을 따라 대장과 그릴스가 원장실로 향했다.
로벨린은 원장실에 있는 책상 서랍을 뒤지더니 작은 나무상자를 꺼냈다.
마법진이 그려져 있는 정사각형의 상자는 특수한 열쇠가 없으면 개봉할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그 상자는 열쇠 없으면 못 열어. 그러니까 그냥 돌아가……?”
샤이넬의 주머니에 있어야 할 열쇠가 로벨린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가 하얀색의 부적을 상자 위에 올려놓자 딸칵 소리와 함께 상자가 열렸다.
“어? 내 열쇠?”
“전에 제게 맡기시지 않으셨습니까. 잃어버리면 귀찮을 것 같다고. 자. 여기 있습니다.”
상자에서 꺼낸 한 장의 종이를 건네받은 대장은 각오를 다진 눈으로 그것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한마디 건넨 뒤 종이를 찢었다.
그것은 반드시 합격하겠다는 그만의 다짐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강렬한 빛과 함께 방 안에서 사라진 대장.
그릴스와 로벨린이 그의 합격을 무사기원하며 조용히 생각에 빠져있는 그곳에서 샤이넬만이 구시렁거리며 불평을 토해냈다.
“굳이 S급이 될 필요는 없잖아. A급만 되도 충분히 벌어먹고 사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원장님이 그 소리를 하실 때가 아니지 않습니까.”
“무슨 소리야?”
“공문 안 읽으셨습니까? 만약 마음에 안 드는 녀석을 보내면 책임자한테 직접 찾아오겠다는 ‘그’분의 말씀을.”
샤이넬이 사람의 얼굴에서 색소가 한순간에 빠지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었다.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은 두려움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 아, 안 돼!”
“하아. 이제 기억하셨습니까.”
로벨린이 안경을 추켜올리며 바닥에 누워 좌절하고 있는 샤이넬을 노려봤다. 이 남자는 대체 아는 게 뭘까.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그래도 일단…….”
로벨린은 시험 장소로 순간 이동한 대장을 생각했다.
이름이 뭐였더라. 분명 제출한 서류로 확인했을 텐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나는 것은 멋들어진 콧수염뿐. 하지만 이미 유명인이었기에 딱히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저분은 ‘그’분의 제자니까요. 설마 제자를 죽이겠습니까.”
대장은 등장부터 상당히 유명했던 모험가다.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콧수염은 둘째 치고, ‘그’의 제자라는 것만으로 길드에서 엄청난 관심을 보였던 것이다. 대장이 ’그‘의 제자라는 사실은 길드의 몇몇 관계자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그런데 제가 알기론 콧수염…… 이 아니라…… 지금 떠나신 분은 이번이 두 번째 시험인 걸로 아는데. 이번엔 자신이 있으신가 보군요.”
보통 승급 시험을 치룬 A급 모험가들은 두 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큰 좌절감에 시험을 다시는 보지 않거나…… 아님 죽거나.
“으음. 이번 의뢰에서 뭔가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릴스가 대장을 생각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기절하는 바람에 숲에서 있었던 마지막 싸움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장은 전과는 어딘지 달라진 것 같았다. 그는 대장이 걸음걸이부터 시작해 행동하는 것에서 기묘한 위화감을 풍긴다고 느꼈다.
“의뢰라. 무슨 의뢰였기에?”
“그냥 사람을 찾는 의뢰였다. 그리고 물건도.”
그릴스는 거기까지만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 뒤로 자신이 추가적으로 정보를 말했다는 사실을.
“『그래서 엘퀴라즈 숲에 들어갔다. 엘퀴라즈 숲은 정화되었다.』”
“네?”
* * *
평범한 오두막 집 앞에 서서 대장은 고민에 빠졌다.
안에 들어가야 할지, 들어간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한 복잡한 고민이었다.
승급시험이란 별다른 것이 아니었다. 물건을 찾는다거나 어떤 문제를 푼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주 단순한 작업. 그저 한 남자와 만나 싸우기만 하면 되었다.
이길 필요도 없다. 그저 싸우면 된다. 그리고 인정받아 ‘그’에게 추천장을 받아 돌아가면 되는 일. 종이에 걸린 마법은 앞으로 반나절이 지나면 다시 원래 위치로 이동시켜 줄 것이기에 시간도 충분했다.
“저…… 스승님.”
대장은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스승이라면 충분히 숨길 수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시험일까.
그는 첫 번째 시험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어이없게 당했던 걸 떠올리며, 이번 시험에선 방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때, 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검을 뽑았다. 그리고 휘둘렀다.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그저 자연스럽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 막았네. 전보다 쪼매 컸어. 우리…….”
검을 휘두른 자는 검은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남자였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외모의 사내는 목이 늘어난 후줄근한 옷과 여기저기 헤진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스승님.”
대장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지난번처럼 어이없게 패배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 그는 가슴이 뿌듯했다.
승급시험의 진정한 시험관. 대륙에 3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S급 모험가 중 한 사람.
그리고 자신의 스승.
“어…… 그러니까…….”
홀랜드 S. 브라이든. 검에 있어선 대륙에서 상대할 자 없는 최강의 사내.
“너 이름이 뭐였지?”
……검에 있어서만 대륙에서 상대할 자 없는 최강의 사내.
하나뿐인 제자의 이름을 잊은 그에 대한 대장의 평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