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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1화 (1/200)

나무로 태어난 나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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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자고 싶다.

눈이 부시게 새하얀 방 안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 처음으로 느낀 감상이다.

정확하게는, 눈이 부시다는 표현은 옳지 않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으니까.

사실, 내가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 서 있는지 앉아 있는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깨어난 순간부터 몸이 붕 뜬 부유감에 휩싸여 나른하다.

‘아아. 계속 이대로 있고 싶다.’

너무 편하다.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대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취직을 한 것도 아니니 이대로 가만히 있는다 해도 뭐라 할 사람은 없다.

‘드디어 꿈이 이루어진 건가.’

집에서 혼자 빈둥거리며 지내고 있다곤 하지만 살아 있는 생명이라면 피할 수 없는 행위들. 이를테면 식사를 한다거나, 화장실에 간다거나, 너무 오래 누워 있어서 반사적으로 몸을 꿈틀대는 행동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나의 꿈은, 평생 잠만 자는 것. 그리 큰 꿈은 아니지만 현실에선 불가능한 꿈이랄까.

아아. 길가에 돌멩이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얼마나 여기에서 시간을 보냈을까. 포근하고 따뜻한 기운이 몸을 휘감고 있어서 정말 잠이 잘 온다.

잠을 자고 있는 게 맞을까? 자는 것처럼 편안하지만 이렇게 생각도 하고 있고.

혹시 내가 죽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잠에서 깨어날까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그 생각은 찰나동안 떠올랐다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어차피 내가 죽어봐야 걱정할 사람은 없으니까.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했던 그날, 전날 미리 대학교 근처 찜질방에서 하루를 보내고 입학식에 참석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지망하던 학교에 무사히 입학한 것을 축하해 준 나의 가족들.

선물로 멋진 시계를 준 자상했던 아버지.

내 합격을 축하해 주기 위해 집에서 내가 좋아하던 음식들을 준비했던 어머니.

내가 합격한 대학교에 지망하고 싶다며 내게 공부를 가르쳐달라던 귀여웠던 여동생.

그들은 모두 날 축하해 주기 위해, 입학식 날 차를 타고 오다 죽었다.

가족들에게 벌어졌던 참사가 어떠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저 TV에서 나오는 것처럼, 일가족 세 명이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졸음운전을 하던 덤프트럭과 부딪혔다는 경찰의 말과, 나의 가족이었다고 믿기 힘든, 생전의 모습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은 고깃덩어리와 같은 시신 세구를 장례식장에서 본 것이 전부였다.

전부 내 책임이다.

뭐, 어쨌든 날 슬퍼해 줄 사람도 없고, 이대로 지내는 것도 괜찮겠네.

그나저나 여긴 정말 편하다. 집에서 자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기분 좋게 잠이 든 적은 없다. 잠을 오래 잔다고 해서 몸이 편한 것은 아니다. 열 시간 이상 잠을 자면 머리가 띵하게 아프고 그 이상으로 잠을 자면 허리의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한다.

하지만 여기선 그런 고통 따윈 없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궁극의 잠이다.

그저 잠만 자는 것.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잠을 자도 생각의 사고가 멈추지 않는다는 정도? 계속해서 의식이 남아 있으니 생각을 하기 싫어도 해야 하네.

아아. 더 깊게 잠들고 싶다. 이런 잡념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깊고 깊은 잠에…….

마치 죽음처럼.

* * *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 계속 있고 싶다는 생각뿐.

깨지 않는 잠에 빠져 마침내 내가 원하던 대로 생각조차 멈추기 시작했다.

서서히 머리가 굳어가는 느낌이 들면서 내 의식이 늪에 빠져 가라앉듯이 정지하고 있었다.

‘그래…… 이대로…… 잠드는 거야…….’

『……어나…….』

하지만 그런 나의 의식을 끌어올리려는 듯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제발. 이대로 날 자게 내버려 둬.

『일어나세요. 저기요? 제 말 안 들려요?』

귀찮게 좀 굴지 말라고. 지금 내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단 말이야.

