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9화
169화 소설 다크 위자드(2)
선우와 설연이 출판사로 돌아오자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그들에게 향했다.
“이, 이태리 작가님. 다음 편은 언제 나오는 겁니까?”
“올해 안에 볼 수 있나요?”
그가 얼굴을 보이자마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재밌었나요?”
“재밌었냐고요?”
선우의 질문에 조나단 이사가 크게 한 번 숨을 집어삼켰다.
“최고! 정말로 최고였습니다.”
“선우. 넌 정말…… 대단해.”
“저도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였어요!”
뒤를 이어 수앤과 메리 대표 역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입을 열었다.
“아이고, 여러분들께서 절 너무 띄워 주네요.”
“아니에요. 띄워 주긴요. 정말 최고였습니다.”
“그래요. 메리 대표님의 말이 맞아요. 전 다크 위자드를 읽느라 화장실을 못 가서 오줌 쌀 뻔했다고요.”
“……!!”
오줌을 쌀 뻔했다는 조나단 이사의 말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자! 자! 일단 계약부터 하시죠.”
메리 대표는 내심 환호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일단 꾹 참았다. 대신 부하 직원을 향해 계약서를 가지고 오라고 눈치를 줬다.
“계약금 천만 파운드에 권당 20%의 인세를 드리겠습니다.”
메리 대표가 선우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했다.
천만 파운드에 권당 20%의 인세면 일찍이 없었던, 가히 파격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그 정도면…….”
저들은 선우가 좀 더 과한 요구를 한다 해도 들어줄 것이다.
하지만 선우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
이미 최고 수준의 계약이 아닌가?
더욱이 돈은 그에게 있어서 이미 썩어날 정도로 많았다.
“……나쁘지 않네요.”
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자 메리 대표를 비롯한 출판사 관계자들이 그제야 꽉 움켜쥐고 있던 손을 풀었다.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린 것이다.
“향후 영화로 제작될 때…….”
“캐릭터 사업 역시…….”
“2차, 3차 저작권에 관한 것은…….”
“네, 그렇게 조건을 넣겠습니다.”
1차적인 판권에 관한 이야기는 물론 2차, 3차 판권과 저작권에 대한 구체적인 계약 조건이 오고가는 가운데 출간 일정과 초판본 부수에 대한 이야기도 흘러 나왔다.
“깔끔하게 초판으로 2,000만 부를 찍겠습니다.”
“2,000만 부요? 그건 너무 많은 것 아닙니까?”
“<태리 포터> 시리즈를 뛰어넘을 작품입니다.”
“하하하, 설마요.”
“아뇨, 전 다크 위자드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메리 대표의 신뢰에 찬 음성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그리고 전 세계에 동시 출간하겠습니다.”
“전 세계라면?”
“미주와 유럽, 아시아를 포함해 30개국입니다. 향후 추이를 봐서 점진적으로 부수와 나라를 늘려가도록 하겠습니다.”
성격 한번 확실하다.
하긴 여자의 몸으로 세계적인 출판 기업을 일궈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선우가 보기에 그녀는 일단 계획이 세워지면 불도저처럼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성격이었다.
“……좋습니다.”
선우는 저들과 계약상의 몇 가지 자질구레한 얘기를 조금 더 나눈 후, 최종적으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출판사 사람들은 성공적으로 계약이 끝나자 무척이나 기뻐했다.
“이제 작별을 고해야겠네요.”
“네? 작별이요?”
“계약이 끝났잖아요. 그러니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죠. 아시잖아요. 제가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아!!”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태리 작가의 현재 위치는 대한민국 내각의 수장이었다.
“휴가가 끝났나요?”
“이제 이틀 남았습니다. 이동 시간을 빼고 나면 고작 하루죠.”
“……!!”
실질적으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무척이나 아쉬웠지만 막을 명분이 없었다.
“축하 파티도 못 하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축배를 들어야 하는데…….”
“다음에는 언제 뵐 수 있나요?”
선우는 아쉬워하는 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했다.
기념 사진은 물론이고 원하는 이들에게는 직접 사인까지 해주었다.
“잘 가세요!”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작가님! 다크 위자드 2부가 완성되면 연락 주십시오. 저희가 한국으로 날아가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연락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선우가 설연과 함께 사무실에서 나왔고 수앤이 출판사 로비까지 두 사람을 배웅했다.
“선우~~”
“수앤.”
“다음 권이 나오면 보내줄 거지?”
“후후후. 당연하지. 대신 조언을 부탁할게. 해줄 수 있지?”
“당근이지~”
공항으로 향하는 길.
선우는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이번 휴가를 통해 재충전의 시간을 충분히 만끽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가라는 그의 본분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고 이렇게 신작을 완성시키기까지 했다.
선우의 시선이 설연에게 향했다.
그녀의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신작이 늦어졌을 것이다.
“고마워.”
그러자 설연이 사랑이 가득한 시선으로 선우를 바라본다.
“뭐가?”
“그냥, 전부 다.”
“핏~ 그럼 나두 고마워.”
“뭐가?”
“그냥 나도 전부 다~~”
“……풋!”
“헤헤헷!”
선우와 설연의 눈에서 꿀이 떨어지고 있는 시각, 브론즈베리 출판사는 행복한 고민으로 난리다.
“오타 수정은 어떻게 됐죠?”
“원고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이태리 작가는 오타가 거의 없지 않습니까? 하루, 늦어도 이틀 안에는 교정 작업이 끝날 겁니다.”
“인쇄소는요? 섭외가 됐나요? 2,000만 부를 찍으려면 서둘러야 합니다.”
