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65화 (165/187)

◈ 제 165화

165화 응징 일심회

조직에서 중점적인 위치를 맡고 있는 사람들은 흔히 이런 착각을 한다.

자기가 없으면 이 조직이 망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재밌는 사실은 그가 없어져도 그 조직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기존의, 혹은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나 그의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그것을 증명해준다. 그리고 그렇기에 이 세상이 참으로 오묘하고 재밌는 것이다.

선우의 총리 취임 후.

정치적 상황은 점점 더 급박해졌다.

선우의 정치적 행보가 사람들의 예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여론을 등에 업은 선우의 무자비한 공세에 신자유당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성문을 열었다.

“항복!”

“항복! 항복!!”

그것은 마치 백기를 들며 투항하는 병사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당연한 일이다.

보수, 중도,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한마음으로 합심하여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데 사분오열된 이들이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일심회의 상황 역시 이들과 마찬가지로 암울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누군가를 알아본 민경수 의원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십시오. 박사님.”

“반갑습니다. 의원님.”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네.”

두 사람은 매우 친밀한 사이다.

무려 이십 년 전 일심회 산하 친목 단체에서 만나 서로 도움을 주었고 그 인연을 바탕으로 사돈까지 맺게 되었다. 각각 79, 84번이 적힌 마스크를 썼지만 오래된 인연으로 인해 가면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요즘 분위기가 좋지 않습니다.”

“……그렇죠.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 참, 아주 최선우 열풍입니다. 돈이 썩어 문드러질 놈 같으니! 예상은 했지만 이건 해도 해도 너무합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10억, 100억! 아니 1,000억도 아니고 1조예요. 1조!!”

“젠장! 돈이 그렇게 많으니 이건 당최 싸움이 되질 않잖아요. 어디 그뿐입니까? 언론까지 완벽하게 장악했어요. 그가 소유한 언론사들을 보세요.”

“흐음!!”

“당분간은 몸을 숙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괜히 앞에 나서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몸을 숙이는 거야 문제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 열풍이 과연 언제까지 이어지냐죠.”

“음!”

두 사람은 몸을 가까이 붙인 채 여러 가지 담소를 나누었다.

아직 모임이 시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남았지만 그들의 얼굴은 자못 심각했다.

얼마 후.

일심회 멤버들이 속속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넘버 90이 적힌 마스크를 착용한 일심회 멤버 역시 그곳에 도착했다.

모임이 이뤄지고 있는 곳은 청담동에 위치한 빌딩이다.

외벽이 아주 두껍고 방음 시설 역시 튼튼하다. 물론 경비 역시 여간 깐깐하지 않았다.

“회원님 올라가십니다.”

-위이잉!

넘버 90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곧 화려한 실내가 그를 반겼다.

빌딩 한 층을 통째로 터서 만든 넓은 거실은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되어 모던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반갑습니다.”

“오랜만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는 사이 십이지신의 가면을 쓴 몇몇 이들이 나타났다.

넘버 90은 샴페인 잔을 들고 입술을 축였다.

처음에는 정신을 집중해 저들이 하는 말을 경청했으나 그는 곧 신경을 돌렸다.

대부분 예상 가능한 이야기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말이 오갔고 당분간 자중하자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이제 좀 즐기시죠.”

-짝짝!!

십이지신 가면을 쓴 남자가 박수를 치자 분위기가 일순 바뀌었다.

화려한 샹들리에 불빛 아래 음악과 함께 야시시한 옷을 입은 무희들이 등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익숙한 광경인 듯 남녀들이 관능적인 신음 소리를 내며 서로 부둥켜안기 시작했다.

“흐으응!”

“아~~ 아앙!”

넘버 90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포악한 악어와 같은 눈빛으로 말이다.

“후후후.”

이토록 충만한 음의 기운이라니!

넘버 90은 사람들을 향해 득의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비록 일심회의 우두머리라 할 수 있는 십이지신이 4명밖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실망치 않았다. 이제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제 시작해 볼까?”

넘버 90은 저들이 뿜어내고 있는 음습한 기운을 몸 속 깊숙이 받아들였다.

그러자 그의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이한 느낌의 웃음과 함께 그의 눈은 어느새 샛노란 빛깔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우우우우웅!!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뱀이 몸을 일으키는 환상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탐욕과 쾌락과 욕정.

이 세 가지 감정만이 존재했다.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기 시작했고 샹들리에에 비친 넘버 90의 얼굴이 섬뜩하게 보였다.

넘버 90이 움직였다.

먼저 보안실로 들어가 순식간에 경호원들을 제압했다.

뭔가가 휙휙 지나가는 것 같았는데, 경호원들이 바닥을 기고 있다.

그는 모든 정보를 삭제한 후, 목표를 향해 달려들었다.

마치 먹이를 노리는 매의 모습과 같았다.

“컥!”

-부왁!

살이 잘려나가는 섬뜩한 소리.

하지만 환상에 빠진 이들은 바로 옆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육의 현장에도 무관심했다. 아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후후후! 잡았다.”

넘버 90이 십이지신 형상의 가면을 쓴 놈들을 잡았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십이지신에 대해 말해.”

“……욱!”

놈들은 머리를 흔들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큭! 꼴에 저항하는 건가?”

“크헉!”

그들은 넘버 90의 팔목을 잡고 저항했지만 애석하게도 막을 수 없었다.

오히려 반항하는 놈은 그대로 몸이 썰려 고꾸라졌다.

-우우우웅!!

그중 가장 정신력이 약한 녀석이 무너졌다.

녀석의 눈이 경악으로 물드는 동시에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넘버 90은 한 손으로 놈의 목을 틀어쥔 채, 녀석의 눈을 직시했다.

“……최**, ……김**, ……**, …….”

