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8화
148화 소설 <저녁이 있는 삶>
비타민P: 인간의 DNA를 복원하고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기적의 약.
<펜 의학 연구소>가 만들어낸 비타민P는 현재 특허청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
만약 우연이라도 비타민P가 숨기고 있는 비밀을 밝혀낼 수 있다면 그는 단숨에 억만장자가 될 것이다.
“그냥 비타민입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이건 그냥 비타민인데요?”
“그게 정말이야?”
“네.”
“다시 해봐.”
“……벌써 10번이나 돌려봤습니다.”
“아니야.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거야. 다시 분석해봐.”
“네, 교수님.”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분석 결과 비타민P가 그저 평범한 비타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비타민과 다른 점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비타민P를 꾸준하게 복용한다면 손상된 DNA가 복구되는 동시에 면역력이 획기적으로 상승한다는 점이 속속히 확인되고 있었다.
“分析の結果、特異な点を見つけられませんでした。”
(분석결과 특이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愚かな奴ら。”
(바보 같은 놈들.)
“見つけ!何とか見つけ出せ。”
(찾아내, 어떻게든 찾아내라고.)
“はい。”
(네.)
거대 제약 회사와 대형 병원은 물론 전 세계 수많은 연구소에서 비타민P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는 동시에 <펜 의학 연구소>를 공격할 방도를 찾았지만 도통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일단 저들을 공격할 명분이 없는 것이다.
<펜 의학 연구소>는 비타민P를 암이나 불치병, 난치병 치료제라 말하지 않았다. 그저 이름 그대로 비타민제로 등록했을 뿐이다. 물론 시중에 풀리는 비타민P의 가격은 한 알에 10만 원이다. 그야말로 엄청나게 비쌌지만 반대로 환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매우 저렴했다. 한 알에 고작 1,000원이었다.
누군가 시중에 풀리는 비타민P의 가격에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이는 곧 사라지고 말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비자의 선택이다.
비싸면 안 사면 되는 것이다.
“한 알에 10만 원이면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일부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환자들에게 저렴하게 공급하지 않았다면 아마 도의적으로 엄청나게 욕을 먹었을 것 같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조심스럽게 묻는다.
“인간의 DNA를 복원해주며 면역력을 높여주는 약입니다. 이름에 비타민이 붙어서 그렇지 사실 10만 원도 싼 거예요. 6개월만 꾸준히 복용하면 웬만한 질병쯤은 걸리지도 않을 텐데 뭐가 문제입니까?”
“그건 그렇지만…….”
“괜찮습니다. 이 가격을 계속 유지하세요.”
“그럼 1:2:7의 비율도 유지하는 겁니까?”
“물론이죠.”
하루 최대 생산량 100만 개 중 10%는 무상 지원을 원칙으로 한다.
100만 개 중 20%에 해당하는 20만 개는 개당 천 원에 판매한다. 판매액 2억.
100만 개의 50%(50만 개)는 개당 10만 원으로 판매한다. 판매액 500억.
하루 판매액은 504억이고 이를 한 달 기준으로 계산하면 1조 5천억이 넘는다.
차 떼고 포 떼고, 기타 잡비를 모두 뺀다 해도 한 달 기준으로 순이익이 1조가 넘었다.
“마지막 20만 개는 해외 판매로 진행합니다.”
“가격은 어떻게 할까요?”
“100달러, 100유로를 기준으로 책정하죠.”
“알겠습니다.”
한편 10월 초가 되자 평택시의 인구가 어느새 100만을 훌쩍 넘어 200만에 육박하게 되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인구수 3~40만에 불과했던 중소 도시가 광역급 도시로 성장한 것이다. 이는 모두 해피 타운과 펜 의학 연구소가 가지고 온 시너지 효과였다.
“여기 땅값이 얼마예요?”
“해피 타운이요?”
“네.”
“해피 타운엔 땅이 없어요. 그 근처 역시 마찬가지고요.”
부동산 사장은 고급 승용차에서 내린 중년의 여인에게 손사래를 쳤다.
“음! 그럼 아파트나 상가는 있죠? 가격은 상관없으니 해피 타운 중심부에 있는 걸로 좀 보여주세요.”
“아파트나 상가는 있는데, 헛걸음하셨어요. 전부 전세나 월세만 있어요.”
“네?”
“매매가 없다고요.”
“……매매가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중년 여인의 놀란 표정에 부동산 사장이 말을 이었다.
