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4화 (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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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잠결에 대답하지 말고 제대로 대답하자

달콤한 잠이란 무엇일까.

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그토록 바라는 용꿈이나 돼지꿈을 꾸는, 기회의 장이 그런 것일까.

아니면 피곤에 찌든 사람들에게 개운한 아침을 맞이하게 해주는, 발판이 되어주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현실에 지친 사람들의 유일한 도피처를 달콤한 잠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정답은 없지만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 달콤한 잠이란, 아무런 꿈조차 꾸지 않고 내 인생의 일부를 소비하는 것이다.

의식도, 행동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것조차 느끼지 못한 채. 죽음의 유사체험.

그러나 나는 그런 잠을 잔 적이 드물다.

내 잠의 대부분은 꿈을 동반하고, 그 꿈은 스무 살 이전의 행복했던 시절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내게 그 시절의 행복한 꿈은, 현실의 지독함에 몸서리치는 소금과 같기에 꿈 따윈 꾸고 싶지 않다.

‘개운하네.’

정말 오래간만이다. 꿈조차 꾸지 않고 긴 시간을 잠으로 보낸 것 같다.

얼마나 잤는지 모르겠지만 최소 며칠은 잔 것 같은 기분이다. 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실제론 많아봐야 열 시간 잤을까? 시계를 봐야겠다.

‘……응?’

손목시계를 보기 위해 오른팔을 들려고 했지만 감각이 없다. 이게 어찌된 일이지? 혹시 옆으로 누워 자는 바람에 자는 동안 팔이 몸에 깔려 피가 안통해서 그런 걸까. 예전에도 그랬던 적이 있다.

나는 반대쪽 팔을 들어보았다.

‘왼팔도?’

왼팔 역시 감각이 없다.

그 전에 눈이 보이지 않는다. 온통 암흑뿐이다. 눈꺼풀을 들어보려 애썼지만 눈도 떠지지 않는다.

우선 침착하자. 마음을 진정시키고 몸을 움직여 보자.

그런 내 노력은 허사가 되어 아무 곳도 움직이지 않는다. 양팔, 양다리, 눈, 입, 허리, 전신이 마비된 듯 아무런 감각이 없다.

‘식물인간이라도 된 건가?’

하지만 난 집에서 잠들었는데? 여기는 병원인걸까?

주변에서 소리도 들리지 않아. 병원이라면 누군가 돌아다니는 소리나, 내가 중환자라면 이상한 기계 소리라도 들려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지. 그런 기계 같은 건 전부 드라마에서 봤던 거니 실제론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건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잖아. 방에 혼자 조용히 있을 때 귀로 들리는 그 ‘삐-’ 하는 소리나 윙윙거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이성적으론 위험경고가 울리지만 어째선지 마음은 평온하다. 그러고 보니 딱히 날 걱정해 줄 사람도 없고 집에서만 지내던 일상이니 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누가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것 같은데…….’

잠결에 누군가가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었던 일이 생각났다.

꿈속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 했지만 김이 서린 희뿌연 창문 너머로 경치를 보는 것처럼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으음. 조금 생각나는 것 같은데……. 분명 다시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고 싶냐고 물었고…….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자꾸 머리를 굴리려니 벌써 피곤해진다.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어째선지 몸은 전혀 피곤하지가 않다. 베스트 컨디션인 것이다.

다시 자고 싶다. 라고 생각한 그 순간,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내 몸을 흔드는 것이 느껴졌다.

‘바람? 병원이 아닌 건가? 아니면 에어컨? 하지만 겨울인데? 난방기인가? 아냐. 바람이 시원한데?’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흔든다. 적당하게 차가운,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하게 몸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바람이다.

그런데 대체 내 몸 어디를 흔드는 거지? 이 감각은 느껴본 적 없다. 머리도 아니고 팔도 아니고……. 내가 모르는 신체 부위다.

‘아, 생각하는 것도 귀찮다……. 시원하니 됐지, 뭐…….’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딱히 그 말을 깊게 새기면서 산 건 아닌데 그래도 지금 상황에선 적절한 숙어겠지.

불어오는 바람을 느끼며 현재 상황을 낙관적으로 생각하려 애썼다.

몸이 움직이지 않아도 최소한 아프진 않잖아? 그리고 아까부터 살짝 나른한 것이 원한다면 언제든지 잘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지금도 자고 싶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태를 파악하는 데 정신이 쏠려 있다.

‘응? 이거 기분이 묘한데.’

바람이 닿는 나도 모를 내 어딘가의 신체 부위에 정신을 집중하자 흙속에 파묻힌 물건을 발견하기 위해 붓으로 모래를 털어내는 고고학자처럼 흐릿한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였다기보단 머릿속에 이미지처럼 천천히 그려졌다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이건…… 나뭇가지?’

파릇파릇한 나뭇잎이 듬성듬성 나 있는 어린 나뭇가지가 보였다.

어린아이들이 칼싸움하며 놀기엔 너무 작고, 새싹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나뭇가지. 아직 이파리가 진녹색이 되지 않고 연한 빛이 남아 있는 어리디어린 나무의 가지라고밖에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어오자 나뭇가지는 흔들렸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느낌이 아까부터 알 수 없는 부위에 느껴지는 감촉과 동일했기에 나는 그 부분이 내 몸의 일부임을 알았다.

‘나뭇가지가 내 몸의 일부?’

그 사실을 깨닫자 바람이 지나가는 다른 부위까지 감각이 넓혀졌다.

