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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23화 (23/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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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검은 용(3)

하늘로 날아간 검은 용은 예상 외로 날뛰지 않고 숲을 관람하듯이 느긋하게 시선을 움직였다.

나와 핀에게도 그 맹수와 같은 적안(赤眼)을 향했지만 용의 시선은 방금 전까지 격렬하게 싸운 우리조차 무시하였다.

여전히 눈빛은 사나웠지만 더 이상 날뛰는 맹수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더 섬뜩하고 소름 돋는다.

그렇다고 지성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알 수가 없다.

『……후후후. ……으하하하하!!!』

숲을 둘러보던 용이, 갑자기 미친 듯이 웃기 시작한다.

아니, 왜 웃는지, 그 이유는 둘째 치고 저 구강 구조로 저런 웃음소리를 낼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웃음을 멈춘 용의 날개에서,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그 불길한 존재에서 어둠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가 지금까지 없앤 검은 기운들을 다 합친 것 이상으로 많았고, 다 합친 것 이상으로 진한 기운이었다.

“으읏! 기분 나빠…….”

아직 닿지 않았는데 핀 역시 검은 기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나는 핀에게 빨리 내 곁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핀이 내 곁으로 온 순간, 내가 볼 수 있는 모든 범위의 숲이 검은 기운에 절여지듯이 삼켜졌다.

검은 기운은 숲뿐만 아니라 우리까지 덮치려 했지만 내가 가진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점점 덮쳐오는 기운이 많아지자 방어막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까지 여기에 삼켜질지도 모른다. 그 뒤엔 어떻게 될까. 예전에, 처음 봤던 그 새처럼 괴물로 변하는 걸까.

……나는 변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핀은? 아직 숲 이외에 구경도 못해본 핀은?

‘그렇게 둘 순 없지!’

압도적인 물량공세에 잠시 기가 죽어 부정적인 생각을 해버렸다.

물량이 많아봐야 결국 검은 기운. 내가 가진 마력, 그중에서도 정신을 고도로 집중했을 때 나오는 그 하얀 마력이라면 전부 없애 버릴 수 있다. 그렇게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꺼져!’

혐오스러운 녀석들에게 좋은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핀이 들을까 봐 조그맣게 생각하며 하얀 마력을 내뿜었다. 우리를 집어 삼키려던 검은 기운들이 한여름의 눈처럼 녹아 사라졌다.

하지만 검은 기운이 사라진 빈자리는 뒤이어 쏟아져 내려오는 검은 기운에 도로 메워졌다.

다시 힘을 내뿜는다. 검은 기운이 사라진다. 다시 메워진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앞으로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 걸까. 확인하고 싶지만 검은 기운 너머로는 내 시선이 닿지 않는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제길. 생각해라. 생각해라!

“이얍.”

옆에서 내가 하는 일을 지켜보던 핀이 주먹을 들더니 힘을 준다. 핀의 주먹에 하얀 빛이 맺혔다.

내가 쓰는 것과 같은 마력이다. 다만 내가 광범위하게 힘을 쓴다면 핀의 것은 한 점으로 응축한 것처럼 훨씬 진하고 밝았다.

‘핀. 그거 어떻게 했니?’

“아빠가 하는 걸 계속 보다보니까 저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해봤어요. 헤헤.”

내 마력이 담긴 나뭇잎만 먹고 지내서 그런 걸까.

신기하지만 어차피 밝힐 방법도 없고 그런 걸 생각할 시간도 아니니 그만두었다.

이런 긴박한 상황에서도 핀이 웃는다. 참으로 내가 한심스럽다.

핀을 감싸주고 돌봐야 할 내가 먼저 패닉에 빠지다니. 아직 부모로서 멀었나 보다.

“으힛. 아빠처럼 안 되네.”

아쉽게도 핀의 힘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진하게 응축된 것은 좋지만 검은 기운은 핀의 주먹이 닿는 부분만 사라진다.

