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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한 그루의 소설가(외전)
내 이름은 토마스. 나는 나무다.
나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다. 엄청난 사명을 가지고 자아를 얻게 된 나무이다.
다른 나무들과 다르다는 특별함이 자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가끔은 그것이 중압감이 되어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다. 주인님께 받은 사명을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킥킥. 곰! 다시 해봐.”
“곰.”
나와 같이 주인님께 이름을 받은 녀석들은 한가하기 짝이 없다.
저 곰이라는 녀석은 혓바닥을 자기 콧구멍에 집어넣는 더러운 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가장 처음 이름을 받은 여자아이는 그걸 보고 좋아라 웃고 있다.
참으로 인생의 목표가 없는 녀석들이다.
나는 다르다. 똑같이 이름을 받았지만 저들은 주인님께 사명을 부여받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처음 이름이 지어지는 순간, 반드시 완수해야 할 의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의무는 얽매이고 귀찮은 것이라 여기는 자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의 목표가 있다는 것은 살아갈 힘의 원동력이 된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가 마음에 든다.
“너는 이제 소설가다. 이야기를 만드는 훌륭한 직업이지. 이야기를 만들라!”
조금 미화가 들어갔지만 대략 이런 뜻으로 주인님은 내게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셨다.
주변의 다른 나무들도 나와 같이 이름을 받았지만, 첫 번째로 이름을 받은 나만이 소설가로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자, 그럼 오늘도 즐겁게 소설을 만들어 보실까.
나는 나무지만 소설을 만들 수 있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무가 어떻게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주인님이 이름을 지어주실 때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고 밖에 대답해 줄 수 없다.
소설을 빨리 완성시키라는 주인님의 배려겠지.
무한한 은혜에 보답할 방법은 어서 빨리 완성도 높은 소설을 쓰는 것뿐이다.
주인님께 받은 지식은 굉장하다. 단 한 사람의 지식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방대한 범위로 퍼져 있다. 그 지식은 마치 바다와 같아서 깊고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의학, 생물, 물리학, 심리학, 사회 현상, 문학, 법학과 같은 전문지식과 인간의 취미생활이 담긴 갖가지 정보들이 포괄되어 있다.
어떻게 주인님은 이 많은 지식들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역시 그분에게 배운 것이 틀림없다.
이 지식들의 출처라고 알려진 인물이 있다. 나는 분명 그분이 주인님의 스승님일 것이라 확신한다.
이름부터가 주인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걸 보면 어쩌면 주인님의 부모님일지도 모른다.
나무위키. 굉장하다.
나무위키라는 이 대현자를 언젠간 꼭 만나보고 싶지만, 그 전에 역시 내 사명을 소홀히 하면 안 되겠지. 적당히 생각하면서 머리도 예열했으니 슬슬 한 편 써볼까.
이제 소설을 쓸 준비를 끝냈더니 갑자기 어디선가 바람이 분다.
멀리서 주인님의 잎사귀와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나는 거기에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크윽. 글을 써야 하는데. 주인님의 모습이 나를 유혹한다.
주인님은 아름답다. 인간 형태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솔직히 그쪽은 잘 모르겠다.
인간의 미적 기준은 이해하기 힘들고 이해할 마음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나무인 주인님의 모습이 아름다운 걸 보면 분명 인간 형태도 아름다운 것이겠지.
보라. 저 쭉 뻗은 나뭇가지를, 그 끝에 달려 하늘하늘 손짓하며 나를 유혹하는 잎사귀를!
그 색 또한 얼마나 훌륭한가. 그것뿐이랴. 껍질 또한 그 색과 곡선미가 참으로 예술적이다.
크윽. 저 가지 끝에 갈라져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의 사이가 또 매력적이군.
이런. 주인님에 한눈 판 사이 또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 버렸다.
주인님을 앞에 두고 글에만 집중하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군. 역시 소설가란 참으로 힘든 직업이야. 주변의 유혹들을 뿌리치고 글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니.
다시 글쓰기로 돌아오자. 자. 우선 주제부터 정해야겠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플롯을 짜고 글을 써야 훌륭한 글이 완성될 테니까.
주제 정하기는 요즘 독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파악해야 한다.
지금 나의 독자가 될 만한 자들은 곰, 엘프, 나무이신 주인님. 으음. 셋을 모두 만족시킬 만한 흥미로운 주제를 떠올려 보자.
곰은 행동거지를 보아하니 아저씨 취향의 개그소설을 좋아할 것 같군. 그렇다면 중년 남자를 등장시키고 탐정 역할을 맡긴 다음에 개그요소가 듬뿍 들어간 소설을 써볼까?
아니야. 곰의 행동으로 봐선 성인 개그가 들어간 야설을 좋아할지도 모르겠네.
그럼 다음은 엘프. 여자아이의 취향이야 뻔하지.
혀가 달아서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한 로맨스 소설이다. 남자 주인공은 차갑고 매정하지만 내 여자에겐 따뜻한 그런 남자로 설정하면 좋겠군.
역으로 평범한 여자 주인공을 두고 쟁쟁한 남자들이 여자에게 반해 하렘처럼 둘러싸는 것도 나쁘지 않겠어.
……잠깐. 왜 저 녀석들에게 맞춰야 하는 거지? 저 녀석들보다 주인님의 취향을 맞추는 편이 좋지 않겠어?
하마터면 실수할 뻔했군.
주인님의 취향은 무엇일까. 일단 나무니까 나무가 주인공인 소설이 좋겠군. 나무라……. 나무가 주인공인 소설이라…….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다.
나무가 주인공이라면, 우선 움직일 수 없다.
