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66화
166화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그리고 검찰 개혁
청와대 집무실에 부쩍 늘어난 인원이 자리를 잡았다.
“나눠 주세요.”
“네, 총리님.”
내각에 들어온 사람들이 다 모이자 비서관이 준비한 서류를 그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설립?!”
“그렇습니다.”
선우가 서류를 들어 보이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고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5급 이상의 고위 공직자와 교육자들에게는 좀 더 엄중한 잣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 설립에 관한 법안을 준비했습니다.”
“……!”
“……!”
“저는 오직 우리 국민들만 보고 가겠습니다.”
오직 국민들만 보고 가겠다는 선우의 말에 좌중은 순간 침묵했다.
이제 고작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선우의 모습에 그들은 왠지 점점 압도되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의 포부가 당차다고 생각하면서도 실현이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여태까지의 일들을 보면 이것은 허언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지만 그가 공언한 대로 분명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치 초년생의 마음,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고 외치던 젊은 날의 기억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심장을 다시 한 번 뜨겁게 울리기 시작했다.
“옳은 말씀입니다. 공수처가 필요합니다.”
“하하하! 우리의 발목을 잡는 법안이네요. 솔직히 제 머리는 받아들이지 말자고 하지만 제 가슴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 역시 총리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개혁의 시간이 도래했다
특히 공수처가 설립되었다는 말에 검찰과 경찰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들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반 조사관.”
“네, 팀장님.”
“준비는 됐나?”
“네, 준비 완료했습니다.”
“좋아. 그럼 가자고.”
짧은 대화 후.
조정석 팀장은 팀원들을 이끌고 출동했다.
미리 확보된 정보를 바탕으로 일명 싹쓸이 작전이 시작되었다.
-[서울 지방 경찰청]
“나 최호석이야.”
-호석이 형님~~
“이봐, 잔말 말고 빨리 피해. 아니! 해외로 가서 한동안 잠수나 타.”
-자, 잠수요?
“오늘 아침 검거 작전이 시작…….”
이때, 그의 사무실로 몇 명의 사내가 난입했다.
“최호석 경무관님. 그 전화 내려놓으시죠.”
“뭐야! 너 누구야?!!”
그의 입에서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수처에서 나왔습니다. 최호석 경무관님. 저희와 함께 가시죠.”
“공수처?”
“네.”
“공수처건 뭐건 지금 이게 무슨 경우야. 영장은 있어?”
최호석 경무관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동공이 흔들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최호석 경무관! 당신은 부하의 승진을 미끼로 돈을 받았고 조직 폭력배, 사채업자에게 정기적인 상납을 받았어. 총리실 산하, 공수처장의 승인 아래, 지금 즉시 당신을 연행하겠습니다.”
“무, 뭐 하는 거야. 저리 비켜!!”
“어서 잡아.”
“최 과장, 윤 경감. 이 새끼들 잡아.”
-우당탕탕!
최호석 경무관이 강하게 저항하며 수하 경찰관을 부르자 일순간 긴박한 대치 상항이 연출되었다. 그의 집무실은 일순간 아수라장이 되었고 경찰청 내부 역시 찬물을 뒤집어 쓴 분위기다.
“당신들이 뭔데 날 잡아가? 대한민국 경무관을 감히 누가 잡아가?”
“우린 총리 각하의 지시로 고위 공무원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개혁을 맡은 조사관입니다. 지금 당장 비키지 않으면 당신들 모두 공무집행방해죄로 해임 또는 파면 조치를 당하게 될 겁니다.”
“……해, 해임?!”
“젠장, 파면이라고……?!!”
대한민국 총리의 지시에 의해 해임 또는 파면 조치를 당한다고 소리치자 경찰관들은 슬그머니 한쪽으로 물러났다.
“연행해.”
“네, 팀장님.”
“아, 안 돼. 이럴 순 없어.”
그 결과 최호석 경무관은 조사관들에 의해 제압당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이 경찰청에서 연행되어 가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말았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와 같은 일이 검찰청과 행정부, 사법부, 외무부와 같은 곳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언 골프장.]
“이 새끼야. 내가 누군지 알아?”
“박두병 부장 검사님이시죠. 잘 알고 있습니다.”
“뭐야, 알면서도 날 체포하겠다고?”
골프장에 난입한 이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쟤 연행해.”
“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저 새끼 죄질이 아주 나빠. 옷 벗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거야. 내가 책임질 테니까 어서 연행해.”
“알겠습니다. 팀장님.”
정장을 입은 수사관 두 명이 박두병 부장 검사의 양팔을 잡았다.
“어? 어! 이, 이것들이 감히, 놔. 이거 안 놔?!!”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저항했지만 건장한 사내 두 명의 힘을 당해낼 수 없었다.
“끌고 가.”
“네, 팀장님.”
광화문에 위치한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에 이른 아침부터 민원인들이 몰려들었다. 그중 5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가장 먼저 민원을 접수했는데 그 내용은 이러했다.
“제 아들이 대학생인데요, 지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있어요. 길가에서 성폭행 당하려던 여자를 구하려고 싸움을 했고…….”
