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9화
139화 국세청 조사 4국(1)
“선배님.”
구름 한 점 없는 날,
유림 일보의 현관을 나선 한 사람을 뒤쫓는 사람의 목소리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림 일보의 사옥 앞에는 보수 언론사의 연륜을 말해주는 고목이 즐비했다,
“오, 윤 기자.”
“또 취재 나가시는 거예요?”
“응.”
청바지에 체크무늬 남방을 입을 남자는 자신에게 묻는 후배 기자에게 약간 짜증 섞인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그러세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알잖아? VIP 오더.”
“오더 내려왔어요?”
“그래.”
“…….”
가끔 VIP 오더라는 것이 내려온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VIP가 정해 놓은 방향으로 기사를 써 언론을 움직이고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다. 이게 꼭 나쁘다고는 볼 수 없지만, 문제는 기자의 양심에 놓고 봤을 때 가책을 느끼게 하는 일이 종종 있다는 점이었다.
“해피 그룹이요?”
“그래.”
후배 기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서, 선배님. 설마 목표가?”
“맞아. 최선우 작가.”
“……!!”
최선우 작가의 이름이 나오자 후배 기자의 얼굴이 그대로 굳어졌다.
그로부터 며칠 후,
유림 일보 논평에 기업 윤리와 탈세에 대한 의혹이 올라왔다.
그리고 이것이 공격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A사, B사, C사, 이런 식으로 기업의 이름을 표현했는데, 나중에는 H사라는 이름과 함께 탈세를 저지른 기업이 해피 그룹임을 암시하는 기사들이 올라왔다.
“이게 뭔가요?”
“저도 어제 확인했습니다만 우리 얘기인 것 같습니다.”
“……!!”
“이런 일은 시간을 끌면 그룹 이미지에 좋지 않으니 신문사에 연락해 바로 기사를 내리게 하겠습니다.”
“그 정도로 될까요?”
“네?”
“아예 신문사를 고발하죠. 반박 기사도 내게 하고요.”
“아!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때 임원들의 대화를 경청하던 선우가 대화에 참여했다.
“아닙니다. 조금 더 기다려 보지요.”
그의 생각은 사람들과 좀 달랐다.
“당장 반박하면 순간은 모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견제가 들어올 겁니다. 계속된 소모전은 결국 모두를 지치게 만들 뿐이죠.”
“…….”
“……!!”
“하, 하지만 기업의 이미지라는 건…….”
“네, 저도 압니다. 그래도 지금은 기다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또 압니까?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가 모르던 우리의 단점을 파악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며칠 후,
몇몇 보수 언론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해피 그룹이 무대응으로 일관하자 특종에 목마른 몇몇 기자가 일을 키운 것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C 작가 조세 회피 의혹.
-불법과 탈세의 현장, ** 플렉스 사업.
이뿐만이 아니다.
과거 YDJ정권 시절 해피 타운 건설과 관련된 특혜 시비와 의혹까지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뭐라고?”
국세청 특수부라 불리는 서울 지방 국세청 조사 4국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쳐 회계 장부와 컴퓨터 일체를 가지고 갔다는 소식에 해피 플렉스의 조원형 사장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가 누군지 알아?’
‘10원 하나라도 탈세했다면 가만두지 않겠어.’
‘이것들아! 조사하면 다 나와.’
‘흥! 꼴좋다. 어떻게 될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흐흐흐!’
조사 4국 직원들은 털어서 먼지 나지 않는 기업이 있을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사장님!”
“일단 진정들 좀 하게. 이런 일에 대비하지 않았었나?”
“네, 알겠습니다. 그,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죠?”
“……일단 매뉴얼대로 행동하자고!”
조원형 사장은 그 길로 사무실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했다.
한편 이와 같은 일은 비단 해피 플렉스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시각 해피 그룹 본사 역시 국세청에서 출동한 공무원들로 시끌벅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저들의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었다.
“뉴스 특보를 알려드립니다. 해피 그룹 본사가…….”
“국세청의 전격적인 압수수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해피 그룹은 최선우 작가가 오너(owner)로 있는 국내 기업으로 작년 매출액 기준 대한민국 재계 순위…….”
언론을 이용한 대대적인 플레이에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왔다.
-<글 잘 쓰고, 돈 많고, 축구 잘하고 하지만 도덕성 결여>
-<돈만 아는 억만장자>
-<이중인격자, 탈세의 주범>
-<600억 달러를 가진 도둑놈>
-<우리가 속은 두 얼굴의 사나이>
-<문제의 중심, 이태리 작가는 여전히 묵묵부답>
-<벙어리가 된 것인가?>
한국은 인터넷 문화가 널리 퍼진 국가다.
선우의 글을 사랑하고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사람들은 아직 확인된 사실이 아니니 자중하자는 목소리를 냈지만 누군가의 조직적인 댓글 공작에 의해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며칠 사이에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엄청나게 덩치를 키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일을 주도했던 국세청 조사 4국의 표정은 난감하기만 했다.
“이게 뭐야?”
“털어서 먼지가 나오지 않는 기업도 있나?”
“미친!! 이건 우리가 환급을 해줘야 할 판이잖아.”
한마디로 말해 국세청 조사 4국은 지금 어이가 없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다들 당분간 퇴근할 생각 하지 마!!”
“사돈에 팔촌까지 싹 뒤져.”
이와 같은 시각,
선우는 모종의 거처에서 왓슨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작가님,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우리가 잘못한 게 있나요?”
