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9화 (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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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작은 변화의 즐거움(3)

꿈틀이와 생활하게 된 이후로 내 삶엔 큰 변화가 생겼다.

첫 번째로, 잠에서 깨어나는 시간이 평범한 사람처럼 변했다. 여전히 해질녘쯤에 잠들기는 하지만 하룻밤 자고 나면 다음날 깨어난다.

천만다행이다. 꿈틀이는 내가 없으면 며칠 못 가서 굶어죽는 불쌍한 녀석인데.

두 번째로, 내가 염동력이라 부르는 이 요상한 힘의 제어가 한결 쉬워졌다.

이제 이 힘이 염동력이 아니라 묘한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상처를 치료하고, 물건을 옮길 수 있는 이 힘을 뭐라 불러야 할지 아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평범한 나무가 아니었나 보다.

세 번째로, 하루하루가 즐겁다. 왜냐하면 꿈틀이 녀석은 강아지만큼 똑똑하거든! 절대 팔불출이 아니다. 진짜라니까?

응? 꿈틀이가 누구냐고?

내가 살려준 애벌레. 애벌레라고 부르기 뭐해서 꿈틀이란 이름을 지어줬다.

꿈틀이는 내가 좋아하던 지렁이 모양 젤리에서 따왔다. 이 녀석이 더 컸으면 왕꿈틀이라고 해줬을 텐데 아직 작으니까 꿈틀이다.

꿈틀이는 오늘도 내가 준 나뭇잎을 맛있게 먹고 있다. 내 신체의 일부를 떼 주는 것도 이제 적응돼서 별로 아프지 않다.

……아니, 아픈 건 둘째 치고 묘하게 기분 좋다. 평소에 자극이 없다보니 이런 고통도 즐거운 것이다. 이거 위험한데.

“-피.”

가장 놀라운 것은 꿈틀이는 평범한 애벌레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알기론 소리 내며 울 수 있는 벌레는 없는데 이 녀석은 소리도 낼 수 있다.

게다가 가장 놀라운 것은!

‘꿈틀이 굴러!’

“-피!”

어찌된 일인지 내 생각을 직접 듣는 것처럼 알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엄청 잘 따라 준다고!

옆으로 데굴데굴 구르는 꿈틀이 몸에 가루 같은 작은 풀떼기들이 덕지덕지 붙었다. 나는 그것들을 조심스럽게 떼어준다.

잘못 힘을 주면 꿈틀이가 터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기울인다. 꿈틀이는 이런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기분 좋게 울고 있다.

“-피! -피!”

‘그래. 잘했어. 여기 상이야.’

내 나뭇잎을 세 장 정도 떼었다. 아흥. 짜릿해.

……안 돼. 조심하자. 이상한 세계로 빠지겠어.

내가 준 나뭇잎을 정신없이 먹는 꿈틀이를 보노라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이럴까 싶다. 애벌레 하나에 너무 호들갑떨지 싶지만 그래도 귀여운 걸 어떻게 해.

진짜 한입 콱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엽다. 진짜로 하면 입 안에서 터져서 걸쭉하겠지.

“-피이!?”

나뭇잎을 먹다말고 꿈틀이가 몸을 부르르 떤다. 미안. 그냥 한 번 생각해 봤어. 진짜로 미안. 안 그럴게.

의심스런 눈초리로 날 보던 꿈틀이가 안심했는지 다시 나뭇잎을 먹는다. 근데 저거 눈이 아니라 무늬잖아. 진짜 눈은 어디 있지.

식사 중인 꿈틀이를 꼼꼼히 살펴봤지만 눈으로 보이는 기관은 없었다. 신기하군. 눈이 없는 건가. 피부로 느끼나? 나처럼?

나는 내가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알고 있다. 안다기보단 이제 느낄 수 있다.

꿈틀이를 치료한 후로 내 감각에 변화가 생겼다.

내 주변에 느껴지는, 공기나 산소 같은, 바람 이외의 따스한 뭔가가 느껴졌다.

이게 무엇인지 확실하게 판단할 수 없지만 나는 내가 환생한 세계가 판타지 세계라고 가정했을 때, 「마력」이라 부르는 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이 「마력」이란 녀석은 신기하게도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는다. 그대로 허공에 고정되어 있는 느낌이다.

풀 숲, 하늘 위, 나뭇잎 사이사이에도 이 녀석은 존재한다. 내가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곳에 이 녀석이 있다. 산소와 같은 녀석이다.

그리고 내가 강하게 염원하면 이 녀석은 그 바람대로 움직여 준다. 그동안 내 팔이 되어준 녀석이 이 녀석임을 깨달았다.

내 느낌으로 말하자면 「마력」은 내 먹이이기도 하다. 불쾌함을 참고 호흡을 자각했을 때, 숨을 쉴 때마다 「마력」이 내게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이것은 다른 나무들에게 없는 현상으로서 내가 특이한 개체임을 증명해 주는 사례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동안 염동력이라 불렀던 그 힘이, 「마력」을 조종하는 「마법」이라고 결정 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용사가 되거나 할 수는 없겠지. 난 나무니까.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귀찮잖아.

어쨌든 이것도 전부 꿈틀이 덕분이다. 꿈틀이가 없었으면 내 세계는 점점 좁아져 우주 어딘가로 날아가 결국 생각하는 것을 그만둔 그 분처럼 됐을지도 모른다.

완전생물도 고독은 이기지 못했는데 나라고 이기겠어?

내가 완전생물의 최후를 다시 생각하고 있는 사이, 꿈틀이가 나뭇잎을 다 먹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꿈틀이는 내 주변에 쳐져 있는 반투명한 보호막을 스스럼없이 지나와 내 앞에 누워 잠이 들었다.