“네, 런던을 포함해 이미 40개 인쇄소와 얘기를 끝냈습니다.”
“40개나요? 그건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베이커 이사님.”
베이커 이사의 반문에 이번엔 메리 대표가 희미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이사님, 태리 포터 시리즈가 몇 권이나 팔렸는지 아세요?”
“5억 부, 아니. 6억 부인가요?”
“아뇨. 올해 2분기 기준으로 전 세계에 지금까지 8억 부가 팔렸습니다. 우리가 떠들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팔리고 있고요. 제 생각에 태리 포터는 10억 부를 넘는 최초의 소설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태리 포터의 후속작입니다. 더욱이 작품성과 상업성 역시 전작과 비교해 대등하거나 오히려 뛰어나고요. 전 사실 초판 2,000만 부도 적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그럼?”
“네, 초판을 모두 찍어내는 즉시 증쇄에 들어갈 생각입니다.”
“아!!”
그녀의 말에 좌중에 있던 이사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40개의 인쇄소도 부족할지 모르겠군요.”
“그럴지도 모르죠.”
조나단 이사가 물었다.
“메리 대표님. 인쇄소에 얘기해서 당분간 24시간 풀가동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지만 영국에서 그게 가능할까요?”
“제가 누굽니까? 조나단 칼머입니다. 조나단 칼머! 인쇄소 사장들은 이 칼머가 꽉 잡고 있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호호호~ 감사합니다. 조나단 이사님. 그럼 이사님만 믿겠습니다. 그리고 레나 이사님은 교정 작업이 끝난 직후, 기자들을 모아주세요. 영국을 포함해 미국과 유럽 전역에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광고를 넣는 겁니다. 호호호~~”
“알겠습니다. 메리 대표님.”
며칠 후.
브론즈베리 출판사에서 대대적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저 지나가는 말인 줄로만 알았는데 실제로 태리 포터의 후속작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당연히 영국 전역에서 기자들이 몰려왔다.
[기묘한 동물 백과사전(과거)-태리 포터(현재)-다크 위자드(미래)]
“오…… 마이 갓!!”
“……대박!”
“왓 더……!!”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입구에서부터 펼쳐진 한 편의 대서사시 때문이다.
“사실이었어.”
“마침내 나온 건가?”
“이야호~~!!”
“대박이야.”
기자들의 시선이 출판사에서 준비한 자료와 영상에 향했다.
“이건 말 그대로 정말 한편의 서사시로군.”
“맞아. 마치 일리아드 오디세이아처럼 아주 재밌는 이야기를 읽는 것 같아.”
“그 말에 동감이야.”
“……!!”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소설이야.”
기자들은 다크 위자드(전 3권)의 1권을 우선적으로 읽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책을 읽은 후 반드시 출판사에 반납해야 했지만 말이다.
“저, 저, 기자들 얼굴 좀 보세요. 완전 대박인데요?”
“그렇죠?”
“봐요. 다들 다크 위자드에 빠져들었어요.”
“호호호~”
그리고 이와 같은 순간, 기자들의 반응을 한쪽에서 유심히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다.
며칠 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일순간 소설 <다크 위자드>에 대한 뉴스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태리 포터의 귀환인가?]
-[이태리 작가의 신작이 온다.]
-[다크 위자드, 마침내 그 베일을 벗다.]
-[한순간도 시선을 놓을 수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명 인사들의 호평 역시 연이어 흘러나왔다.
-믿을 수 없을 만큼, 전 세대를 아우르는 문장의 향연이다.(소설가 제니퍼 셀던)
-소설 다크 위자드는 한 소년이 고난과 시련 속에서 한 사람의 영웅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어메이징 그 자체다.(비평가 톰 모하디)
-다크는 흑마법사지만 선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선함은 반드시 웃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지 않는가? 정의는 승리한다고 말이다.(소설가 한울림)
-주인공 토니는 천성적으로 착한 사람이다. 그러나 흑마법사가 되었다는 이유로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과 역경을 겪게 되는데……. 흥미진진하다.(NYT)
-선과 악이라는 고정관념과 틀을 깬 판타지 소설. <태리 포터> 시리즈를 보신 독자라면 꼭 봐야 할 소설입니다.(소설가 장 드보아 밀레)
-저…… 다크 위자드 2부는 언제 나오나요?(소설가 마크 브라이튼)
이와 같은 엄청난 호평을 반영하듯 공중파에서도 이태리 작가의 신작 <다크 위자드>에 대해 긴 논평을 남겼다.
이것은 <다크 위자드>가 <태리 포터> 시리즈의 후속 작품이라는 것과 이태리 작가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명성이 시너지 효과를 이루어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출시 보름 전.
마치 폭풍우가 밀려오는 느낌이다.
출시 열흘 전.
폭풍이 현실로 닥쳐오고 있다.
출시 사흘 전.
사람들이 대형 서점 앞에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뤘고 일부는 텐트와 침낭을 가져와 노숙을 시작했다. 각설하고 출간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전 세계 독자들은 부푼 기대에 빠져 잠을 쉽게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다크 위자드의 출간일.
오전 9시가 되자 사람들은 하늘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오픈을 외쳐 댔다.
“오픈, 오픈! 오픈!!”
“오픈~~ 오픈! 오픈!!”
-위이잉!!
기계음과 함께 서점 문이 열리자 사람들의 행렬이 시작되었다.
고요했던 서점 내부가 순식간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시장판이 되었다.
지금까지 이런 서점은 없었다.
이곳은 서점인가? 시장인가?
그리고 이 정도 열풍이라면 이 달이 가기 전에 2,000만 부가 모두 소진될 것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