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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의 분노
올해로 3개월째 천국에서 일을 시작한 신입 천사는 종이 한 장을 들고 앞으로 있을 일에 대비하여 근육을 긴장하고 있었다.
그 근육이란 게 비록 본인의 영혼이 이미지화된 것이어서 딱히 큰 물리력을 갖지 않았기에, 신입 천사의 긴장은 그저 정신적인 긴장에 불과했지만 그는 살아 있을 적 선생님에게 불려가 혼날 때만큼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으으. 내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본디 천사들의 최고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신에게 『운명을 개척한 영혼』을 인도하여 만나게 해주는 것이 그와 그의 선배가 맡은 임무 중 하나이거늘, 그의 옆에는 선배도 없으며 또한 임무의 키포인트인 『운명을 개척한 영혼』도 없었다.
선배야 언제나 농땡이를 피우니 원래 없던 천사라 쳐도 영혼이 없다는 사실은 그의 살아생전 지병인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이 천사의 육신에 재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게 했다.
물론 천사는 똥을 싸지 않기에 배가 아픈 것처럼 계속 느끼는 것으로 끝나지만.
가만, 이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신입 천사는 자기 키보다 높은 직사각형 크기의 광택이 나는, 나무로 된 문 앞에서 멈추고 심호흡을 했다.
본래라면 문 대신 빛으로 된, 신이 머무는 공간으로 이어진 통로가 있어야 하지만 그들의 신은 무슨 생각인지 『운명을 개척한 영혼』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런 식으로 통로를 바꾸어 버렸다.
아마 신이 생각하기에 이편이 인간이었던 그 영혼에게 친숙함을 줄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지만 신입 천사인 그에게도 생전에 있었던, 자기보다 까마득하게 높은 상사에게 직접 보고하러 가던 시절을 생각나게 해서 그의 배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자, 긴장하지 말자. 나는 이미 죽어서 천사가 됐잖아? 또 죽진 않을 거야. 또 죽으면 이번에야말로 지옥에서 근무하겠어.”
마음의 각오를 다진 신입 천사가 문을 열고 본 것은, 근엄하던 신이 여자아이로 변해 혼자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 * *
창조주.
이 세계를 만들고 모든 것에 『운명』을 부여하고 사라져 버린 풍운아.
그리고 그 방랑자를 대신해 『운명』을 가진 생명체를 총괄하는 자가 바로 신이다.
신에겐 정해진 모습이 없다. 그가 스스로 변하고 싶은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신은 대부분의 시간을 인간의 모습으로 지낸다. 신의 입장에서 동물이나 식물을 관찰해 봐야 본능에 의지해 움직이는 그들은 큰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관계가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게 변화시킨다.
게다가 인간이 가진 의지는 개미보다 못할 만큼 약할 때도 있고, 신이 놀랄 만큼 강해질 때도 있다.
심지어 정해진 운명을 비틀 만큼.
그렇기에 신은 『운명을 개척한 영혼』을 만나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동물이나 식물은 운명을 개척하지 않는다. 그들은 의지보다 본능이 더 강하기에 운명에 저항하지 않는다. 오로지 인간만이 운명을 개척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은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시대가 바뀌고 사람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지만 운명을 개척할 만큼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은 예전이랑 비슷하게 등장하였고, 대신 늘어난 인간들의 수만큼 일이 바빠 근 수백 년간 일에 깔려 살아온 것이다.
인간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싫어하는 신.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지닌 것조차 인간과 닮은 신.
그 신은 어제부터 바쁘게 개조한 자신의 집무실을 보았다.
하얀 프릴이 달린 앙증맞은 하늘색 드레스를 입은 작은 키의 소녀는 양쪽으로 묶은 은발의 포니테일이 목덜미를 자꾸 간질여서 그런 건지 앞으로 있을 계획의 즐거움 때문인지 히쭉히쭉 웃고 있었다.
소녀의 붉은색 눈동자가 닿는 곳마다 새롭게 들인 물건들이 이제 곧 도착할 영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으하하하하! 아니지. 헤헤헤헤? 후후후후? 어떻게 웃어야 되지?”
소녀답게 웃는 법을 모르는 신은 웃는 법을 연습하다 ‘미소로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고민을 해결하곤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했다.
“일단 도착하면 최대한 어린아이처럼 행동해서 나에 대한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지. 그게 첫 번째야. 괜히 신이라고 영혼이 겁먹으면 안 되니까. 그다음에 다른 차원으로 보낸 다음에 이것저것 능력을 얹어주고, 그쪽 차원으로 휴가를 떠나고, 소꿉친구가 돼서 함께……. 후후.”
