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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원한다면 그렇게 해주지
신, 가이아의 집무실 안.
샤피엘은 가이아가 앉은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사과처럼 빨갛게 부풀어 오른 볼을 연신 만지며 소녀에게 사과하였다.
“죄송합니다. 가이아 님.”
“앞으로 숙녀의 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당신 속은 완전 시커먼 아저씨잖아! 라고 샤피엘은 생각했지만 그에게 그 말을 할 용기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그의 선배처럼 뻔뻔한 것도 장점이 된다.
샤피엘이 선배의 의외의 장점을 부러워하고 있는 와중에도 소녀, 가이아는 트윈테일로 묶은 머리를 손가락으로 베베 꼬며 만지고 있었다.
부드럽고 윤기가 흐르는 은발의 머리카락이 빛을 반사해 샤피엘은 눈이 부셨다.
“그래서 영혼도 안 데려오고 혼자 온 이유가 뭐냐.”
“그게…….”
사실대로 말해도 될까.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간단한 임무조차 제대로 성공하지 못했다는 신의 질책도, 그 질책 뒤에 따라올 외형과 어울리지 않는 신의 구타도 아니었다.
썩어도 준치. 가이아는 의외로 자애로워서 일에 관한 사항으로 화를 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너 지금 굉장히 실례되는 생각하고 있지?”
“아뇨!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분명 썩어도 준치라느니 의외로 마음이 넓다느니 그런 생각한 것 같은데…….”
다만 소녀의 분노 스위치는 이상한 쪽에서 발동되는 것이었다.
“뭐!? 자고 있다고? 영혼이?”
“넵. 제가 깨워봤는데 귀찮다고 쫓겨났습니다.”
샤피엘이 덜덜 떨며 건넨 서류를 받은 가이아는 빠른 속도로 서류를 눈으로 훑어 내렸다. 소녀의 눈은 영혼의 신상정보와 함께 기록된 사인(死因)에서 멈췄다.
“이름 신연석. 25세. 가족관계 없음. 사인(死因) 스스로 숨을 멈춤?”
서류와 샤피엘을 번갈아 보던 소녀가 떨고 있는 신입 천사에게 물었다. 그녀가 말을 건넬 때마다 샤피엘은 고양이 앞의 쥐처럼 목소리가 떨렸다.
“너 이거 잘못 기록한 거 아니야? 목을 매달았다거나 떡이 목에 걸린 걸 착각한 거 아니냐. 아니면 수면무호흡증이라거나.”
신이 만든 생명체에겐 기본적으로 자신의 몸을 지키고자 하는 본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숨을 멈춘다는 것은 지금까지 가이아조차 본 적 없던 사인이었다.
자살처럼 외적인 요인을 이용하여 목숨을 끊는다거나, 고행(苦行)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 승려가 신진대사를 낮춰 가사상태에 빠진 것은 보았어도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숨쉬기를 포기하여 죽은 사람이 있다니. 소녀는 믿을 수 없었다.
“아뇨. 확실하게 그게 사인이 맞습니다. 그것 때문에 운명을 개척한 영혼이 된 것입니다. 가이아 님.”
운명의 개척.
그것은 세계를 뒤바꾸는 행동이나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생명체에게 주어진, 본래대로라면 흘러갔어야 할 흐름. 그것을 비트는 것만으로도 인정받는 것이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샤피엘은 말을 이었다.
“원래 운명대로라면 그는 30세에 반려를 만나게 되고 84세까지 산 뒤 노환으로 죽을 운명이었습니다만, 호흡을 멈춘다는 방법으로 스스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결론은 자살이라는 거네?”
“자살이라기보단……. 사고사에 가깝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고사?”
눈을 질끈 감으며 자신에게 일을 떠넘긴 선배의 명치를 후려치는 생각을 한 뒤, 샤피엘은 다시 말했다.
“그러니까, 죽음 직전의 상황을 살펴봤는데, 그 있지 않습니까. 숨 쉬는 거 의식하면 괜히 불편해지는 거. 게임으로 따지면 패시브 스킬이 갑자기 액티브 스킬로 변한 것처럼.”
“그래서?”
“그래서…… 자려고 누웠는데 숨 쉬는 게 불편해서 잠이 잘 안 온다고 숨을 멈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국 질식으로 사망한 거구요. 죽을 의도는 별로 보이지 않았으니 사고사라고 해야겠죠.”
말을 끝낸 뒤, 샤피엘은 가이아의 안색을 살피며 눈치를 보았다.
이 괴팍한 신은 다른 면에선 관대할지 몰라도 게으른 것에 대해선 혐오 수준으로 싫어했다.
