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9화 (1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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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아이랑 놀아주기

나무로 산다는 것은 의외로 즐겁다.

처음의, 인간 시절의 감각을 지녀서 사지가 없다는 불편함을 가지고 있을 무렵엔 나무의 삶이 즐겁지 않았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이 행복한 이유는 움직이며 자기 의사대로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고로 육체적으로 움직일 수 없고 사고(思考)만이 지속되는 식물의 삶이란 전직 인간으로선 괴로운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초능력과도 같은, 마력이라는 힘을 사용하게 됨으로서 어느 정도 그 제한은 풀려났다. 거기에 가히 수 킬로미터나 되는 먼 곳까지 내다볼 수 있는 능력까지 있으니 손발이 생긴 거나 다름이 없다.

여전히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꽤나 편리하다.

전생에서도 외부활동 없이 거의 집에서만 있었고 지금 생활은 마치 그 때처럼 인터넷이나 TV같은 매체로 세상을 보는 것과 비슷해서 차이점이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요즘엔 나무의 삶에 즐거움을 얻어서 꽤나 행복하다.

‘아…… 따뜻해…….’

나뭇잎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따뜻한 온기에 정신을 잃을 만큼 기분이 황홀해진다.

인간의 경우 햇빛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비타민D뿐이다. 하지만 나무가 된 나에겐 햇빛과 물은 값으로 매길 수 없는 천상의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하다.

전생에 모 만화에서 너무 맛있어서 먹으면 천국으로 가는 빵을 보고 ‘대체 무슨 맛일까?’ 하고 궁금했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맛을 알 것 같다.

비가 내리는 동시에 햇볕을 쬔 적이 한 번 있는데 심장이 있으면 분명 너무 기뻐서 멈췄을 거다.

물론 햇볕을 쬐거나 물에 적셔지는 이런 행위로 미각을 느낀다는 건 아니다. 그냥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행복과 비슷한 감각을 느낀다는 거다.

왜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느냐면 이런 기분을 꿈틀이가 엘프가 된, 그러니까 핀이 되고 난 후부터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치 내 몸 안에 빠져 있던 한 조각이 맞춰진 듯 전보다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되었으며 더욱 더 마력이라는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오던 수마(睡魔)도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게 되어서 요즘엔 핀이 잘 때 함께 자고 있다.

인간이었다면, 또는 내가 엘프였다면 핀이랑 천생연분이었을 것이다.

“숲에 가고 싶어요!”

‘안 돼.’

또 사족으로 빠져 버렸네. 진짜로 왜 내가 이 이야기를 꺼냈냐면…….

“심심하단 말이에요. 네? 아빠. 숲에 가면 안 돼요?”

핀은 식물이 아니라 매우 활동적이어서 내 근처에서 머무는 것만으론 만족을 못한다는 거다.

처음엔 내 주변에서 빨빨거리며 잘만 돌아다녔다.

풀도 만져보고, 그걸 먹어도 보고(입에 넣자마자 뱉어버렸지만), 내 그늘 아래에서 낮잠도 자고, 노래도 부르고, 데굴데굴 굴러다니기까지. 어린아이의 몸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버렸다.

나와 함께 있는 것이 싫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핀과 함께 있으면 느낄 수 있다. 내 곁에서 웃고 있는 작은 소녀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다만, 엘프가 된 이후로 애벌레로서 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어린아이 특유의 호기심이 더해져 숲에 대해 관심이 쏠려 버렸다.

쳇. 이럴 것 같아서 최대한 숲에 관심이 안 가게 했건만.

‘저얼~대 안 돼! 숲은 위험하단다.’

“그치만…… 네…….”

내 말에 핀은 뭔가 말하려다가 조르지 않고 순순히 포기했다. 말을 잘 들어주니 다행이다. 졸라 대기라도 했으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갈지도 모른다.

숲은 위험하다고. 아까부터 최대한도로 시야를 넓혀서 살펴보고 있는데 짐승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예전엔 검은색을 가진 짐승들 투성이었는데 요즘 보이는 짐승들은 평범해 보인다.

물론 색이 평범하다는 거지 검치호랑이처럼 길쭉한 송곳니를 가진 범이라거나 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뱀이라거나 1층 목조 주택 크기의 미친 듯한 크기를 자랑하는 곰이 사는 숲이니 평범과 안전과는 거리가 먼 듯싶다.

