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7화 (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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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작은 변화의 즐거움(1)

‘심심하구만.’

일기 쓰기를 포기한지 꽤 시간이 흘렀다. 일기 따위 써서 뭐해. 어차피 나조차도 까먹는데. 그냥 멍 때리며 시간 보내는 게 제일이다.

일기 쓰기를 포기한 후로, 여러 가지 일이 있었다. 꽤나 시간이 흐르면서 내 몸도 상당히 자라나 지금에 와서는 2미터에 가깝게 자라났다.

신기한 것은 여전히 계절은 변하지 않았고, 내가 관찰해 본 결과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만큼 자랐는데 주변의 나뭇잎 더미들은 전혀 썩지 않았으니까. 한마디로 나는 성장이 매우 빠른 나무임이 틀림이 없다.

성장이 빠르다고 해서, 관찰할 것이 있다고 해서 내 무료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나의 성장은 높이와 가짓수가 늘어나고, 몸통이 조금 굵어지는 것 외에 큰 변화는 없기 때문이다. 식물을 키우는 취미가 있었다면 잘 자라니 꽤나 재미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쉽게도 그런 취미가 없었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도 혼자 놀기입니다.

‘오늘은 뭘 해볼까나.’

저번엔 수마(睡魔)를 성을 공격하는 병사, 나 자신을 성이라 칭하고 공성전을 하는 놀이를 했었다.

‘크윽. 대장님. 수마의 공격이 거셉니다.’

‘버텨라! 이제 곧 해가 질 것이다.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버틸 수 없습니다! 으윽! 대장님! 죄, 죄송합니다.’

‘죽지 마라!’

‘대장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고아인 절 거두어 주신 은혜…… 잊지 않았습니다…….’

‘누가 마음대로 죽으라고 했나! 난 분명 살라고 했다! 명령불복종은 용서하지 않는다!’

‘마지…… 막으로…… 꼭…… 이 말이 하고 싶…… 었습니…….다…….’

‘브랜든! 정신 차려라, 브랜든!’

‘아…… 버…… 지…….’

‘브랜드으으으은!!!’

이러고 노니까 조금은 버틸 만했다. 브랜든이 죽는 순간 잠들어 버렸지만, 그래도 석양이 지는 순간까지 자지 않고 버텼다.

그렇다. 난 지금껏 해가 질 때까지 깨어 있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난 이곳의 저녁을 알지 못한다.

저녁까지 버틴다면 별이나 달을 보면서 조금은 즐거움을 느낄 텐데.

하지만 나는 중대한 사실을 발견했다. 난 내 주변 7미터까지 볼 수 있지만, 그 이상은 볼 수 없다. 그것은 횡(橫)이 아니라 종(縱)으로도 적용되는 사항이었다.

나는 달이나 별은커녕 태양도, 하늘도 볼 수 없다.

이 사실에 꽤나 낙담해서 나는 그 이후로 수마와 싸우는 ‘성 지키기’놀이는 안 하게 되었다.

* * *

예전에, 나는 이런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혼자 방에 갇혀 살게 된 남자. 그 남자는 처음엔 자신을 가둔 자에 대해 이런 저런 추측을 하며 자기 상황에 대해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가상의 적에게 분노를 표출했다. 그다음엔 몸을 단련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아무것도 없는 방 안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가상의 친구를 만들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미쳐 버려서 어린아이처럼 놀았다.

응? 왜 이 이야기를 하냐고?

‘크아악! 움직여라! 나뭇잎이여!’

내가 그러고 있거든!

지금 나는 초능력을 쓰는 상상을 하며 혼자 놀고 있다.

왜 초능력이냐 하면 지금 상황에서 초능력이 너무 가지고 싶기 때문이다. 초능력만 있으면 손발이 없어도 물건을 움직이거나 부술 수 있으니까 진짜로, 정말로, 너무나 갖고 싶다.

참고로 나는 미치지 않았다. 이런 초능력 놀이는 누구나 다 한 번씩은 해보잖아?

TV를 보다가 리모컨이 눈에 보이는데 손이 안 닿는 위치에 있을 때, 초능력으로 ‘리모컨이여 내게 오라’ 정도는 다 해봤을 텐데? 이 놀이는 그 연장선이라고.

‘크윽. 나는 왜 식물계란 말인가. 식물계는 사이코키네시스를 쓸 수 없다고. 에스퍼 타입이 되고 싶다.’

게임 속 포×몬이 된 기분으로 염동력 놀이를 한다. 할 일이 없으니 깨어 있는 시간 동안 계속 이것만 하고 있자니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 지기는 개뿔.

이거 의외로 재미있네.

