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8화
158화 나의 조국 대한민국 그리고 보수에 대하여
국산 중형 세단을 몰고 있는 남자는 옆 차선에 있는 고급 스포츠카를 바라보며 부러운 눈길을 보낸다.
“아! 나도 스포츠카를 타고 싶다.”
그런데 그 옆에서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은 중형 세단을 가진 이를 바라보며 부러워하고 있다.
“승용차를 사고 싶다.”
재밌는 것은 그 순간 길을 걷고 있던 사람 역시 부러운 눈빛을 보이며 자전거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쳇! 자전거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것을 아는가?
맞은편 건물 8층에서는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이 걷고 있는 사람을 향해 부러워하는 눈빛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걷고 싶다.”
세상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단지 정도의 차이고 비교의 차이일 뿐이다.
한국 최고의 부자는 아시아 최고의 부자를 부러워하고 아시아 최고의 부자는 세계 최고의 부자를 부러워한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마음가짐이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청와대는 최소라의 부정 입학으로 야기된 이번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이례적으로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회견을 열어 박은혜 대통령과 최명순의 관계에 대해 분명한 선을 그었다.
모든 것은 그녀가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해 저지른 개인적 범죄 행위로 몰아갔다.
-쾅!
“이런 기사 하나 막지 못하고 대체 뭐 하는 겁니까?”
“죄, 죄송합니다.”
박은혜 대통령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않았다.
“당장 기사부터 내리라고 해요.”
어찌나 화가 났는지 금세 머리로 피가 쏠리며 얼굴이 붉게 변했다.
안 그래도 심각한 분위기인데 비서실장은 울고 싶은 마음이다.
“그게…….”
설마 그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을까?
이미 청와대 이름으로 몇 번이나 주요 언론사에 공문을 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몇몇 언론사에는 자신이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물론 어느 정도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일 뿐이다.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논하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때, 최명순 관련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왔다.
-안녕하십니까? PBN 5시 뉴스 박하나입니다. 야당에서는 이번 최명순 게이트에 대하여 국정 감사와 함께 청문회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저 쓸데없는 뉴스들이 원망스러웠다.
당장 자신을 쳐다보는 대통령의 눈빛이 더욱 강렬해졌다.
“……채널 돌리세요.”
“네?”
“못 들었습니까?”
“아, 아니요. 들었습니다. 바로 돌리겠습니다!”
-MBS입니다. 현재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최명순 씨는…….
-종합 뉴스에서 알려드립니다. 최소라 양의 불법 입학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현재 야당의 강력한 반발에 의해 (중략) 자세한 내용은 광화문에 나가 있는 조규만 기자에게 알아보겠습니다. 조규만 기자.
-네~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는 조규만 기자입니다. 오늘 오후부터 최명순 사태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고 있습니다.
채널을 돌려봐도 온통 최명순에 관한 뉴스가 화면을 장악하고 있다.
일부는 이 사건을 두고 벌써부터 최명순 게이트라 칭하고 있었다.
“하아!!”
박은혜 대통령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아버지 시절이었다면 저것들 모두를 냉큼 잡아다 처넣었을 것이다.
문득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그녀의 뇌리에 떠올랐다.
박은혜 대통령의 얼굴에 순간 묘한 긴장감과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분들을 불러야 할 것 같군요.”
“그분들이요?”
“……네.”
뭔가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말인가!
비서실장의 표정도 눈에 띄게 변했다.
일단 청와대는 쏟아지는 언론의 의혹과 비판에 계속해서 침묵을 고수하는 동시에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발표했다.
과거 박은혜 대통령 아버지의 측근이었던 이들을 대거 기용하며 이번 사태에 대한 신속한 수습을 지시한 것이다.
“최명순과 전윤회, 버리시죠.”
새롭게 비서실장에 임명된 노기춘 실장이 말했다.
“두 사람을 버리라고요?”
“네.”
