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62화 (6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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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핀의 속마음

“휴. 다들 잘 날아갔을까.”

마지막 한 사람까지 하늘 높이 던져버리고, 핀은 시원스레 짐짝을 처리했다는 듯이 손을 탁탁 털었다.

『핀. 아빠랑 이야기 좀 할까?』

“네에. 아빠. 왜 그러세요?”

핀은 진지한 내 물음에 활기차게 대답한다. 차가운 물과 뜨거운 물이 만난 것처럼 우리 둘 사이의 공기가 미적지근해졌다.

『대체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니?』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핀이 무언가 일을 꾸미려고 계획 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모험가들이 나타난 후에 내게 보여준 수상쩍은 눈빛, 싸우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억지로 밀어붙인 싸움, 아무 대가 없이 넘겨준 할머니의 도끼.

“역시 아빠. 눈치채셨네요.”

『……알아달라고 광고를 해놓고선.』

그리고 계속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수상한 이야기들. 뭔가를 꾸민다는 것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핀의 말과 행동들이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모험가들의 힘을 파악하고, 그들을 공격하고, 그들을 보내준 것에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핀이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부디 내게 뭘 꾸미고 있는지 말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빠 곁에서 천천히 이야기해 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재미난 비밀을 이야기하려는 천진난만한 소녀의 얼굴로, 핀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내 곁으로 돌아왔다.

곰과 필로우도 핀이 꾸미는 일에 대해 알지 못하는지 궁금한 얼굴로 근처에서 서성였다.

나는 정령으로 변해 핀을 마주보았다. 나무인 상태보다 사람의 모습으로, 정면에서 함께 눈을 맞추며 이야기하는 편이 훨씬 가깝게 다가왔다.

“그래서 핀. 무슨 일은 꾸미고 있니? 인간들이랑 관련이 있는 거야?”

“네. 맞아요. 제가 꾸미고 있는 일은…….”

잠시 뜸을 들이며 내 표정을 살펴보는 핀. 그리고 마음을 굳게 먹었는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비밀이에요.”

……진지한 얼굴로 비밀이라고 말해주었다.

“핀. 정말 이럴 거야?”

“하지만 아빠가 알면 절대 허락해 주지 않을 일인걸요.”

“그러니까 나쁜 짓을 꾸미고 있다는 거네.”

나는 팔짱을 끼고 최대한 위엄 있는 모습으로 핀에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아버지다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되지.

하지만 딱히 위엄 있는 모습은 아니었는지, 핀이 나를 끌어안았다.

“헤헤. 아빠.”

“으읏. 그만해 핀. 아빠 지금 화났어.”

“그러지 마세요. 네? 솔직하게 말할게요.”

“으응, 그러면 뭐…….”

핀의 무릎 위에 앉혀져 등 뒤로 끌어안기는 기분이 나쁘지 않다. 화가 나려던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았다.

게다가 말해주겠다니까 겸사겸사 해결도 된 거 아닌가. 역시 화를 낼 땐 내야 한다니까.

“말해봐.”

“사실 빨리 인간들이 와줬으면 해서요. 그래서 최대한 친절하게 대해준 거예요.”

“그게 끝이야? 그럼 모험가들을 관찰하던 건 뭐야?”

“위험한 녀석들이면 안 되잖아요. 저는 괜찮지만 곰이랑 필로우가 다칠 수도 있고. 혹시라도 아빠를 다치게 할 만큼 강한 녀석이면 전력으로 쓰러트리려고 자세히 관찰했던 거예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 그럴 거면 굳이 도끼를 건네주고 싸울 필요는 없었잖아.”

핀이 나를 끌어안고 있는 팔에 힘을 주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더더욱 핀의 품속에 끌어당겨졌다.

“헤헤. 들켰네요. 역시 아빠는 못 속이겠어요.”

역시 다른 이유가 있었구나.

김 서린 창문 너머를 보는 것처럼 어렴풋이 핀이 호의적인 태도를 보인 이유를 알 것만 같았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핀은 금세 내게 그 이유를 알려주었다.

