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5화
185화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최선우다.”
“어디? 어디?”
“저기! 최선우 총리잖아.”
-우와와아아아아아아!!
통일이란 이름의 민족적 염원을 이루어낸 최선우의 등장에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들었다. 왕복 12차선 도로가 완전히 마비될 정도라 경호원들은 바짝 긴장한 채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
“꺄아악!”
“너무 멋있어요.”
“대박!! 잘생겼어요.”
아이돌 스타 뺨칠 정도의 외모에 능력마저 출중하다.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 중 여성 팬들은 자지러지듯 비명(?)을 질렀다.
선우는 살짝 민망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그를…… 신(神)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때, 김정운 위원장이 모습을 보였다.
-우워어어어!!
그를 향한 격렬한 호응이 이어졌다.
김정운 위원장은 미소를 보이며 두 손을 흔들어 주었다.
광화문 광장에서 이루어진 국민과의 대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비행기로 이동하셨나요? 아니면 기차나 자가용으로 이동하셨나요?”
“어제 도착하신 걸로 아는데, 잠은 잘 주무셨나요?”
별것 아닌 질문도 사회자는 매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한 사람은 남녀노소 직업 여하를 떠나 온 국민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는 최선우 총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북한의 김정운 위원장이었다.
함부로 질문을 던지거나 실없는 농담을 했다가 국민들의 눈 밖에 나면 그대로 은퇴해야 할 것이다.
사회자는 애드리브를 철저히 배제하고 준비된 질문만 하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분명 어려움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민족이고 한 나라입니다. 저는 북한 연방을 이끄는 수장으로 통일 대한민국의 초석을 다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김정운 위원장은 최선우 총리와 함께 합의문을 발표했다.
-북한 연방의 외교권은 내일 0시를 기준으로 대한민국이 갖는다.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내일 0시를 기준으로 대한민국(대한민국 북한 연방)으로 바뀐다.
-대한민국은…….
엄청난 충격이 휘몰아쳤다.
북한이 외교권을 포기한 것이다.
이는 국제적으로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자인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의 징병제는 내년 8월부터 모병제로 전환한다.
↳사병 월급은 150만 원에서 250만 원.
↳부사관 월급은 250만 원에서 400만 원.
↳장교 월급은 300만 원에서 500만 원.
↳영관 월급은 450만 원에서 800만 원.
↳장성 월급은 700만 원에서 1,000만 원.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 하는 의무가 바뀐 것이다.
“우와!!”
“나 이제 군대 안 가도 되는 거야?”
“짱이다.”
“어무이~~!!”
앞으로 군대를 가야 할 청년들이 이번 합의문에 쌍수를 들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군 병력의 공백에 대해 우려를 표했지만 중견 기업 수준의 월급과 연금을 공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취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사라졌다.
“일병 월급이 150만 원?”
“병장이 되면 250만 원이래. 어디 그뿐이냐? 오후 6시 이후…….”
“하사관 이상이면 완전 미국 애들처럼 출퇴근을 할 수 있대! 월급도 250만 원부터 시작하고!!”
“대~~박!!”
군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단연히 화두가 되었다.
“이 정도면 갈 만한데?”
“중견 기업 수준이잖아?”
“그러게.”
누구나 기피하는 군대가 아닌, 누구나 가고 싶어 하는 군대로의 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딱 한 가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건장한 남성이라면 어쨌든 간에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은 그대로네.”
“그러게.”
“야! 그래도 이 정도면 완전 양호하다. 한 달이잖아.”
“그래. 게다가 훈련소 퇴소하면 돈도 준대. 병무청 홈피에 떴어.”
“얼마?”
“300만 원.”
“헐~~!!”
“대~~박!!”
두 사람이 주도(사실 최선우 혼자 주도하고 있었지만)하고 있는 변화는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한국은 물론 북한의 주민들 역시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단계적 도입.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를 완전히 변화시키는 5단계 개혁.
-북한 군부 개혁.
