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61화 (6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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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잘 가, 모험가들

“자. 너희가 찾던 물건이야. 드워프가 가지고 있던 도끼. 선물로 줄게.”

나는 핀의 발언을 듣는 순간, 어쩌면 모험가가 들어온 순간부터 핀이 이 순간을 계획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필로우가 자신의 수집품들을 내게 보여줬을 때,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벨룸의 도끼에 대해 바로 떠올렸다.

낡고 녹슨 무기들. 고풍스러운 무늬나 손잡이를 보면 필시 좋은 무기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시간의 흐름 속에서 한 줌의 고철더미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력이 사라진 벨룸의 무기는 그저 평범한 도끼에 불과했다. 벨룸이 봉인하고 관리하지 않았음에도 천 년이라는 시간을 버텨낸 도끼였지만 그것은 과거의 일일 뿐, 평범한 도끼가 된 이상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무기들처럼 녹슬고 자루가 썩을 것이다.

용사가 사용했든 하지 않았든 이건 어머니의 유품이 아닌가.

나는 그것을 막기 위해 나의 마력을 불어넣으려 했지만, 순수한 세계수의 마력이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나의 마력은 도끼에 스며들지 않았다.

“아빠. 그 도끼. 제가 써도 될까요?”

도끼를 어떻게 보존해야 할지 고민하는 나에게 핀은 자신이 도끼를 쓰겠다고 했다.

이미 레이피어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기에 도끼까지 쓰겠다는 건 욕심이 아닐까 싶었지만, 할머니의 유품이라 생각하고 곁에 두려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아무 고민 없이 잔돈을 거슬러 주듯 도끼를 넘겨주는 핀의 태도는, 설마 처음부터 이런 용도로 쓰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도끼라…… 드워프는 어디 있습니까?”

얼굴부터 ‘나 신중한 남자야’라고 써 붙여 있는 대장이라는 모험가가 벨룸의 위치를 물었다. 핀은 생글생글 웃으며 ‘이미 죽었어. 그래서 우리가 묻어줬어’라며 태연하게 말했다.

“그 도끼가 진짜 드워프의 도끼일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어쨌든 감사합니다.”

핀이 한 손으로 도끼를 건네주자 대장이라는 모험가도 한 손으로 도끼를 건네받았다. 그러나 그 무게에 깜짝 놀라 앞으로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으음. 굉장히 무겁군요.”

그게 그렇게 무거운가.

생각해 보니 저걸 딱히 내 손으로 든 적은 없었구나. 마력으로 이동한 게 전부로군. 역시 핀의 힘이 비정상적으로 강한 게 확실해졌다.

“끄응. 대장? 어떻게 된 거냐.”

“그릴스. 일어났군. 몸은 좀 괜찮은 건가?”

“여기저기 쑤시긴 하지만 버틸 만 하다. 대장이야말로 괜찮은 건가? 계속 비틀거리고 있다.”

“으음. 기운이 빠져서 그런 거니까. 조금 쉬다보면 괜찮아질 거다.”

피곤에 찌든 얼굴로 대장에게 다가온 그릴스의 뒤로 곰이 나타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영락없는 야생동물의 모습이었지만, 그 얼굴엔 뿌듯함이 드러나 있었다.

“곰. 곰.”

「무리하지 말고 내게 기대라. 엄청난 혈투를 벌였는데 벌써 일어나면 몸 상한다.」

“알았다. 고맙다.”

곰의 어깨에 몸을 맡기는 그릴스. 두 사람(?)의 모습은 어린 시절부터 동고동락하며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을 수 있는 오래된 친구의 모습이었다.

“미안하다.”

“곰. 곰곰.”

「괜찮다. 부담 안 가져도 된다. 우리는 주먹을 나눈 형제다.」

“그렇군. 오고가는 주먹 속에서 우리의 우정이 싹텄었다.”

둘의 눈빛이 서로를 교차하며 애절하게 변해간다. 눈동자에 서린 감정은 우정인가. 우정이겠지.

…우정일 거야. 너희 대체 어떻게 싸웠기에 이렇게 친해진 거냐. 누가 보면 어렸을 때 헤어진 형제인 줄 알겠네.

“곰. 대체 어떻게 싸운 거야?”

“고, 곰?”

「보, 본다고 하지 않았나?」

“저 남자가 이상한 약을 먹고선 갑자기 너랑 비슷해지는 모습까지는 봤는데. 그다음부터는 이 남자랑 이야기하느라 못 봤어.”

