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86화 (186/187)

◈ 제 186화

186화 초록별 작가의 밤

초록별 출판사가 주최하는 초록별 작가의 밤 행사가 열린 5성급 호텔 연회장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초록별 출판사가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에서도 손에 꼽히는 종합 출판 그룹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스마트폰의 대두와 함께 성장한 SNS는 초록별과 초록피아의 대성공을 이끌었다.

이러한 위상에 힘입어 초록별 작가의 밤 행사는 작가들을 위한 최고의 행사가 되었고 국내는 물론 해외의 저명한 작가와 출판 관계자들이 찾는 국제적 규모의 행사로 발전되었다.

이번 행사 역시 10일 동안 열릴 예정이었다.

-북적북적!!

“김 사장.”

“어이! 박 사장.”

“권 작가님.”

“어?! 박 대표님. 반갑습니다.”

작년과 비교해 사람들이 훨씬 많이 모였다.

원래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였지만 오늘은 특히 그랬다.

최선우 총리 부부가 행사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혜진아~”

“어?! 미선아.”

“최혜진. 나도 있다.”

“효진아~~”

“야! 이쪽으로 와. 여기 한 자리 비었어.”

“우와~ 다행이다. 고마워.”

혜진은 먼저 자리 잡은 친구들 덕분에 다행히 빈자리를 찾아 앉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뭐 그냥 지냈어. 넌 어때?”

“휴~ 먹고살기 바쁘다. 얘~~”

“지랄! 이년은 맨날 먹고살기 바쁘대. 방송 작가로 잘나가면서~”

“헤헷 그런가?”

오랜만에 만난 세 친구는 요리가 나오는 동안 이것저것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는데 때론 같이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웃기도 하고 화도 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이다.

-웅성웅성!!

출입구 쪽이 분주해지더니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두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우와! 최선우다.”

“대박!!”

“설연도 같이 왔네?”

“엄마야~~ 나 실물로 보는 건 처음이야. 진짜 잘생겼다.”

친구들의 과한(?) 반응에 혜진은 뜻 모를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때, 우연인가?

선우의 시선이 혜진을 향했다.

“꺄악!”

“봤어? 봤지? 지금 날 보고 웃었어.”

“미친년, 나보고 웃었거든!”

“닥쳐!”

혜진은 친구들의 저런 모습에 그만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풉!”

친구들은 자신과 선우의 관계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그때 한 명의 여인이 탁자로 다가왔다.

그녀는 혜진, 미선, 효진을 향해 알은체를 했다.

“너희들, 여기 있었네?”

싸늘한 인상의 미녀다.

그녀는 특히 혜진을 쏘아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연희 선배.”

“……꼬라지하고는.”

그녀는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수준 떨어지게 하지 말고 밥 먹었으면…….”

다음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빛나며 순간적으로 말을 멈췄다.

“승원 선배.”

“어?”

제법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걸어왔다.

“연희? 뭐야! 미선이, 효진이 그리고 혜진이도 있었네.”

“승원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잘 지내셨어요?”

“작품 잘 읽었어요. 이상 문학상 수상 축하드려요. 선배님.”

“……저도 축하드려요.”

혜진은 떨리는 음성으로 축하를 전했다.

“아! 고마워. 너희들…….”

“승원 선배, 우린 저쪽으로 가요.”

“어?”

“여긴 자리도 없잖아요. 제가 미리 자리 잡아놨어요. 그리고 우리 아빠가 이번에…….”

연희는 승원의 팔을 잡더니 자연스럽게 끌어당겼다.

“그, 그래.”

무언가 아쉬워하는 청년의 모습.

연희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혜진을 한 번 노려보고는 승원과 함께 비어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아이, X발!”

“저년은 대체 왜 저래?”

“참아. 얘들아. 조연희 저년은 원래부터 미친년이잖아.”

“맞아. 맞아.”

문제는 이러한 광경을 선우가 모두 보았다는 것이다.

“조연희가 누구지?”

선우가 낮은 목소리로 경호원에게 물었다.

“알아보겠습니다.”

선우는 여동생 혜진을 바라보았고 마침 혜진은 승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도 몽롱한 눈빛으로 말이다.

잠시 후.

선우는 조용히 혜진을 불렀다.

“혜진아, 너 이승원 작가, 좋아하지?”

단도직입적인 말에 혜진은 당황해하더니 얼굴을 크게 붉혔다.

“아, 아니. 오빠! 지금 뭔 소리야! 미쳤어?!!”

동생의 민감한 반응에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선우는 빙그레 웃더니 짓궂게 물었다.

“오빠가 도와줄까?”

“아니라니까, 왜 그래!!”

선우는 혜진에게 조용하 말했다.

“혜진아. 사랑은 이기적인 거야. 사랑하기에 보내준다는, 혹은 사랑하기에 포기한다는 건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같아.”

“여우와 같다고?”

“왜 그 여우 있잖아. ‘저 포도는 신 포도일 거야.’라고 말한 놈.”