이런 숲에 어린 딸아이를 보낼 수야 없지. 음. 그렇고말고.

마력을 이용해서 지킬 수야 있겠지만 그건 미국 LA슬럼가에 총이랑 방탄조끼를 입고 딸이랑 산책하는 기분일 것이다.

애초에 위험한 곳은 안 가는 것이 최고야.

‘그럼 아빠가 장난감 만들어줄까?’

“네!”

후후. 이날을 위해 마력조종법을 단련했다. 자. 간다.

우선 평평한 땅 위에 잡초들을 다 뽑아 버리고 땅을 한 번 뒤집어엎었다.

크고 자잘한 돌덩이들을 치우고, 땅을 다시 평평하게 다져주면 고운 흙만 남게 된다. 그리고 핀에게 막대기 하나를 들려주면 끝.

‘자. 여기에 그림을 그려보렴.’

내가 먼저 시범 삼아 작은 막대기로 그림을 그려주었다.

삐뚤빼뚤한 선이 뭉쳐 사람의 원형을 간신히 갖춘 그림은 빈 말로도 잘 그렸다고 못 할 그림이었다. 내가 봐도 참 못 그렸네.

‘어때? 이렇게 하는 거야.’

“알았어요!”

기본 텐션이 높은 아이라 그런지 이런 것에도 참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바닥에 앉아 막대기로 흙 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꽤나 즐거워 보여 한시름 놓았다.

‘자 그럼 나는 내 할 일을 해볼까.’

핀의 관심도 돌렸으니 슬슬 일을 시작할 때이다.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작업은 나중에 핀이 숲으로 들어가는 경우를 상정하고 핀의 안전을 위해 실시하는 사전 작업이다.

동물이란 대부분의 경우 자신의 영역을 가지고 생활한다. 내 영역 안에서는 활발하지만 다른 동물의 영역권으론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으려고 한다.

그걸 노리고, 나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최대 관찰 범위를 내 영역으로 할 생각이다.

‘워이, 워이. 앞으론 여기로 오지 마라.’

마력을 가다듬고 관찰 범위로 들어온 여우같이 생긴 녀석에게 꿀밤을 먹여주었다.

여우는 화들짝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녔지만 계속 때려서 내 영역 밖으로 나가게 유도하였다.

‘음. 오랜만에 힘 좀 써야 되겠군.’

작은 짐승들은 살짝 따끔하게 꿀밤을 때리듯이 몇 번 때려주면 내 관찰 범위 내로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발견한 이 개인주택만 한 곰 녀석은 다르다.

덩치도 크고 성격도 불같아서 한 대 때리면 마구잡이로 팔을 휘둘러 난동을 피운다.

『안녕?』

마력을 끌어모아 곰에게 인사한다.

덩치가 산만 한 녀석이 깜짝 놀란다. 그리곤 벌벌 떨다가 내 영역 밖으로 나가 버렸다.

마력이란 참 신기하다. 그저 말을 걸었을 뿐인데 이 큰 녀석을 쫓아버리다니.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곰이 놀라서 도망간 것은 아니다. 이미 몇 번 시행착오를 거쳐 딱 쫓아내기 좋은 정도로만 마력을 싣는 요령을 알아냈다. 이게 중요하다.

마력이 적으면 곰 같은 짐승은 모기라도 쫓듯이 고개를 휘두르고 영역에서 나가지 않는다.

마력이 강하면…… ‘펑’ 하고 터져 버린다. 상당히 정신건강에 안 좋은 장면이었다.

실험 대상이 되어준 곰에게 잠시 묵념.

눈에 보이는 녀석들을 다 쫓아버린 후, 다시 핀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바닥에 한 그루의 나무와 핀으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그려져 있었다. 보는 순간 꽤나 잘 그렸다는 감탄이 나올 만한 그림 솜씨였다.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었구나.

‘오. 아빠랑 너를 그린 거니?’

“네. 으응. 근데 뭔가 부족해요.”

섬세하게 하나씩 그려진 나뭇잎, 그림 속 핀과 나의 크기에 대한 현실고증, 그림 속 행복해 보이는 핀의 모습.

괜찮은 것 같은데. 예술의 세계는 이해할 수 없군.

“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핀의 막대기가 그림 속 핀의 눈동자로 향했다. 그리고 조그마한 하트를 그려 넣었다.

