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3화
183화 연방제 통일(1)
장대비처럼 흘러내리는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던 김정운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형기 인민무력부장이 수화기를 들었다.
“시작하라우!”
다음 순간.
그의 지휘하에 대대적인 숙청이 시작되었다.
먼저 평양에서 먼 거리에 위치해 있는 이들에겐 특수한 훈련을 받은 암살대원들이 급파되었고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주석궁에 초대된 강경파 군 장성과 고위직 인사들에게는 폭탄이 떨어졌다.
“여기 있습니다.”
조형기 인민무력부장이 리모컨처럼 생긴 작은 물체를 꺼내 김정운에게 건넸다.
-스윽!
-꾹!
무표정한 얼굴의 김정운이 단추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슬그머니 힘을 가하자 단추가 내려갔다.
다음 순간.
연회장에 설치된 고성능 폭약으로 인해 엄청난 폭발의 굉음과 함께 거대한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쿠……웅!!
“뭐야?!”
“주, 주석궁이다!”
“건물이 무너진다.”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쏟아져 나와 연회장을 향해 몰려갔다.
하지만 다음 순간 강력한 폭발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며 건물 자체가 깡그리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모두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위원장 동지는?”
“위원장님은 무사하시다.”
김정운이 안전하다는 누군가의 외침에 모두를 안심했다.
만약 김정운이 안에 있다고 하면 사지(死地)임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야만 했다.
본인이 아닌 본인의 가족을 위해서 말이다.
한편 후에 벌어질 일이지만 주석궁에 원인 모를 폭발 사건이 있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북한군 수뇌부 인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는 경우가 발생했다.
일부는 인민무력부가 보낸 암살대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고 다른 일부는 이번 폭발 사건의 주동자로 몰려 총살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 * *
청와대.
선우는 초조하게 집무실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때, 북한과의 핫라인이 요란하게 울렸다.
선우는 상기된 표정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백두산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백두산에 무궁화 꽃이 피었다는 말.
수화기를 통해 들려온 짧은 말에 선우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성공했군. 후후후~”
사실 이 모든 것이 선우가 계획한 일이었다.
김정운과 김여경을 꼭두각시로 만드는 데 성공한 후, 선우는 통일을 위한 방법으로 북한 내의 강경파들을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물론 그들을 설득하거나 회유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렇게 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다.
최고의 선택은 연방제 통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될 인물이라면 모조리 제거하는 것이다. 선우는 그 어떤 종류의 변수라도 발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시각.
조형기 인민무력부장 역시 김정운에게 거사의 성공을 알렸다.
“김정운 위원장 동지 성공했습니다.”
-짝, 짝, 짝!
흥분된 표정의 김정운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래. 내래 성공할 줄 알았어!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일러. 긴장을 늦춰선 안 돼.”
“알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지금 즉시 평양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호위총국을 동원해 명단에 적힌 놈들을 잡아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김정운은 만족했다는 미소를 보이며 신속한 후속 조치를 명했다.
“평양 방어사령부에 비상경계령을 내리고 보위사령부에 연락해! 각 부대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라고 전해!”
“알겠습니다. 위원장 동지.”
바야흐로 통일을 위한 거대한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 * *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에도 여러 정보들이 입수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평양에서 일어난 단순한 폭발 사고로 판단했으나 그것이 주석궁이었고 그곳에서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사망한 것으로 확인되자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것이다.
“뭐라고, 주석궁이 폭파?”
“서, 설마 쿠데타인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김정운 위원장은? 그는 어떻게 됐지?”
“…….”
“뭘 꾸물대고 있어. 모든 라인을 가동해서라도 지금 즉시 알아봐!”
“네, 국장님.”
백악관의 공식 명령이 하달되어 주한 미군을 비롯해 미국의 중앙정보국은 북한의 군사 활동을 더욱 정밀하게 감시하기 시작하였고 중국 역시 북한의 상황을 주시했다. 한편 대한민국 역시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경계 태세를 두 단계나 격상하였다. 하지만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대해 알고 있던 선우는 태연했다.
“……이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보면 김정운 위원장이 자신의 권력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피의 숙청을 벌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안기부의 판단입니다.”
“사고일 가능성은 없나요?”
“물론 사고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아무래도 다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됩니다.”
안기부장의 말에 선우의 눈빛이 묘하다.
왠지 살짝 미소를 보이는 것 같았다.
“미국과 중국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공식적인 반응은 없지만 비공식적으로 평양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고요.”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안기부장이 나가자 선우는 의자에 편히 앉아 다음 계획을 정리했다.
‘강경파도 쓸어버렸겠다, 이제 내가 직접 북한에 한 번 다녀와야겠군.’
며칠 후.
북조선 TV를 통해 북한의 김정운 위원장이 대한민국 최선우 총리에게 정상회담을 요청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안기부에서는 민감한 시기인 만큼 선우의 방북을 만류했지만 선우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준비는 끝났나?’
‘네. 말씀하신대로 준비했습니다.’
‘좋아.’
김정운과 김여경을 통해 이미 필요한 물건을 준비해 놨다.
현재 상황은 무척이나 좋았다.
