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82화
182화 고(蠱)
독도 해전이 벌어지기 수개월 전.
선우는 강력한 원념(怨念)을 지닌 오래된 서적을 얻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일반적인 서적이라 보기에 큰 무리가 있었다.
바로 인간의 피부를 벗겨 만들었기 때문이다.
책 표지에는 아주 희미하게 고술(蠱術)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는데, 선우는 그 글자를 본 순간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고(蠱)란 무엇인가?
독거미, 말벌, 전갈 등 독충과 두꺼비, 독사 등 독이 있는 여러 가지 동물들을 한 항아리 안에 집어넣고 서로 잡아먹게 하여 마지막 한 마리가 남으면 그것을 고(蠱) 또는 고충(蠱蟲)이라고 한다.
사실 자연계에서 이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잡아먹을 일은 거의 없다.
서로가 포식 관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일설에 의하면 묘족의 ‘고사’가 주술을 걸기 때문에 독충들이 난폭해져 서로를 공격한다고 전해진다.
고술(蠱術)은 고대 문헌과 벽화에도 자주 나타난다.
서기 610년에 기록된 ‘제병원후론’은 고술(蠱術)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독충과 독사 같은 것들을 항아리에 담아 서로 잡아먹게 하여 하나만 남으면 고라고 한다. 고는 변혹하여 극독을 지니며 술이나 음식을 통해 몸에 들어가면 사람이 병이 들거나 화를 입게 된다.
-일부 고술은 단순한 독극물의 개념을 떠나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 대표로 정고, 백고, 한고 등이 있다.
정고는 타인이 자신에게 연모의 정을 느끼게 하는 고술이며 여자들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쓴다.
백고는 두려움을 심어주는 고술이다.
한고는 사용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불치병에 걸려 참혹한 모습으로 죽는다고 한다.
그리고 고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금잠고이다.
더욱이 일부 금잠고는 일정한 외형이 없다고 알려져 가장 무서운 고로 여겨졌다.
“모든 것은 겉만 보고서는 판단할 수없는 법이지.”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傳說)은 대부분 터무니없는 거짓말이거나 구전으로 내려오면서 신화(神話)적인 이야기로 변모된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정말 개중에는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현재 중국 소수민족으로 전락한 묘족의 전설, 그들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고(蠱)에 대해 집중했다.
판타지 세계에도 그와 비슷한 것이 있지 않았던가?
“……*&%*&……*%#*……##@##***……!”
선우는 자택 지하에 마련된 연공실에서 연신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룬어로 이루어진 주문은 그 소리가 너무나 괴이하여 마치 이곳이 지옥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는 고를 만들기 위한 300개의 항아리가 놓여 있었다.
-흐흐흐흐호호호호, 누가 나를 부르느냐?
“너는 누구지?”
-나는 묘족의 족장이다.
“금잠고를 만들 수 있나?”
-아니. 난…….
“쳇! 이 녀석이 아니군. 꺼져.”
-아, 이니. 이 녀석이…….
마나의 공급을 끊어버리자 묘족의 족장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하하하하! 누가 날 불렀느냐?
“넌 누구지?”
-내 이름은 ****…….
“너도 아니군.”
다음 순간.
소환된 영혼이 한 줄기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강한 원념 때문인지 서적에는 다양한 영혼들이 붙어 있었고 그 덕에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였다. 하지만 선우는 낙담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환 마법을 펼쳤다.
-음…… 으으으으……음!
그러던 때였다.
여성, 그것도 노파의 음성이 들려왔다.
-누가 나를 부르는 거지?
“당신은 누군가?”
-내 이름은 모모.
“모모?”
뭔가 특이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리고 이때, 노파의 음성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날 초귀파라 불렀지.
“초귀파?”
-그래.
노파의 대답에 선우의 눈빛이 빛났다.
“당신이 바로 묘족의 주술사였군.”
-…….
“고를 아는가?”
-당연히 알지. 고를 만드는 것, 그게 내 일이었는걸.
마침내 초귀파를 찾았다.
선우는 그녀에게 고를 만들고 제어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고 했다.
-고술은 묘족의 것, 알려줄 수 없다.
초귀파는 선우의 요청을 거절했지만 결국 그의 설득에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선우의 눈을 통해 발전된 미래의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당신이 살던 시대에는 고술이 무척이나 강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오. 결국 고충 역시 기생충의 일종. 발전된 의학 기술을 통해 제거가 가능하니 말이오.”
-1,500년. 1,500년이 지났다니!!
초귀파의 음성은 아까와는 분명히 다른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우리 묘족은 어떻게 됐지?
“궁금하시오?”
-…….
선우는 인터넷을 통해 묘족의 현 상황을 보여줬다.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고 느끼는 것이 빠르니까 말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초귀파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부탁?”
-훗날 기회가 된다면 우리 묘족을 도와줄 수 있겠나?
“약속하겠소. 묘족은 당신으로 인해 내 도움을 받게 될 거요.”
-고맙군. 그렇다면 나 역시 성심을 다해 가르쳐 주지.
선우는 초귀파를 통해 묘족의 고술을 전수받았고 그 결과 마침내 흑마법과 결합된 특별한 고를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흑잠고, 이제부터 널 흑잠고라 부르마.”
선우는 그의 손에 잡힌 항아리를 바라보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김정후 서거 후.
김정운이 차지한 불안한 권력을 놓고 곳곳에서 치열한 암투가 벌어졌지만 북한의 내부 권력 다툼은 결국 김정운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할아버지를 비롯해 아버지가 쌓아온 탄탄한 권력 기반에 선우의 물질적 지원이 더해지자 김정운을 주축으로 권력의 개편을 이루어낸 것이다.
