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4화 (1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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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 나무와 만나기까지(2)

“그럼 일찍 자자고. 내일 숲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할 거 아니야.”

오웬이 말을 꺼냈다. 에리히는 주변을 둘러보곤 그 말에 동의했다.

위험한 곳에 좋지 않은 컨디션으로 들어가느니 차라리 포기하는 편이 낫다.

그는 바닥에 깔아둔 천 위에 누웠다. 얇은 천 아래로 차갑고 고르지 못한 바닥이 느껴졌다.

“근데 그 까마귀는 언제부터 기른 거야?”

최근까지 그와 함께했지만 까마귀는 처음 보았다. 그의 직업이 소환사니 새로운 소환수라 생각했지만 소환수라고 하기엔 평범한 까마귀로 보여 그다지 미덥지 못했다.

“그냥 까마귀야. 잘 키우면 전령으로 쓸 수도 있지. 정찰용으로도 쓸 수 있고.”

“소환수에게 맞기면 그만 아닌가?”

말을 꺼내고 나서야 에리히는 실수를 저질렀음을 깨닫고 오웬을 슬그머니 쳐다보았다.

그도 자신과 같다. 범재에 불과한 모험가. 그나마 마법 쪽에 재능이 조금이나마 있기에 소환사가 되었지만 그것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진보하기는커녕 떨어져 버린 퇴물.

“소환수보다 이쪽이 더 효율적이야. 마력도 안 들고.”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은 듯 오웬은 마력 부족에 대해선 꺼내지 않았다. 천재, 아니 재능이 조금만 더 있었어도 나이 따위에 마력이 쇠퇴하는 일은 없었겠지만 그는 에리히와 같은 처지였다.

오웬이 가방에서 주머니를 꺼냈다. 가죽이 꿈틀거려 에리히는 작은 호기심을 눈에 담았다. 그 시선을 느낀 오웬이 주머니를 벌려 에리히에게 내용물을 보여주었다. 주머니 안에는 손가락만 한 초록색 애벌레들이 서로 엉켜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애벌레?”

“그냥 애벌레가 아니야. 마력초를 갈아 먹여서 마력이 깃든 애벌레야. 까마귀 같은 짐승을 길들이는 데 최고지. 효과는 둘째 치고 맛있거든. 한 번 맛보면 다른 먹이엔 눈길을 안 둬.”

“먹이로 길들이는 건가. 호화스럽군. 마력이 깃든 애벌레라니.”

“이렇게 안 하면 멍청해서 명령을 이해 못 하거든.”

오웬이 주머니에 손을 넣어 애벌레 한 마리를 꺼냈다.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까마귀에게 먹였던 그 애벌레였음을 에리히는 기억해 냈다.

오웬의 손가락에 매달린 벌레는 자기 운명을 아는지 몸을 힘차게 움직이며 빠져나가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까마귀의 부리에 씹혀 녹색의 체액을 뿜었다.

손가락에 묻은 체액을 상의에 닦은 오웬은 자리에 누웠다. 에리히도 까마귀가 애벌레를 먹는 모습을 잠시 보다가 자리에 누웠다.

말없이 누워 있는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멈춰 있었다. 그대로 잠이 들 타이밍이었다.

그 분위기를 깨고 에리히가 물었다.

“팔지 않을 거지? 발견해도.”

타인과 지낸 시간이 길수록, 가족이 아니더라도 통하는 것이 있다.

에리히가 알고 있는 오웬은 수전노처럼 돈을 밝히는 인물이 아니다. 더군다나 자신처럼 계획성 없이 돈을 쓰지 않고 꾸준히 모으는 스타일이었다.

돈이 필요한 것은 에리히 자신이었기에, 그는 오웬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해 돈에 초점을 두고 자꾸 이야기를 꺼낸다고 생각했다.

“……당연하잖아.”

자신과 달랐다. 오웬의 대답에 에리히는 부러움을 느꼈다.

그는 더 발전하고 싶은 것이다. 자신보다 조금 더 재능을 가졌지만 널리고 널린 흔한 소환사에 불과한 오웬이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나아가고자 했지만 자신은 벗어나고자 한다.

그 사실이 에리히는 끔찍하리만치 부끄러웠고 질투가 생겼다. 동시에 오랜 친구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가졌다.

“난…… 영웅까진 바라지 않아. 그저…… 존경받았으면 좋겠어. 동네꼬마라도 상관없어. 자랑스럽게 내가 소환사였다고, 멋진 모험가였다고 말하고 싶어.”

“멋진 모험가라…… 좋네.”

나는 지금 멋질까? 동네 아이들에게 무용담을 들려줄 만큼 멋지게 살아왔을까?

에리히는 생각해 봤지만 아이들에게 들려줄 만한 이야기는 없었다. 대부분의 일이 마물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쳤고 편한 일은 굳이 모험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옛날이야기 속 멋진 모험담이나 동료들과의 우정, 사랑이야기 따윈 적어도 그에겐 없었다.

더해서 오웬과 같은 꿈도.

착잡해진 기분으로 에리히는 돌아누워 오웬의 얼굴을 보려했다. 오웬은 등을 돌리고 있어서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는 지금 무슨 기분일까. 생각해 봤지만 에리히는 알 수 없었다.

* * *

“젠장! 젠장! 젠장!”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오웬은 오른팔에서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는 피를 손으로 억지로 막으며 생각했다.

잉크병 뚜껑을 잡아 돌리듯 왼손으로 잘린 팔목을 부여잡았지만 왼손을 무시하고 흘러나온 붉은 잉크는 그가 향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일 년 전, 엘퀴라즈 숲으로 의뢰를 수행하러 나간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지금의 계획을 세웠다.

