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71화
171화 폭동
1980~90년 일본과 한국의 경제 규모는 약 15배 이상 차이가 났다.
하지만 작년을 기준으로 보면 두 나라의 경제 규모는 약 3배 차이까지 좁혀졌다.
일본이 한국에 비해 여전히 높았지만 선우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해 상황이 점점 더 재밌어졌다.
-[러시아 한국에 반도체 부품 수출 의향 밝혀.]
-[국내 중소기업 국산 불화수소 개발 성공.]
-[성삼 전자, 자체 기술로 반도체 부품 소재 개발에 착수.]
-[<펜 의학 연구소> 비타민P 일본 수출 전면 중지 선언.]
이 순간 일본의 의도가 크게 어긋나기 시작했다.
아벤 총리는 단단히 화가 난 듯 강하게 책상을 힘껏 내리쳤다.
-쾅!
한국에 대한 규제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 이래저래 심란하던 차에 <펜 의학 연구소>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비타민P에 대한 수출을 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이거랑 그거랑 같아? 개X끼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자!”
비타민P에 대한 수출 금지 문제는 양측의 첨예한 대립으로 이어졌다.
일본은 자신들이 한국의 수출을 규제한 것은 북한과 관련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다시 한 번 강조하는 동시에 한국이 일본 국민들의 건강을 약점으로 잡는 비열한 방식을 취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주장에 대해 한국 측의 답변은 간단했다.
내로남불, 적반하장!
그런데 이때쯤 한 가지 흥미로운 사태가 벌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토착 왜구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이들은 시종일관 정부 탓, 총리 탓만 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대한민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백색 국가 제외는 당연한 수순이다.(권*동)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굳이 말할 생각이 없다.(장*원)
-일본은 이번 경제 전쟁에서 엄청난 준비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에게 반일 감정만 호소하고 선동하는 것이 대체 무슨 해결인가?(조*기)
-비타민P에 대한 수출 금지는 매우 편협한 조치다.(민*욱)
-최선우 총리께 말씀드립니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 지금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야 할 시간입니다. 더 이상 대일 강경 발언을 자제하고 진지한 제안으로 외교적 해결 방안을 찾으십시오.(나*원)
-한일 청구권에 개인 청구권도 포함된 겁니다.(송*명)
“대한민국이 미쳐 돌아가는구나!!”
저들의 발언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면 저들이 과연 대한민국 사람인가? 아니면 일본 사람인가?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입장을 부정하고 일본 정부와 정치인 그리고 일본 언론이 떠드는 말을 마치 앵무새처럼 옮겨서 얘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선우는 한편으로 아벤 총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누가 토착 왜구인지, 또 누가 일심회에 속해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해줬기 때문이다.
선우는 피식 웃었다.
“너희들에게 대해 아주 자세히 알아보도록 할게. 앞으로 시간은 많으니까 말이야.”
명단에 오른 이들은 기회가 될 때마다 선우와 만나게 될 것이다.
그 후 죄질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심판의 시간이 결정될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
일본의 깨어있는 지식인 77명이 일본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일본은 자유무역 체제를 지켜라.”
“한국은 일본의 적이 아니다!”
“수출 규제를 철폐하라.”
“비타민P에 대한 수입을 재개하라.”
이들은 성난 군중들과 함께 일본 국회 의사당 앞까지 몰려들었다.
“한국과의 무역 분쟁을 멈추십시오.”
“우리는 비타민P가 필요합니다.”
“자유무역 체제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벤 총리입니다.”
이들은 자극적인 문구가 적혀있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는데, 누가 시켜서 온 것이 아닌, 모두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
“저기에 있다.”
“우리들도 합류하자.”
“어서 와!!”
TV를 통해 시위 현장을 목격한 한 떼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새롭게 합류한 사람들은 대부분 환자, 병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이었다.
“이번 조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입니다. 가뜩이나 수입되는 양이 적어서 웃돈을 줘도 구하기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일본 시장에서 자취를 아예 감춰버렸어요. 일본 땅에서는 비타민P를 구할 수 없게 됐단 말입니다.”
