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53화
153화 숨 고르기
과학의 발전이 좋은 것은 세계 반대편에 있어도 대한민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역시 잠시 떠나있길 잘했어.’
이대박 대통령의 하야로 인해 정계는 여전히 혼잡하다.
아니, 아주 시끌벅적했다.
현재 집권 여당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 대행을 수행하고 있었지만 DB라는 강력한 선장을 잃어버린 터라 야당의 정치적 공세에 종종 밀리는 기색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다.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대한민국 굴지의 재벌 총수들이 같은 날 같은 시간에 모습을 보였다. 국내도 아닌 국외, 그것도 북유럽에 말이다.
한눈에 보아도 뭔가 목표를 가지고 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북유럽이라 그런지 날씨가 정말 살벌하군.”
차에서 내린 이들은 북유럽의 살벌한 추위에 고개를 흔들었다.
“며칠 동안 폭설이 내렸다고 합니다.”
“아무튼 호텔에 도착했으니 어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스르릉!
자동문이 열리자 훈훈한 온기가 느껴진다.
투박하지만 왠지 클래식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어서 오십시오.”
이때, 이들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은 투자회사 의 왓슨이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후, 왓슨이 그들을 선우가 머물고 있는 스위트룸 응접실로 안내했다.
“안녕하십니까. 최선우입니다.”
선우는 회장들을 보며 깍듯이 인사했다.
“하하하, 안녕하시오. 최 회장님.”
“반갑습니다. 최 작가님.”
회장들 역시 선우에게 인사를 건넸는데, 그가 손자뻘임에도 불구하고 깍듯이 존대했다.
“모두 바쁘신 분들인데, 이곳까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쩌다 보니 이렇게 다 같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성삼 그룹 총수가 입가에 미소를 살포시 머금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늦었지만 작가님의 두 번째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아!! 감사합니다. 회장님.”
“여기 약소하지만 저희가 준비한 선물이 있습니다.”
그는 선우에게 조그만 상자를 건넸다.
9명의 회장이 함께 준비한 선물이라니 궁금하다.
“운석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습니다.”
“……?!!”
상자를 개봉한 순간 선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 이건!!”
얼마나 놀랐는지 선우는 말까지 떠듬거리고 있었다.
‘트, 틀림없어. 이건 최상급 마나석이야.’
너무 놀란 나머지 마른침마저 꿀꺽 삼킨 것 같다.
지금까지 구한 마나석은 최하급과 하급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정말 운이 좋으면 중급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최상급 마나석이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선우가 대단히 만족했음을 알아차린 것인가?
회장단은 곧 자신들이 그를 찾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찾아뵙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곳을 찾은 9명의 회장은 얼마 전 충격적인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것은 4대 언론사 사건과 더불어 이대박 대통령이 하야하게 된 배경에 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4대 언론사까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DB 정권을 무너뜨렸다니, 내색하지 않았지만 이 같은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은 경악하다시피 놀랐다.
대체 얼마나 힘이 강하면 대통령을, 그것도 정권 초기의 대통령을 하야시킬 수 있을까? 말은 안 했지만 내심 불안해하던 차에 전경련 회장들과의 모임에서 이들은 뜻을 하나로 모았다.
“그렇군요.”
“아!!”
“……이해했습니다.”
선우 역시 그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예상치 못한 그리고 자신에게 너무나 필요했던 선물에 기분이 좋아진 덕이다.
“9.4%.”
“8.8%.”
“25%요?”
“……!!”
“예상은 했었지만……!”
“음!!”
누군가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확한 수치를 듣자 이들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물론 투자 전문 기업 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었지만 그들과 상관없는 해외 투자 그룹과 자본이 보유하고 있는 자사의 주식마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에 경악한 것이다.
‘찾아오길 잘했다.’
‘다행히 선물이 마음에…….’
‘조 비서에게 얘기해서 운석을 더 모아야겠어.’
‘최대 25%. 거기에 플러스알파다. 최선우가 마음만 먹으면……!!’
‘꿀꺽!’
쉽지 않겠지만 국민연금의 도움을 받으면 자사의 경영권 방어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러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저는 단지 대주주라는 이유로 여러 회장님들에게 부당한 것을 요구하거나 기업에 압력을 넣을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이미 경영권 역시 보장해드린다고 계약서에 명시하지 않았습니까? 주식을 매도할 경우에도 현 경영진에 우선권이 있다고 했고요.”
“하지만 4대 언론사에 관해서는…….”
“네.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들이 먼저 절 공격하고 있는데, 제가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선우가 반문에 그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하, 하긴!”
“그건 그렇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뭐 이미 알아보셨겠지만 제가 4대 언론사를 상대했을 때에도 계약 사항을 준수했었습니다. 직접적인 공격은 없었습니다.”
“……!”
“……!”
그랬다.
분명 이 행한 직접적인 공격은 없었다.
단지 의 영향력을 이용한 우회적인 공격을 무차별적으로 행했을 뿐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리켜 차도살인(借刀殺人) 혹은 인우살적(引友殺賊)이라 말한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절 공격하지 않는다면 저 역시 계약 사항을 준수할 겁니다.”
선우의 단언에 응접실을 찾은 회장단의 심각했던 표정이 살짝이나마 풀어졌다. 하지만 선우의 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저 역시 이 자리에 모이신 회장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이요?”
“네.”
“말씀해 보십시오.”
