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43화
143화 P를 죽여라
그 해 여름,
이대박 대통령의 측근이 대검 중수부장에 임명되었다.
“준비는?”
“모두 끝냈습니다.”
“D-Day는?”
“삼 일 후입니다.”
“좋아. 그럼 시작하게.”
“네.”
그로부터 삼 일 후,
이들이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그날이 찾아왔다.
그동안 언론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 연광 그룹에 대한 조사의 칼날이 박강현 전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냥한 것이다.
박강현 전 대통령은 물론 그의 가족들이 대검 중수부에 대거 구속 기소되면서 저들의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박강현 전 대통령 검찰에 기소.
-대통령 재임 시 비자금 조성.
-일명 ‘박강현 사람들’ 대거 검찰 소환 그리고 구속.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최악의 언론 플레이가 시작되었다.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다.
모두가 싸잡아 박강현 전 대통령을 비난했고 어디에도 그의 편은 없는 것 같았다.
아니, 사실 그의 편 역시 존재했다.
그들은 단지 권력에 대항할 힘이 없었을 뿐이다.
-박강현 전 대통령 1억 명품 시계 받아.
-명품 시계는 밭두렁에 버렸다.
언론은 박강현 전 대통령을 난도질했다.
후에 밝혀진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모두 ‘라면 논평’이었다는 것이다.
박강현 전 대통령이 이 같은 일을 사전에 알았거나 지시했다는 등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들이 사실로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가정을 해놓고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 무자비한 공격을 가한 것이었다.
-만지지 말아야 할 돈을 만지면 그것은 똥이 되는 것이다. 박강현 전 대통령은 똥을 먹고 자신의 얼굴에 처바르고…….
차마 입에 담기에도 민망할 정도의 공격이 이어졌다.
원 역사에서 박강현 대통령은 이 기사가 나오고 약 10일 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의 죽음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지만 선우의 기억 속에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과연 막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척 넘어가야 하는가?
순간 고민이 되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가 죽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송하 마을로 갑시다.”
“네. 작가님.”
마음을 정한 선우가 송하 마을로 향했다.
“최 작가가 여기에 무슨 일입니까?”
“그냥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
박강현 전 대통령은 선우의 등장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많이 피곤해 보이시네요.”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겠죠.”
“설마 좋지 않은 생각을 하고 계시는 것은 아니시죠?”
선우는 말을 돌리지 않고 그냥 직설적으로 말했다.
“55차례의 가택 연금, 6년의 감방 생활, 두 차례의 망명길, 납치, 사형 선고를 받은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9,000번의 슛을 놓쳤고 300번의 게임을 졌습니다. 그는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슛 26개를 놓쳤고 살아가는 동안 계속 실패를 거듭했죠.”
“……?”
“첫 번째 남자는 그렇게나 혹독했던 겨울을 견디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두 번째 남자는 NBA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불리며 농구 황제가 되었죠.”
“YDJ와 조던을 말하는 것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
박강현은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온 후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귀향해 야인(野人)과 같은 삶을 산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죽게 내버려 둘 순 없었다.
“화무십일홍, 권불십년입니다. 전 인간 박강현을 믿습니다. 그리고 진실의 힘 역시 믿고 있습니다. 진실은 실로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고난이 있어도 언제가 진실은 밝혀지는 법이죠.”
-우우우웅!!
그렇다.
짧으면 5년 길어야 10년이다.
선우는 고심에 빠진 박강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며 아무도 모르게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종의 가사(假死) 상태로 만드는 마법이다.
즉 마법을 써서 그를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릴 계획이었다.
단지 1%일지라도 타살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했기 때문에 선우는 이러한 방법을 생각해 낸 것이다.
“침묵의 장막이 이곳에 내릴지어다. 그리고 그대에게 꿀처럼 달콤한 잠이 쏟아질 것이다.”
불과 10분이란 짧은 시간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선우는 박강현 전 대통령의 몸에 일종의 시간 차 저주 마법을 걸어버렸다. 그리고 선우의 계산대로라면 대략 48시간 후 박강현 전 대통령은 가사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종의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다. 선우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48시간이라는 시간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겼다.
각설하고 볼펜으로 위장된 마법 완드가 다시 한 번 빛이 나며 박강현 전 대통령의 머리로 향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선우는 박강현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현관을 나섰다.
“제가 조그만 선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선물이요?”
“네.”
선우가 자동차 트렁크를 열자 두 개의 커다란 박스가 나왔다.
그것은 생필품과 신선 식품이 가득 들어있는 박스였다.
“아!!”
노양숙 여사는 기쁨을 참는 것이 역력한 표정이었고 박강현 전 대통령 역시 선우의 배려에 고마운 눈빛을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선우는 그 긴 시간 내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판타지 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돌아온 후, 자신은 어떤 소망이 있었는가?
가장 먼저 원했던 것은 아버지의 회사를 구하고 작가로 성공하며 여동생을 낫게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많은 돈을 벌어 떵떵거리며 사는 동시에 베푸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위에 언급한 모든 것을 이미 이루었다는 사실이었다.