그냥 멍 때리는 것보다 재미있다. 나는 나뭇잎을 움직이는 상상을 하며, 나뭇잎 더미가 휘날렸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바스락.

‘응?’

나뭇잎 더미 위쪽에 쌓인, 이제는 말라 버린 나뭇잎 하나가 살짝 움직였다.

나는 주변을 전부 볼 수 있으니까 바람이 불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어떻게 움직였지?

나는 이상한 놀이는 관두고 방금 움직인 나뭇잎 하나에 정신을 집중하였다.

정신을 집중하고, 그 나뭇잎을 꽉 쥐고 움직인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그곳만 바라보았다.

‘흔들린다.’

나뭇잎이 흔들린다. 바람은 여전히 불지 않는다. 더 강하게. 더 집중해서. 더. 더.

‘오옷.’

계속해서 바라자 나뭇잎이 살짝 공중에 떴다. 바람에 휘날리는 것이 아니다. 아주 약간, 공중에 뜬 상태로 정지해 있다.

그대로 천천히 내 쪽으로 끌어당겨보았다. 천천히, 나뭇잎이 내 쪽으로 다가온다. 나는 나뭇잎을 내 아래까지 가져온 뒤, 집중력을 풀었다. 나뭇잎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거 진짜로 됐네.’

신이 난다. 다른 것도 해보자. 다른 나뭇잎에 정신을 집중하고 들어올렸다.

다른 나뭇잎들도 똑같이 된다. 시간은 조금 걸리지만.

이건 정말 엄청난 대발견이다. 이제 나는 주변을 보는 관찰의 영역에서 직접 손을 댈 수 있는 침범의 영역까지 들어선 것이다!

그것 말고도, 남자라면 역시 초능력 하나쯤은 갖고 싶잖아. 그 꿈이 이뤄진 거라고.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을 섞어서 나뭇잎을 괴롭혀 보자. 드는 건 쉽게 된다.

그럼 이번엔 찢어보자. 나뭇잎을 들고, 그걸 사방으로 당겨 보았다. 아쉽게도, 팽팽하게 당겨지긴 하는데 찢어지진 않는다. 좀 더 마른 잎으로 해봐야지.

마른 잎으로 시도했지만, 여전히 찢어지진 않는다. 내 힘은 가벼운 나뭇잎을 드는 것에 한정되어 있는 듯하다.

실망하지 말자. 이제 겨우 알아낸 힘이니까 단련하면 세질 것이다. 그렇게 믿는다.

‘신난다.’

나뭇잎 더미의 잎을 하나하나 옮겨서 다른 나무 아래에 쌓는다. 어린아이가 블록 쌓기를 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즐거운 걸 어쩌겠어. 기분 최고다.

‘하아, 하아. 조금 지치네.’

쌓인 더미를 몇 번 왕복해서 옮기자 정신적으로 꽤나 피로가 쌓인다. 역시 염동력은 정신의 힘이구나. 지치는 걸 보니.

내가 지치자 잠이 폭포처럼 쏟아진다.

더 놀고 싶은데.

어린아이처럼 칭얼대 보지만 수마(睡魔)는 봐주는 게 없다. 호랑이 엄마인 것이다.

* * *

이제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염동력으로 나뭇잎을 괴롭히는 것이 되었다.

덕분에 근육을 단련하듯 이 힘도 단련이 돼서 나뭇잎 찢기는 물론 작은 돌멩이도 들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었다면 완전 대박인데.’

사람이었다면 이 힘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했을까.

TV출현? 노우. 이건 귀찮다. 편의점 가기도 귀찮은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건 무리.

정의의 사자가 되어 히어로 활동? 나뭇잎만큼 약한 악당이 있다면 해주지. 주먹으로 해결하는 게 더 빠르겠지만.

‘역시 염동력이 있다면……. 누워서 책 볼 때 딱이지!’

침대에 누워서 책을 볼 때 가장 곤란한 것이 무엇인지 알 사람은 다 안다.

책을 잡고 공중에 들고 보면 얼마 안가서 팔꿈치랑 책장 넘기는 손가락이 뻐근하다. 옆으로 누워서 보면 어깨도 아프고 목도 아프다. 배를 깔고 누워서 보면 목이 무진장 아프다. 한 권을 다 못 읽는다.

하지만 염동력이 있다면? 편하게 누워서 공중에 책을 띄워놓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낄낄댈 수 있는 것이다.

너무 소박한 것 같아도 어쩌겠어. 난 인도어파였는걸. 히키코모리에 가깝지만. 히키도 아니고 니트라고 해야 되나? 방구석 폐인?

어쨌든 이 힘이 생기자 환생한 이후로 나는 최고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고 있다.

아아. 즐겁다. 다음에 눈을 뜨면 또 뭐하고 놀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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