“호오……. 그러니까 숨 쉬는 것마저 귀찮을 만큼 게을러빠졌다는 거네?”
눈을 치켜뜬 가이아의 얼굴은 사랑스러워 보일 만큼 귀여웠지만, 샤피엘은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앞으로 있을 소녀의 분노에 대비하여 바짝 긴장했다.
“이것 참. 하하. 서류를 보니까 가관이 따로 없네. 스무 살 이후로 직장은커녕 아르바이트도 안 하고, 물려받은 유산으로 집에 틀어박혀서 잠만 잤다라. 그리고 그 끝은 숨 쉬기 귀찮은 나머지 숨 쉬기를 포기한 사고사……. 누구는 천 년 가까이 쉬지도 못하고 일만 하고 있는데…… 게다가 다음 생에 태어나고 싶은 종족이 나무……? 돌멩이라고 써 놓곤 줄 그어 놓은 건 원래는 돌멩이로 태어나고 싶었다는 거네.”
‘역시 역린(逆鱗)이로구나!’
차갑게 식어가는 가이아의 표정에 맞춰 샤피엘의 얼굴도 긴장한 나머지 굳어갔다.
그리고 소녀의 망상스위치에도 불이 켜졌다.
“음. 그렇지 뭐. 신이니까. 열심히 일해야지. 나도 욕구가 있는데. 쉬고 싶어도 쉬지 말고 일만 해야지. 인간들은 좋겠네. 쉬고 싶을 땐 쉴 수도 있고. 그래. 난 일이나 해야지. 죽을 때까지 일만 하다가 죽어도 산재보험도 못 받고 ‘그 친구 좀 쉬엄쉬엄 일하지. 누가 죽을 만큼 일하랬니’ 소리나 듣겠지. 모르는 녀석이 보면 난 일 중독자인 줄 알 거야. 어머, 가이아 님은 오늘도 일하세요? 정말이지 워커홀릭이 따로 없네요. 그러지 말고 산책도 좀 하고 휴가도 받아서 어디 놀러라도 가세요. 아, 워커홀릭이시니 일하는 게 쉬는 거려나? 참, 이래서 중독자들은…….”
“가이아 님?”
대사에 맞춰서 홀로 연극하듯이 표정이 변하는 가이아를 보고 샤피엘이 걱정스럽게 물었지만, 가이아는 이미 망상의 세계 속에서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당신처럼 일만 하는 사람은 제 취향이 아니에요. 당신은 제가 중요하나요? 아니면 일이 중요하나요? 아니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가 빠지면 업무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변명하지 마요. 당신 같은 워커홀릭이랑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안녕. 아이들은 제가 데리고 가겠어요. 위자료랑 양육비는 제 통장으로 송금해 주길 바래요. 안 그러면 법정에서 봐요. 안 돼! 제발! 날 떠나지 마! 가이아 님. 업무가 밀렸습니다. 이 멍청이! 지금 업무가 중요해? 내 가정이 파탄 났다고! 하지만 가이아 님이 안 계시면 저희는 길거리에 나앉습니다. 부디 저희들의 가정을 위해서 열심히 일해주세요. 가이아 님이 워커홀릭이라 저희는 정말 안심하고 있습니다. 아니야. 난 일 따위 싫다고! 나도 결혼해서 남편이랑 꽁냥꽁냥거리고 싶단 말이야. 가이아 님은 일이 곧 남편 아니었습니까……?”
갑자기 고개를 떨군 가이아. 그리고 소녀의 고개가 다시 올라왔을 때…….
‘아, 아수라다!’
“난 워커홀릭이 아니라고오오오!!!”
신의 분노를 정면에서 받아내고 있던 샤피엘이 입에 거품을 물며 기절했다.
그가 기절하든 말든 가이아는 머리를 풀고 사악한 웃음을 지으며 결재 서류에 펜을 놀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인간계를 침범하는 마왕이 흉계를 꾸미는 모습 같았다.
“큭큭. 너 때문에 내가 준비한 게 얼만데. 일부러 소녀틱하게 머리까지 묶었구만. 누구는 뼈 빠지게 일하는데 숨 쉬기도 귀찮아서 운명을 바꿔? 그래. 원하는 대로 나무로 태어나게 해주지. 지구에서 태어나 봐야 금방 벌목당하거나 환경오염으로 죽을 테니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지. 인격도 그대로 유지시켜 주마. 인간의 정신으로 나무의 삶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느껴보라지! 백 년, 이백 년으론 네 녀석의 썩어빠진 근성은 고쳐지지 않겠지? 좋아. 뭐가 좋을까? 아! 세피로트계에 세계수(世界樹)라는 종이 있었지. 누가 죽이지 않는 이상 네 녀석은 영원히 살거나. 숫나무로 태어나서 꽃가루 날리지 말고 암나무로 태어나라. 열매라도 맺어서 이 세상에 도움이 되라고. 이 니트 자식아아아아!”