선우의 고민은 깊어져 갔고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로부터 48시간 후,
아직 날이 밝지도 않은 이른 시간, 박강현 전 대통령은 새벽녘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을 나서기 위해 운동화를 신었다. 그리고 막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머리가 ‘핑’ 도는 현기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선우가 그의 머릿속에 심어 놓은 씨앗이 발아한 것이다.
-꽈당!
“응?”
갑작스런 상황에 깜짝 놀란 노양숙 여사가 소리를 질렀다.
“여보! 여보!!!”
-뉴스 특보를 알려드립니다. 박강현 전 대통령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박강현 전 대통령은 현재 의식 불명 상태이며…….
예상은 했지만 뉴스를 통해 이 같은 소식을 접하니 심장이 뛰었다.
이와 비슷한 시각,
청와대 참모진이 이대박 대통령의 집무실로 속속히 모여 들었다.
“송하 마을 자택에서 거하던 박강현 전 대통령이…….”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식물인간?”
“네. 대통령님.”
비서실장의 보고에 이대박 대통령은 그야말로 황당하다는 눈치였다.
“대체 왜? 무슨 이유로?”
“그, 그게 주치의에 따르면 과도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일단 모든 계획을 보류하심이 어떨까요.”
“보류?”
민정수석의 말에 이대박 대통령은 어이가 없다는 듯 혀를 찼다.
그를 위해 준비했던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네.”
“이런 젠장! 이렇게 쓰러져 버릴 거면 아예 죽어버릴 것이지 식물인간이 뭐야!”
한편 그를 향한 언론의 난도질 역시 방향을 잃어버렸다.
검찰에 의해 그의 범죄 혐의가 입증되어 실형을 선고받는다 해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식물인간인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이젠 법정에도 세울 수 없으니 검찰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어 버렸다.
더욱이 박강현 전 대통령이 쓰러졌다는 기사가 나온 후, 여론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출혈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뇌사 상태는 아닙니다.
-병세가 악화되면 운명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 깨어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민족은 기본적으로 정이 많은 민족이다.
더욱이 박강현 전 대통령의 죄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가 식물인간 판정을 받고 쓰러지자 여론의 향방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저러다 진짜 죽는 것 아냐?”
“죽어도 싸지. 비리가 엄청나잖아”
“에이~ 그건 아니지. 확인된 사실이 아니잖아.”
“맞아. 정황상 그렇다는 거지. 아직 하나도 밝혀진 게 없어.”
“그, 그런가?”
학교에서 회사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그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인생 참 무상하다. 대통령이었던 분이 저렇게 누워있다니…….”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겠지. 영영 못 깨어날지도 모른다며?”
“응.”
“……불쌍하다.”
“그러고 보니 언론이 너무했어.”
“언론만 문제야? 검찰도 너무했지.”
“맞아, 맞아.”
한편 선우는 노양숙 여사에게 한국대 병원에 있는 박강현 전 대통령을 <펜 의학 연구소>로 옮기자고 말했다.
“펜 의학 연구소요?”
“네. 여사님.”
“기적의 의학 연구소라 불리는 곳이군요.”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저 사람에게도 기적이 필요하니까요.”
노양숙 여사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선우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 지금 당장.”
-투두두두두두두!!
펜 의학 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의료용 구급 헬기가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올랐다. 청와대에서 손을 쓸 틈도 없이 빠르게 이루어진 환자 이송이었다.
선우는 노양숙 여사와 헤어진 직후, 왓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것은 바로 보수 언론에 대한 강력한 제재와 응징이었다.
-광!!
굉음이 터지며 책상이 심하게 흔들렸다.
주선 일보 대표이사 박재일은 보고를 듣고는 믿을 수 없었다.
기업 광고가 전달에 비해 무려 80%가 축소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오늘 오후 20명의 기자들이 일괄적으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와 같은 일이 비단 주선 일보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니었다.
경중의 차이가 있었지만 타 언론사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박재일은 임원들을 불러 모아 긴급 대책 회의를 열었다.
“방 국장, 이게 말이 돼? 단체로 약이라도 빤 거야?”
“죄, 죄송합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알아보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X발!”
“…….”
무거운 분위기로 인해 질식할 것만 같다.
“광고는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왜 이래, 연락은 해봤어?”
“각 기업의 홍보 팀장과 마케팅 팀장에게 연락을 넣어봤는데…….”
“넣어봤는데?”
“……모두들 위에서 내려온 지시에 따른 거랍니다.”
“뭐? 이런 개새끼들이!!”
한두 개의 기업도 아니고 무려 80%에 이르는 광고가 사라졌다.
이건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 행태였고 기업들의 담합이 있음이 분명했다.
* * *
“정 회장님이 도착하셨습니다.”
“윤 대표님도 오셨습니다.”
“조 회장님은?”
“가장 먼저 도착하셨습니다.”
“그런가? 그럼 가세.”
수행 비서의 말에 박재일 대표가 VIP 라운지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윽고 도착한 호텔 VIP 라운지에는 세 명의 남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데 이들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들 모두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의 사주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들의 얼굴에 분노와 짜증이 잔뜩 올라와 있는 상태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