“우리는 비타민P를 원한다. 비타민P는 우리 가족의 생명이다.”
사람들은 일을 이렇게까지 키운 아벤 정권을 향해 분노를 토해냈다.
“아벤 정권은 물러나라.”
“옳소. 옳소!”
“물러나라. 물러나라.”
시위대 중의 한 명이 확성기를 입에 대고 아베 정권 타도를 외치자 성난 군중들 역시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팍, 팍, 팍!
그 순간.
마치 맛난 먹이를 발견했다는 듯이 기자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트린다.
곧이어 성난 군중들의 시위는 TV를 타고 일본 전역에 생중계되었다.
* * *
“제기랄!”
“……비타민P를 수출하지 않다니, 이건 너무한 것 아니야? 가뜩이나 양도 적은데 말이야.”
“뭐가 너무해?”
“반도체 부품이랑 비타민P는 그 성격이 완전히 다르잖아.”
“뭐가 다른데?”
“어?”
“뭐가 그렇게 다르냐고! 이번 사태는 우리가 먼저 시작한 거야. 너도 알잖아?”
“그, 그렇긴 하지만…….”
“아벤 총리가 멍청했어. 도끼로 지 발등을 찍는 꼴이지.”
“젠장!”
TV를 통해 성난 군중들의 시위를 본 일본의 정치인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신음을 내뱉었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인 관광객의 감소로 수입이 급감한 지방 소도시의 불만 역시 폭주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일본 도쿄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반정부 성격의 집회라 그런지 사람들은 매우 자극적인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해산하십시오.”
“못 해.”
“이건 불법 집회입니다. 어서 해산하십시오.”
“닥쳐! 잡아가든 여기서 죽이든 맘대로 해. 아벤 타도, 아벤 타도!!”
아벤 정권은 경찰을 투입해 사태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뜻하지 않은 시위대의 등장으로 인해 일본 정계가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시간.
선우의 자택에 두 아버지가 모였다.
“아들! 아버지는 오늘처럼 기분이 좋은 적은 없었어.”
“사위! 나 역시 마찬가질세.”
“일단 술부터 한잔 받으시고 말씀하시죠.”
“어! 그래~”
세 남자는 건배를 하며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기원했다.
“선우야, 어디까지 갈 생각이니?”
장인어른의 질문에 선우는 잠시 당황했지만 곧 입술을 열었다.
“우선은 우리 정부도 일본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할 생각입니다. 또한 일본 조치의 부당성에 대해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고발할 생각입니다. 이미 하고 있지만요.”
선우는 잠시 한 박자 쉰 다음 말을 이어갔다.
“원칙 없는 적당한 타협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미 했어야 했지만 과거 정부가 하지 못한 친일 청산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
“……!!”
선우의 말을 듣는 순간 두 사람은 알지 못할 짜릿한 흥분을 느꼈다.
“캬아! 역시 우리 사위야.”
“형님. 제 아들입니다.”
“……!”
규용의 말에 순간 뭔지는 몰라도 기분이 상하려고 했다.
“인마, 사위도 자식이야. 선우야. 내 말이 맞지?”
“네, 그럼요. 사위도 자식이 맞습니다. 장인어른.”
“거봐~~”
“네~ 네~ 형님 말이 맞습니다.”
취기가 오른 것인지 두 아버지는 상기된 표정으로 선우를 응시했다.
“뉘 집 아들인지, 참 멋있다.”
“뉘 집 사위인지, 참 대단하기도 하죠. 형님.”
“하하하! 그래. 그래.”
“일본이 미워도 일본인을 미워하면 안 돼. 모두가 나쁜 건 아니야. 나쁜 건 헛된 욕망(欲望)과 어리석은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위정자들이지.”
순간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래도 지금 잘하고 있어. 아주 잘하고 있어.”
“…….”
“아버지들도 노력할 테니 우리 사위, 우리 아들. 어디 한번 멋진 세상을 만들어 봐. 자, 건배!”
“건배~~”
“건배!”
며칠 후.