핀의 뒤쪽에 모험가들의 대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곰이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내게 말을 걸었다.

“고, 곰!?”

「주, 주인님은!?」

『미안. 나도 못 봤어. 다른 쪽에 신경 쓸 게 있어서…….』

연애이야기를 듣느라 못 봤다고 하면 상처받겠지?

“곰!?”

「필로우는!?」

“소인도 전투가 끝나고 싸움을 복습하느라 보지 못했소이다만…… 싸움에서 이겼다고 해서 자만하면 안 되지 않소이까?”

“고옴…….”

「세기의 길이 남을 명승부였다…… 근데 아무도 못 봤다…….」

대체 어떤 전투를 벌였기에 이토록 좌절하는 것일까. 나중에 또 곰이 싸우게 된다면 꼭 봐둬야겠다.

“이봐! 거기서 노닥거리지 말고 나도 좀 풀어줘!”

줄에 몸을 묶인 채 나무에 매달려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엘리사라는 모험가가 악을 쓰며 시선을 끌었다.

꽤나 오랜 시간을 매달려 있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묶인 모습이 부끄러워서 그런 건지 얼굴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이런. 아직 벗어나지 못하셨소이까? 처음 사용한 포박술이라 걱정이 많았거늘, 이 몸의 포박술도 꽤나 쓸 만한 것 같소이다.”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말하는 필로우. 그런데 필로우 너, 저건 포박술이라기보단 다른 쪽 계열 같은데. 귀갑 묶기는 포박술로 쳐야 할까. 아니면 조련술로 쳐야 할까. 분류가 애매하다.

“지금 풀어드리겠소이다.”

의기양양한 승자의 표정으로 그녀를 풀어주러 다가가는 필로우. 하지만 그 옆을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한 명의 엘프가 있었다.

“엘리사 씨? 괜찮아요?”

“으, 응? 에, 에르나르. 으힉!?”

필로우보다 먼저 엘리사에게 다가간 에르나르는 그녀를 매단 밧줄을 단검으로 끊어버렸다.

밧줄은 끊어졌지만 끊어진 건 그녀를 매단 밧줄뿐, 그녀는 몸이 묶인 채 아래로 떨어지며 짧은 비명을 질렀다.

“괜찮아요? 엘리사. 많이 놀랐죠?”

“어? 어어…….”

떨어지는 그녀를 손으로 받아 든 에르나르가,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점점 그녀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저, 저기. 에르나르. 너무 가까워지는 거 같은데…….”

“쉿. 에르나르라고 부르지 말아요. 에르라고 불러줘요. 엘.”

“에, 에르나르?”

“저는 에르. 당신은 엘. 우리들의 애칭. 마치 하나였던 것 같지 않나요.”

“자, 잠깐만. 에르…….”

“쉿. 더 이상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당신의 마음. 아까부터 제게 전달되고 있으니.”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얼굴.

로맨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엘리사의 눈이 각오를 한 듯 꽉 닫히고, 에르나르의 얼굴이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가는데…

“에르나르. 우선 밧줄 먼저 풀어줘야 한다. 몸이 계속 묶여 있어서 어디 잘못됐을지도 모른다.”

“곰. 곰.”

「맞다. 떠들고 있을 시간이 없다.」

두 사람의 흑백영화 같은 짧은 로맨스가, 어느새 다가온 곰과 그릴스에 의해 저지당했다.

갑작스런 지적에 정신을 차렸는지 에르나르는 화들짝 그릴스에게 엘리사를 던지며 뒷걸음질 쳤다.

“히이익! 내가 무슨 짓을! 죄, 죄송합니다! 이상한 마력을 받은 뒤부터 자꾸 저도 모르게 헛소리를…….”

“아, 아니야. 됐어. 자, 장난이잖아? 그렇지?”

“하, 하하. 그렇죠. 저도 한 번 장난 좀 쳐봤습니다. 어땠나요. 엘리사 씨?”

“제, 제법이던걸. 에르나르. 많이 컸는데?”

두 사람이 서로 눈도 마주치지 못하며 달아오른 얼굴로 열심히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핀도, 곰도, 필로우도, 모험가들도 굉장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모두의 눈빛은 ‘그냥 사귀라고 좀!’이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아, 그릴스와 곰은 제외였다. 눈빛이 질투로 불타고 있다. 솔로부대원이냐, 너네.