선우는 부드러운 눈길로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상도(常道)에서 벗어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
“음! 상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얘기는 참 포괄적인 말이군요.”
선우의 마음을 확인한 나머지 한결 여유가 생긴 M그룹 총수가 반문했다.
“기업이란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회사를 경영하다 보면 상대방의 목을 조이고 물어뜯는 일이 비일비재하죠.”
“구 회장님 말씀이 맞습니다. 기업이 사회 사업을 하려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 제 말이 그렇게 들리셨다면 유감이군요.”
선우가 눈을 빛내며 다시 한 번 말했다.
“회장님의 말씀을 인정합니다. 다만 제가 인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경쟁 상대와의 싸움에서지 협력 업체나 중소기업이 그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전 부당한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 함께 살자는 겁니다.”
“…….”
“……!!”
M그룹 총수가 쓴웃음을 지으며 생각했다.
과거 이 땅의 수많은 기업들이 협력 업체와의 상생보다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적이 있었다. 어떻게든 협력 회사의 단가를 낮추어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시켰고 중소기업에서 괜찮은 기술을 개발하면 그 기술을 몰래 빼내거나 아예 회사 자체를 통째로 흡수하기도 하였다. 물론 이런 방식을 아직도 고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쩌면 이중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분명히 변하고 있었고 기업들 역시 좋은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었다.
‘경쟁 업체와의 경쟁.’
‘협력 업체와의 상생.’
‘다 함께 잘사는 것.’
사람들은 지그시 눈을 한 번 감는 것으로 저마다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선우는 저들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면서 고개를 들어 저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9명의 회장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들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긴급 회의를 가졌다.
[성삼 그룹]
“아버지. 최선우 회장과의 만남은 어땠어요?”
“나쁘지 않았어. 하지만…….”
회의가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더욱 진중해졌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대책? 어떤 대책? 마땅한 대책이 있나?”
“…….”
[M그룹]
“그가 우리 기업의 주식을 그렇게나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니, 놀랄 일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회장님.”
“자네는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의 조언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의 조언?”
“협력과 상생 말입니다.”
“흐음!”
“그래도 경쟁 업체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았습니까?”
[윤대 그룹]
“이 실장, 10대 재벌과 우리가 힘을 합친다면 가능할까?”
“아니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부자인 동시에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DB 정권을 보십시오. 저들이 힘이 없어 당했겠습니까?”
“……!!”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가 인격자라는 겁니다.”
“인격자?”
“네. 적어도 한 입 가지고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이죠.”
이 무렵 선우는 유럽에 계속 머물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가 좋아하는 독서와 사색을 즐겼고 이와 동시에 앞으로의 일(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더욱이 뜻하지 않게 최상급 마나석이 생기지 않았는가?
이 시기는 정말로 행복한 날의 연속이었다.
“그건 무슨 책이야?”
“이거?”
“응. 못 보던 책 같은데~”
“토마스 바샵의 <파블로 이야기>란 책이야.”
설연의 질문에 선우가 책을 보이며 말했다.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고 그 별은 바로 당신이다.”
“어머~?!”
“꽤 멋진 말이지?”
선우는 <파블로 이야기>를 설연의 손에 쥐여 줬다.
“난 다 읽었으니까, 너도 읽어 봐.”
“오호~ 좋아.”
설연은 선우의 말에 냉큼 책을 가지고 갔다.
호수가 보이는 풍경, 안락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두 사람은 이렇듯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사람들은 후에 선우가 유럽에 머물던 이 시기를 두고 [이태리 작가의 지중해 시기]라고 평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이곳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주옥같은 글을 남겼기 때문이다.
-부모를 여의고 노숙을 하면서도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공부해 명문대 장학생이 된 이야기. 이태리 작가의 신작 소설 <청년 조나단>
-삶은 가끔 출근 시간의 지옥 철을 타는 기분이다. 좀 더 편한 칸을 찾기 위해 몸을 움직여 다른 칸으로 이동하지만 쉬운 칸은 하나도 없고 오히려 더 힘들거나 전 칸과 비슷할 뿐이다. 그럼에도 분명 목적지가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 칸 한 칸 이동할 때마다 힘들어지지 않고 우리의 모습이 밝게 변해 갔으면 하는 것이다. 이태리 작가의 <더 라이프> 중에서…….
-우리는 늙었기 때문에 못 노는 것이 아닙니다. 후회하지 마세요. 그리고 잊지 마세요. 우리는 노는 것을 멈췄기에 늙은 겁니다. 이태리 작가의 신작 소설 <로즈 할머니> 중에서…….
-한 소녀의 대가를 바라지 않은 행위, 곧 ‘나눔’이 사회에 잔잔한 파문을 던지는 이야기. 이태리 작가의 신작 소설
이 시기에 그가 창작한 글은 총 27편에 달했는데, 그 면면을 살펴보면 장편 소설이 9편, 단편 소설이 3편 그리고 에세이가 무려 15편에 이르렀다.
그가 집필한 소설은 대부분 실화 바탕에 그의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졌는데, 여기서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그가 쓴 15편의 에세이가 모두 그가 머물렀던 나라인 스웨덴(1편), 노르웨이(1편), 스페인(3편), 프랑스(4편) 그리고 이탈리아(6편)에 대한 글이라는 것이었다.
한평생 글을 써도 작품을 남기지 못하는 작가들이 있는 반면에 선우의 필력은 정말이지 무서울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