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63화 (6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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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소문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1)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시 한복판. 그곳에 검과 방패가 그려진, 갈색의 멋진 간판이 문 앞에 매달려 있는 한 건물이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평범’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사람을 외형으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일반인보다 배는 굵은 팔뚝에 눈가에 검상을 단 사람들, 검은 후드를 뒤집어 쓴 채 두꺼운 책을 들고 중얼거리는 사람, 불타오르는 작은 도마뱀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자들이 평범하다면 ‘평범’이라는 단어는 진즉에 그 값을 잃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 평범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래층에 저들끼리 옹기종기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느 파티는 앞으로 있을 의뢰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고, 또 다른 파티는 서로 자신이 마친 의뢰의 난이도에 대해 대단한 업적을 이룬 양 자랑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제 막 모험가를 꿈꾸는 파릇파릇한 새싹처럼 싱그러운 젊은이들이 접수처에서 앞으로 있을 파란만장한 모험을 떠올리며 모험가 등록을 하고 있었다.

“야. 저기 봐.”

그런 새내기 중 한 명이 접수를 막 끝낸 동료의 어깨를 두드리며 어딘가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 눈빛이 가리키는 곳은 지금 막 건물로 들어온 네 명의 모험가 파티가 있었다.

“저분은 혹시…… 대장? 우와. 나 처음 봤어.”

새내기들이 호들갑을 떠는 것 같았지만 다른 모험가들도 그들이 들어온 순간부터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의뢰 완료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현재 이 도시에 머물고 있는 파티 중 유일하게, 전원이 A급인 모험가 파티였기 때문이다.

대장이 접수처에 의뢰 완료를 보고하자 접수원이 그들을 위층으로 조심스레 안내했다.

모험가란 존재는 길드의 수입을 창출하는 존재이기에 원래부터 좋은 대우를 해주긴 하지만, A급 모험가는 평범한 모험가는 해결할 수 없는 의뢰까지 맡고 있었기에 더욱 극진히 대접해 주고 있었다.

시선을 잡아 끈 4인의 모습이 2층으로 사라지자, 방금 전까지 조용히 그들을 보고 있던 다른 모험가들이 좋은 화젯거리를 얻은 양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물론 대화의 내용은 전부 2층으로 사라진 모험가들에 대한 것이었다.

“저 사람들이 그렇게 유명한가?”

“너 저분들 몰라? 자그마치 A급이 네 명이나 모인 파티잖아.”

“그건 굉장하군.”

언제나 사람들은 말한다. 노력만 하면 이룰 수 있다고.

하지만 그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경지의 끝에 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어느 분야든 재능이 없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가 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선택받은 자만이 발을 디딜 수 있는 경지. 범인(凡人)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하늘 위의 영역.

사람들은 그 경지에 이른 인물들을 천재(天才)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을 경외하고 존경하고 질투한다.

그리고 모험가들에게 있어서 천재라는 족속들은 바로 A급 모험가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소문으론 A급이 되자마자 엘퀴라즈 숲에서 의뢰를 수행했다더군.”

“아니, 미친 거 아니야? 특급 위험지역이잖아 거긴. 거기를 승급하자마자 갔다고?”

“그래. 그러니까 보통 A급 모험가보다 더 대단한 거지. 고양이도 아니고 목숨이 9개라도 되나? 심지어 그 당시 나이가 나랑 동갑이었다고. 쳇. 누구는 아직도 B급인데 세상 참 불공평해.”

선망과 질투를 동시에 섞어 말하는 모험가들. 그런데 그중에서 아직 대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모험가가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근데 저 사람이 진짜로 ‘대장’이라는 모험가 맞아?”

“그게 무슨 소리야?”

“딱히 이름표를 달고 다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바로 알아봐? 사칭일수도 있잖아. 파티원도 비슷한 사람들 데리고 다니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대장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모험가의 지적에, 다른 모험가들이 인중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에게 설명했다.

“너, 아까 콧수염 봤어?”

“응? 아. 콧수염……. 봤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볼 때 보통 몸 전체를 보고 얼굴을 살핀 뒤 행색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콧수염이라는 말을 듣자 의문을 제기했던 모험가는 방금 전, 대장에 대해 떠올리며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콧수염이 참 멋졌지.”

대장의 인중에 자라나 있던 콧수염.

검은 물감을 묻힌 붓을 가로로 꾹 눌러 찍은 듯이 진하고 가지런했던 콧수염. 잘 손질된 단정함이 한 눈에 묻어나오는 모양새.

“어? 얼굴이 어떻게 생겼었지?”

모험가는 대장이 들어오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들어오는 모습까지는 기억났다.

다부진 체격과 모험가답지 않게 격식 있는 발걸음. 다부진 체격.