여기 있는 검은 기운을 다 없애려면 하늘에서 핀이 비처럼 내려야 할 것이다.

계속해서 검은 기운을 물리친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때, 핀이 내게 말했다.

“아빠…….”

‘크윽. 응? 왜 그러니?’

“선이 보여요.”

‘……그 말은 좀 이르지 않니? 한 15살쯤 돼서 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빠가 받아줄 수가 없구나.’

“그게 아니라 저기!”

핀의 손가락 끝에는 하늘에 떠서 검은 기운을 뿌리고 있는 용이 있었다. 내가 채 확인하기도 전에 다시 메워지는 검은 기운을 물리치고 재빨리 용을 확인해 보았다.

‘진짜네.’

용의 가슴 부분, 인간으로 따지자면 심장에 해당하는 부분이 다른 곳보다 매우 짙고 어둡다. 그리고 그곳을 따라 전신으로 선이 퍼져 있다.

사람의 심장이 뛰듯 그 부분이 맥박 치자 펌프로 물을 공급하듯 선이 꿈틀거렸다.

“저기가 약점일 것 같아요!”

‘그렇구나. 확실히 눈에 띄네.’

하지만 약점을 알아도 공략을 할 수 없다. 비늘도 뚫지 못하는 내 힘으론 저 검은 심장을 파괴할 수 없다.

핀의 각력이 아무리 좋아도 저 높은 곳까지 뛰어오를 순 없다.

분하다. 약점처럼 보이는 아주 수상한 부위를 발견했는데 아무것도 못한다니.

내가 고민하는 사이, 핀이 내게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아빠. 높이 높이.”

‘뭐? 핀? 괜찮겠어?’

확실히 그 방법이면 닿을 것이다. 나도 그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핀은 나의 장난으로 높이 높이에 대해 반쯤 트라우마가 걸려 있다.

트라우마란 무엇인가. 어린 시절 받은 충격으로 인해 성장한 후에도 그 여파가 남아 있는 것으로서…….

“아빠. 시간이 없어요. 빨리 높이 높이 해주세요!”

……트라우마에 대한 나의 견해는 다음 이 시간에 하도록 하자.

‘그래. 자…….’

검은 기운이 덮쳐오든 말든 마력을 모으며 잠시 기다렸다.

방어막이 흔들리며 이내 고무처럼 늘어지기 시작할 때, 나는 마력을 폭탄처럼 터트리며 주변의 검은 기운들을 일시에 처리했다.

‘간다!’

동시에 핀을 공중으로 띄운다. 높이 높이를 할 때완 다르다. 지금은 놀아주는 게 아니니까.

최대한 포탄처럼 빠르게 핀을 용에게 쏘아버렸다.

용을 향해 날아가는, 그리고 주먹에 맺힌 하얀 마력이 유성처럼 긴 꼬리를 남긴다.

멋지다. 그리고 그 유성이 용의 심장에 직격했다.

“죽어!”

이번 일이 끝나면 핀에게 무엇이 나쁜 말이고 무엇이 좋은 말인지 진지하게 가르쳐 줘야겠다.

『크아아아악!!!』

용이 상투적인 악당의 최후에서 들을 수 있는 비명을 질렀다. 심장에서부터 시작된 빛이 용의 전신을 휘감았다.

부러진 날개 역시 나뭇잎이 썩어가듯 바스러졌다. 용을 중심으로 해서 온 숲에 하얀 마력이 폭풍처럼 퍼져나갔다.

숲을 침식하던 검은 마력들이, 그 빛 아래에서 말라비틀어지듯 사라졌다.

‘잘했어! 피…… 이이이이이인!’

용을 멋지게 해치운 핀은 내가 바로 땅으로 내려줬다. 응? 그럼 내가 왜 비명을 지르냐고?

쓰러진 용이 내 쪽으로 떨어지고 있거든!