“아……!”

선우의 말이 이어졌다.

“사랑하는데 왜 보내줘? 사랑하는데 왜 포기해? 가져야지.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지.”

“…….”

“연희라는 애 때문에 그래?”

“어?!!”

“내가 알아보니 아무 사이도 아닌 것 같던데?”

“그, 그래?”

“응.”

선우는 이미 알아봤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척 물어봤다.

“걔는 어떤 사람이야? 얼굴이 꽤 준수하게 생겼던데.”

“어?”

“그 이승원이라는 작가 말이야.”

“승원 선배는 아주 뛰어난 작가야. 이번에 이상 문학상도 받았고 얼굴도 잘생겼고 또 매너도 좋고…….”

아주 신나서 설명하는 혜진의 모습에 선우는 웃음이 터질 뻔했다.

어리게만 보았던 동생이 어느새 숙녀가 되어 사랑에 빠진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선우는 여동생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했다.

“그렇게 뛰어나? 이 오빠보다?”

“어? 아, 아니! 오빠보단 아니고~~”

“큭!”

“……헤헷!”

선우의 웃음에 그녀 역시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래. 맞아. 나 그 사람 좋아해.”

“오케이. 오빠가 널 주인공으로 만들어 줄게.”

선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잠시 후.

연회장에 다시 모습을 보인 선우가 승원에게 다가갔다.

“이승원 작가님?”

“초, 총리님.”

선우는 밝은 웃음을 지으며 승원의 손을 잡았다.

“이상 문학상 수상을 축하해요. 저도 무척 재밌게 읽었습니다.”

“가…… 가…… 감사합니다.”

노벨 문학상을 포함해 상이란 상을 모두 받은, 이 시대가 낳은 최고의 작가가 자신의 책을 읽어 보았다니. 그것도 재밌게!!

승원은 떨리는 음성을 숨기지 못했다.

“총리님과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다니, 정말 영광입니다.”

“하하, 그래요.”

선우는 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눈치로 싱긋 웃었다.

그를 만난 작가들 대부분이 이러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제가 까마득한 후배입니다.”

“후후후, 그럴까?”

“네.”

선우는 말을 편히 놓으며 물었다.

“밥이나 한번 먹을까?”

“밥이요? 저와 밥을 먹겠다고요?”

황당해하는 표정에 선우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응. 재능 있는 후배를 보니 조언을 좀 해주고 싶어서. 아!! 혹시 바쁜가? 그럼…….”

“아니요. 아닙니다. 바쁘지 않습니다. 하나도 안 바쁩니다.”

“…….”

혹시라도 취소할까!!

승원은 필사적으로 외쳤다.

“그래, 그럼 내가 조만간 한번 후배님을 우리 집으로 초대하지.”

“가, 감사합니다. 선배님.”

“후후, 그래.”

그날 밤.

선우는 이승원 작가의 이상 문학상 수상작 <승리의 조건>을 정독했다.

그의 스타일을 파악하기 위해 글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하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우는 이승원 작가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일단 필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글의 소재 역시 참신했고 접근 방식 역시 마음에 들었다.

굳이 단점을 찾자면 야생의 날것과 같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호불호가 꽤 나눠질 것 같았다.

-삐이!

“부르셨습니까?”

“조태진 회장에 대해서 좀 알아봐.”

“조태진 회장 말입니까?”

“그래. 그와 그의 기업 그리고 이승원 작가와 조연희 양의 관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며칠 후.

연락을 받은 이승원 작가가 선우의 집을 찾았다.

“왔나?”

“네, 선배님.”

“자. 이쪽으로 들어오게.”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서재로 들어가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잠시 후, 이승원 작가를 위한 선우의 금과옥조와 같은 조언이 이어졌다.

“그래. 그렇지.”

“아! 알겠습니다.”

“그럼 어디 한번 내가 말한 방식으로 한번 써보게.”

“네.”

승원이 천천히 그의 글을 수정해 나가자 선우는 그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고쳐주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하고 눈으로 고쳐주었기에 승원은 금세 자신의 문제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제 좀 알겠나?”

“……네. 감사합니다. 선배님.”

선우는 가급적 이승원 작가가 가지고 있는 그만의 특성을 깨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다양하게 글을 수정해 문장 간의 전환이, 주제의 변환이 쉽게 이루어지도록 유도했고 때로는 그 자신이 직접 시범을 보여 주며 조언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하늘을 보니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봐, 승원 후배.”

“네, 선배님.”

“배 안 고픈가?”

“고, 고픕니다.”

“그래. 그럼 일어나게. 함께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선우가 승원을 서재에서 데리고 나오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두 사람의 코끝을 자극했다. 아무래도 요리가 거의 완성된 모양이다.

“자! 들어가자고.”

“네.”

선우가 승원을 데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오, 오빠! 스, 승원 선배…….”

“응? 너 언제 왔냐?”

