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1화 (1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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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이별은 불청객처럼 갑작스러운 것(1)

으음. 요즘 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무슨 고민이죠?

우리 아이가 살이 많이 쪘어요. 처음엔 포동포동해서 귀여웠는데…….

귀여웠는데?

글쎄, 지금은 무서워요. 이렇게 계속 찌다간 펑하고 터져 버릴 것 같아요. 다른 집 애들은 이렇게 살이 안 찌던데, 선생님. 혹시 우리 애한테 병이 있는 거 아닐까요? 걱정이 돼서 미치겠어요.

잘 알겠습니다. 하루에 식사는 얼마나 주시죠?

모르겠어요. 먹고 싶다고 하면 주는데요.

……문제가 뭔지 알겠군요.

문제라니. 설마! 우리 애한테 병이 있는 건가요? 불치병은 아니죠? 선생님. 제발. 뭐든지 할 테니까 제발 우리 애 좀 살려주세요.

문제는 바로 사모님입니다! 식사란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것! 먹고 싶을 때마다 주는 건 성장기 애벌레에겐 위험한 행동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라고요! 선생님이 그 애 표정을 봤어야 해요! 배가 고프면 나한테 와서 고개를 들고 애처로운 표정으로 애원하는데 그걸 어떻게 뿌리치란 말이에요! 전 악마가 아니라고요!

그런 물러터진 사고를 가지고 있으니 애가 병드는 겁니다! 병이냐고요? 예! 병입니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 사모님은 그 애에게 똥을 준거예요! 비만이라는 큰 똥을! 지금부터라도 하루에 세끼만 주고 애원해도 굳은 마음으로…….

“-피.”

모른 척…… 해야 되는데…….

“-피, -피.”

마음을…… 강하게…… 먹자……. 저건 눈이 아니야…… 무늬라고…….

“-피?”

‘크윽!’

나뭇잎 세 개를 따다 꿈틀이에게 주었다. 내 패배다. 이기지 못했어.

“-피!”

즐거워하며 내 신체의 일부를……. 이 아니라 나뭇잎을 갉아먹는 꿈틀이의 상태가 심각하다.

예전부터 자각은 있었다. 하지만 보통의 애벌레의 사이즈와 괘를 달리하는 꿈틀이의 덩치가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판타지 세계의 특수한 종이구나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지. 이건 너무 심하잖아.

꿈틀이는 지금 대형견에 가까운 사이즈까지 자라났다. 몸체 자체도 그렇게 커졌지만, 그 이상으로 부풀어 올라 마치 터지기 직전의 풍선처럼 보였다.

살가죽이 허용 범위 이상의 내용물을 포함하고 있어, 바늘로 살짝 찌르면 그 부위로 압력이 쏠려 에너지파를 쏘듯이 전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꿈틀아. 너 살 좀 빼야 돼. 그만 먹어.’

조용히 타일러 봤더니 꿈틀이는 멈칫하고 식사를 중단했다. 그리고 의기소침하게 바람 빠진 소리를 냈다.

“-피이이이이…….”

네가 그렇게 울면 진짜로 바람 빠지는 풍선 같단 말이야. 그만해.

그리곤 내 눈치를 본다. 식욕과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다. 머리를 내 쪽을 향했다가, 나뭇잎을 향했다가 반복한다. 식욕에게 저울질 당하다니. 내 위상이 낮은 걸까. 식욕의 위상이 높은 걸까. 후자이길 빈다.

일단 꿈틀이가 눈독들이지 못하게 녀석이 먹던 나뭇잎을 회수해 내 가지가 뻗어나가는 시작점, 그 갈라진 틈새에 끼웠다. 꿈틀이는 다리가 적어 나무를 타지 못해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다리가 제대로 있었어도 그 몸으론 못 올라오겠지만.

‘이제 못 먹겠지? 자. 먹고 싶으면 운동해.’

의사선생님(내 상상이지만)의 말씀대로 꿈틀이에겐 운동이 필요하다. 비록 마음은 아프지만 독하게 각오를 다진다. 미안. 꿈틀아.

‘꿈틀아. 달려. 오늘 목표는 세 바퀴다.’

