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60화 (6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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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잘 가, 모험가들

핀은 다가오는 검을 보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늦은 저녁, 가로등 불빛 아래를 지나가며 날아다니는 하루살이들을 보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가.

부딪히는 하루살이들이 짜증나고, 간지럽고, 귀찮다는 생각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거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겁먹고 도망치는 짓은 아무도 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발악인가?’

핀 역시 대장의 일검을 보고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루살이들은 수라도 많기나 하지, 이번 일격은 그저 단 한 번의 칼부림일 뿐이었다.

한 마리의 하루살이. 피할 필요도 없는 덧없는 몸부림. 귀찮음조차 느끼지 못할, 부딪히면 사라질 한 순간의 몸짓.

귀찮다는 생각도 떠오르지 못하게 할 그런 평범한 공격이었다.

“……!”

그러나 핀은 예지와 같은 서늘한 느낌을 그 검에서 느낄 수 있었다. 막지 않으면 검은 좌하단 에서부터 우상단까지 자신의 몸을 대각선으로 가를 것이다.

핀이 입고 있는 옷은 드래곤인 벨루스가 만들어 준 옷이며 그녀의 몸은 이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빈약한 공격에 상처 입을 만큼 약하지 않았다.

하지만 핀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막지 않으면 저 검이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힐 것이라는 걸 본능적으로 감지한 것이다.

대장을 공격하려던 핀의 오른손이 재빨리 방향을 틀며 그 평범한 공격을 옆으로 쳐내려 하였지만, 느린 듯 평범한 공격은 이미 궤도를 바꿀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다가왔다.

어쩔 수 없이 핀은 손바닥으로 그 공격을 막는 쪽을 택했다.

“읏……!”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아련한 고통. 쇠냄새와 비슷한 그 감각이 핀의 손바닥에서부터 팔을 타고 올라왔다. 이윽고 이어지는 뜨거운 감촉이 손바닥 아래로 흘러내리고, 절상(折傷) 특유의 차갑고 시린 감촉이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베였어……?”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는 듯이 자신의 손바닥에서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며 핀이 중얼거렸다.

처음 벨루스가 깨어났을 때, 그가 뿜어내는 화염에 화상을 입은 적은 있어도 이런 절상을 입은 적은 처음이라 핀은 생소한 고통을 느꼈다.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대장이 검을 쥐고 핀을 향해 세웠다. 하지만, 그의 육체는 어째서인지 그의 말을 듣지 않았고, 멋지게 세운 검은 바닥에 꽂혀 그를 지탱하는 지팡이 대용으로 사용되었다.

“크윽.”

간신히 얻은 깨달음. 스승의 발자취를 한 발짝 따라갈 수 있게 이끌어준 힘이었지만 지친 그가 쓰기엔 너무나도 큰 힘이었다.

노인처럼 검을 지팡이 대신 사용하고 있는 대장을 눈앞에 두고, 핀은 손바닥에 난 상처를 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인간은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핀의 손바닥은 혼신의 힘을 다한 이전의 마력광선조차 간단히 막아내었다. 그런데 단순한 공격이 먹혀 들어갔다? 핀은 이해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이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 개인의 특성인지, 아니면 모든 인간들이 이처럼 갑작스럽게 강해지는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였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였다.

“모르겠네.”

그녀는 다른 쪽 손바닥으로 상처를 감싸 쥐고 마력을 흘렸다.

벨루스에게 받은 마력을 제외하고 자신의 아버지, 위그드라실에게 받은 마력만 흘리자 그녀의 손바닥에 난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더니 이미 흘러나온 혈액을 제외하곤 상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럼 이제. 끝내야겠지?”

아직 회복하지 못한 대장에게 핀의 말은 ‘널 죽이는 일을 다시 시작하겠다’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는 필사의 힘을 끌어 모아 간신히 검을 들고 핀에게 저항하려 했지만, 그의 무릎은 그런 노력을 배신하고 땅에 입맞춤을 하였다.

‘이제 끝인가.’

간신히 얻은 깨달음 끝엔 죽음인가. 대장은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헛웃음을 지었다.

핀을 만나지 못했다면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것이고, 반대로 핀을 만나는 바람에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후회는 없다. 스승의 뒤를 조금이라도 쫓았다는 사실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뿐. 다른 파티원들까지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제 목숨 하나로 끝내주시고 다른 이들은…….”

“응? 무슨 소리야. 안 죽인다고 했잖아?”

“예?”

“처음부터 말했는걸. 혹시 내가 죽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에이. 덩치는 산만해서 너무 겁이 많잖아.”

“아, 아니 아무리 봐도 아까 그 살기는…….”

“아. 그거. 네가 너무 제 실력을 못 내는 것 같아서 겁 좀 줘봤어. 인간은 위기의 순간이 닥쳐오면 자기도 모르는 미지의 힘이 생긴다며? 그 말이 진짜였네. 설마 내 손을 벨 정도로 강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걸.”

“어…… 어?”

경험이 많은 대장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방금 전까지 죽일 듯이 살기를 뿜어 대던 상대가 다시 처음의 장난기 넘치던 모습으로 돌아가다니. 마치 한 사람이 아니라 두 사람을 대하는 것 같았다.

“괜히 움직이지 말고 거기 가만히 있어. 그러다가 몸 상해.”

전혀 다른 온도차에 대장이 멍하니 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는 사이, 핀은 바닥에 쓰러져 부들대고 있는 에르나르에게 다가갔다.

“흐음. 죽은 건 아니지?”

손가락으로 볼을 콕콕 찔러도 반응 없는 에르나르. 마력이 고갈되어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진 그의 등에 손을 대고 마력을 흘려 넣었다.