위와 같은 사항이 가능하게 된 것은 모두 북한 주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이어졌기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한국의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선우 총리의 주도로 북한 사회에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인민들의 강력한 신망을 얻은 것이다. 예전 같으면 북한에 한국인이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지만 연방제 통일이라는 현실이 그런 영향력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장애물이 없던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인 중국이 사사건건 틈만 보이면 외교적 채널을 통해 뭔가 수작질을 부리려 한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재미있게 흘러갔다.
당사자인 한국보다 저 멀리 떨어져있는 미국이 중국의 행태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먼저 일본의 현 상황을 보자.
동해 해전 이후, 극심한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이 일본을 찾아왔다.
그로 인해 일본 기업에 대한 해외 자본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는데 특히 한국계 자본과 이 공격의 선두에 섰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기업이 문을 닫았고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인플레이션이라는 이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함께 극복해야 할 국난(國難)에 소위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일본을 버렸다.
주저 없이 해외로 이민을 떠난 것이다.
일본 정부는 늘 그러했듯이 언론을 통제하고 단속하며 희망 고문을 이어갔지만 자민당 소속 참의원과 재벌가 3세가 광란의 파티를 벌였다는 뉴스가 터져 나오면서 쌓이고 쌓였던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연일 반정부 시위를 일으켰다.
당황한 정부는 그제야 긴축재정을 실시했고 돈 먹는 하마였던 자위대 관련 예산과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었다. 그 결과 이제 동북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뿐이었다.
미국은 최선우 내각의 행보를 절대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다.
“뭐, 미국이?”
“네. 주중 미국 대사가 직접 찾아왔습니다.”
“이런 젠장!!”
왕삼 외교부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만 하려고 하면 미국에서 제동을 걸고 있다.
통일 대한민국에 대해 직접적인 명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미국까지 제동을 걸자 중국 역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쾅!
“우리는 위대한 중화민국이야. 한국은 예부터 우리에게 사대(事大)했던 동이(東夷)에 불과했다고!”
왕삼 부장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런데 감히 하찮은 동이(東夷) 따위가 코쟁이 녀석들과 함께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
중화(中華)사상이 뼛속까지 박혀있는 그는 현재의 상황에 엄청나게 분노하고 있었다.
며칠 후.
한눈에 봐도 꽤나 고급으로 보이는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복잡한 시내를 빠져나온 차는 곧이어 고속도로에 진입했는데, 그렇게 대략 두 시간을 달린 후, 어느 한적한 시골길에 들어섰다.
“어디야?”
-촬영장.
“어? 바쁜데 전화한 거야?”
-아니. 딱 맞춰서 전화했어. 지금부터 점심시간이야.
“그래?”
-응.
대화를 나누는 사이 승용차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당신은 어디야? 집무실?
“아니~~”
-그럼 어딘데?
“잠깐만, 내가 금방 다시 연락할게.”
-어, 알았어.
전화를 끊는 순간.
연예인 차라 불리는 쉐보레 익스플로러 밴 옆으로 승용차가 주차했다.
“어? 어?!!”
승용차를 알아본 설연의 눈이 화들짝하게 커졌다.
그리고 곧 최선우가 촬영장에 왔다는 소식이 바람보다 빠르게 퍼졌다.
“아이고, 총리님!!”
“총리님. 영광입니다.”
“반갑습니다. 최선우 총리님.”
감독 이하 주연 배우는 물론 촬영 스텝들까지 몰려들었다.
“불청객이 갑자기 찾아왔습니다.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방해라뇨!! 아이고~ 아닙니다.”
“그럼요. 오히려 찾아주셔서 영광이죠.”
다들 아주 절절매고 있다.
선우는 미리 준비한 간식과 음료수를 트렁크에서 꺼내 나눠주었다.
“와…….”
식사 시간 내내, 선우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점점 늘어간다.
‘내가 만났어야 했는데…….’
‘쳇! 내가 설연보다 못한 게 뭐야!’
‘저분이라면 세컨드라도 좋아. 한번 꼬셔볼까?’