“……노 실장님. 꼭 그래야만 하나요?”
대통령의 말에 노기춘 실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언론사들 역시 도통 말을 듣지 않고요.”
“아니,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도 말을 듣지 않는다고요?”
“네.”
“거기 사주가 누구죠?”
“그, 그게, 최선우입니다.”
“……!!”
최선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박은혜 대통령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한민국 경제의 기둥이자 이대박 대통령을 하야시킨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기업을! 그것도 대기업을 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세무 조사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동시에 개인적인 일탈 행위조차 없다.
그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대한민국 땅에는 없어 보였다.
노기춘 실장이 박은혜 대통령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우리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마침 윤회가 명순이 남편이니 그림도 좋습니다. 남편의 권력과 대통령님과의 개인적 친분을 이용해 벌인 사적인 범죄로 엮죠.”
노 실장의 눈이 강하게 빛나면서 빠르게 번뜩였다.
“꼭 그래야만 하나요?”
“그래야만 합니다.”
박은혜 대통령의 표정엔 여전히 망설임이 보이고 있다.
하지만 노기춘 실장의 의지는 단호했다.
“버린다고 하지만 아주 버리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기껏해야 몇 년입니다. 사태가 잠잠해지면 특사로 빼낼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고작해야 1년 남짓입니다.”
“명순이가 순순히 들어갈까요?”
“대통령님께서 결단을 내리셔야죠.”
“…….”
노기춘 실장의 요구는 거침없었다.
“결정이 어려우시면 제가 두 사람을 직접 만나 작금의 상황을 잘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설득하겠습니다. 윤회, 그 친구는 길어야 2~3년, 최명순은 1년만 참으라고 말이죠.”
역시 공안 검사 출신이라 그런지 이쪽 계통으로 빠삭하게 보인다.
“휴! 알겠습니다.”
결국 박은혜 대통령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녀는 왠지 미안해하는 얼굴로 말했지만 반대로 노기춘 실장의 얼굴에는 희색이 어렸다. 마침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
노기춘 실장은 확신하고 있었다.
저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일이 이렇게 커졌는데 대통령과의 관계를 철저히 부인할 것이다. 그래야만 내일이 있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이렇게 선우의 개입으로 인해 최명순이 러시아의 요승 라스푸틴이 되기 전에 권력의 자리에서 미끄러졌다. 하지만 이로 인해 자칭 보수라 말하는 구세대 정치인들이 원 역사보다 빨리 출현하게 되었다.
-최명순 구속.
-전윤회 구속.
-최소라 입학 취소.
저들의 꼬리 자르기가 성공했다.
관련자 몇몇이 추가로 기소되고 구속되었지만 박은혜 대통령을 향한 지지율은 철옹성처럼 단단했다.
“모두 딸내미 대학 보내려고 그런 거래.”
“박 대통령은 잘못이 없지.”
“내가 들었는데, 밑에 있는 놈들이 대통령의 이름과 친분을 도용했대.”
“아이고, 죽일 놈들.”
선우는 이번 최명순 사건을 바라보며 느낀 바가 참 많았다.
생각조차 하지 않는 믿음과 함께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그가 소유한 언론사를 통해 장문의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다.
입으로만 보수를 외치는 사람들.
보수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수가 가진 의미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거짓된 보수를 외치며 사람들을 선동하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
-<대한민국과 보수에 대하여. 1편 보수란 무엇일까?>
[보수란 무엇일까? 말 그대로 ‘지키자’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을 지켜야 하는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왜 지켜야 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답을 규명하면 진짜 보수가 무엇인지, 진짜 보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보수의 진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선우는 보수에 대해서 쉽고 정확하게 설명했고 사람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보수란 말 그대로 ‘지키자’는 것이다.
이것을 정치, 현 체제에 대입해 보겠다.
그럼 현 체제를 왜 지켜야 할까?