“그냥 인간들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었어요. 아빠가 그러셨잖아요. 복수해야 할 인간들은 지금 살고 있는 인간들이 아니라고. 그때 할아버지 할머니를 배신한 용사들은 죽었을 거고, 다른 세계수를 파괴한 인간들은 다들 죽고 없다고. 그러니까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들에게 복수할 필요는 없는 거라고.”

등 너머로 핀의 심장 박동 소리가 느껴졌다.

차분하고 고요한, 그리고 힘찬 박동이 나의 몸을 흔들었다.

“그래서 인간들이랑 대화를 해보려고 했는데, 조금 분이 안 풀려서 저도 모르게 싸웠어요. 그래도 이젠 알 것 같아요. 그 엘프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인간들이 어떤 존재인지 어렴풋이 보여요.”

“그런데 도끼는 왜?”

“그냥요. 어차피 가지고 있어봐야 손질도 못해서 언젠간 썩어 버릴 것 같고, 차라리 인간들에게 넘겨주면 관리는 잘 해줄 것 같았어요.”

“아깝지 않아? 할머니가 만든 물건인데.”

“이미 진짜는 제게 있는걸요. 속이 중요한 거지 포장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요.”

“하긴. 거기 있던 마력은 다 네가 흡수했었지.”

“이렇게 잘 대해줘야 나중에 또 숲에 놀러오죠. 그리고 다른 인간들도요. 헤헤.”

“다시 올까…….”

장난치고는 꽤나 무섭게 당했는데. 그리고 인간들이 숲에 오는 건 세계수인 내 입장에선 조금 불안하다.

모든 인간이 위험한 건 아니지만 세계수는 노다지 그 자체가 아닌가. 돈 앞에서 성인은 없는 법이니까, 헤실헤실 웃는 사람이라도 나를 보고 어떤 마음을 먹을지 누가 알겠어.

이런 내 마음을 용케도 눈치챈 핀이 나를 더욱 끌어안았다. 이젠 포근하다 못해 조금 몸이 아프다. 애초에 핀. 너 너무 힘이 세단 말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가 지킬 거니까요.”

“주공! 주공에게 해를 끼칠 무뢰한들은 소인이 해치우겠소!”

“곰!”

「내가 주인님을 지킨다!」

“예전부터 한 생각인데, 내가 너희를 지켜야 하는데…….”

아무래도 나, 어째 보호받는 입장이 돼 버렸다?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된 거지…….

으음. 뭔가 찜찜하긴 한데. 아. 정령으로 있으려니 벌써 나른해진다.

뭐, 상관없겠지. 오히려 조금 기쁘다. 핀이 인간에 대해 선입견을 버리기 시작해서. 아무래도 전엔 너무 나쁜 쪽으로만 보려는 경향이 있었어.

“그래. 다들 고마워. 든든하네.”

나는 아이들을 칭찬해 주었다. 다들 기쁜 표정을 해주니 마음이 훈훈해진다. 인간들에 대해 하던 고민이 싹 날아가는 기분이다.

그래. 이 아이들이 있는 한, 인간들이 숲에 들어와도 걱정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핀이 있는 한 그 어떤 인간이 숲에 들어와 나쁜 짓을 저지르겠는가.

그러니 핀을 믿자. 조금 찜찜한 구석은 있지만.

그래도 믿자.

* * *

미안해요, 아빠.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에요. 정말로 인간들이 숲을 찾아와 주길 바라고 있는 걸요.

그렇지만, 그게 꼭 인간들과 친해지기 위해서만은 아니에요.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그렇지만……

제가 진실을 말한다면, 아빠는 분명 절 말리실 거예요. 어쩌면 절 싫어하실지도 몰라요.

아빠는 예전에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다고 생각하셨죠? 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전 알 수 있어요. 아빠와 전 연결되어 있는걸요.

저만 아빠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건 슬프지만, 기쁘기도 해요. 덕분에 이렇게 들키지 않았으니까.

아빠는 스스로 인간이 아니라고, 인간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셨지만 저는 알아요. 더는 상처받기 싫어서 자기도 모르게 외면하시는 걸,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이라는 걸.

그건 무감정한 것과 달라요.

그래서 어쩌면 제가 하려는 일은 아빠를 더 상처 입힐지도 몰라요. 아빠는 뭐라 해도 인간을 좋아 하시니까요.

