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63화 (163/187)

◈ 제 163화

163화 의원내각제

임기 5년의 대통령제.

선우는 5년이라는 시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5년 안에 대한민국을 얼마만큼 바꿀 수 있을까? 그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개혁이 가능할까?

선우는 잠시 동안 갈등에 휩싸여야 했다.

강산이 변하는 데도 10년이 필요한데, 이건 심지어 한 국가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일이었다.

‘개혁을 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려면 적어도…….’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던 선우의 머릿속에 해결 방안이 떠올랐다.

‘의원내각제!’

수상 혹은 총리대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리고 며칠 후.

선우는 현재 허수아비와 다름없는 박은혜 대통령에게 독대를 요청했다.

“VIP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대통령이 도착했다는 말에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쪽으로 가시죠.”

“네.”

선우는 사람들의 안내에 따라 묵묵히 걸음을 옮겼다.

-뚜벅뚜벅.

간단한 담소와 함께 이어진 식사 시간.

증오라든가 어쩌면 분노와 같은 감정이 보일 법도 한데 박은혜 대통령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정치에 발을 들여놓으셨네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네. 잘하셨네요.”

“……?”

대통령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선우와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살기 좋은 대한민국, 행복한 나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생각입니다.”

“네. 우리 아버지가 꿈꾸었던 나라군요.”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고요.”

“네. 우리 아버지도 많은 개혁을 이루어 내셨어요.”

“……?”

무슨 말만 하면 아버지 얘기를 꺼내거나 아니면 그녀만의 이상한 화법으로 대답해 선우를 종종 당황하게 만들었다.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 같이 도와줍니다.”

“우주가 도와준다고요?”

“네.”

“……!”

이게 대체 뭔 말이야?!!

하다 하다 우주까지 등장한다.

선우는 그만 맥이 탁하고 풀려 버렸다.

일말의 가능성을 보고 오늘의 만남을 가졌지만 역시 그녀는 말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의 삶을 돌아보면 선우 역시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한 국가의 수장으로 어울리는 그릇이 아니라는 확신도 들었다.

생각을 마친 선우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박은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잠시 제 눈을 바라봐 주시겠습니까?”

“네?”

-우우우웅!!

그녀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그리고 잠시 후, 그녀는 완전히 얼이 빠진 모습으로 선우를 응시했다.

“당신은 의원내각제를…….”

선우의 음성이 그녀의 심령에 새겨졌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며 우주의 기운이 모여 이뤄진 꿈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초점이 없는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선우는 문득 그녀가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살지 말고 불행했던 과거 역시 모두 잊고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시오. 먼저 당신 스스로를 사랑하고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보내시오. 이건 내가 당신에게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이오.”

“…….”

그 뒤 선우는 잠시 침묵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앞으로 10분 정도 여유가 있다.

“그럼 이제 깨워볼까?”

선우는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박은혜 대통령을 쳐다보며 손뼉을 쳤다.

-짝!

다음 순간.

초점이 없던 그녀의 눈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청와대에서 의원내각제란 단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의원내각제라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꼭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내각제를요?”

“그래요.”

왕 실장은 잠시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대통령을 쳐다보았지만 빠르게 눈빛을 바꿨다.

“신자유당 의석이 100석도 되지 않습니다. 뭔가…….”

“나도 알고 있습니다.”

박은혜 대통령은 그를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던졌다.

“우주의 기운이 우릴 돕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말에 따라 주세요.”

“네? 우, 우주의 기운이요?”

“그래요. 실장님.”

그녀는 황당해하는 왕 실장을 보며 더 이상 말을 섞기 싫다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귀찮음이 역력하게 나타나는 행동이다.

“그만 나가 보세요. 나가시라니까요.”

“……으음!”

왕 실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녀가 저런 행동을 보일 때면 설득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젠장! 이럴 때 명순이라도 있었으면…….’

박은혜 대통령을 컨트롤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애석하게도 이곳에 없다.

현재 감방에 들어가 복역 중에 있었다.

각설하고 어쨌거나 하루도 되지 않아 VIP의 뜻이 신자유당 의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번 보궐선거를 보고도 이런 말이 나와?”

“그러게 말입니다. 지금 지지율을 보세요. 이건 정권을 저쪽에다 그냥 주겠다는 것 아닙니까?”

신자유당 전체가 깜짝 놀랐다.

‘의원내각제? 설마! 내가 잘못 들었겠지.’

‘우리 당이 지금 90석도 안 되는데?’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 대통령이 미친 건가?’

의원들의 반응 역시 왕 실장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아예 대놓고 비난을 퍼붓는 의원들도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골수 친이계 의원들의 반발이 더욱 거셌다.

“정치의 ‘정’ 자도 모르는 여자가 대통령을 하니 나라가 개판이지.”

“……그러게 말입니다. 현 의원.”

하지만 어쩌랴!

의원내각제는 이미 선우가 의도한 대로 그 흐름을 타고 있었다.

* * *

“여기 좀 봐주세요!”

“대표님! 최선우 대표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며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현재 의원내각제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맞습니까?”

“앞으로의 정계 참여를 노린 포석입니까?”

“민주정의평화당의 복심은 무엇입니까?”

“민국당과의 연합은 확정입니까?”

선우의 주변에는 어느새 기자들이 가득 차 있었다.

특히 생방송임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의원내각제에 대해 확신하고 있었다.