‘아빠에 대한 건 들키면 안 되니까, 할아버지의 마력만……’

핀은 혹시나 세계수의 마력을 받으면 에르나르가 눈치챌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벨루스의 마력만 아주 약간 흘려 넣었다. 마력을 받은 에르나르의 안색이 정상으로 돌아오더니, 갑자기 언제 쓰려졌나는 듯 벌떡 일어났다.

“크하하! 내가 바로…… 으응? 뭐였지 방금? 엄청나게 자신감이 넘치면서 내 자신이 사랑스러워지는 기분은?”

“일어났어? 흠. 역시 할아버지의 마력은 위험하다니까…….”

자아도취에 잠시 빠질 뻔한 에르나르를 보며 핀이 ‘으으…… 그때만 생각하면……’이라고 중얼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에르나르는 핀을 한 번 보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대장에게 달려갔다.

“대, 대장! 괜찮으세요?”

“으, 으음. 에르나르…… 나는 괜찮다.”

“아니 대장! 나이도 많으신 분이 A급 모험가랍시고 전방에서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에요? 이제 슬슬 나에게 대장 직을 넘기고 이제 은퇴를…… 으에에? 내가 무슨 소리를!?”

광룡의 마력 덕분일까. 반쯤 자아도취에 빠진 채 평소엔 생각도 못 할 독설을 퍼부은 에르나르는 자신도 놀라 입을 막아버렸다.

“너…… 날 그렇게 보고 있었냐…….”

“아, 아니에요! 엘리사 씨가 있는데 제가 뭣 하러 대장 같은 아저씨를 보겠…… 제발 그만!”

“끄응…… 나중에 할 말이 있었는데 지금 것도 참고해서 해주지…….”

“으아아아! 미치겠네!”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하는 에르나르. 그리고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핀이 한마디 던졌다.

“만담은 이제 다 끝났어?”

* * *

“그래서 인간들이라고 다 나쁜 건 아니라는 거죠. 확실히 멍청하고…… 아니 본능에 충실한 면이 있긴 하지만 좋은 인간들도 많아요.”

“그렇구나. 인간이란 역시 복잡한 존재네.”

핀과 에르나르가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핀이 인간들에 대해 엘프인 에르나르에게 자신이 본 것, 들은 것, 느낀 것들을 말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광룡의 마력에 의해 인간을 조금 깔보며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핀은 인간에 대해 많은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에르나르의 이야기를 들은 핀은, 인간들이 마음대로 변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저 한마디로 ‘착하다’, ‘나쁘다’로 정의할 수 없었다.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린 양심 없는 인간이 쓰레기를 줍기도 하고, 친구를 배신한 인간이 가족을 위해 헌신하기도 했으며, 남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란 인간이 학생에게 해서는 안 될 짓을 하기도 했다.

“인간이란 역시 알 수 없네.”

핀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

그녀는 아빠인 위그드라실을 생각했다. 최초의 세계수였던 할머니와 광룡인 할아버지가 인간들에게 배신당해 죽었음에도 그녀의 아빠는 어째선지 그 당시 배신의 주체였던 세 명의 용사에게만 증오를 가지고 있었다.

함께 기억을 본 핀은 모든 인간에게 증오심을 느꼈기에 그런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게다가 아빠인 위그드라실은 인간에 대한 희미한 그리움까지 가지고 있었다. 본인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핀은 또렷하게 알 수 있었다.

당사자인 위그드라실 본인도, 그리고 다른 아이들도 모르는 자신만의 비밀 덕분에.

‘하아. 용사들의 죄를…… 인간에게 물어도 될까?’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지금이라고 해서 아빠를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핀은 예전에 아빠가 한 말이 조금은 마음에 들어왔다.

과거 끔찍한 죄를 저질렀던 것은 용사들일 뿐, 인간 모두가 그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나 세계수에 대한 인간들의 태도가 핀의 마음을 여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모든 인간이 세계수를 돈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 많은 인간들이 세계수를 돈으로 보기 보단 과거 마왕을 물리치는데 도움을 준 고마운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이 마음에 새겨졌다.

그렇다고 앞으로 인간들이 숲에 들어오는 것을 방관할 수 는 없는 법. 이번 대화를 통해서 핀은 괜찮은 인간과 그렇지 못한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뭐, 그래서 「계획」을 세운거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네.”

“네?”

“아무것도 아니야. 다 끝났어?”

“아. 네.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네요.”

그럼 인간에 대한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우선 여기 있는 모험가들에 대한 문제를 생각하기로 핀은 마음먹었다.

이미 어떻게 할지는 이들이 숲에 들어온 순간부터 「계획」의 일부로 쓸 예정이였기에 딱히 할 필요도 없었다.

“고마워. 덕분에 인간에 대해 많은 걸 알게 됐어. 그럼 답례로 선물이라도 줘볼까. 필로우.”

“부르셨소이까. 아씨.”

“그 도끼. 가지고 있지?”

“도끼 말씀이옵니까? 여기 있소이다.”

필로우가 귀에 손을 집어넣더니 그 안에서 커다란 도끼를 꺼냈다.

그 광경에 간신히 몸을 회복하고 있던 대장도, 바로 앞에서 지켜보고 있던 에르나르도, 곰과 싸운 뒤 기절했다가 깨어난 그릴스도 눈을 크게 뜨고 놀랐다.

“다들 뭐하고 있어. 나 좀 풀어줘!”

엘리사만 빼고. 그녀는 아직 나무에 묶여 있었다.

핀이 필로우에게서 도끼를 받아 들였다. 그리고 아직 필로우의 귀에서 어떻게 도끼가 나왔는지 과학적, 마법적, 상식적으로 생각하며 고민에 빠져 있는 대장에게 내밀었다.

“자. 너희가 찾던 물건이야. 드워프가 가지고 있던 도끼. 선물로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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