인천공항으로 푸른 눈의 외국인들이 대거 입국했다.
그들은 각자 자신의 전용기를 통해 한국에 들어왔는데, 이들의 정체는 바로 세계 금융계를 이끌고 있는 거두(巨頭)들이었다.
“반갑습니다. 왓슨 대표님.”
“오랜만입니다. 로빈 대표님.”
“제가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정확하게 맞춰 오셨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도착했나요?”
“네, 조금 전에요.”
“오! 그럼 서둘러야겠군요. 갑시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수십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의 뒤를 따랐다.
“아벤 총리가 멍청한 짓을 했어요.”
“지금이 80년대도 아니고, 한국을 백색 국가에서 제외하다니. 참 나!!”
“다시 한 번 따끔한 맛을 보고 싶다는 거겠죠.”
“지난번 환율 전쟁을 벌써 잊은 모양입니다.”
로빈 대표는 지난번 환율 전쟁의 아찔한 승부를 떠올렸다.
‘후후후! 이태리 작가가 이번엔 어떤 승부수를 준비했을지, 무척 궁금하군.’
그로부터 두 시간 후.
선우는 세계 금융계의 큰손들과 만남을 가졌다.
“공매도요?”
“네, 이번 투자 공격의 핵심은 바로 공매도입니다.”
공매도는 현재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일단 있다고 보고 매도를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2,000원에 100엔을 사고 나중에 엔화가 1,000원으로 떨어지면 그 차익에 해당하는 천원을 이득으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당하는 쪽에서 엄청난 손해를 보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죽을힘을 쓴다.
그렇기에 공매도는 매우 위험한 투자 방법이었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상대는 일본입니다.”
“네. 그 일본의 상대는 바로 과 여러분입니다.”
“……!!”
“……!!”
선우의 구체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일본은 IMF 이후, 몇몇 나라들과 비밀리에 협정을 맺었습니다. 쉽게 말해 엔화 환율의 변동 폭을 고정하겠다는 거죠.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환율이라는 건 경제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네, 대신 환율이 변할 수 있는 폭을 지정해 준 겁니다.”
-웅성웅성!!
“우리는 여기서 딱 한 가지 조항만 기억하면 됩니다. 플러스마이너스 6%의 한도 내에서만 환율을 조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약 이 이상으로 환율이 올라가거나 내려간다면 그 즉시 일본 중앙은행이 개입해 금리를 낮춘다거나 돈을 찍어내야 합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거군요.”
“네. 그리고 이번에도 제가 선두에 서겠습니다.”
-씨익!
-씨익! 씨익! 씨익!!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이 통했기에 더 이상의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음날.
일본 금융 시장이 요동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공매야.”
“환율 시장이 교란되고 있어.”
“토미코! 지금 환시세가 얼마나 되지?”
“달러?”
“달러와 유로 모두…….”
갑자기 요시다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수십, 수백, 아니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공격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우리 외화 보유고가 얼마였지? 괜찮아. 침착해!’
IMF를 졸업하면서 보유하고 있는 외화만 해도 무려 수백억 달러다.
유로와 금괴 역시 상당한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요시다의 얼굴에 여유가 되돌아왔다.
“다들 긴장하지 말고 매뉴얼대로 해.”
“화면에 집중해.”
“서둘러!”
일본 외환 시장은 의 거친 공세에 거세게 흔들렸으나 분명 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선우 역시 이와 같은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늑대들을 불러 모은 것이었다.
“휴우!”
요시다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요시다는 오늘 하루 그가 얼마나 많은 한숨을 쉬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 찾아왔다.
“뭐, 뭐야?!”
“대량의 공매도입니다.”
“대체 어디서 공격하는 거야?”
“한국, 미국, 영국, 독일…… 이, 이런 젠장!!”
선우의 명령 아래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기업들이 번갈아가며 튕김과 당김의 신세계를 일본 외환 시장에 선보였다.
“칙쇼!!”
또다시 시작된 환율 전쟁의 악몽이 언론을 타고 일본 국민들에게 다가가 커다란 충격을 선사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