“그럼 다음 질문 받겠습니다.”

“저는 MSN의 박태환 기자입니다. 만약 의원내각제가 통과된다면 다수당의 당수이신 최선우 대표님께서 당연히 총리나 수상이 되실 겁니다. 앞으로 어떤 정치를 하실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낙후된 대한민국의 정치를 확 바꾸어 보겠습니다.”

“낙후된 대한민국 정치요?”

“네. 그렇습니다.”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럼 기자님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해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하는 거죠?”

“…….”

“대표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건 분야가 다릅니다.”

“그 점에 관해선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분야가 다르다고 해서 제가 못 할 것이라 생각하진 마십시오.”

“그럼 자신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선우는 기자의 매서운 질문에 답변을 하는 대신 이렇게 반문했다.

“제가 한번 묻겠습니다. 기자님이 보시기에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들 중에 제대로 했다고 평가받는 대통령이 있습니까?”

“그, 그건…….”

당황해하는 기자의 모습에 선우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한민국의 첫 대통령은 하야하기 전까지 무려 12년 동안 친일 세력을 중용했습니다. 죄 없는 동포를 빨갱이로 몰아 무자비하게 죽이기까지 했지요. 제주도에 한번 가보세요. 제주도에는 한날한시에 제사를 지내는 가정이 많습니다.”

“…….”

“두 번째 대통령은 임기도 못 채우고 군사혁명으로 물러났지요, 그럼 그다음 대통령은 어떠했습니까? 공이 있지만 그에 비견되는 과(過)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작금의 현실에서 평가하길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1위와 가장 최악의 대통령 1위를 동시에 차지하고 있죠.”

“…….”

“…….”

“…….”

선우의 입에서 역대 대통령들에 대한 적나라한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그 후 채규하 대통령이 계셨지만 그분 역시 1년이 되지 않아 군사혁명으로 인하여 물러나셨고 그 자리에 제5공화국이 들어섰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기자들은 전*환, 노*우 대통령의 실정(失政)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후…….”

“……쩝!”

기자들의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오는 가운데 선우의 멈출 줄 모르는 평가가 계속되었다.

“그 후 정권을 잡은 YS는 금융 실명제를 선포하며 문민정부를 지향했지만 아들의 부정부패와 IMF를 초래해 결국 그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DJ와 박강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부정보다 긍정적인 것이 많습니다만 이것 역시 현재 논란의 여지가 있으므로 삼가겠습니다.”

여기까지 말한 선우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근 DB 정권을 보십시오. 경제 대통령을 꿈꾸며 분연히 일어섰지만 온갖 비리와 사리사욕에 점철돼 스스로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정치는 구조적인 것이 아닌 그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문제라고 말입니다. 부정과 부패 그리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올 때마다 되풀이되는 정치 보복…….”

한참 후.

선우의 말이 거의 끝나갈 무렵, 한 기자가 물었다.

“혹시 한국 정치에 대한 해결책이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눈길이 쏟아졌다.

“그게 무엇입니까?”

“간단합니다.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권력과 그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분류해 축소, 감소 혹은 아예 없애버리면 되는 겁니다.”

“그, 그게 가능합니까?”

“물론이죠. 시도해 봐서 나쁠 게 없지 않습니까? 국회의원이 가진 권력이 축소되고 점차 사라진다면 진정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할 위정자들이 나타날 것으로 확신합니다.”

잠시간의 정적 속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었다.

“네, 거기 기자분, 질문하세요.”

“화양 일보의 권혁배 기자입니다. 먼저 대표님의 인상 깊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질문 드리겠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사법부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검 같은 사법부 조직에서 고위 공직자를 포함한 정치인들의 비리 척결에 나서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님의 말씀 역시 타당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특검이라는 것을 하여도 머리나 몸통이 아닌 늘 잔챙이들만 잡혀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

선우는 음성에 마나를 실어 외쳤다.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사람들의 귀에는 매우 강한, 신념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

“……!!”

선우는 대한민국 헌법 1조 1항과 2항을 읊었다.

찰나의 정적이 흘렀다.

마치 비바람을 뿌리던 태풍의 눈에 들어선 듯 좌중이 고요했다.

공개석상, 그것도 생방송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터뷰에서 차기 수상으로 유력한 최선우 대표의 발언이었다.

선우는 얼어있는 좌중을 향해 신념에 찬 눈빛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확고한 신념이 동반되어진 말이기에 그만큼 더 강하게 다가왔고 TV를 시청하고 있던 수많은 국민들의 심장을 짜릿하게 만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박은혜 대통령이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이 없습니다.”

“……?”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습니다.”

“……?”

-웅성웅성!!

박은혜 대통형의 발언에 기자들은 어리둥절했다.

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동문서답, 우문현답, 불통의 최고봉을 달리는 대통령이다.

“저는 오늘로 지난 2년간 국민의 애환과 기쁨을 같이 나누었던 대통령직을 내려놓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픈 말이 있다면 통일은 대박입니다.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더욱이 질문을 받지 않겠다는 그녀의 마지막 말에 기자들은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쩝! 그나마도 선우의 배려에 이렇게 명예롭게 내려오는 것이지 이 상태로 갔다간 그 끝이 좋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박은혜 대통령은 약 10분 정도가 소요된 대국민 담화를 끝으로 대한민국 대통령직에서 내려오게 되었고 그와 동시에 대한민국 정치체제가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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