“해피 타운에서 건설되고 있는 것들은 죄다 해피 그룹 소유예요. 매매를 위한 분양 자체가 없어요.”
“그게 가능해요?”
“가능하죠. 해피 그룹 사주가 누굽니까? 바로 최선우 작가잖아요. 세계 최고 부자. 돈이 얼마나 많은지, 해피 타운 전체에 매매가 없다고 아예 선언을 했어요. 어딜 가도 똑같아요. 전세랑 월세만 있지 매매는 없습니다.”
“……!!”
서울에서 내려온 중년 여인은 허탈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탔다.
“김 기사.”
“네, 사모님.”
“출발해.”
“……네.”
오늘만 해도 벌써 다섯 명째다.
전국 각지에서 돈을 싸들고 몰려온 아줌마들이 허탕을 치고 올라간 것이 말이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선우가 해피 타운에 일종의 토지 공개념 원칙(완벽하진 않지만)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일부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찬성으로 돌아섰다.
먼저 부동산과 관련된 온갖 종류의 투기가 사라졌다.
또한 주변 도시에 비해 전세, 월세값이 현저하게 저렴했다. 더욱이 신도시라 도시 전체가 깨끗했고 문화, 교육 수준 역시 서울과 비견될 정도로 기반을 갖추었다.
이는 해피 타운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헐! 이 집 전세가 1억이라고?”
“응.”
“대박이다.”
“그렇지~~”
“서울에서 이 정도 수준의 아파트라면 전세금만 해도 5억을 줘야 할걸? 강남이면 10억 이상이고.”
“야! 한 가지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줄까?”
“놀라운 사실? 그게 뭔데?”
“해피 그룹 직원에게는 50% 할인이 돼.”
“……대박!!! 그럼 5천만 원에 들어온 거야?”
“응. 그것도 10년. 장기로 계약했어.”
“짱이다.”
해피 타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해피 그룹에 속한 직원들과 그의 가족들이었는데 선우는 해피 그룹 직원들에게 50%까지 전세금을 지원해 준 것이다. 가뜩이나 직장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직원들은 이번 일을 계기로 한층 더 애사심이 올라갔다.
그리고 이때를 기점으로 유럽과 미국에서 비타민P에 대한 특집 뉴스를 내보냈다.
잡설이 많았지만 결론은 <펜 의학 연구소>에서 출시한 비타민P가 믿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적의 약이 분명합니다.]
[치료약으로도 효과가 있지만 예방약으로의 효과가 더욱 크다고 생각합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결과는 명확하네요.]
[기적의 비타민이 맞습니다.]
[비타민P를 분석하는 중에 0.003%에 해당하는 분석 불가 물질이…….]
방송을 지켜본 세계의 부호들이 달려들었다.
이미 <펜 의학 연구소>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방송에서 공증을 받기 전과 후는 완연히 달랐다.
하루에 100달러, 한 달이면 3,000달러라는 거액이었지만 있는 사람들에게 이 정도는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약이 부족했다.
한 달에 만 달러를 내라고 해도 약이 있다면 돈을 싸들고 달려올 기세였다.
“지금 드셔야 합니다.”
“간호사 양반, 내가 지금 배가 불러서 그러는데, 이따 먹으면 안 될까? 정말 이따 먹을게.”
“안 됩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드셔야 해요.”
약이 부족하자 일부, 그러니까 40%에 해당하는 환자들이 이따금씩 약을 빼돌리려는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약에 대한 관리가 그만큼 철저했기 때문이다.
“내가 소화가 안 돼서 말이야. 조금 이따 먹을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약을 주십시오. 한 시간 후에 약을 가지고 다시 오겠습니다.”
“……아, 아니야! 지금 먹을게. 이제 막 소화가 다 된 느낌이야.”
이와 같은 시각.
비타민P 제조 시설 증설 문제가 대두되었다.
한 달에 순이익이 1조가 넘었다.
그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사업이기 때문이었다.
“불가합니다.”
“왜요?”
“핵심 원료가 부족해서요.”
“아! 그, 그렇군요.”
핵심 원료가 부족하다는 말에 왓슨은 할 말을 잃었다.
그는 비타민P의 핵심 원료가 무엇인지 무척이나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감히 물어보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다. 물어본다고 가르쳐 줄 이유도 없었고 더욱이 이와 같은 기업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그 비밀의 영속성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참고로 Y콜라를 보라.