마지못해 몸을 꼼지락 거리며 꿈틀이가 기기 시작했다. 속도는…… 보고 있는 내가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저 몸으로 기는 것부터가 대견하지만, 이러면 운동이 안 된다.

‘빨리 빨리 안 하면 나 잠든다?’

내가 깊이 잠들어 굶어 죽을 뻔한 이후로 꿈틀이는 내가 잠드는 걸 두려워한다.

빨리 달리지 않으면 굶는다는 강박감. 그것이 꿈틀이의 새로운 기술의 시발점이 되었다.

“-피.”

‘응?’

꿈틀이가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가죽이 당겨져서 등이 터질 것만 같다. 하지만 덕분에 주름이 사라져 매끄러운 공 모양이 되었다. 꿈틀이는 그대로 데굴데굴 구르며 내 주변을 돌았다. 속도도 꽤나 빨라 순식간에 세 바퀴를 마치고 내 앞에서 몸을 다시 폈다.

“-피피.”

하얀색 실이 내가 숨겨둔 꿈틀이의 식사에 명중했다. 꿈틀이는 그대로 실을 회수해 나뭇잎을 끌어왔다.

충격이다. 내 말을 무시하고 먹이를 뺏어가다니. 반항기란 말인가!

‘안 된다고 했지!’

마력을 조종해 다시 나뭇잎을 회수해간다. 하지만 꿈틀이도 포기할 생각이 없다.

다시 실을 내뿜어 나뭇잎을 낚아챈다. 나뭇잎이 나와 꿈틀이 사이에서 공중에 정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다. 꿈틀이가 당기는 힘이 생각 외로 너무 강하다. 힘을 더 세게 주지 않으면 빼앗길 것 같다.

‘크윽. 꿈틀아. 이게 다 널 위해서야.’

입으로 실을 뿜고 있는 꿈틀이는 대답하지 못한다. 대신 더욱 힘차게 실을 당긴다. 나도 거기에 맞춰 나뭇잎을 당기는 마력을 강화한다.

나뭇잎이 공중에서 산산이 찢겨져 우리 둘 사이에 작은 꽃잎처럼 휘날린다.

나도, 꿈틀이도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만 본다.

먼저 반응한 것은 꿈틀이였다.

“피이…….”

먹이가 사라진 게 큰 충격이었을까. 꿈틀이는 그대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바닥에 쓰러졌다. 다이어트를 시킨다는 내 굳은 마음이 흔들린다.

‘꿈틀아? 괜찮니?’

대답이 없다. 마력으로 꿈틀이를 굴렸다. 굴렁쇠처럼 잘도 굴러간다. 꿈틀이는 마력에 몸을 맡기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하고 있다. 고작 나뭇잎 하나에 이렇게 상처를 입은 거야? 너 나보다 내 나뭇잎이 좋구나…….

“-피!”

꿈틀이가 그건 아니라고 항변하듯이 반응을 보였다. 꿈틀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둥글게 만 몸을 다시 쭉 편 꿈틀이는 기가 죽은 듯 시무룩해져 있다.

나는 나뭇잎을 따서 꿈틀이에게 주었다. 아무래도 난 꿈틀이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

‘미안해. 억지로 운동 안 시킬게.’

운동이란 역시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하는 운동은 즐겁지만 남이 억지로 시켜서 하는 운동이 내킬 리가 없다. 그건 애벌레도 마찬가지겠지. 내게 몸이 있다면 함께 달려주겠지만 나무라서…….

나무가 아니었어도 운동은 안 좋아하지만.

앞에서 살랑거리는 나뭇잎에 꿈틀이가 반응한다. 나를 쳐다본다. 나는 먹어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언제 기가 죽었냐는 듯 꿈틀이는 즐겁게 나뭇잎을 먹는다.

“-피피~♬”

음색이 즐겁게 변한 울음소리가 내 마음을 흔든다. 그래. 이렇게 좋아하는데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좋다고 먹는 걸로 구박하면 안 되는 거였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내가 아낌없이 줄 테니까.