벌레가 자는 건 처음 본다. 너 진짜 개냐.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된 후로, 내 주변에 쳐진 이 요상한 방어막의 존재도 알게 됐다. 내가 피톤치드라고 알고 있던 게 바로 이건 거 같다. 신기하다.

꿈틀이로 실험해 본 결과, 꿈틀이를 부르고 동시에 내게 다가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꿈틀이는 방어막을 통과하지 못했다. 아니, 나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방어막의 경계선을 따라 움직였다.

다시 꿈틀이가 가까이 와줬으면 했더니 그제야 꿈틀이는 방어막을 뚫고 내게 다가왔다.

이 방어막이 얼마나 센지 모르겠지만 해충 걱정은 없을 것 같다. 짐승의 경우엔 모르겠지만.

나는 내 아래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꿈틀이를 보았다. 진짜 애완동물처럼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몸이 부풀어 오른다. 소위 꿀잠 자고 있다는 건 이런 모습일 꺼다. 보고 있자니 나도 졸리네.

조심스레 꿈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뒤, 마력에 대한 여러 가지 시험을 하기로 했다.

같이 자고 싶지만 난 수마(睡魔)가 쏟아지기 전엔 잘 수가 없으니 이런 거라도 해야지.

우선 마력을 한데 모아본다. 마력을 끌어 모아도 바로바로 채워져 빈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무한한 에너지 같아서 신기하다.

한데 뭉친 에너지를 이용해 얼마 전에 발견한 다른 나무의 상처에 가져다 댔다.

커다란 세 줄기의 상흔은 곰으로 추정된다. 그것도 상흔으로 봤을 때 손 크기만 1미터는 넘을 것 같다. 실제 덩치는 어느 정도 될까. 방어막만 믿기엔 불안하다.

상처에 안착한 마력 덩어리는 진흙처럼 누르는 힘에 의해 옆으로 퍼져 상처를 뒤덮었다.

이제, 꿈틀이를 치료했을 때처럼 나는 염원한다.

‘치료되어라.’

약한 빛 무리가 상처에 머물렀다. 빛이 사라진 뒤에, 나무에 새겨진 상처는 아까보다 옅어졌다.

결과는 실패다. 난 완전히 치유되기를 바랐다. 다시 시도해 본다. 이번에도 빛은 꿈틀이를 치료했을 때만큼 강렬하지 않았다.

몇 번이고 시도하자 상처는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래도 사라지진 않았다.

‘의지의 차이일까.’

그때만큼 강렬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무에겐 미안하지만 너와 난 완전 남남이거든. 강하게 마음먹고 싶어도 그때와 같은 간절함이 생기지 않아.

치료의 효과가 미미한 것은 그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결론지었다.

‘그럼 이번엔 공격으로.’

다시 마력을 모은 뒤, 이번엔 날카로운 바람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마력은 점점 가속도를 내며 소용돌이치더니 이윽고 내 이미지와 같은 바람으로 변했다.

나는 그것을 근처에 있는 바위를 향해 날렸다.

바위는 쩌적 소리를 내며 반으로 갈라졌다. 경이로운 위력이다.

‘역시 바람은 되네.’

이 정도 위력이면 곰이나 멧돼지 같은 들짐승이 나와도 안심이다. 나는 나와 꿈틀이를 보호할 무기를 하나 손에 넣은 것이다.

‘하지만…….’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다고 나는 다시 마력을 모았다. 이번엔 바람이 아니라 불을 생각했다. 미약한 불꽃이 잠시 일렁였지만 꺼지기 직전의 촛불처럼 잠깐 타오르더니 훅 하고 사라져 버렸다.

‘역시 불은 안 되네.’

불뿐만 아니라 얼음이나 물, 전기도 되지 않았다. 바람은 쉬웠는데 다른 속성은 변하기 어려운 듯하다. 왜 일까. 내가 바람에 친숙한 건가.

하긴, 이 몸으로 있으면서 비를 맞은 기억도, 불에 탄 기억도, 벼락에 맞은 기억도 없지만 바람은 눈을 뜨면 항상 나를 지나치며 인사한다.

매일 내 가지를 흔들고, 내 이파리를 흔드는 친숙한 녀석이다. 그렇기에 바람을 떠올리기는 쉽다. 다른 녀석들은 어렵다. 전생에 본 기억 외엔 없다. 이젠 불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가물가물하다.

‘내가 깨어 있을 때 비 좀 내렸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아쉽네.’

불이나 벼락은 거절한다. 타 죽을 거라고. 하지만 비는 괜찮잖아.

내가 물 없이 지금까지 살았다곤 생각되지 않는다. 아마 자고 있을 때 내렸다고 생각된다. 언제고 깨어 있을 때 내리길 기다려야겠다.

‘잘도 자네.’

꿈틀이는 이름처럼 자면서도 몸을 꿈틀거린다. 꿈틀이가 있어서 내 나무로서의 삶이 즐거워졌지만, 그 즐거움에 책임감도 함께 딸려왔다.

혼자 살 때완 다르다. 내 몸 하나 건사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이젠 할 수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홀몸이 아니라……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

‘결혼도 안 했는데 자식이 생겼네.’

그래. 꿈틀이는 내 가족이다. 내 자식이다. 왠지 모르게 그런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내가 치료해 줬을 때, 보통의 애벌레처럼 날 떠났다면, 나를 따르지 않았다면 모를까 꿈틀이는 날 확실히 인지하고 있고 날 따르고 있다. 그런 녀석을 난 외면할 수 없다.

다시 각오를 다졌더니 이제 꿈틀이가 애완동물로 보이지 않는다. 나는 나무고 꿈틀이는 애벌레지만, 우리는 가족인 것이다.

그리고 나는 가장이다. 마냥 좋아할 순 없지만, 어쩐지 싫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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