원하는 정보를 얻은 넘버 90은 그대로 놈의 상판을 뜯어버렸다.

이어 구둣발로 다른 놈의 목을 밞아 부러뜨렸으며 어떤 녀석은 아예 목을 잘라버렸다.

“아악!”

“으아아악!”

생명이 꺼지는 순간.

환상에서 벗어난 이들은 비명을 내질렀지만 조그만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전히 환상이 선물해주고 있는 쾌락에 빠진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넘버 90은 파이어(fire) 마법을 준비했다.

그리고 미리 준비한 화약(火藥)을 여기저기에 설치했다.

“굿바이~!”

넘버 90이 플라이(fly) 마법을 통해 빌딩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엄청난 폭음과 함께 솟아난 불길이 빌딩 한 층을 순식간에 휘감았다.

-과과과과광!!

폭음과 함께 일어난 화마가 어두운 밤하늘을 시뻘겋게 물들이자 그 광경에 놀란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게 뭔 소리야?”

“불이다. 불. 불이 났어. 어서 신고해.”

“어디야?! 어디?”

“저기 위를 봐봐!”

-삐잉! 삐이잉!!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소방차가 출동한 것이다.

“적어도 5분 후면 도착하겠네.”

꽤나 신속한 것을 보아하니 역시 대한민국 소방서다.

하지만 넘버 90은 이미 사건 현장에서 빠져나와 있었다.

“비상! 비상 상황입니다.”

“모두들 비키세요.”

소방관들의 고함 소리가 빗발치고 있고 그들의 뒤로는 거센 불길이 이글거리고 있다.

“대장님. 현재 불길이 너무 거셉니다.”

“본부! 본부. 여긴 1808입니다. 증원을 요청합니다.”

소방대장은 무전을 이용해 증원을 요청했다.

“경찰과 병원에도 연락해. 비상 상황이야. 모두들 서둘러.”

잠시 후.

소방차 7대가 경찰차, 구급차와 함께 연달아 나타났고 이렇게 혼란의 극치를 달리는 상황에서 가면을 벗은 한 남자가 유유히 사라지고 있었다.

-어제 밤 11시, 강남 한복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火災)가 일어나…….

-사건 현장에서 찍힌 동영상입니다.

-화력이 엄청납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에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어젯밤에 일어난 화재 사건에 대해 언론이 보도했다.

수십 명의 사망자가 나왔고 단 한 명의 생존자가 없는 사고였던 관계로 언론 역시 이번 사건을 주시했다.

“최고층에서 일어난 화재였습니다. 전자 기기에 불똥이 튀어…….”

“……아직 조사 중에 있지만 방화일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하지만 며칠 후.

사망자들의 신원이 밝혀지면서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어졌다.

국회의원, 중소 도시의 시장, 고위직 검찰과 경찰 그리고 대기업 사주 등이 대다수였기 때문이다.

대체 이들이 왜 그 자리에 있었을까?

전경련 모임과 같은 성격의 모임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알려진 자선 파티도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서로 간에 어떠한 연결 고리가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의혹 어린 시선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음 날, 핵폭탄급 기사가 떴다.

-[상류층, 그들만의 은밀한 파티.]

대놓고 말해 사회 지도층들이 소위 나가요 아가씨들을 불러 그들만의 은밀한 파티를 열었다가 변(變)을 당했다는 기사였다. 기사는 누구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알 만한 이들은 이 기사가 누구를 특정하고 있는지 알았다. 며칠 전부터 언론에서 떠들고 있었으니 모르면 그게 바보다.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지 마라.”

“언론사는 공개 사과하라.”

“정정 보도를 요청한다.”

그러자 피해자 가족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사자(死者)의 명예를 훼손하지 말라며 언론에 즉각적인 정정 기사와 함께 공개적인 사과를 요청했다. 이와 함께 언론사를 상대로 대규모 소송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곧이어 속속히 드러나는 후속 기사들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은 곤혹스런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강남 10% 업주인 정 마담이 기자회견을 연 것이다.

그녀는 이번 화재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여인들에 대해 말했다.

-사회 지도층들과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하고…….

-은밀한 파티에 초대합니다.

-한번 다녀오면 거액의 돈이 들어오죠. 여기 증거 자료도 있습니다.

정 마담이라는 여인의 등장에 국민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회 지도층이라는 작자들이 성접대를 받았다는 정황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빌어먹을 놈들!”

“……퉤엣! 잘 죽었다.”

“저런 놈이 국회의원이라니! 역시 개혁을 해야 해.”

서울역 대합실 커다란 TV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기차를 기다리던 시민들은 뉴스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마디씩 내뱉었다.

“민주정의평화당이 좌파라고? 지랄들 떨긴. 니들이나 잘해라. 이놈들아. 성접대 받지 말고!!”

욕설을 내뱉은 강철수는 대전에 거주하는 60대 남성이다. 그는 정쟁을 일삼는 대한민국 정치계에 염증과 환멸을 느껴 수십 년 동안 신경을 끄고 살았지만 얼마 전 민주정의평화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이것은 가짜 뉴스가 없는 깨끗한 언론, 공정한 기사, 정직한 방송의 힘이다.

참고로 이것은 선우가 가짜 뉴스를 생산하고 제공하는 이들을 찾아내 엄벌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선우는 자신의 사비를 투자해 저들을 고소했고 돈지랄을 통해 저들의 회사를 공격했는데, 그 결과 2~3개 언론사가 한 달을 채 버티지도 못하고 망해버렸다. 그러자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이들 역시 눈에 띄게 사라졌고 지금은 아예 자취를 감춰버렸다.

한편 국민들 역시 민주정의평화당이 내놓은 정책과 그것이 가지고 온 정치, 경제의 효과를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었기에 최선우와 민주정의평화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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