엘퀴라즈 숲의 마물들이 약해진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웬은 세계수를 떠올렸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는 과거의 신수(神樹).

인류를 도왔으나 인류의 탐욕은 알지 못했던 나무. 구원의 손길을 뻗었으나 그로 인해 멸종한 존재들.

그것의 잔재를, 잎사귀의 일부분만이라도 손에 넣는다면 강해질 수 있다. 그곳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그의 절박함이 앞질렀다.

준비는 완벽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료를 돈으로 구슬렸다.

그 친구는 고민하는 모습을 며칠 보이더니 예상대로 참여하기로 했다. 이전의 그 숲에 들어간 모험가들에게 그들이 갔던 위치를 파악해 두었다. 마물들을 피하기 위해 몸의 냄새를 없앨 마도구도 사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기에게 침범당하지 않게 그동안 모은 돈을 전부 털어 정화의 구슬을 샀다.

마기란 자아가 약한 생물에게 침범하는 습성이 있다. 그 말은 즉, 인간 역시 자아가 약해지면 마기에 침범당할 확률이 있다는 뜻이다.

큰 병에 걸려 정신적으로 약해진 인간, 육체적으로 죽음에 처한 인간, 이미 죽은 인간의 시체, 트라우마나 정신병에 걸린 인간.

그런 인간에게 마기가 침범해 마물화한 일을 오웬은 직접 보진 못했지만 귀동냥으로 많이 들어왔다.

엘퀴라즈 숲의 마기는 다른 지역의 마기에 비해 그 농도가 짙기 때문에 정화의 구슬은 필수라고, 그 숲에 들어간 모험가가 말해주었다. 그는 A급 모험가 파티의 리더로서 타인에게 친절한 사람이었다.

“제기랄! 어디지?”

그의 말을 경시하지는 않았다. A급 모험자들에게 정화의 구슬은 부담이 되는 가격이지만 목숨보다 소중한 건 없기에 하나쯤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A급 모험자였을 경우에 한해서만 부담이 되는 가격. B급과 A급은 한 등급 차이지만 결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고 그중엔 벌어들이는 수익의 차이도 있었다.

B급 모험가에 불과한 오웬에겐 정화의 구슬을 가지고 가야 할 만큼 위험한 의뢰는 수락할 수 없었다. 그런 위험한 지역으로 일을 하러 갈 수 있는 자는 A급 모험가부터였기에, 오웬에겐 정화의 구슬이 없었고 전 재산을 털어 간신히 하나를 살 뿐이었다.

돈이 없는 에리히의 것까지 사줄 수 없던 것이다.

『■■■■■■■!』

인간의 것이라 부를 수 없는 울부짖음이 오웬의 귓가에 들려왔다.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에리히였다. 오웬의 발걸음이 공포에 사로잡혀 멈추고 사시나무처럼 떨려왔다.

광기와 같은 그 울음이 바로 뒤에서 들려온 것이다.

에리히도, 오웬도 마기에 대해 가볍게 보지 않았다.

숲에 온 목적은 싸우는 것이 아닌, 마물들을 피해 세계수의 잔재를 손에 넣는 것. 그에 대해 충분한 준비도 하고 왔다.

그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마기가 약해진 생물에게만 기생한다는 잘못 알려진 상식과 엘퀴라즈 숲의 마기의 위험성에 대한 안일한 평가다.

「염화에서 태어난 샐러맨더의 숨결이여. 내 앞의 초목을 불살라라!」

오웬에게서 눈부신 적색의 화염이 뱀처럼 그의 팔을 휘감으며 나타나 그가 가리킨 에리히를 삼켜 버렸다.

화염은 사람 하나를 뼈까지 불태울 만큼 뜨겁고 난폭하게 휘몰아쳤지만 불 속에서 튀어나온 한 자루의 검이 오웬의 복부를 꿰뚫었다.

오웬은 꿰뚫린 충격과 뱃속에 퍼지는 열기에 대지에 무릎을 기대고 불 속에서 걸어 나오는 한때의 동료를 절망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

오늘 아침까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화염에 내장까지 재가 되어 사라진 지금, 에리히는 그저 한 마리의 스켈레톤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급 마물에 불과한 스켈레톤이 샐러맨더의 화염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원래의 전사로서의 기량과 짙은 엘퀴라즈 숲의 마기가 합쳐 그는 평범한 스켈레톤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되어 있었다.

오웬에게 다가오는 검은색 뼈로 이루어진 스켈레톤과, 거기에서 나는 묵빛의 반사광이 눈이 부시다고 느낀 순간, 복부를 꿰뚫은 이물감이 사라지며 오웬의 몸이 땅 아래로 떨어졌다.

‘아아…….’

검은색 스켈레톤이 검을 들어 올리는 것을 보며 오웬의 눈에 후회의 빛이 감돌았다.

동료를 끌어들이지 말고 혼자 올걸. 조금만 더 준비해서 그의 몫까지 장비를 챙겨올걸. 분수에 맞지 않게 힘을 탐내지 말걸.

후회가 끝나자 오웬은 분노가 일었다.

남들만큼 강해지고 싶어도 강해질 수 없으니 여기까지 온 것인데 왜 이런 결말인가. 노력하는 자에게 보상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이 날을 위해 얼마나 힘을 쏟았는데 이렇게 비참하게 죽는 것이 그 보상인가.

분노는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번졌고 바닥을 휘저으며 마물이 된 동료에게 도망가기 위해 애꿎은 땅에 손톱자국을 내며 기어갔지만, 그의 필사의 저항은 피분수와 함께 머리가 떨어지며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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