가이아는 서류에 천벌을 내리듯 도장을 쾅 하고 찍은 뒤, 기절해 있는 샤피엘의 이마를 탁 하고 쳐 샤피엘을 깨운 뒤 그에게 서류를 건넸다.
“에?”
“뭘 멍하니 있어? 빨리 가서 그 서류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빌어먹을 니트를 처벌하고 와.”
“아. 넵!”
샤피엘이 나간 뒤에도 가이아는 분이 풀리지 않는 듯 씩씩거렸다.
“짜증나는데 지옥이나 놀러가야지.”
* * *
천국의 끝. 다른 차원과 연결된 차원관리본부.
그곳에서 샤피엘에게 문서를 받은, 과학자 차림의 한 남성이 서류를 보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래서 여기 적힌 대로 그 영혼을 세피로트계로 보내라 이거로군.”
“하하하……. 가이아 님이 화가 많이 나셨더라고요.”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근데 이대로 괜찮을라나 몰라. 인간의 영혼을 정화 작업도 없이 나무로 태어나게 하다니. 몇 년 안 가서 미쳐 버리는 거 아니야?”
본디 모든 영혼은 정화 작업이라는 초기화 과정을 거쳐 생전에 있던 기억과 습관, 본능을 모두 없앤 뒤 깨끗한 영혼이 되어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였던 영혼이 인간으로 태어났을 때, 개를 보고 흥분한다거나 인간이었던 영혼이 개로 태어났을 때 인간을 보고 흥분한다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 뒤에 있는 그 영혼이 바로 마왕을 분노케 한 그 영혼이로구만.”
“히익! 그러다가 가이아 님이 들으세요.”
“걱정하지 마. 내가 만든 ‘재해 탐색기’에 따르면 지금 마왕은 지옥으로 놀러갔거든. 아마 지금쯤 염라대왕이랑 놀고 있을걸?”
과학자 스타일의 천사는 안경을 치켜세우더니 샤피엘이 데리고 온 영혼을 살펴보았다.
그 역시 가이아처럼 그가 알고 있는 사인(死因) 중 귀찮아서 숨을 멈춘 사인은 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그의 탐구심이 자극된 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영혼이군.”
하지만 무언가 발견했는지 그는 품에서 돋보기를 꺼냈다. 보석의 흠집이나 손목시계를 수리할 때 사용하는 고성능 돋보기였다.
“이런. 영혼에 금이 가 있었네.”
“영혼에 금이 가다뇨? 영혼도 상처를 입습니까?”
차분하게 돋보기로 영혼을 관찰하면서 과학자 천사는 샤피엘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육체적 고통과 다르게 정신적으로 심한 고통을 당하면 가끔 이렇게 영혼에 상처를 입기도 하지. 주로 자괴감이나 죄책감 따위를 오랫동안 품고 있는 경우에 발생되는 케이스야.”
고성능 돋보기를 품에 넣은 천사는 이 상처 입은 영혼에 대해 몇 가지 가설을 세우기 시작했다.
“영혼이 상처 입으면 육체에도 영향이 가기 마련이지. 영혼이 검게 물들수록 양육환경에 상관없이 악(惡)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높듯이, 영혼에 상처가 생기면 이를 치유하기 위해 육체는 가사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 아마 이 영혼이 스스로 숨을 멈출 만큼 무기력한 건 영혼에 생긴 금 때문일지도 모르겠네. 가사상태에 빠질 만큼 큰 상처는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치료되지 않으면 악화된다고 판단했겠지. 그래서 잠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던 거고, 그렇게 지내다 보니 만사가 귀찮아졌을지도?”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계속 잠만 잤다는 건가요. 그걸로 치유가 됩니까?”
“아마 될 거야. 깨어나서 생활하다보면 여러 가지로 상처받는 일들이 많잖아? 상처가 악화되는 걸 잠으로 막는 거지. 그러다 보면 언젠간 치유되는 거고.”
“그럼 치유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돋보기 없이는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니 금방 치유될까요?”
“물리적인 존재는 상처가 생겨도 금세 아물지만 영혼과 같은 정신 생명체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이와 같은 선례는 본 적이 없어서 확답은 못 내리겠지만 최소 백수십 년에서 길게는 수백 년까지 가지 않을까.”