“어서 오십시오. 최선우 총리님.”
“반갑습니다. 위원장님.”
“환영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자리를 옮깁시다.”
“네, 감사합니다.”
김정운 위원장은 보란 듯이 환대하며 선우와 함께 만찬장으로 이동했다.
“김정운 위원장 동지와 최선우 총리님입니다.”
-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짝!!
두 사람이 동시에 만찬장에 모습을 나타내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선우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자연스럽게 주위를 살펴보았고 옛날부터 북한을 이끌어온 두 개의 축, 바로 노동당과 북한군부의 고위 인사들을 향해 묘한 눈빛을 빛냈다.
현악 4중주의 감미로운 음악이 들려오는 가운데 김여경은 보란 듯이 선우에게 달라붙어 있다.
‘쟤는 뭐야?’
‘아니, 저렇게 붙어 있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흥! 지가 위원장 동지의 동생인 거지, 최선우 총리의 마누라라도 돼?’
‘정말 웃기지도 않네.’
몇몇 여인들은 욕을 퍼부었다.
물론 겉으로가 아닌 속으로 말이다.
하지만 김여경의 시선이 잠깐이라도 스쳐 지나갈 때면 깜짝 놀라 시선을 회피하거나 고개를 돌리곤 했다.
-우우우웅!!
만찬장의 중심에 도착한 선우가 김여경에게 눈치를 주자 다음 순간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는 출입문이 모두 잠겼고 CCTV의 녹화가 중단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바닥에서부터 은은한 진동이 느껴지는 가운데 환한 빛이 솟구쳤다.
바닥의 틈새에서 시작된 빛은 점점 더 강해지더니 만찬장 전체를 휘감기 시작했다. 환상 마법과 함께 정신을 제어하는 5서클 마법이 펼쳐진 것이다.
“아아아!!”
“하아~~아아아!!”
“흐아아아아아!”
만찬장에 모인 이들은 격렬하게 몸을 비틀며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그중에는 두 팔을 벌려 괴성을 지르는 이도 있었고 무릎을 꿇은 채 굵은 눈물을 토해내는 이들도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
김정운과 김여경 역시 선우에게 다가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오직 한 명.
바로 최선우만이 오연한 자세로 저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후우!”
선우의 입에서 뜨거운 입김이 흘러나왔고 그의 오른손엔 어느새 본모습을 드러낸 마법 완드가 빛을 발휘하고 있었다.
“오오, 주인님!”
“주인님!!”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선우의 눈이 또렷하게 빛나고 있다.
그것은 시리도록 무서운, 선명하면서도 사이한 샛노란 눈이다.
“으아아아, 주인님.”
“오오, 주인님! 저를 받으시옵소서.”
“주인님!!”
저들의 모습은 마치 사이비 종교에 빠진 중생들 같은 모습이었다.
각설하고 이날 만찬장에 모인 108명의 사람들은 선우의 충실한 노예가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앞으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후.
비밀리에 연방제 통일을 위한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1. 연방제 통일을 이룩한다.
2. 남한은 북한에 전폭적인 경제 지원을 한다.
3. 2년 내에 징병제를 모병제로 전환한다.
4.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전역에 대한 이동의 자유를 가지나 당분간 남한으로의 이동이나 이주를 금한다.(단 이산가족의 교류는 승인한다.)
5. 10년 이내, 완벽한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낸다.
6. 김정운 일가의 신분을…….
7. 대한민국은…….
8. 북한은…….
9. 동북아시아의…….
10. 특별법을 만들어…….
연방제를 위한 뼈대를 세우자 각 조항에 따른 구체적인 계획이 논의되기 시작했고 더불어 최선우의 움직임 역시 바빠졌다.
UN 총회에 참석한 최선우 총리는 케인 오바마 대통령과 시짐평 주석을 차례대로 만나 회담을 가졌는데, 대북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상호 간에 미묘한 입장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의 국가주석이자 공산당 총서기인 시짐평은 북한이 너무 급속도로 개방하고 있다는 우려를 표시했고 케인 오바마 대통령은 북한이 가지고 있는 핵을 포기한다면 남북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에 지지를 보낸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두 갈래로 갈라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한국과 북한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말에는 어느 누구도 반대를 표명하지 않았다.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본과의 전쟁에서 보여준 한국의 심상치 않은 군사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인 듯하다.
시짐평 국가주석의 표정이 신중하다.
그는 북한에 관련된 보고서를 읽고 있는 중이었다.
“권력의 이동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말없이 옆에 서있던 리커쉰 총리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북한 내부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강경파 인사들이 제거되었고 그 자리에 신진 인사들이 올라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럽 물을 먹은 김정운이 어디로 튈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연내에 한반도가 통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비라!! 그럼 북한이 중국의 뜻을 무시할 것이라 보십니까?”
“한반도는 점점 더 강력한 나라가 되고 있습니다. 전에는 일본이 우리의 가장 큰 위협 요소였지만 이제는 아닙니다. 한국입니다. 이번 동해 대전을 보십시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사라질 수 있겠군요.”
“아마도요.”
“통일을 한다면…… 연방제 통일이 유력하겠지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총리의 반문에 시짐평 주석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