붓으로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고고학자가 화가 나서 삽을 이용해 뭉텅이로 파헤친 뒤, 대충 손으로 털어내 물건만 꺼낸 느낌이랄까.

선명하게 느껴지는 건 처음의 나뭇가지뿐이고 다른 부위는 아직 흐리멍덩하게 느껴졌지만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있었다.

‘나……. 식물인간이 아니라 진짜 식물?’

내 머릿속에 떠오른 모습은, 어둠 속 한가운데 홀로 애처롭게 자라난 한 그루의 나무였다.

크기는 대략 원래 내 키의 절반 아래. 그러니까 1미터가 채 안 되는 작은 나무였던 것이다.

‘뭐야. 나 진짜로 나무로 환생한 거야?’

이런 제기랄. 설마 그 꿈이 사실이었을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나무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지 말걸. 그 천사는 왜 비몽사몽인 사람한테 그런 중요한 걸 물은 거야. 업무 태만이잖아 그건!

나무의 밑동까지, 그리고 점차 감각이 넓혀져 흙속에 파묻힌 내 뿌리까지 모두 선명하게 인식된 것은 체감상 1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나 확실히 나무구나.’

나무에도 생명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선명한 자의식까지 있을 줄이야.

아니지. 내가 특이 케이스인걸까. 하긴 그 꿈이 사실이라면 원하는 모습으로 환생하게 해준 거니 내가 특별한 걸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는 소설로 많이 읽어봤는데……. 하필 나무라니.’

내 입으로 말하긴 창피하지만 나는 스무 살 이후로 오 년 동안 집 안에서만 지내온몸이다.

외식은커녕 밖에 나가는 일도 매우 드물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자고 일어나고 잠시 몸을 풀고, 책을 조금 읽다가 다시 자는 일만 반복했다.

왜 그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만사가 다 귀찮아졌을 뿐.

그 시절에 읽었던 책 중에 이런 식으로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하는 주제를 다룬 책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 나무로 환생한 책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소설에선 신이 직접 나와서 이것저것 알려주던데. 미안하다느니 대신 환생시켜 주겠다느니 치트키 마냥 엄청난 능력을 주겠다느니, 그중에는 원하는 걸 택하라기에 여신을 택해서 꽁냥꽁냥한 인생을 보내는 책도 있던 것 같은데. 왜 나한텐 그런 기회도 없이 나무냐고!’

불평해 봐야 나무로 태어나게 해달라는 내 말은 내가 더 잘 기억하고 있으니 이것도 다 자업자득.

아아! 좀 더 부지런하게 살 걸 그랬나. 그랬으면 잠에 취해서 그런 헛소리는 안 했을 텐데.

하지만 이것도 나름 나쁘지 않다. 조금 심심할지도 모르지만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잘 수 있겠네.

인간일 적 보냈던 마지막 5년도 거의 반 이상을 잠으로 보냈으니 지금도 그때랑 별다를 건 없겠군.

혼자 생각으로 푸념하는 사이, 감각은 점점 넓어지며 주변의 풍경까지 이미지로 그려져 내게 전달되었다.

나무란 원래 이런 걸까. 박쥐가 초음파를 쏴 주변을 맵핑하는 것처럼 나무만의 특이한 방법을 사용해 이미지를 얻어내는 걸까. 나는 식물학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숲이네.’

주변은 숲이었다. 그래. 그냥 숲. 나무랑 땅, 풀밖에 보이지 않는 평범한 숲.

내 몸의 크기와 주변 나무들의 크기 등을 비교해서 거리를 가늠해 봤을 때 내게 이미지화되는 주변 반경은 대략 5미터 정도 되는 듯하다. 그것도 멈추지 않고 천천히 넓어지고 있다.

인간일 때의 비해서 꽤나 시야가 넓어서 신기하다. 360도 광범위 탐지라니. 근데 나 못 움직이잖아. 벌목꾼이라거나 날 밟을 수도 있는 곰 같은 게 다가와도 보기만 하고 도망은 못 치네.

숲은 평화로웠다. 위험한 동물 같은 것도 안 보이고 날씨도 무더위가 아니라 선선했다. 햇빛이 옆에 있는 나무에 가려져서 조금밖에 닿지 않았지만 이것도 시간에 따라 다르겠지. 다른 쪽엔 큰 나무가 없으니까.

‘근데 나 지금 숨 쉬고 있는 거 맞나?’

내가 호흡을 하고 있는지 의식하자 전신에서 숨을 내쉬고 들이쉬는 게 느껴졌다.

뿌리만 제외하고 전신이 호흡기가 되어 끊임없이 숨을 쉬고 있다. 으아. 뭐야, 이거. 기분 나빠. 앞으로는 웬만하면 의식하지 말아야겠어.

숨 쉬는 거 하니까 뭔가 기억이 날 듯 말 듯한데…….

모르겠다. 이미 나무로 태어났으니 인간으로서의 삶에 너무 미련을 가지지 말자.

그나저나 새싹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어린 나무부터 시작인가. 인간으로 치자면 유아기부터 시작하는 수치플레이는 생략이라 이건가. 아니면 나 지금까지 계속 잠만 잔건가. 어쩌면 나무로서 내 인격이 이제 와서 형성 된 걸까.

열심히 고민해 봐야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냥 지금 삶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최선을 다한다고 해봐야 그냥 여기 뿌리 내려서 가만히 있는 게 끝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갑자기 졸리네.

나무가 잠을 자던가.

모르겠다.

그냥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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