『여보세요? 아아. 흠. 서류상으론 한국인으로 돼 있었는데 아닌가? Hello? ?好? こんにちは? Guten Tag?』

여러 가지 언어로 인사하는 목소리는 각 언어마다 발음이 원어민처럼 완벽해서 듣기 좋았지만, 난 지금 자고 싶기에 더는 들어주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자꾸 말 걸지 말고 딴 데로 사라져 버리란 말이야.

『으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선배는 또 어디로 사라진 거야. 저, 저기요? 영혼님? 제 말 진짜로 안 들려요?』

“시끄러워. 잠 좀 자자.”

나는 징징거리는 목소리가 짜증나서 한마디 쏘아붙였다. 그러자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침묵하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히잉……! 영혼한테까지 무시당하다니…… 천국으로 오는 게 아니었어. 역시 그때 그 녀석이랑 바꾸지 말걸……. 그래도 일은 해야 되는데…… 나 혼자서는 무섭고……. 선배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을 시켜가지곤…….』

역시 천국이었구나. 나는 그럼 죽은 거로군. 하지만 왜? 난 집에만 있었는데. 사인이 무엇일까.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 기억은 침대 위에 누워 눈을 감고 있던 기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후우. 안 돼. 푸념만 늘어놓으면 훌륭한 천사가 될 수 없어. 열심히 노력해서 나도 높은 사람이 돼야지. 출세하는 거야! 목표는 신이다! 아니지. 그건 너무 높은데. 그래, 일단 부장이다.』

너 회사원이냐. 게다가 부장이 목표였냐. 꿈이 너무 작잖아.

그건 그렇고 천국에도 관료제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이 목소리 좋은 천사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 열심히 하는 사람 아니, 천사가 보기 좋았으니까.

『그래서 망할 선배를 턱끝으로 부려먹어야지. 히힛.』

……속이 시커멓구만. 아까 빈 건 취소다.

천사(눈을 감은 것처럼 주변이 보이지는 않지만 본인이 그렇게 말했으니)는 그 후로도 ‘빌어먹을 선배 녀석 보나마나 또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겠지’, ‘면접 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직장인 같은 푸념을 늘어놓다가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날렸다.

『저기 혹시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나요?』

다시 태어난다면…… 이라.

흥미로운 질문이라 잠이 조금은 달아났다. 천사가 한 질문은 바로 환생이 아닌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바로 떠올랐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하지만 그 대답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멈칫했고 그 틈에 다른 생각이 치고 달려 나와 내게 속삭였다.

사람으로 태어나면 귀찮은 일이 한 두 개가 아니잖아?

먹고사는 것부터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은 먹고 자는 것 외에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까지 신경 써야 한다.

심지어 나이를 먹으면서 건강에도 신경 써야 하고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결국 지금처럼 편하게 잘 수 없다.

‘전부 귀찮은데. 계속 자고 싶어.’

“돌로 태어나고 싶어.”

『네?』

사람보단 돌이 낫지. 돌이라면 땅에 파묻혀도, 물속에 빠져도 잘 수 있을 거 같아.

『저기 돌은 영혼이 없는데……. 다른 건 안 될까요?』

돌은 영혼이 없었구나. 세상 만물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말은 뻥이었군. 그럼 뭐가 좋을까.

“그냥 이대로 있으면 안 돼?”

『그게…… 안 될걸요? 아마도……. 헤헤…….』

아마도는 또 뭐야.

역시 말단사원은 이래서 안 된다. 회사 규칙에 얽매여서 자기 마음대로 결정을 못 내리지. 근데 천사잖아? 천국은 보기보다 빡세구나.

돌 말고 다른 것이 뭐가 있을까. 아. 생각났다.

“나무. 나무로 태어나고 싶어.”

나무로 태어난다면 아마도 계속해서 잘 수 있지 않을까. 나무도 살아 있는 생명체이긴 하지만 우선 뇌도 없고 신경도 없으니까, 아마 자는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

『나무, 나무라. 으음. 이건 괜찮을지도.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이에 뭔가 적는 펜 소리가 나더니 천사는 내게 인사하곤 다시 주변이 조용해졌다. 아무래도 사라진 모양이다.

나는 천국이란 어떤 방식으로 돌아가는 걸까? 하고 잠시 생각해 보다가 다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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