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34화 (3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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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형제싸움을 보는 부모님의 심정

정령화가 가능하다는 실험을 끝내고 난 후, 난 나무의 모습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그도 그럴 것이 정령의 모습으론 숲을 살펴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기억에 따르면 세계수란 존재는 인간들에게 처리 대상으로 찍힌 것 같다.

이유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지만 확실하진 않으니, 인간들이 오나 안 오나 감시하는 걸 최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야! 너 거기 안서!”

“콤콤콤콤.”

정령의 모습으로 변하면 핀이 자꾸 끌어안는 버릇이 있어서 함부로 변할 수 없는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고. 뭐랄까. 한층 자라난 핀이 조금 마이페이스 기질이 있어서 말이지.

사춘기가 오면 본래 성격보다 소심해지거나 대범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핀은 후자인 것 같다.

“우씨. 자꾸 도망치면 나 또 변신할 거야?”

“곰. 곰곰.”

「거짓말. 대장은 주인님 허락 없이 변신 못 한다.」

“흥! 너 각오해.”

『핀. 아빠가 뭐라고 했지?』

“그렇지만 곰이 자꾸 놀린단 말이에요!”

핀의 변신은 내 허락 없이 하지 못하도록 따끔하게 말해두었다.

그 변신은 강해지는 것은 좋지만 사춘기 소녀의 감성엔 좋지 않거든. 말하자면 핀의 변신은 핵폭탄 같은 존재랄까.

적에게도 위험하지만 아군에게도 위험한.

『곰이 뭐라고 했기에 그래.』

“저는 여자가 아니래요. 그냥 꼬맹이라잖아요.”

“곰! 곰.”

「대장은 여자 아니다! 가슴이 없다.」

새롭게 나와 핀 사이에 들어온 곰 녀석은, 야생 곰처럼 보여도 사람 말을 알아듣는 희한한 녀석이다.

예전에 핀에게 당했던 기억이 남아 있는지 핀과 앙숙처럼 잘 지내는 것 같으면서도 이렇게 매일 매일을 싸우면서 보내고 있다.

“곰. 곰곰.”

「신사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만져도 만지는 느낌조차 들지 않을 것 같다.」

……말로는 자신을 신사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전혀 아니다. 아니지. 그 신사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그쪽의 신사를 말하는 거라면 딱 맞을지도.

예의 있는 척하지만 하는 짓이 영락없는 변태다. 그래도 선을 넘은 적은 없고 핀이랑 티격태격하면서도 잘 놀아주니까 그걸로 봐주지 뭐.

『핀. 그래도 변신하는 건 안 된다고 했지. 허락 없이 변신하면 밤에 같이 안 자준다?』

“그, 그래도 전 잘못한 거 없단 말이에요.”

예전에는 내 말이라면 고분고분하게 잘 따라주던 핀이지만, 이젠 머리가 자라서 그런지 자기 의사가 뚜렷해져서 잘 듣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가 성장한 것을 너무 나무랄 수는 없으니 하는 수 없이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섞어서 훈육하는 수밖에.

『자. 둘 다 이리와.』

고양이와 쥐처럼 쫓고 쫓기던 둘의 추격전을 끝내자.

핀과 곰을 내 앞으로 불러와 한 마디씩 해주었다.

『곰. 여자애를 너무 놀리면 못 써. 당장 사과해.』

“곰……. 곰.”

「미안하다. 대장.」

『핀. 너도 자꾸 힘으로 곰을 괴롭히려고 하면 못 써. 사과하렴.』

“으으……. 그렇지만……. 그래도…….”

「핀. 아빠 말 안 들을 거야?」

“우우…….”

핀이 울먹거린다. 눈가에 맺힌 눈물이 조금씩 뺨 아래로 흘러내렸다. 억지로 참는 울음 속에 나를 향한 원망이 담겨 있다.

“아빠는 바보야!”

『핀!』

숲으로 달려간 핀이 자취를 감췄다. 어째 내가 사과하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하긴, 나도 인간일 적에 항상 그랬었다.

동생이 약 올려서 싸우든, 내가 약 올려서 싸우든 마지막에 부모님께 혼날 땐 두 사람 모두 서로에게 사과하게 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서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한 쪽은 억울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부모님이 괜스레 미워지기도 했었지.

두 사람 모두 사과하게 만든 건 부디 사이좋게 지내줬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런 건데.

그때, 나와 동생이 부모님께 혼났을 때의 그 감정을 잊고 있었다.