설연 옆에는 몹시도 당황한 모습의 혜진이 서 있었고 승원 역시 깜짝 놀란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혜, 혜진아. 네가 여기에 왜…….”

순간 사위(四圍)가 조용해 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깬 것은 바로 선우였다.

그는 두 사람을 가리키며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물었다.

“뭐야? 두 사람. 아는 사이야?”

혜진은 선우의 태연자약한 연기에 어이가 없었고 설연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초인적 인내심을 통해 가까스로 참고 있었다.

그날 이후.

이승원 작가는 약속한 시간에 몇 번 더 선우에게 찾아왔으며 가르침을 받았다.

이미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오른 승원이었지만 선우의 가르침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리고 자연스럽게 혜진과 가까워졌다.

“……연희 선배와 가까운 사이라고 들었는데.”

“누가? 내가?!!”

“네.”

“……풉!”

승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실소를 토해냈다.

“대체 그 소문은 언제 없어질까?”

“네?”

“하아~ 그게 말이야…….”

승원은 연희와 아무 사이가 아니라고 했고 또 그럴 용의가 전혀 없다고 했다.

도대체 왜 그런 헛소문이 사라지지 않는지, 당최 이유를 알 수 없다고도 했다.

이와 같은 시각.

조연희가 딱딱하게 굳은 안색으로 물었다.

“뭐?!! 지금 누가 누굴 만나고 있다고?”

“그게 저…… 최혜진 양입니다.”

“……최……혜진?!!”

조연희는 화가 났다.

이승원 작가가 다른 누구도 아닌 혜진과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이년 내 앞으로 데리고 와. 당장!!”

“그, 그건 곤란합니다.”

“뭐? 곤란해?”

조연희는 당황했다.

“이 새끼가 미쳤나? 너 누구에게 월급 받는 줄 알아?”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잘 알고 있다면서, 지금 그렇게 말한 거야? 잘리고 싶어?”

그때였다.

지팡이를 쥔 노년의 남자가 거실로 들어왔다.

그는 올해 77세의 조태진 회장이다.

“연희야.”

“아빠!”

“회장님.”

“됐네. 자넨 이만 물러가게.”

“……네, 회장님.”

경호원이 밖으로 나가려하자 그녀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아빠, 저 사람이…….”

“그만해라.”

“네?”

“이미 보고를 받았다.”

“……?!!”

뭔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음인가?

조연희는 조태진 회장을 향해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네가 이 작가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는 것은 아빠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집안에 비하면 가난하지만 가진 능력이 출중했고 또…… 집안에 예술을 하는 사람 한 명쯤은 두려는 마음도 있었지. 그런데 말이다. 이 작가도 너와 같은 마음이었느냐?”

“네?”

“둘이 사귀었냐는 말이다.”

“그, 그건 아니지만 오빠도 곧…….”

“연희야.”

“…….”

조태진 회장의 무거운 안색을 본 그녀는 의아해했다.

“아빠,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이승원 작가와 만나고 있다는 최혜진 양.”

“걔가 왜요?”

“……그 아가씨가 어떤 집안의 아이인 줄 알고 있니?”

그의 물음에 그녀는 최혜진을 떠올렸다.

항상 특별할 것 없는 수수한 옷차림에 왠지 가난해 보이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자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귀여운 외모 덕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왜요, 대체 어떤 집인데요? 우리가 건드릴 수 없는 집이에요? 어디 10대 재벌가의 딸이라도 된대요?”

딸아이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조태진이 말문을 열었다.

“아니! 10대 재벌가 따윈 상대도 안 되는 집이란다.”

“뭐라고요? 대체 어떤 집…….”

믿을 수 없다는 듯, 발작적으로 고개를 든 조연희의 말을 조태진 회장이 단호하게 잘랐다.

“최선우.”

“네?”

갑자기 최선우의 이름이 왜 나오는 걸까?

“그게 무슨?”

“최혜진 양은…….”

조태진 회장은 침중한 낯빛으로 최혜진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만약 이승원 작가와 조 회장님의 따님이…….

-……그래서 제가 먼저 회장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회장님은 꽤나 양심적인 사업가시더군요.

선우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어렵게 빙빙 돌아가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조 회장을 불러 상황을 설명했다.

위에서 살짝 언급한 것처럼 만약 이승원 작가와 조연희가 사귀는 사이였다면 혜진에게 말해 포기시켰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해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조연희의 일방통행이었다.

사람들은 혜진의 정체에 대해 모르고 있다. 괜히 해코지를 하려다가 크게 다치지 말고 알아서 정리하라는 뜻으로 조 회장을 부른 것이다. 만약 그가 나쁜 사업가였다면 부르지도 않고 그냥 집안 자체를 쫄딱 망하게 했을 것이다.

“최선우가…… 걔 오빠라고요?”

“그래. 그것도 하나뿐인 친오빠.”

조 회장의 설명이 이어질수록 조연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그 순간 혜진을 향해 유난히 못되고 쌀쌀하게 대했던 기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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