심지어 진실을 외면한 그 이기적인 드워프의 죽음조차 슬퍼하셨으니 까요.

여리고 착하고 순진한 우리 아빠.

제가 지켜드릴게요.

설사 저를 미워하신다고 해도.

* * *

“으아아아!!!”

하늘을 나는 꿈을 꿔본 적이 있는가?

비행마법이란 수준 높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면 조련사가 기르는 동물에 탑승하는 것만이 하늘을 나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곳, 바다같이 파란 하늘 아래 한 명의 엘프가 맨몸으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주, 죽는다아아아!!!”

난다기보다는 어린아이가 던진 돌멩이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지만.

하늘 아래에서 땅으로 추락한 엘프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어야 정상이겠지만, 그의 주변을 감싸고 있던 마력이 바람으로 변해 그와 땅 사이의 쿠션이 되어주었다.

눈물을 흘리며 반쯤 실성한 채 비명을 지르던 그는 다른 동료들이 목덜미를 잡고 일으켜 세우자 그 때서야 육체를 떠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여, 여긴…….”

“호들갑 그만 떨어. 에르. 우리들도 놀라긴 했지만 너 정도는 아니었다.”

“엘리사 씨이…….”

엘리사를 보며 더욱 눈물을 쏟아내는 에르나르. 그런 그를 보며 엘리사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왜, 왜 그러세요?”

“……아무것도 아니야. 이 둔탱아.”

광룡의 마력도 죽음의 패닉에는 이길 수 없던 것일까.

에르나르는 분위기를 읽지 못하고 그저 살았다는 기쁨에 그녀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하아. 땅이란 게 이렇게 소중한 존재인 줄 처음 알았어요.”

“엘프는 다들 자연을 사랑한다고 들었는데.”

“숲을 사랑하는 거지 땅을 사랑하는 건 아니에요. 그것도 그냥 사랑이라기보단 내 집 사랑이지만요. 자기 집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딱히 공감은 안 된다.”

“잘 모르겠군.”

어렸을 때 집을 떠난 그릴스와 대장이 그 말에 공감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급한 것은 엘프가 자연을 사랑하느냐 집을 사랑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의뢰인이 찾던 물건도 구했으니 도시로 돌아간다.”

한시라도 빨리 도시로 돌아가 의뢰를 끝마치고 싶은 마음은 대장뿐만이 아니었으리라.

다들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번 일에 대해 푸념 섞인 말을 내뱉었다.

“으음. 곰. 강했다. 자연은 역시 무시할 게 못된다.”

“하아. 정말이지 어려운 의뢰 같았다가 쉬운 의뢰 같았다가, 결국엔 어려운 의뢰였는데…… 이게 또 쉽게 풀렸네. 뭐가 이리 복잡해!”

“그러게요. 빨리 끝내고 도시에서 쉬고 싶어요. 으으. 게다가 아까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기분이 이상해요.”

모험가들은 저마다 말을 끝마치고 숲을 등진 채, 도시로 발걸음을 향했다.

“에르…… 나르. 괜찮아? 감기라도 걸린 거야?”

“글쎄요. 날아오면서 찬바람을 많이 쐐서 그런 걸까요?”

“남자가 뭐 그리 약골이야. 다 같이 날아왔는데 너만 걸리다니.”

“흐에에에…… 원래 바보는 감기에 안 걸린다잖아요. 그러니까 저 빼고 다들…… 그, 그만! 이건 제가 하고 싶어서 한 말이 아니에요! 아직도 이러네!”

“건방지네. 그게 네 속마음이었어?”

“엘리사 씨! 정말 아니에요!”

“에르나르. 숲에서 나한테 한 말. 아직 기억하고 있다.”

“대, 대장까지!”

“눈치도 없는 네가 더 바보다.”

“그릴스 씨이…….”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에르나르가 빠른 발걸음으로 다른 모험가들의 뒤를 쫓았다.

그의 몸이 떨리는 이유가 마력에 예민한 탓이라는 걸, 그들에게 말을 걸며 핀이 마력을 썼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모험가들은 피곤한 몸을 눕힐 침대를 생각하며 도시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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