아이 둘이서 싸우면 어느 한쪽 편을 들어주기 참 힘들다는 사실을 이제 와서 깨달아 버렸다.

『하아. 힘들다. 무럭무럭 자라서 얼른 어른이 되어 줬으면 좋겠기도 싶고. 이대로 어린아이로 있어줬으면 좋겠기도 싶고. 싱숭생숭하구만.』

“곰,”

옆에서 뻘줌하게 서 있는 곰이 내 눈치를 본다.

심기가 불편한 부모님들은 겉으로만 드러내지 않으면 아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리라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의외로 분위기에 민감하여 이런 일이 있으면 금방 주눅 들기 마련이다.

『곰. 너무 걱정하지 마. 금방 돌아올 거야. 그리고 내가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 위험한 일은 없을 거고.』

“곰.”

이렇게 말해줬지만 곰은 템포가 낮은 대답을 하곤 핀이 사라진 숲 쪽을 보더니 그 자취를 따라 들어갔다.

핀을 달래주려는 것 같다. 그나마 곰이 좀 더 철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핀이 아직 너무 어린 건가.

『그나저나 곰도 내 자식으로 쳐야 하나. 아직도 주인님이라 부르는데.』

곰한테 아빠 소리 듣기는 왠지 거북하다.

곰이 싫은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내가 키운 핀이랑 다르게 중간에 끼어든 자식 같다고 해야 하나.

자식이라기보단 애완동물 쪽이 더 어울리지만 지성이 있으니 마냥 동물 취급할 수도 없고. 내가 이름까지 지어준 녀석이니 가족처럼 대해줘야지.

멀리서 곰이 핀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핀은 곰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기에, 곰이 바닥에 글씨를 써서 핀에게 사과하고 있었다.

“싫어.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곰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핀이 또다시 숲으로 도망쳤다.

곰은 어쩔 줄 몰라 하며 핀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아 좌절하였다. 나름 감성적인 녀석이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이 둘을 화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뭐’라고 말하며 그냥 넘기기엔 환경특성상 불가능하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사회가 구축된 인간 세상에서나 가능하다. 여기에선 두 사람이 놀 만한 친구가 서로밖에 없다.

지금 화해시키지 않으면 점점 더 어색해지다가 나중엔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되고, 최종적으로 그냥 ‘나를 알고 있는 아는 사람’으로 진화할지 모른다.

한 번 어색하게 틀어진 사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어색해지는 법이니까.

『끄응. 힘들다. 힘들어.』

우선 지금 상태에서 말을 걸어봐야 내가 밉기만 할 테니 아무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겠지. 화가 좀 풀리고 나한테 직접 올 때까지 기다려보자.

꽤나 시간이 흐른 후, 핀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아니고 멀리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서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 거리는 내가 사람의 눈으로 봐도 삐져나온 옷소매를 보고 파악할 수 있을 거리라서 마치 날 찾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핀.』

대답은 없었다.

대신 몸을 잠깐 부르르 떨었을 뿐이다.

다시 한 번 말을 걸었다.

『핀. 이리로 오렴.』

여전히 내 말을 듣지 못한 척 딴청을 피우고 있다. 발로 애꿎은 바닥을 슥슥 후벼 파고 있다.

나는 정령의 형태로 변화했다. 핀의 모습은 이제 눈에 보이는 삐져나온 옷소매뿐이다.

그쪽을 향해 직접 목소리로 핀을 불러보았다.

“핀. 정말 이럴 거야?”

핀이 조심스레 나무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에 삐친 기색이 역력해서 귀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기분이다.

핀에게 두 팔을 벌려 이리 오라고 말하자 핀이 천천히 걸어오더니 내 앞에서 멈췄다.

평소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부끄러움이라도 타는 걸까.

“핀. 이제 아빠가 싫니?”

핀은 대답 대신에 고개를 젓는 것으로 자기 심정을 표현했다.

싫은 건 아니구나. 괜스레 안심이 되는 내 마음이 어린아이 같아서 조금 부끄럽다.

“그럼 왜 아빠가 불렀는데 오지 않은 거야.”

“우우…….”

잠시 망설이던 핀이 입을 열었다. 나는 그 소리에 마음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죄송해요…….”

여러 가지 의미로 죄송하다는 뜻이 느껴진다. 굳이 그 점을 찾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걱정하고 있던 응어리가 풀어진다.

“장하구나. 핀. 사과는 용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건데.”

나는 여전히 벌린 팔을 살짝 흔들었다. 핀이 내게 다가와 품에 안겼다.