Y콜라의 제조법은 그 기업이 가지고 있는 최고의 기밀로 제조 비법을 아는 이는 2~3명밖에 없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사 제품이 나와도 Y콜라의 맛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선우는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그리고 그가 꿈꾸는 도시, 그가 꿈꾸는 삶에 대해 서술하기 시작했다.
이태리 작가의 신작 소설 <저녁이 있는 삶>이 서서히 모습을 갖춰갔다.
[……현대화 고도화 인공지능화 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인간성을 잃지 않고 행복하려면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일까?]
철학적인 사색이 가미되었고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고찰에 심취했다.
선우는 인문학, 즉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한 글을 만들기 위해 집중했다.
주인공 광희와 성태는 부자 관계다.
아들 광희는 평생 앞만 보며 걸어간 아버지 성태를 이해하지 못한다.
회사에 충성했지만 돌아온 것은 버려지는 것.
성태는 기계화된 공정에 밀려 정년을 2년 앞두고 회사에서 도망치듯 쫓겨난 것이다.
그날 밤, 부자(父子)는 크게 다툰다.
“그렇게 충성했는데 결국 버려졌잖아요.”
“……그래. 하지만 그것 때문이 아니야.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버려진 거야.”
소주 한 잔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매일 마주쳐야 했던 풍경이 그날따라 어쩐지 어색하다.
며칠 후,
광희는 아르바이트를 위해 여의도에 위치한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그의 시선을 잡은 것이 있다.
출입증. 사람들은 저마다의 얼굴이 찍힌 출입증을 목에 걸고 있다.
문득 그들 속에 섞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언제나 그렇듯 깨달음은 늘 그보다 빨랐다.
-성공은 무엇일까?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달린 문제가 아닐까?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가 되고
-[역경]을 거꾸로 읽으면 [경력]이 되고
-[인연]을 거꾸로 읽으면 [연인]이 된다.
-[내 힘들다]를 거꾸로 읽으면 [다들 힘내]가 되는 것처럼 모든 것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달렸다.
소설 <저녁이 있는 삶>은 두 개의 시선에서 사회를 바라본다.
평범한 가정의 외아들 광희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으며 인생과 성공에 대해 성찰하고 아버지 성태는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고찰한다.
“앞으로 최소한 30년은 더 살 텐데…….”
성태의 자조적인 독백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예전 그의 아버지 세대를 보라.
은퇴는 곧 얼마 후의 죽음을 의미했다. 시절이 그랬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시절 아버지들은 아무 생각 없이, 어떤 대비도 없이 그냥 은퇴한 것이다.
성태는 오래전 은퇴해 두 번째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친구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용기와 희망을 얻고 새로운 시작을 시작한다.
“처음은 당연히 어설프지. 잘할 생각을 하면 안 돼. 자넨 나이가 있지만 이런 일은 처음이잖아. 목수도 좋고 공방도 좋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보는 것도 좋지. 무슨 일을 해도 돼. 다만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일을 하는 게 좋아. 그냥 천천히 배워가며 즐기면서 하는 거지.”
“……그래. 자네 말이 맞네.”
-영어에 보면 [nowhere]라는 단어가 있다.
-이것 역시 다른 의미를 부여하면 [now here]가 된다.
-[nowhere] 아니!! [now here].
-그렇다. 우리는 이제 행복해질 시간이다.
위에서 보듯 선우는 주인공 광희와 성태의 시선을 통해 중간중간마다 자조적인 질문과 독백을 던진다. 그리고 소설의 대미, 광희는 아버지 성태를 찾아와 노을이 번진 하늘을 바라본다. 이때 성태가 이승원 시인의 시를 읊조린다.
푸른 바다 위에 사라진
작은 별들의 목소리
하얗게 수놓은 달빛 아래
조용히 잠이 든다.
아픔을 간직한 그대여,
눈물을 거두어 주세요.
바람이 잠든 곳에 있는 널 기억하겠소.
별들 아래서…….
상처가 있는 곳에 위로와
아픔이 있는 곳에 용서를
기억 속에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
바람이 잠든 곳에서 기억하겠소.
당신의 이름을…….
상처가 있는 곳에 위로와
아픔이 있는 곳에 용서를
기억 속에 모두가 사라진다 해도
바람이 잠든 곳에서 기억하겠소.
당신의 이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