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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142화 (142/187)

◈ 제 142화

142화 중동의 왕자

관조 마법을 펼치자 아랍인의 상태가 눈앞에 나타났다.

‘이건?!’

폐의 일부가 찢어져 흉막 공간(pleural space)에 공기가 유입되고 있었는데 폐에 상처가 난 조직이 폐에 난 구멍을 덮고 있었다.

“폐에 구멍이 났네요.”

선우의 입술이 열렸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깜짝 놀란 의사가 반문했다.

“좌측 폐 부위에 긴장성 기흉이 발생했습니다.”

“뭐라고요?!!”

선우의 말에 의사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아니! 그걸 지금 문진으로 알아냈다고요? 당신 뭐예요?”

“환자의 좌측 폐의 호흡음이 감소되고 있어요. 그리고 타진 시에도 공명음이 크게 들리고 있고 말입니다.”

“뭐, 뭐라고요?!!”

선우의 말에 의사의 안색이 크게 흔들렸다.

“그, 그것만으로 환자의 병명을 판단하기에는…….”

“물론 흉부 엑스레이를 찍어 보면 확실하겠죠. 근데 여기에 그런 장비가 있나요?”

“……!!”

비행기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서, 선생님. 승객분의 얼굴이…….”

“헉!”

“이런!”

아랍인의 얼굴에 청색증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긴장성 기흉인 것 같군요.”

의사도 인정했다.

“어떻게 하죠?”

“삽관을 해야 하는데…….”

“……!!”

선우의 말에 의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렇다. 긴장성 기흉이라면 지금 즉시 기관지 삽관을 시행해야 하는데, 비행기 안에서 삽관이 가능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선우의 음성이 들려왔다.

“볼펜 있어요?”

“네?”

“볼펜이요. 속이 텅 빈.”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한 번 선우에게 집중되었다.

“뭐라고요? 그게 지금 무슨 소리입니까? 설마 18게이지 대신에 볼펜을 사용하겠다는 말입니까?”

“네.”

“말도 안 돼!!”

“……20분이면 이 환자는 죽습니다.”

선우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볼펜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볼펜이요. 어서 가지고 오세요.”

“네. 네…….”

“이봐요! 그만두세요. 그러다 환자가 죽으면 모두 당신 책임이에요!”

“나도 알아요.”

선우는 만류하는 의사의 손길을 뿌리쳤다.

“꼬마 아가씨는 이름이 뭐니?”

“자스민 무하마드 라시드.”

“그래. 자스민. 네 아빠를 꼭 살려줄게.”

선우는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는 스튜어디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제가 전부 책임지겠습니다. 볼펜 주세요.”

“여, 여기…… 있습니다.”

뭔가에 홀린 기분이랄까?

스튜어디스는 떨리는 손으로 볼펜을 선우에게 건네주었다.

“이 이런…… 미친…….”

선우의 귀에는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환자만 보였다.

선우는 우선 볼펜심을 빼고 볼펜의 끝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그러곤 관조 마법을 이용해 재빨리 환부를 파악한 뒤 환자의 전흉부 제2~3 늑간이 정중 쇄골선과 만나는 늑골 직상부에 손을 올려놓았다.

사람들이 보기에 오직 손끝을 이용해 환부를 찾은 모양이었다.

-푸욱!

“어, 어?!!”

“……!!”

‘쉿’하는 소리와 함께 흉막강 내에서 공기가 배출되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감압에 성공한 것이다.

선우는 즉시 구급상자 안에 들어있던 튜브를 삽입했다.

-슥, 슥…… 슥슥!!

선우는 적절히 마법을 섞어 가며 정확한 처치를 선보였다.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최고의 실력이다.

과거 판타지 세계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갈고닦았던(?)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한편 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경탄한 표정이었다.

특히 의사의 표정이 가관이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표정이었다.

‘이건 서젼(surgeon), 그것도 마스터급의 실력이다. 저 동양인은 대체 누구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까지 반쯤 가린 선글라스 덕에 아직 선우의 정체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공항이 어딥니까?”

“네?”

“위급한 상황은 벗어났으나 이건 말 그대로 응급처치일 뿐입니다. 서둘러 병원에 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목적지가 아닌 다른 곳에 착륙하는 것은 곤란한데요.”

선우의 말에 부기장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입니다.”

“그, 그게……. 그건…… 그렇지만…….”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돈 때문인 것 같았다.

하긴 비행기를 목적지가 아닌 곳에 착륙시키게 된다면 최하 수만 불에서 최고 수십만 불의 손해가 날 수 있었다.

“혹시 비용이 문제입니까?”

“……!!”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만약 환자가 비행기에서 사망하게 된다면 그 책임은 온전히 항공사에 있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맙소사!”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다.

“서둘러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그는 서둘러 기장이 있는 조종석으로 돌아갔다.

* * *

우여곡절 끝에 비행기는 인근 공항에 도착했다.

“환자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쪽입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의료팀이 서둘러 움직였다.

“응급처치는 했지만 심장마비가 올 수 있습니다. 서둘러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랍인이 구급차에 실려 이송되는 모습을 보며 선우 역시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한 숨을 토해냈다.

“믿을 수가 없군요. 정말로 대단하십니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니요,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저 환자를 살렸습니다.”

의사는 부담이 될 정도로 감탄한 눈빛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실례지만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요?”