체격 차이가 커서 여전히 내가 안기는 형태가 됐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으음……. 아빠…….”

“왜 그러니?”

조용히 내게 안겨 있던 핀이 우물쭈물하며 내 귀에 속삭이듯 말했다.

“핀을 좀 더 봐주시면 안 돼요?”

아아. 그런 거였구나. 질투였었구나.

요즘 들어 핀의 말투가 거칠어진 것도, 전보다 행동이 난폭해진 것도 다 질투 때문이었나.

형제가 생겼다고, 핀과 놀아줄 상대가 생겼다고 핀이 마냥 좋아할 거라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구나.

“아빠는 항상 핀을 보고 있는걸.”

“헤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핀이 환하게 웃고 있다.

눈가에 이슬처럼 맺힌 눈물이 금방 떨어질 것만 같아서 손을 뻗어 닦아 주었다.

으음. 왠지 곰한테 미안한데. 둘 다 소중히 하고 싶지만, 나는 훌륭한 아빠가 아니라서 둘한테 똑같은 사랑을 줄 수 없는걸. 핀한테 더 애정이 가는 걸 막을 수가 없다.

* * *

엘퀴라즈 숲에서 가장 가까운 왕국. 그 왕국 국경선에는 엘퀴라즈 숲과 맞먹는 악명을 가진 숲이 있다.

사람이 살 수 없다고 여겨진 그 숲에, 작은 오두막이 한 채 있다. 세월이 노인의 얼굴에 주름을 새기듯, 썩은 나무와 퀴퀴한 냄새가 오두막이 오랜 세월을 그곳에서 지냈다고 그 흔적을 보여 주었다.

“쿨럭.”

짐승조차 살지 않을 듯한, 반겨주는 손님이라곤 풀벌레와 거미뿐일 것만 같은 그 오두막 안에서 작은 기침 소리가 들렸다.

기침은 병자의 호흡처럼 생명의 활력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죽음을 가까이 둔 노인의 기침이었다.

작달막한 키의 노인은,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과 덥수룩한 수염, 오랫동안 자라온 나무와 같은 주름이 그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시간이 없군……. 아직 완성하지 못했거늘…….”

오두막 속의 노인은 손에 쥐고 있던, 돌로 만든 작은 인형을 품에 소중하게 안은 채, 오두막의 문을 기운 없는 손으로 밀었다.

썩어가는 문은 그런 노인의 손길조차 이기지 못하고 연결 부위가 뭉텅이로 떨어지며 앞으로 쓰러졌다.

“이제 고치지 않아도 되겠지.”

몇 번이고 문을 수리한 기억이 노인에게 떠올랐지만 이젠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 한숨을 쉬듯이 말하곤, 인형을 품에 안고 어디론가 향했다.

노인이 걸을 때마다, 노인의 숨소리가 턱턱 걸리며 바람이 빠지듯 짧게 늘어졌다.

그것은 마치 끊임없이 달려온 말이 곧 쓰러질 듯 다리를 비틀거리는 것을 노인에게 떠올리게 했다.

“결국 끝까지 완성하지 못했는데…….”

죽어가는 노인이 도착한 곳은 오두막 근처의 동굴이었다.

동굴은 입구부터 시작해서 노인이 가지고 있는 돌 인형과 같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정확하게 똑같은 인형들이 줄지어서 노인을 반겨주고 있었다.

한 여인의 모습을 본 따 만든 이 인형들을 누군가 본다면, 아름답고 멋진 예술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노인에겐 인형들이 반겨주는 이 길이 고역스러웠다.

이 길을 지날 때면 인형들이 쇠사슬을 던져 자신을 옭아매는 환상에 빠져 몸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엔 그곳에서 죽어야겠지.”

조용히 인생의 마지막 작품을 동굴에 가져다 둔 노인은 자신에게 말하듯 조용히 속삭였다.

그것은 노인의 다짐이자, 스스로 받아들인 운명의 끝이었다.

“그것도 가져가야겠지. 우리의 죄를 증명하는…….”

끝말을 맺지 못하고 노인은 오두막으로 들어가 지난 천 년간 소중하게 간직한,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준, 그리고 경외하는 존재에게 받은 그것을 꺼내 들었다.

새하얀 천에 둘러 감겨 오랫동안 침대 아래에서 죽은 듯이 지냈던 그것은 노인에겐 버거울 정도로 무거웠지만, 노인은 그 정도는 죗값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곤 어깨에 간신히 짊어진 채 밖으로 나왔다.

“자. 죽기 전에 어서 출발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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