풀려난 엘리사는 에르나르 근처로 가지 못하고 쭈뼛거리다가 대장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들고 있는 도끼를 보며 의뢰라는 주제를 꺼내며 어색한 상황을 반전시키려 했다.

“이게 그 도끼야, 대장?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의뢰는 끝냈네.”

“으음. 아직 의뢰인에게 보여주기 전까진 확실하게 모른다. 조금 쉬다가 마을로 떠나도록 하지.”

아아. 물어보고 싶다. 대체 누가 벨룸의 도끼를 가져오라고 의뢰한 것일까.

내가 알기론 벨룸은 계속 숲에서 머무르고 있었는데. 대체 누굴까.

머릿속에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과거의 용사. 지금까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인물.

하지만 굳이 뺏으려면 언제든지 뺏을 수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굳이 모험가들에게 의뢰까지 하면서 뺏으려고 할 이유가 있을까.

꼭 용사가 의뢰했다고 볼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드워프인 벨룸에게 눈독을 들였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나는 용사의 존재가 계속해서 떠올랐다.

설마 지금까지 살아 있는 걸까. 세계수의 마력이란 인간을 천 년이나 살게 해줄 정도로 굉장한 것일까. 세계수인 나조차도 나의 마력에 대해 확실하게 알 수가 없다.

“아차. 밖에 나가선 엘퀴라즈 숲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지 말해줬으면 좋겠어. 예를 들면…….”

핀의 눈동자에 잠시 붉은 기운이 서렸다. 그리고 나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엘퀴라즈 숲이 정화됐다』라거나. 그런 말을 하면 『소문이 퍼져』서 곤란할 것 같거든.”

핀의 말에 맞춰 마력이 흘러나와 모험가들에게 흘러나가는 모습을.

핀의 마력이 몸속에 들어가는 순간, 모험가들의 눈빛이 잠시 흐려졌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왔다.

“알겠습니다. 이곳이 정화됐다는 소문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 위해 몰려올지도 모르는 일이죠.”

“맞아. 괜히 사람들이 몰려오면 시끄럽기만 하고, 숲을 망가뜨리는 녀석도 나올 거 아니야.”

대장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방금 전까지 마력을 몰래 불어넣던 모습은 어디가고 핀은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왜 그래?”

“감사합니다.”

말을 하던 도중, 갑자기 대장이 핀에게 절을 하듯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며 감사인사를 표했다.

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 숙인 대장의 뒤통수를 바라보았다.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거기에 이렇게 의뢰 물품까지 건네주셨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이런 인사뿐인 것이 죄송스러울 뿐입니다.”

“에이.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한 일이라곤 조금 겁을 준 것뿐인데.”

“하지만 그 덕분에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고개를 숙이다 못해 바닥에 몸을 대고 절을 하는 대장. 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고개를 살짝 들고 핀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헤헤. 그렇게까지 말해준다면…… 조금 기쁘네.”

핀은 복잡한 표정으로 대장을 내려다보았다. 말처럼 기쁜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한 표정인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아. 너희들 그러고 보니 숲 밖으로 나갈 수 있겠어? 다들 지쳐 보이는데.”

“으음. 괜찮습니다. 조금 쉬면 금방 다들 체력을 회복할 겁니다.”

“아냐, 아냐. 내가 숲 밖으로 보내줄게.”

핀이 대장의 허리춤을 잡더니 마력으로 그를 감쌌다. 훈훈한 봄바람과 같은 마력이었다.

“이 마법은……?”

“착지할 때 다치지 않게 쿠션 역할을 해줄 거야. 걱정하지 마. 자신 있다고.”

“이동마법이 아니었습니까?”

“응? 나 그거 쓸 줄 모르는데.”

말을 마치자마자, 핀이 대장을 하늘 높이 던져 버렸다. 대장은 도끼를 손에 쥔 채,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사라졌다.

“으아아악!!!”

……핀. 방식이 너무 과격한 거 아니니.

“자. 그럼 다음은 너야.”

“괘, 괜찮…….”

“많이 다쳤잖아. 얍!”

그릴스가 대장처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하늘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모험가들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벌써부터 슬금슬금 도망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우, 우리는 됐어, 별로 다치지 않았는걸.”

“에이. 사양할 거 없어.”

평화로운 엘퀴라즈 숲 위로 모험가들의 비명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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