“…….”

선우는 그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병원에서 근무하지 않습니다.”

“아! 그럼 개인 병원을 하십니까?”

“아니요.”

“그러면?”

선우는 조용히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 순간 의사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다, 당신은?!”

“쉿!”

선우는 그를 향해 살짝 미소를 보인 후 다시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그리고 그때였다.

기자로 보이는 한 떼의 사람들이 선우의 눈에 들어왔다.

“저기다. 저 사람들 같아.”

“어서 빨리 찍어.”

비행기 안에서 발생한 응급 상황이다.

이게 작은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요란법석할 일도 아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선우와 의사의 눈빛이 마주쳤다.

그 역시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저기요. 의사 선생님이시죠?”

“…….”

기자의 질문에 선우의 미간이 구겨졌다.

‘휘말리면 골치 아프겠군.’

“전 아닙니다. 여기 이분이 치료하셨습니다.”

선우는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어? 어!! 선생님.”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선우는 무시한 채 재빨리 기내로 발걸음을 향했다.

“저기요. 잠시만요. 선생님!”

“인터뷰 좀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기자들이 따라왔지만 그들은 애석하게도 비행기에 올라올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향해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고 선우는 이번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다음 날,

설연이 급히 선우를 찾았다.

“서, 선우야.”

“왜?”

“이것 좀 봐.”

“뭔데?”

기사의 제목은 이러했다.

-[자하드 왕자를 구하다.]

기사의 제목을 본 선우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아부다부다비 국영 석유 공사의 자하드 왕자가…….

-자하드 왕자는 딸과 함께 극비리에…….

-왕자를 구한 두 명의 의사 중의 한 명은 신원이 밝혀졌지만…….

마침 TV에서도 위의 기사에 대해 한창 떠들고 있었다.

“자하드 왕자의 생명을 구한 의사 중에 한국인 의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이요?”

“네. 그렇습니다. 두 명의 의사 중에서 한 분이 바로 한국인이었답니다.”

아나운서가 말을 받았다.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말에 의하면 한국인 의사는 자하드 왕자를 치료한 후,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듯 그 어떤 답례도 바라지 않고 비행기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와!! 감동이네요.”

“그렇죠. 자랑스럽습니다.”

해외 토픽으로, 훈훈한 미담으로 끝날 일이었지만 상대가 왕자였다.

사람들, 특히 한국 사람들은 그 의사가 누군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그것참 이상하군요.”

“뭐가요?”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날 KE927편에 탑승한 한국인 승객 중에 의사 선생님은 없었어요.”

“네?!!”

기자의 말에 아나운서 역시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늘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위의 미담은 곧 다른 사건에 의해 세인들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얼마 후 자하드 왕자는 극비리에 그의 딸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자하드 알 라시드라고 합니다. 갑자기 찾아와 당황하셨죠?”

“아닙니다. 왕자님.”

“안녕하세요, 마법사 아저씨.”

“안녕. 귀여운 공주님~”

자하드 왕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스민 공주에게 모두 들었습니다. 제 생명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아닙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네. 작가님을 만날 수 있었으니 제 운이 좋았죠.”

자하드 왕자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작가님의 처치가 아니었다면 99% 죽었을 거라고 닥터들이 입을 모아 말하더군요. 비록 의식은 없었지만 다 들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오히려 늦게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주치의가 충분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이렇게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직접 와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죠.”

선우는 고개를 저으며 겸양을 표했다.

“작가님께서 생명을 구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언론에 나서지 않는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

선우는 의사가 아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은 자하드 왕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응급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만약 자하드 왕자가 잘못되었다면 선우는 필시 살인죄를 덮어썼을 것이다.

자신의 안위를 신경 쓰지 않고 일면부지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것이었다.

“왜 그러셨습니까?”

자하드 왕자가 바라보자 선우는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자스민 공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빠를 사랑하는 딸의 눈빛을 외면하기 힘들었습니다.”

“……!!”

“이 어여쁜 공주님이 당신을 살린 겁니다.”

* * *

방탄 차량에 탑승한 자하드 왕자가 창밖의 풍경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서울은 꽤 번화한 도시군.”

“네, 왕자님. 서울은 세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첨단 도시입니다. 아주 놀라운 민족이죠.”

“놀라운 민족?”

자하드 왕자의 반문에 비서가 답했다.

“네. 왕자님.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그 후 폐허가 된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났다고 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1997년에 IMF도 있었지.”

“네. 맞습니다. IMF 역시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조기에 졸업했습니다.”

“…….”

자하드 왕자는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은혜를 입었으니 갚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헌데 최선우 작가는 세계 부호 순위에서 수위를 다투고 있다.

그런 그에게 돈으로 감사를 표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하지만 자신은 일국의 왕자다.

은혜를 입고서 그냥 넘어갈 순 없었다.

“<펜 의학 연구소>라고 했던가?”

“의료 재단 말씀이십니까?”

“그래.”

“예, <펜 의학 연구소>가 맞습니다.”

자하드 왕자는 피곤했는지 아까부터 자고 있는 자스민 공주의 얼굴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공주의 이름으로 재단에 1억 달러를 기부해 주게.”

“……알겠습니다. 왕자님.”

오늘이 만남이 어떤 인연을 불러올지, 그것은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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