그러나 그의 기억이 얼굴로 넘어간 순간, 이목구비는 두루뭉술하게 떠오르고 오로지 콧수염만이 기억에 남았다. 마치 콧수염이 얼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것처럼.

“어때?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

“으음. 콧수염……. 콧수염밖에 기억이 안 나네.”

“그게 바로 대장이라는 증거야. 누가 그 콧수염을 흉내 낼 수 있겠어? 마치 마법이라도 걸어둔 것 같아.”

“진짜 마법이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매혹이라도 걸린 것처럼 콧수염만 떠오를 수 있지?”

“그래서 예전에 어떤 용감한 마법사가 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조사한 적이 있었지. 결과는…… 아무런 마법도 걸려 있지 않았어.”

“그게 진짜야? 믿을 수가 없군.”

“그래서 우리들 사이에선 콧수염이 본체가 아니냐는 설까지 나왔다니까. 누구는 ‘대장’이 아니라 ‘콧수염’이라 부를 정도니 말 다했지.”

홀에 모인 모험가들이 다들 눈을 감고 대장의 콧수염을 떠올렸다. 얼굴은 초점 없는 배경처럼 흐릿했지만 콧수염만큼은 진하게 모습을 드러내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정말 굉장한 콧수염이다.”

* * *

“아래층이 소란스럽네요.”

“뻔하지. 또 대장의 콧수염 이야기나 하고 있는 거겠지.”

“……콧수염이라니. 다들 정말 너무하군.”

대장이 자신의 콧수염을 만지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냥 평범한 콧수염이거늘, 대체 뭐가 그리 신기하다고 이렇게 말이 나오는 것일까.

“그러니까 그냥 밀어버리래도. 대장. 그거 때문에 뒤에서 ‘콧수염’이라 부르는 애들까지 있잖아.”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별명이야 짓는 사람 자유지. 어차피 너희들도 나를 이름이 아니라 ‘대장’이라 부르고 있으니까.”

“어. 근데 대장 이름이 뭐였죠?”

“……에르나르. 숲에서부터 너에 대한 평가가 내 안에서 계속 수직낙하 하는구나.”

“앗! 나도 까먹었어. 미안. 그냥 이참에 대장으로 개명해도 될 것 같은데. 대장.”

“엘리사, 너까지?”

대장은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그릴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 희망은 그릴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촛불처럼 꺼져 버렸다.

“후우. 너희들, 내 이름은 대장이 아니라 바로…….”

“의뢰인께서 안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고맙습니다.”

대장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는 순간, 의뢰인이 기다리던 방안에서 접수원이 나와 그들에게 들어와도 좋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대장은 또다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할 순간을 놓쳤지만, 숙련된 모험가인 만큼 의뢰를 중요시하며 이름에 대해선 재빨리 잊어버렸다.

“잠시. 의뢰인께선 파티장 한 분만 만나고 싶다고 하십니다.”

처음 의뢰했을 때도 의뢰인은 한 사람만 만나기를 원했었다.

가끔 의뢰 내용이 외부로 새나가길 바라지 않는 이들도 있었기에 대장은 그것을 딱히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의뢰가 끝나고 파티원들이 모두 알게 된 지금에서도 한 명만 만나겠다니.

대장은 의뢰인에게서 수상한 냄새가 진동한다고 생각했다.

“뭐야. 괜히 따라왔네.”

“미안하군. 다들 먼저 돌아가도 괜찮아.”

“아. 저는 그럼 잠시 살 게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밖으로 달려 나가는 에르나르. 그 뒷모습을 보며 다른 인물들도 그 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럼 먼저 숙소 가겠다.”

“대장. 수고해. 난 좀 더 자야겠어. 숙소에서 봐.”

다들 떠나가 버리고 복도에 홀로 남은 대장은 매정한 녀석들이라며 씁쓸한 마음을 곱씹었다.

‘조금은 기다려 줄 줄 알았는데.’

문이 열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자 의뢰인이 의자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처음 의뢰했을 때부터 쭉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처럼,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다고 대장은 느꼈다.

“드디어 왔군. 어떻게 됐지?”

의뢰인은 검은 로브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정체를 감출 속셈인 것인지 얼굴에는 하얀 가면을 쓰고 있었는데 입까지 가려진 가면 때문에 의뢰인의 말이 가면에 부딪혀 이물질이 낀 듯한 소리로 변했다.

그는 대장에게 수고했다는 말도 없이 다짜고짜 질문을 던지며 본론으로 들어갔다.

“의뢰를 완수했습니다. 대상인 드워프는 이미…… 사망했고, 그가 가지고 있던 무기만 회수했습니다.”