그 와중에 고성택과 같은 고위 장성과 친인척이 숙청당했지만 말이다.
토사구팽! 역사는 늘 반복되는 것 같다.
한편 선우의 지원에 의해 신의주를 비롯한 북한의 몇몇 도시에 중국식 시장경제 경제특구가 만들어졌다. 상대적으로 빈곤한 도시에 대규모 호텔과 위락 시설 그리고 공단이 들어온다고 하자 인민들은 김정운을 향해 환호를 보내는 동시에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했다.
“너무 빠른 것 아닙니까?”
“……뭐든지 급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입니다.”
“맞습니다. 완급 조절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급속한 북한의 경제개발은 일부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미 절대적인 권력자가 된 김정운을 향해 대놓고 반대를 표명하지 못했다.
대신 김여경을 통해 그들의 우려가 조심스럽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창밖으로 어둠이 짙어가는 시간.
김정운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평양 시내를 바라보고 있다.
“오라버니, 한국이 일본에 완벽한 승리를 거뒀어요.”
“…….”
“최신형 전투기에 항공모함까지 보유했더군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우리 인민군은 강해.”
“저도 알지요. 다만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요.”
“…….”
김여경의 말에 김정운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의 속내는 무척이나 복잡했다. 최선우 내각이 출범한 후,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이번 일본과의 전쟁을 보며 그 역시 한국의 강력한 군사력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김정운의 마음을 눈치라도 챈 걸까?
김여경이 그를 달래듯 말했다.
“하긴 우린 섬나라 왜구와는 다르죠. 핵이 있으니까요.”
“핵!! 그렇지. 우린 핵을 가졌지.”
“네. 오라버니. 그러니 큰 걱정 마세요. 우리와 전쟁을 하면 그 끝은 공멸(共滅)이에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세기의 천재로 알려진 최선우 총리라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진 않을 거예요.”
“그래. 그렇지. 그렇고말고!”
김여경의 조언에 김정운은 속으로 안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경이, 네 말이 맞다. 네 말이 맞아. 작금의 남조선은 단군 이래 가장 호황을 누리고 있어. 우리는 그런 남조선의 상황을 이용하는 거야. 남조선의 지원을 받으면서 중국식 경제개발을 이뤄내면 되는 거지.”
“체제를 유지하면서요?”
“그래. 나와 너의 아이들이 그리고 그 손주들이 대대손손(代代孫孫)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누릴 수 있도록 우리 김씨 왕조를 천년왕국으로 만드는 거야.”
“호호호~ 당연하죠. 오라버니! 우리 김씨 왕조는 영원할 거예요.”
“하하하하~~”
그로부터 며칠 후.
판문점에서 김정운과 최선우가 만났다.
이것은 비공개로 이루어진 회담이었는데, 그 자리에 북한의 김여경 역시 동석했다.
세 시간 만에 회담을 끝내고 기자회견장에 나온 그들은 공식 담화문을 발표했는데 북한의 낙후 지역 10곳에 추가로 공단을 조성하고 북한의 여러 관광지에 호텔과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대규모 투자 계획이었다.
성공적인 회담 직후 그들은 선물을 교환했는데, 선우는 아주 특별하게 제작된 그의 소설책을 선물해 주었다.
“호오, 이게 뭡니까?”
“제가 쓴 소설입니다. 100권 한정판으로 특별히 제작했지요.”
화려한 장식이 눈에 띈다.
“이거 진짜 보석입니까?”
“네, 순금을 비롯해 다이아,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역시 진짜입니다.”
100권이라는 특별 한정판에 진귀한 보석이 세공되어 있다.
모르긴 몰라도 강남의 아파트 한 채 값이 나갈 듯했다.
“……가격이 상당할 것 같군요.”
“북한과의 우정에 비하면 부족합니다. 그래서 한 권 더 준비했습니다.”
선우의 시선이 김여경에게 향한다.
“설마 제게 주시는 겁니까?”
“네.”
“엄마야~~!!”
자고로 보석 싫어하는 여자는 없다.
김여경 역시 기뻐해하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이거 회담만 하고 바로 올라가려 했는데, 안 되겠네요. 밥이라도 먹읍시다.”
“좋지요. 안 그래도 출출했습니다.”
“그럼 날래 가시지요.”
“네.”
이들은 알 수 없었다.
선우가 그들에게 건넨 책이 단순한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책에 고를 풀어놨으니 이제 곧 결과를 알 수 있겠지.’
청와대로 돌아온 선우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북한과의 통일을 위해 여러 방법을 생각했지만 가장 빠르고 손쉬운 것은 지도자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벤 총리에게 행한 것과 같은 정신 지배였다.
하지만 김정운에게 이 같은 마법을 쓰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
북한과 일본의 사정은 달랐기 때문이다.
북한이 가지고 있는 폐쇄성과 독재자의 아들로 태어난 태생적인 의심은 그와의 독대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선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고(蠱)였다.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금잠고!
선우는 초귀파에게 얻은 금잠고를 그의 정신 마법을 통해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냈다.
김정운과 김여경이 그가 선물한 책에 손에 대고 책장을 넘긴다면 금잠고가 그들의 체내에 들어가 자리를 잡을 것이다.
그러면 게임은 끝이 날 것이다.
-우우우웅!!
-번쩍!!
다음 순간.
선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성공이다. 큭, 큭, 큭.’
신호가 왔다.
김정운과 김여경, 두 사람의 정신이 선우와 연결되었다.
“하하하! 하하하하하~~!!”
흑잠고!
묘족의 주술과 흑마법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동시에 만든 자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생물이 드디어 기지개를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