소녀, 아니 신은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인간이 발전하기 시작한 이래로 벌써 쉬지 않고 일만 한 게 어언 천 년이 다 되어갔다. 신이 인간의 모습을 취한 순간부터 인간들처럼 쉬고자 하는 욕구를 가졌고 그 외에도 서서히 인간을 닮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신이 세운 계획은, 이른바 ‘요즘 유행에 따라 인간을 다른 세상으로 보낸 신이 휴가를 떠났는데요?’라는 작전!
물론 이 작전의 이름도 유행에 따라 지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신은 여성의 모습을 취하길 좋아했다. 신은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으로 인간과 결혼하는 것 또한 좋아했다. 그렇게 인간세계에 내려와 인간과 결혼하고 한 세기를 보내는 것이 신이 즐기는 휴가 법이었다.
그것도 벌써 천 년 전에 즐긴 것이 마지막이었기에, 신은 현재 욕구불만에 빠져 있었다. 쉬는 쪽으로도, 그쪽(?)으로도.
“이번 작전에 도움을 준 너희들에게 감사한다.”
신이 손에 든 책은 ‘토끼 ×롭스’라는 책과 ‘치×타 구×’라는 책이었다. 순정만화의 그림체로 그려진 표지를 손으로 어루만진 뒤 신은 책장에 두 책을 꽂아두었다.
“그나저나 이런 경우엔 뭐라고 하는 것이지? 키잡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역키잡이라고 해야 하는 건가.”
신의 계획은 이러했다.
첫 번째. 인간에게 ‘너는 특별한 영혼이므로 환생하고 싶은 곳을 고르게 해주겠다’라며 유혹한다.
두 번째. 다른 차원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면 OK. 지구에서 태어나게 해달라고 하면 실수인 척하며 다른 차원으로 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판타지라고 하는 차원으로 보내야 한다는 것!
세 번째. 덤으로 이것저것 옵션을 붙여서 그쪽 세계의 용사급으로 성장시킨다.
네 번째. 본인도 그쪽 세계로 넘어가 근처에서 함께 태어나 소꿉친구가 된다.
다섯 번째. 동료가 되어 함께 여행하며 꽁냥꽁냥한 이벤트를 거쳐 세계를 구하고 결혼에 골인!
“완벽하군!”
미소에 대한 안일한 해결책만큼 안일한 계획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만능인 신에겐 임기응변으로 그때 그때 해결하면 되니 문제는 없었다.
양 볼을 손으로 감싼 신은 신의 위엄이라곤 눈곱만치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외형처럼 귀여운 소녀의 오라가 풍기는 것도 아니었다.
신의 현재 모습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변태 중년 아저씨와 같았다.
소녀는 문득 다른 생각이 떠올랐는지 혼자서 열심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후후. 그런데 혹시 다른 걸 선택하면 어떻게 하지? ‘운명을 개척하다니. 훌륭하구나. 원하는 것이 있다면 뭐든 들어주마’, ‘정말입니까. 신님. 제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당신입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안 된다. 난 신이고, 넌 영혼이야’, ‘사랑에 그런 것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 ‘상관없습니다. 신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널 다른 차원으로 보내주마. 그곳이라면 함께할 수 있을지도’…….”
망상이 가속화되면서 소녀의 머릿속에선 벌써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에서 전라가 되어 일렁거리는 불빛 아래에서 서로를 마주보는 곳까지 진행되었다.
“‘아이는 몇 명이 좋을까’, ‘힘닿는 데까지 낳아 봐요. 신님’, ‘쉿. 이제 신님이라고 하지 않기로 했잖아’, ‘아……. 미안’, ‘제대로 내 이름을 불러줘. 알았지?’, ‘그래. 알았어. 가이아’, ‘응’ 그리고 두 사람의 입술이 한데 포개지며, 날 침대에 눕히고, 서로의 손이 맞닿은 채 하나가 되어…… 흐흐흐.”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침과 헤벌쭉해진 얼굴이 소녀의 남아 있던 귀여움을 깡그리 죽여 버렸다.
“저기……. 가이아 님?”
“흐엑?”
언제부터였을까. 집무실의 문이 열려 있고 그곳에 한 천사가 소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은 그 천사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신입에게 직접 이름을 내려준 것이 그녀였다.
“샤피엘! 너, 너! 언제부터 보고 있었어!”
신입 천사. 샤피엘은 긴장하며 대답했다. 그가 조금만 더 눈치가 있었더라면 방금 전에 왔다고 말했을 것이지만, 그는 아쉽게도 눈치가 없었다.
“으하하하하. 하고 웃으시면서 헤헤헤헤, 후후후후 하고 다시 웃는 부분부터 보고 있었습니다만…….”
“처음부터 보고 있었냐!”
“히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