성질 급한 정체불명의 의뢰인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대장이 미리 도끼를 탁자 위에 올려놨다. 의뢰인은 말을 하려다 말고 도끼를 손에 쥔 채 감상하기 시작했다.

“이게 그 도끼라는 건가…… 흐음.”

의뢰인이 품에서 검은 색의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대장은 그 종이가 마치 마기(魔氣)처럼 불길하게 느껴졌다.

검은 종이를 도끼 위에 올려놓는 의뢰인. 그리고 뭔가 기대하는 듯이 종이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길드에서 미리 내어준 차 한 잔이 식어갈 무렵, 의뢰인이 도끼에 올려둔 종이를 거두더니 팔랑팔랑 눈앞에서 흔들었다. 종이를 앞뒤로 뒤집기도 하고 얼굴 가까이 가져가 살펴보기도 하더니 이내 다시 품속으로 집어넣었다.

“가짜군.”

“가짜?”

“A급 모험가라더니. 명성이 헛된 건가? 정말로 드워프가 가지고 있던 무기가 맞나? 아니, 드워프가 죽었다는 것도 믿지 못하겠군.”

대장은 신음을 흘릴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확실히 드워프를 추격했지만 그 시신을 확인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무기가 진짜 드워프의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것조차 엘퀴라즈 숲의 엘프가 한 말이 전부였기에 확신할 수 없었다.

그저 그 말을 한 자가 인간이 아니라 ‘엘프’였기에 신뢰를 보였던 것이다. 인간과 다르게 ‘엘프’는 감정을 속일지언정 진실을 비트는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기에.

‘흐음. 어떻게 설명한다.’

하지만 그것을 말하려면 엘퀴라즈 숲에 들어갔던 것까지 말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숲이 정화되었다는 것까지 들킬 수 있다.

설사 정화되지 않았다고, 위험한 그곳까지 들어가 의뢰를 수했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이 의심 많은 의뢰인은 다른 모험가를 고용해서 그곳에 보낼 것이다.

대장은 조금 거짓말을 섞어서 드워프의 자취를 따라가 보니 어떤 평범한 숲이었고 그곳에서 우연히 엘프를 만나 그가 죽었다는 정보를, 그리고 엘프에게서 도끼를 받았다고 말하려 하였다.

“『정화된 엘퀴라즈 숲』에서 우연히 만난 엘프에게서 들은 것이니 확실할 겁니다. 아시다시피 엘프는 정직한 종족이지 않습니까. 그 엘프에게서 드워프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도끼 역시 엘프가 직접 보증한 것이니 의뢰는 확실하게 수행했다고 생각합니다.”

“방금 뭐라고 했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의자에서 일어난 의뢰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장에게 항의하듯 언성을 높였다.

대장은 방금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한 번 생각을 가다듬은 뒤 말했다.

‘드워프를 추격해 보니 어떤 평범한 숲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엘프를 만났고, 그 엘프에게서 드워프의 사망소식을 들었고 소지품인 도끼를 건네받았습니다.’

“드워프를 추격해 보니 『마기가 정화된 엘퀴라즈 숲』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엘프를 만났고, 그 엘프에게서 드워프의 사망 소식을 들었고 소지품인 도끼를 건네받았습니다.”

“그, 그게 사실인가?”

“허울뿐이긴 하지만, A급 모험가라는 제 명예와 그간의 신뢰를 모두 걸 수 있습니다.”

“하아. 그런가. 그래…… 고맙군…….”

갑자기 소리를 지르더니 이제는 기운이 빠져 서 있지도 못하는지 털썩 의자에 주저앉은 의뢰인은, 천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대장은 그가 대체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흐음. 엘프라는 것에 반응한 걸까. 아니면 어떤 숲이라는 말에서 엘퀴라즈 숲을 떠올린 건가? 아니, 이건 너무 비약적이군.’

“그래. 거짓은 아니겠지? 의뢰금은 길드에 이미 지불했네. 가서 받게나. 하지만 거짓말이라면 의뢰금뿐만 아니라…….”

의뢰인은 뒷말을 하지 않고 삼켰다. 하지만 순간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대장은 자신도 모르게 검에 손을 올렸다. 역시 평범한 의뢰인이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럼.”

대장은 방 안에서 나오면서 슬쩍 의뢰인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천장을 보며 미동도 하지 않은 채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래도 엘프와 약속한대로 엘퀴라즈 숲에 대해 잘 숨겼다고 생각하며, 대장은 1층으로 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모험가로 생활하며 수상한 사람은 많이 만났으니까. 어차피 이제 다시 연관될 일은 없을 것이다.

이자도 그런 부류의 하나라고 생각하며 대장은 찜찜한 기분을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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