가끔 의미를 짐작할 수 없는 탄성을 내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질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자들도 있었지만 선우는 모르는 척했다.
“저, 총리님.”
“네, 감독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사진 한 장만 함께 찍어도 될까요?”
“그러시죠. 다 같이 찍을까요?”
“아뇨. 저랑!!”
“아! 감독님이요?”
“네.”
선우는 흔쾌히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영화에 출연 중인 배우는 물론 촬영 스텝들까지 모조리 몰려왔다.
“저, 저도 한 장만…….”
“저희도 찍고 싶어요.”
“총리님, 최선우 총리님~~!!”
선우는 몰려드는 사람들을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세요. 같이 찍읍시다.”
약 10분 정도가 지나자 포토타임이 끝을 맺었다.
그리고 얼마 후.
오늘 약속된 설연의 촬영 장면도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설연 배우님.”
“감사합니다. 감독님. 제 분량은 다 찍은 거죠?”
“네~ 네. 그럼요. 다 찍었어요.”
“그럼 죄송하지만 먼저 들어가 봐도 될까요?”
“후후후~ 물론이죠.”
“헤헷! 그럼 내일 오후에 뵐게요. 감독님.”
“네~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리고 오늘 데이트 잘 하십시오.”
설연이 선우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이 감독을 향해 배려해 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자 마침 다음 장면 촬영을 위해 의자에 앉아있던 감독이 벌떡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부르릉!
설연을 태운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의 눈에는 감출 수 없는 부러움이 서려 있었다.
각설하고 촬영장을 벗어나 서울 시내에 도착한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마음 편한 데이트를 즐겼다. 물론 모자와 선글라스를 통해 얼굴을 가렸지만 말이다.
“우와~ 떡볶이다.”
“먹고 싶어?”
“응.”
어느덧 30대에 들어섰지만 설연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답다.
뭔가 조금 더 어른스러워진, 청초함에 더해진 고혹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자~ 먹어봐.”
“아앙~”
떡볶이 하나의 소소한 행복이지만 더없이 소중하다.
“어묵도 먹을까?”
“난 순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힐끔힐끔 시선을 보내고 있다. 만약 선글라스와 모자에 얼굴이 반 이상이 가려지지 않았다면 아마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요건 못난이 튀김인데, 아주 맛있어요. 서비스로 좀 줄 테니까 한번 먹어봐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호호호~~ 두 사람이 너무 잘 어울려서 주는 거예요.”
두 사람에게 튀김을 내놓은 노점상의 아주머니는 요즘 살맛이 난다고 했다.
거리에 활기찬 생명력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고 수다를 늘어놓았다.
“다~~ 최선우가 정치를 잘해서 그런 거야.”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우리 딸이 그러는데…….”
그러고는 입에 침이 튈 정도로 최선우를 칭찬했다.
“아주 그냥 세종대왕님이야.”
“하하하.”
선우는 계속되는 아주머니의 칭찬에 조금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설연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캭캭대며 웃었고 말이다.
얼마 후 떡볶이와 순대, 튀김을 다 먹은 뒤에 선우가 아주머니에게 돈과 함께 하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응?”
하얀 종이에 뭔가 긁적이는 폼을 본 아주머니가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이건 제 선물입니다. 앞으로도 노력하겠습니다.”
선우가 하얀 종이에 자신의 사인을 넣어 아주머니에게 전한 것이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총리 최선우.
사인지를 받고 당황한 아주머니를 향해 선우는 얼굴을 가렸던 선글라스와 모자를 살짝 벗어 본래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설연 역시 마찬가지다.
“저도 잘 먹었어요. 아주머니~~”
“오…… 옴마야!!”
아주머니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녀는 자신의 앞에 있던 남녀가 설마 최선우와 설연일 줄은 상상조차 못 했던 것이다.
“따님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저흰 이만~”
포장마차를 나오자마자 십여 명이 넘는 경호원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두 사람을 둥근 원 형태로 감싸며 경호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