공수처 직원은 그녀를 진정시키는 동시에 조용히 그녀의 얘기를 경청했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 먼저 아드님 성함이 어떻게 되죠?”
“명관이요. 권명관.”
“주민등록번호를 말씀해 주세요.”
“네. 971121-1053***.”
“그럼 혹시 아드님 사건과 관련된 자료들이 있을까요?”
“여, 여기요. 여기 가지고 왔어요.”
“네. 감사합니다. 저희 쪽에서 사건 확인하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오래 걸릴까요?”
“사건에 따라 다르지만 답변까지 최소 3일에서 7일 정도 걸립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답변을 받기까지 3일에서 7일이 걸린다는 말에도 여인의 표정은 밝았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현실을 뼈저리게 체험하다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사흘 후.
여인의 아들은 재수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공수처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게 되었다.
“윤하성 검사님.”
“…….”
“권명관 사건, 어떻게 된 겁니까?”
“……!”
공수처 조사관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담당 검사에게 호통을 쳤다.
“당신이 쓴 조서에는 증거 자료가 없어요. 단지 자백에 의한 서류만 있습니다. 당신도 잘 알지 않습니까? 이는 법적인 효력이 전혀 없다는 것을요. 그런데 유죄라고요?”
“…….”
-쾅!
“계속 침묵할 겁니까?”
“…….”
“좋습니다. 그럼 이걸 한번 볼까요?”
조사관은 서류 한 뭉치를 꺼내 보였다.
“권명관 사건 판결 후, 거액이 생기셨네요. 검사님 본인은 아니지만요. 부인께서 로또라도 되셨나요? 그리고 현재 아드님 두 분이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네요. 그런데 여기 외환 송금액을 보면…….”
“……!!”
조사관의 말에 윤하성 검사의 동공이 심하게 움직였다.
지금까지 이런 코미디는 없었다.
검찰인가? 개그맨인가?
고위 공직자 비리 수사처가 설립된 이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300여 건의 민원이 처리되었다.
접수된 2,500건의 민원 중, 300건의 사건에서 부정과 비리가 발견된 것이다.
그 결과 수십 명의 검찰이 옷을 벗게 되었고 그중 죄질이 심한 이들은 교도소로 직행하였다.
-[공수처 제4 조사팀]
“확인해 봐. 보고 무슨 변명을 어떻게 할지가 궁금하네.”
“……?!!”
서류를 살펴본 배병수 지검장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가 저질렀던 각종 불법 행위와 함께 지난 10년간의 계좌 내역(가족 포함)이 샅샅이 파헤쳐져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물러나면 되겠습니까?”
“고작 물러나는 걸로 끝내려고? 장난해?!”
“…….”
조사관은 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받아. 처음이자 마지막인 호의야.”
“……고맙습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표정의 남자.
그는 조사관에게 얻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었다.
“그러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잘하지.”
조사관의 혼잣말이 처연하게 울렸다.
한편 이와 같은 공수처의 활약이 단 하나의 여과도 없이 언론에 의해 그대로 공개되었다.
고위직 공무원의 비리, 그중에서도 특히 검찰의 비리를 지켜본 시민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젠장!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떡검 새끼들! 잘됐다.”
“그러게. 이번 기회에 싹 갈아엎어야 해.”
“진짜 최선우 짱이다.”
“와우! 멋져~~”
물론 검찰에 대한 사건만 있는 것은 아니다.
경찰에 대한 경질, 해임, 파면, 구속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의 무게에 비례해 그 죄질 역시 무거운 법. 시민들의 눈에는 검찰의 비리가 훨씬 더 중하게 느껴졌다.
한편 미국 CIA 한국 지부장은 폭풍처럼 몰아치는 한국의 개혁에 대해 골이 아플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최선우가 주도하고 있는 이 개혁의 바람이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몇몇 야당 의원이 그를 찾기도 했다.
“최선우 총리의 급진적인 개혁이 사회 전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개혁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이건 심히 우려가 됩니다.”
“한미 동맹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미국이 움직여 주십시오.”
“저희를 좀 도와주십시오.”
CIA 한국 지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한국은 우리 미국의 형제 국가요. 매우 가까운 동맹국입니다. 저 역시 한국의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로이스터 지부장의 우호적 발언에 야당 의원들의 표정에 미소가 번졌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잘 들었으니 워싱턴에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다만 결과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물론입니다. 지부장님을 이해합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워싱턴에 전문을 보낸 로이스터 지부장이 의자에 앉아 길게 한숨을 내쉰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에 굉장히 민감한 나라이다.
최선우의 개혁이 미국의 국익에 유해하다면 판명되면 각종 제재가 가해질 것이 분명했고 만약 유익하다고 판단되면 일단 관망하는 자세를 취할 것이 자명했다.
“최선우 총리의 개혁이 나쁜 것은 아니야. 하지만 그 개혁의 강도가 지나칠 정도로 빠르고 강해. 게다가 이대로 끝날 리가 없으니 정말로 머리가 아프군.”
그는 워싱턴에서 별도의 지시가 내려오기까지 최선우 내각에 대해 지금처럼 관망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동시에 물밑으로 정보 수집에 충력을 기울이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