두 천사가 이야기 하는 도중, 그들의 뒤쪽에 설치된, 거대한 불투명 유리가 빛나더니 초록의 숲이 나타났다.
“그것보단 나는 이 친구가 금방 죽지 않을까 걱정되는군. 나무로 태어나도 영혼이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비정기적으로 잠들 테니 미칠 걱정은 없지만, 세계수(世界樹)라는 개체는 성체까지 자란 경우가 딱 한 번뿐일 만큼 자라기 힘들거든. 성체가 되기 전에 짐승들에게 먹히거나 인간들에게 약재로 뜯기는 경우가 대다수라…….”
과학자 천사가 영혼을 거울 앞으로 옮기면서 말했다. 그의 입가엔 씁쓸한 미소가 걸려 있다.
“덕분에 저쪽 세계에서 세계수는 멸종한 지 오래지만. 성체까지만 버텨줬으면 좋겠는데.”
“나무일 뿐인데 그렇게 자라기 힘듭니까?”
“세계수라는 개체는 지구의 나무나 다른 나무들과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거든. 보통의 나무나 물과 토양의 양분을 흡수해서 자란다면, 세계수는 세피로트계 전역에 퍼져 있는 마력을 흡수해서 자라지. 그렇기 때문에 마력이 부족한 짐승들은 세계수를 보면 뿌리까지 파먹는 경우가 허다하고, 인간들 사이에선 영약의 재료로서 고가에 거래되지. 성체가 되기만 한다면 몇몇 탐욕스러운 인간이나 마족을 제외하곤 대부분 신성시하기에 건드리지 않지만, 유일하게 성체로 자라났던 세계수가 천 년 전에 있던 인마전쟁에서 죽어버리는 바람에 저쪽 세계에서도 세계수에 대해 기억하고 있는 존재는 별로 없을 거야. 아마도.”
거울에 비춰지던 숲이 클로즈업 되더니 숲 속에 있는 작은 땅을 비췄다. 그곳은 거울에 입력한 ‘인간의 발길이 가장 닿기 힘든 곳’이라는 명령에 적합한 땅이었다.
과학자 천사는 그 땅을 보곤 어디론가 사라지더니 손에 작은 씨앗을 하나 들고 나타났다.
“그나마 다행이군. 멸종한 개체긴 하나 연구용으로 보존해 둔 씨앗이 남아 있어서. 이런 건 원래 그녀석이 만들어줬어야 하는데. 나중에 청구해야겠어.”
과학자 천사는 씨앗을 쥔 손으로 거울에 손을 뻗었다. 거울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그의 손은 쑥 하고 들어가 땅을 살짝 파곤 조심스럽게 씨앗을 그 안에 넣었다.
이제 영혼을 그 씨앗에 넣으면 그들의 임무는 끝이 난다. 하지만 과학자 천사는 잠시 고민하더니, 주머니에서 반투명한 구슬을 하나 꺼내 영혼에게 가져다댔다.
투명했던 구슬은 점점 더 투명해지더니 완전히 형체가 사라져 버렸다.
“그게 뭡니까?”
“호신용 마도구.”
“에에……. 그게 뭐죠?”
“가끔 인간계에 파견 나가는 천사들이 있거든. 인간의 육체로 강림한 천사가 임무에 지장이 없도록 다른 존재들에게 공격받지 않게 하는 기능이 있지. 수명이 백 년밖에 되지 않지만.”
과학자 천사가 영혼을 들고 거울 너머의 씨앗에 손짓하자 영혼은 실타래처럼 풀어지더니 씨앗으로 흡수되었다.
“너무 빨리 죽으면 억울하잖아. 아무런 생각 없는 식물도 아니고. 전생의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나무인데. 백 년이면 인간의 수명이랑 비슷하니 약간의 선의라고 해두지.”
“부서장님, 완전 착하시네요.”
“착하지. 이래 봬도 나 천사거든.”
“근데 그거 의외로 나쁜 거 아닙니까. 그럼 못해도 백 년은 나무로 살아야 된다는 건데. 죽고 싶지 않을까요?”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나무로 태어나는 거니 영혼의 치유를 위해 꽤나 자주, 그리고 오래 잠들 거야. 게다가 이거 온오프 기능이 있으니까 죽고 싶어서 ‘날 좀 죽여줘’ 하고 생각하면 방어 기능이 꺼지고 디 앤드지.”
“천사라는 말은 취솝니다. 마왕은 가이아 님이 아니었네요.”
“이 정도면 그 양반보다는 착하다고 생각하는데.”
임무가 끝난 두 사람이 거울을 보고 웃었다. 곧 거울에 비춰지던 숲의 모습도 점멸하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