“헤헤. 다 그렸어요.”

‘……으음. 그, 그러니? 다 좋은데 눈동자에 하트가 조금 거슬리는구나……. 하트는 왜 그렸니?’

“하트가 없을 땐 안 행복해 보였는데 그리니까 행복해 보여요. 핀은 엄청 행복하거든요.”

‘그, 그래? 조금 위험한 그림이구나…….’

이제 핀의 기행을 말릴 힘도 없다. 그냥 이대로 두자. 어차피 알아볼 사람도 없는데.

모래 위에 그림을 다 그린 핀은 자신의 작품을 구경하다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원숭이처럼 재빠른 몸놀림으로 내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겉보기랑 다르게 신체능력이 좋아서 깜짝 놀랐다. 어린아이의 몸놀림이 아니야.

‘위험해.’

“숲에 못 가니까 이렇게라도 보고 싶어요.”

핀이 꼭대기에 올라가 한 발로 중심을 잡고 숲을 내려다본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가 간지러운지 뺨을 비볐다. 바람이 꽤나 부는데 중심을 잃지 않고 잘도 서 있다.

“넓다…….”

이렇게나 숲에 가고 싶어 하다니. 내가 고지식한 나쁜 아빠가 된 기분이다. 아. 높은 데서 보면 괜찮지 않을까?

‘핀. 아빠가 놀아줄게.’

나는 핀을 잡아 하늘 높이 들었다. 핀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진다. 새처럼 하늘을 떠다니는 기분이 썩 괜찮은가 보다.

“높다. 높아! 아빠! 더 높이 해줘요!”

‘그래? 그럼 어디.’

어린 아기에게 장난치듯 고도를 높였다가 아래로 급강하시킨다. 핀이 환하게 웃는다.

담력이 꽤나 세군. 좀 더 강하게 해도 되겠어. 이거 나도 재미있는데?

‘이게 바로 높이 높이라는 놀이닷!’

계속해서 핀을 하늘로 띄웠다. 어디까지 올라갈까. 도전 욕구가 불타오른다. 구름까지 닿을까? 한 번 시도해 볼까?

‘응? 헉!’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진짜로 핀을 구름 위까지 띄워 버렸다. 지나가던 한 무리의 새들이 갑자기 등장한 핀을 피해 급커브를 틀었다.

피하지 못한 몇 마리가 핀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핀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려 있다.

‘핀! 괜찮니? 핀?’

핀을 다시 지상으로 내려줬지만 두려움에 질린 표정으로 애처롭게 벌벌 떨고 있다.

이런 바보 같은 녀석! 이러면 놀아준 게 아니라 괴롭힌 거잖아.

“노, 높이 높이 무셔워…….”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떨고 있는 핀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를 바들바들 떨면서 말하는 핀은 결국 울어버렸다.

“새…… 무셔워…….”

‘괜찮…… 니?’

그쪽이었냐. 전직 애벌레니 새를 무서워하나 보다.

울고 있는 핀을 달래주려고 껴안아 들어 올렸지만 높이 뜨는 것이 무서운지 고개를 광속으로 저으며 거부하였다.

“히익. 높이 높이 싫어요! 새 싫어!”

울음을 터트린 핀을 어떻게 달래줘야 한다.

크윽. 육아를 해본 적이 없는 내겐 너무 벅찬 임무잖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피, 핀. 울지 마렴, 울면 망태할아버지가 이놈 하고 잡아간다?’

“망태할아버지 안 무셔! 새 무셔!”

‘으음. 핀. 그, 그래. 내일 아빠랑 숲에 같이 갈까?’

숲이라는 말에 핀이 조금씩 울음을 그치더니 충혈된 눈으로 내게 확답을 원하듯 되물었다.

“정말요? 숲에 들어가도 되요?”

‘그래. 멀리는 말고 아빠가 볼 수 있는 곳까지 만이야. 거기까진 들어가도 된단다.’

작은 손으로 얼굴을 훔친 핀이 울음기를 감추듯 웃었다. 휴. 다행이다.

“헤헤. 숲…….”

뭐, 좋아하니 다행이로군. 내가 곁에 있어주면 위험하진 않겠지. 짐승들도 거의 다 쫓아버렸고…….

아이 돌보기란 참으로 힘들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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