(중략)
민주주의 체제에서 누구에게나 사상의 자유가 있다.
하지만...
(중략)
이것은 진정한 보수가 아니다.
보수란 과거가 아닌 현재와 미래 지향적인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몇 정치인들의 행태를 보라.
그들은 자신이 이 나라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며 과거로 돌아가자고 한다. 절대로 미래 지향적일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이웃인 일본을 보라. 일본의 몇몇 정치인들 역시 보수를 얘기하며 군국주의 시절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런 이들이 과연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선우의 특별 기고문을 읽으며 보수와 진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거 읽어봤어?”
“어?”
“칼럼 말이야.”
“어! 나도 읽어봤어.”
“난 여태까지 보수에 대해서 몰랐어. 보수는 우파. 진보는 좌파. 좌파는 빨갱이. 뭐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었지.”
“나도 마찬가지야. 이번 칼럼을 보고 느끼는 게 많아. 배우는 것도 많고. 역시 최선우야.”
“맞아. 그 사람은 정말 생각할수록 참 대단해.”
“후후후. 그러게. 자! 잔 들어. 우리 건배나 한번 하자. 대한민국을 위하여.”
“위하여~!”
퇴근 후,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인 술자리에서 진보와 보수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이제 종종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풍경은 대학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다.
“이번 중간고사 주제는 보수와 개혁에 대한 토론입니다. 홀수 조는 보수 팀이고 짝수 조는 개혁 팀입니다. 잘 준비하세요.”
“네, 교수님.”
이와 같은 시각,
한윤 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수한아. 졸업 논문 주제 정했어?”
“아직. 넌?”
“난 ‘대한민국의 보수’라는 주제로 논문을 써보려고 해.”
“진짜?”
“응. 이번에 이태리 작가의 글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거든.”
“……쉬운 주제가 아닌 것 같은데?”
“나도 알아. 하지만 써보고 싶네.”
“후후! 그래. 파이팅해라.”
“고마워.”
“논문 쓰다가 막히면 언제라도 전화해. 이 형님이 소주 한 잔 살게.”
“큭! 말이라도 고맙다. 친구야.”
선우의 기고문은 사람들을 각성하게 했고 날마다 보수를 울부짖으며 호박씨를 까던 가짜 보수주의 국회의원들에게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마지막 기고문에서 현재 대한민국 보수 진영에는 이념도 없고 철학도 없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진정한 보수가 나서야 할 때라고 밝혔다.
* * *
며칠 전,
<펜 의학 연구소>를 중심으로 공사에 들어간 제2, 제3, 제4, 제5 생산 시설이 마침내 완성되었다. 하지만 정식 오픈은 삼 일 후다.
모두가 잠든 시각,
작은 조각칼을 손에 쥔 선우의 손놀림이 바쁘다.
조각칼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그것은 점차 어떤 형상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사각사각!
그림인가 아니면 문양인가?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궁금해하던 비밀이었다.
일단 펜타그램(오망성 마법진)을 통해 대기 중에 퍼져 있는 마나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현재 작업 중인, 숙성실 외벽에 그려진 문양을 통해 각종 약재가 가지고 있는 기운이 추출된다. 그리고 이것들이 하나로 모아져 0.003%의 비밀이 완성되는 것이다.
-사각사각!
규칙성을 가지고 들려오는 소리.
하나의 숙성실이 완성될 때마다 선우는 심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상급 마나석을 선물받은 것은 그야말로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마나를 흡수할 수 있는 범위가 엄청나게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현재 이 공간에는 아무도 없다.
허락된 것은 오직 한 사람, 최선우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다른 존재가 있다. 바람의 정령 실프가 한 명의 관객이 되어 숙성실 외벽에 새겨지는 룬어를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우우우웅!!
선우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숙성실 외벽을 이루고 있는 순금이 조금씩 깎여 나갈 때마다 외벽에 새겨진 룬어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빛을 발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