내 마음이 통했는지 꿈틀이가 나뭇잎을 다 먹고 내게 더 달라고 보챈다. 하나 더 따서 꿈틀이에게 주었다.

“-피~♬”

‘그래. 실컷 먹으렴.’

그것도 다 먹고 또 달라고 보챈다. 내 실수다. 꿈틀이 덩치가 이렇게 큰데 고작 나뭇잎 하나라니. 씨름선수에게 걸 그룹 다이어트 식단용 샐러드 한 접시를 준 거나 마찬가지다. 왕창 따서 주자.

“-피~♬”

한 무더기의 나뭇잎을 따서 꿈틀이에게 주었다. 가지 하나가 잎사귀 하나 없이 앙상한 모습이 되었다.

“-피~♬”

응? 아직도…… 부족하니?

다시 한 번 더…….

“-피~♬”

한 번 더…….

“-피~♬”

한…… 번…….

“-피~♬”

…….

* * *

꿈틀이가 나와 같은 환생자라면, 분명 꿈틀이는 아귀(餓鬼)였을 것이다.

잎사귀가 사라져 겨울철 나뭇가지처럼 황량해진 내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다. 이거 광합성도 못 하는 거 아닐까. 괜히 분위기 타서 너무 많이 준 걸까.

하지만 꿈틀이와 헤어지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알았다면, 나는 어떻게든 잎사귀를 맺어 꿈틀이에게 더 줘서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이별이란 왜 이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일까.

왜 행복한 순간에 찾아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왜 하필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이별의 신이 있다면, 그에게 따지고 싶다.

내 가족 대신 나를 데려가라고.

이렇게 헤어지게 할 거라면 처음부터 만나게 하지 말지.

있는 정 없는 정 다 뺏어가 놓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건 싫은데.

꿈틀이는 이제 없다.

내게서 나뭇잎을 전부 얻어먹은 이후로, 꿈틀이는 실을 내뿜고 고치가 되었다.

하룻밤이 지났지만 고치는 열리지 않는다.

이틀이 지나고, 잠에 못 이긴 내가 잠들었다 깨어나도 고치는 열리지 않았다.

꿈틀이가 날 떠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치 안에서 무엇이 태어나도 그것은 예전의 꿈틀이는 아닐 것이다.

나비가 되어 내 곁을 떠나 사라져도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것이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내 곁에 있던 것도 내 잎사귀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원망해선 안 된다. 그 작고 가여운 애벌레가 살기 위해선 내 곁에 붙어 있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원망하지 않아. 그러니까 어서 새로운 네 모습을 보여줘. 다시 내게 돌아와 줘.

나와 꿈틀이의 마지막 추억인, 앙상한 나의 나뭇가지에 새 잎사귀들이 돋아나 예전처럼 되었지만 그래도 꿈틀이는 고치에서 깨어나지 않는다.

다른 생물들에게 공격당하지 않게 꿈틀이를 내 보호막 안쪽으로 들여놓았다. 꿈틀이가 고치가 된 후로 나는 다시 잠이 많아져 꿈틀이를 보호하지 못하는 순간이 두렵다.

더 이상 내 가족을 잃고 싶지 않아. 너는 내가 지켜줄게.

이런 내 결심이 무색하게 수마(睡魔)는 끊임없이 날 공격한다. 그것은 전보다 깊고 어둡다고 느껴질 만큼 무섭다. 간신히 하루를 견뎌내도 다음 날은 전날의 배 이상으로 잠이 쏟아진다.

때때로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면, 다음에 눈을 뜨는 순간이 미치도록 무섭다.

죽순(竹筍)처럼 내 모습이 변해 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잔 것일까? 하고 고민하기 전에 고치를 살펴본다. 아직 곁에 있다는 사실이 안심되면서 또 아직 깨어나지 않은 것이 아쉽다.

내 키가 보통의 은행나무와 비슷한 크기가 되었지만 고치는 여전히 깨어나지 않는다. 혹시 우화하지 못하고 안에서 죽은 것은 아닐까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지만 고치 안에서 마력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기에 죽은 것은 아니다.

꿈틀아. 넌 무엇이 되려고 하기에 이렇게 날 애태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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