‘머, 멈춰랏!’

다행히도 용이 내게 부딪히기 직전, 마력으로 추락하는 용을 멈출 수 있었다.

다행히도 검은 마력이 완전히 사라지자 용에게도 내 마력이 통하게 된 것 같다.

‘휴. 살았다.’

쓰러진 용을 내 앞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검은 기운이 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용의 비늘은 그대로 검은색이었다.

원래부터 검은색인 걸까. 아니면 검은 기운에 완전히 먹혀서 이렇게 된 걸까.

몸에 천천히 균열이 생기는 걸 보니 왠지 후자인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아빠. 보셨어요?”

‘그래. 다 봤단다.’

어느새 내 곁으로 돌아온 핀이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얼굴에는 뿌듯함과 용을 쓰러트렸다는 자부심이 꽃피어 있었다.

“이름은 『멸룡유성권』으로 지었어요!”

‘멋진 이름이구나.’

확실히 멋진 이름이다. 진짜로 용을 쓰러트렸으니 거기에 걸맞은 이름이야.

“헤헤. 잘했죠? 아빠는 내가 지켜준다고 했잖아요.”

핀이 대견스러워서 나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핀의 귀가 팔랑팔랑 거린다. 그걸 보는 나도 핀만큼 기분이 좋다.

『으…… 음…….』

“아직 안 죽었냐! 이 자식!”

‘핀. 잠깐 기다리렴. 이제 위험해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나중에 아빠랑 진지하게 이야기 좀 하자꾸나.’

균열이 심해져가는 검은 용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용이 눈을 떴다. 피처럼 붉다고 생각했던 용의 눈동자가, 루비처럼 맑고 투명해서 보기 좋았다.

나는 승리를 했다고 방심한 게 아니다.

위험한 맹수를 철창에 가뒀다고, 또는 총에 맞아 죽어간다고 해서 아가리를 벌려 머리를 넣는 짓을 할 만큼 바보가 아니다.

다만, 검은 기운이 사라진 검은 용에게 나는 더 이상 혐오감을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혐오감이 사라진 뒤, 남은 것은 왠지 모를 그리움뿐이다.

용의 눈동자가 나를 향한다. 그 빨간 눈동자가, 믿지 못할 것을 본 것처럼 강하게 흔들렸다.

용의 입에서 나온 그 다음 말은, 죽어가는 사람의 말도, 처음 봤을 때의 위엄을 간직한 말도 아니었다.

『살아 있었…… 구나……. 세계수가……. 그녀의 자손이…….』

그 붉은 눈동자는 나를 보고 있었지만 어딘가 먼 곳을 보는 듯했다.

용의 머리에서 하얀 마력이 흘러나온다. 나의 것과 다르다. 핀의 것과도 다르다.

같은 하얀 마력이지만 알 수 있다. 무엇보다 나와 핀의 것보다 훨씬 더 밝고, 따뜻하고, 성스럽게 느껴진다.

어째서? 검은 기운에 먹힌 용이 이런 걸?

하얀 마력이 공중에서 한데 뭉쳤다. 그리고 내게로 다가온다.

『아쉽군……. 우선 받거라……. 조금 섞여 버렸다……. 그래서……. 만일을 대비해서……. 널 지켜줘야 하기에……. 시간이 없다는 게……. 아쉽군…….』

“아빠?!”

‘……괜찮아, 핀.’

그립다. 하얀 마력이 다가올수록 그 느낌은 더 강렬해진다.

대체 뭐지. 피하고 싶지 않다. 받아들이고 싶다. 하지만 이 기분이 무엇인지 가슴이 아려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마력이 내게 들어온다. 평소에 흡수하던 마력보다 훨씬 더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내 전신에 퍼지며 알 수 없는 부유감이 나를 감싼다.

천천히 생각이 가라앉는다. 하지만 기분 나쁘지 않다.

그리고 떠오른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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