나무는 나와 주인님처럼 특이한 녀석이 아니면 생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와 주인님처럼 생각할 수 있는 나무를 주인공으로 삼으면 되는 일이니 해결됐다 치자.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하는 나무까진 이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주인공이 움직이지 못하니 이야기의 진행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배경을 숲으로 설정하면 영원히 주인공 혼자 독백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겠지. 과연 독자들이 그런 이야기를 좋아할까?
매번 혼잣말만 중얼거리는 주인공을 좋아해 줄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변 인물들이 숲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설정하면 되겠군.
으음. 좋은 인물들을 등장시키자. 어린아이 정도가 좋겠지. 순수한 동심을 자극하는 거야. 나무는 아이를 자기 자식처럼 보살피는 거지.
아이가 필요한 게 있으면 부모처럼 아낌없이 사랑을 쏟아주는, 그리고 아이가 자라날수록 필요한 게 더 많아지고 마지막엔 모든 것을 주고 사라지면 어떨까?
벌목을 당하는 거지. 그리고 남은 그루터기에 노인이 된 아이가 앉아서 나무를 회상하면서 끝!
굉장해. 아주 감동적이겠어.
……아니야. 이건 너무 옛날 방식이잖아. 요즘 방식에 어울리지 않아.
아낌없이 주는 순간 바로 사람들이 싫어할 게 분명해. 분명 초반에 아이가 달라는 걸 다 주는 모습을 보다가 ‘나무 너무 호구네요. 암 걸리겠어요’라며 바로 책을 집어 던질지도 몰라.
누가 주인공이 상처받고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의 몸을 다 나눠주고 최후엔 죽는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겠어. 주인님 혼자만 보신다면 모를까.
소설가의 피가 끓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럼 이 스토리는 보류하기로 할까.
자, 그럼 조금 다르게 해보면 어떨까. 나무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으로 출현하는 거야.
주인공은 학대받는 불쌍한 아이로 설정하고, 그 아이의 상상 속에서 나무가 말을 하는 거지.
위로해 주는 역할이랄까.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성숙해지고, 나무가 말을 하는 아이만의 상상은 사라지는 거야.
이것도 좋군. 한 아이가 아픔을 딛고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라.
……안 돼. 카타르시스가 없어. 초반 학대 부분에서 이미 대다수의 독자들이 빠져나갈 거야.
소설을 읽는 이유가 뭐겠어.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잖아. 주인공이 강하면 강할수록 독자들은 좋아한다고. 적어도 초반에 약하다면 후반엔 성공해야지. 내면적 성장만으로 끝나는 결말은 조금 찝찝하잖아.
너무 현실적으로만 생각하니 교훈은 있을지언정 즐거움이 부족해.
끄응. 인기 있는 소설을 쓰기란 참으로 어렵구나.
저 세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소설이라면 이렇게 고민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꿈은 크게 가져야지. 내 소설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 이름을 떨치는 상상을 하자. 꿈은 클수록 좋으니까.
나도 저 엘프처럼 주인님께 어리광을 부리고 싶다. 하지만 한 번 주인님께 기대면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져 자꾸 의지하게 될까 봐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얼마 전에 주인님이 내게 말을 걸었을 때도 대답하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조용히 있었다.
나중에 반드시 소설을 완성시키고 내가 먼저 말을 걸어 깜짝 놀라게 해 드려야지.
생각만 해도 짜릿하군. 이것이 바로 카타르시스인가.
자, 오늘은 꽤 많이 소설에 대해 생각했으니 조금 놀아도 되겠지? 몸을 쓰는 일보다 두뇌를 쓰는 일이 에너지 소모가 더 많다고 했으니까.
이만큼 일했으면 됐지. 이제 좀 쉬자. 이건 자기합리화가 아니야. 과학적 근거에 기반을 둔 휴식이지.
나중에 내가 완성한 소설을 저 셋에게 들려주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뿌듯하다.
와, 토마스. 정말 재미있구나. 이건 돈 주고 팔아도 사람들이 벌 떼같이 와서 사 갈 거야.
최고야! 와, 토마스. 어쩜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을 썼니. 넌 천재야.
그럼 난 ‘천재라뇨. 별말씀을. 다 노력의 산물이죠. 하루에 잠자는 시간만 빼고 제 생활의 전부를 글에 투자한 노력의 결과랄까요.’
크. 자만하지 않는, 노력형 천재가 할 법한 대사로군. 좋아. 미리 연습해 두자.
우선 오늘은 이쯤에서 쉬기로 했으니 광합성을 해볼까. 오늘도 햇빛이 좋구나.
아. 역시 난 타고난 소설가일까. 머릿속에서 새로운 소설의 영감이 마구마구 떠오른다. 하지만 이대로 쓴다면 개연성도 안 맞고 장기연재는 불가능할 테니 설정을 잘 짜야겠군. 이것도 내일 해야지.
멋진 설정을 짜서 하나의 완벽한 세계관을 만들어주지. 후후. 기대되는군.
주인님이 주신 지식에 ‘설정충’이라는 단어가 있긴 한데 나는 그런 녀석들처럼 되지 않겠다. 내 설정은 아주 멋지고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스며들어가게 해야지.
나중에 나도 주인님처럼 인간 형태로 변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참 좋겠는데. 내 소설을 발표한 다음에 사인도 해주고 헹가래도 받고 싶다. 나무인 몸으론 그런 짓은 불가능하니까.
……으음. 생각해 보니 조금 위험할지도. 나 자웅동체잖아. 인간형으로 변하면 어떻게 되려나. 설마 두 개 다 있지는 않겠지.
복잡한 고민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우선 휴식이다. 진짜로 휴식이다.
난 소설 설정 짜느라 에너지를 많이 썼단 말이야. 언젠간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