“그, 그건 아니지만…….”
세금에 관해서라면 철저하게 관리했다.
절세할 수 있는 부분도 일부러 절세를 하지 않고 세금으로 냈다.
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아무리 세금을 철저하게 냈다고 해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지금 왓슨의 심정이 그랬다.
그의 복잡한 시선을 느낀 선우가 입술을 열었다.
미리 계획한 일이기는 하지만 왓슨에게까지 말하지 않은 건 왠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선우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왓슨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럼?”
“국세청 조사 4국이라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찾아낼 겁니다.”
선우는 확신하듯 말했다.
“여론은 다시 한 번 뒤집힐 것이고 이대박 정부는 재임 기간 중 함부로 해피 그룹을 건드리지 못할 겁니다.”
“……!!”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사뭇 기대가 되는 순간이었다.
이와 같은 시각,
민정수석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것은 마치 앓던 이가 빠진 듯한 얼굴이었다.
“수백억이요?”
-네.
“다른 회사의 이름으로 수백억이 지출되고 있었단 말이죠.”
-그렇습니다. 현재 조사 중에 있지만 비밀 회계 장부의 규모가 상당합니다. 천억이 넘을 것 같습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국세청장과 의기투합해 일을 진행했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아 불안했던 찰나였다.
그런데 천억! 천억이라니!!
이 정도 자금이라면 이건 보나마나 100%다.
비자금을 조성했거나 분식 회계를 통해 횡령을 저지른 것이 분명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제 일을 했을 뿐입니다.
국세청장은 그의 혓바닥을 아주 기름지게 놀렸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하명해 주십시오.
“오늘 저녁에 터트리죠. 그리고 모레 정도에 긴급 체포하는 겁니다. 그게 그림이 가장 멋질 것 같네요.”
-알겠습니다. 그럼 기사를 흘리겠습니다.
이날 저녁,
최선우 작가의 비자금, 횡령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
-<충격! 이태리 작가 비자금의 실체>
-<영국령 버뮤다섬에 있는 아틀란티스 재단>
-<현재 밝혀진 금액만 수천 억 이상>
다음 날,
더욱 구체적인 정보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삼삼오오(三三五五),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열에 아홉 선우에 대한 얘기로 시끄러웠다.
-젠장! 돈이 그렇게 많으면 뭐 해?
-그러게 말이야.
-최선우,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실망이다.
-와!! 하여튼 있는 것들이 저 지랄이야!!
-전 오늘부터 이태리 작가 펜클럽에서 탈퇴합니다.
⤷저도요.
⤷전 아까 탈퇴했습니다.
선우의 비자금 소식이 대한민국 전역을 들끓게 하자 해피 그룹에는 비상이 걸려 버렸다. 아무리 그의 명성이 높고 인기가 하늘을 찌른다 해도 도덕성의 타락은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지탄을 받기에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쾅!
단단히 화가 난 듯 규용이 술잔을 강하게 내리쳤다.
“형님, 이럴 수 있습니까?”
규용은 사돈 관계에 있는 한상우 의원과 술잔을 맞댔다.
“아직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았잖아요.”
“…….”
“제가 선우에게 물어봤습니다. 정말 비자금이 있느냐? 그랬더니 아들을 믿으라고 하더군요.”
규용이 이렇게 분노하고 있는 것은 언론사들의 도를 넘은 추측성 보도 때문이었다.
수상한 자금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국세청의 발언만 가지고 온갖 추측성, 비난성 기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간 선우가 사람들을 위해 한 일이 얼마인데 도둑놈이란 딱지를 붙이다니, 아버지인 그로서는 분통이 터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아봤는데, 아무래도 위에서 움직인 것 같더군.”
“위에서요?”
“그래. 정권이 바뀌었으니 사람들을 길들이기 위한 본보기 같은…….”
“형님!! 본보기라뇨!”
흥분한 규용이 외쳤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그게 말이 됩니까?”
“동생. 진정해. 확실한 건 아니야. 돌아가는 판세가 그렇다는 거지. 현재 나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일단 진정 좀 하고 기다려 보게. 오히려 선우는 의연한데 자네가 더 흥분했군.”
“……네.”
이와 같은 시각.
해피 그룹 본사 앞은 난데없이 등장한 시위대로 혼란스러운 모습이다.
피켓을 들고 나온 몇몇 시민 단체의 모습에 선우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최선우, 지금이라도 죄를 고백하라.
-탈세의 주범.
-부끄러운 태리 포터.
더욱이 언론사들의 편파적인, 아주 편향적인 기사에 그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저들은 지금 뭔가를 단단히 착각하고 있었다.
그들 기업의 최대주주가 누구인지 말이다.
“어떻게 할까요?”
“자료는 충분히 모았나요?”
“네.”
“그럼 시카고 로펌과 국내 주요 로펌에 공동으로 의뢰하세요. 상대는 KBC, MBS, SBM 방송국과 4대 언론사입니다.”
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조사 4국이라면 이제 곧 장부에 숨겨진 진실을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때 반격합니다.”
선우의 이빨이 ‘뿌드득’거리는 소리에 왓슨은 문득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 * *
국세청 조사 4국의 에이스 조사관 김유승은 평소와 다름없이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면서 컴퓨터를 켰다.
“그럼 이제 2차전을 시작해 볼까?”
비밀 회계 장부를 통해 무려 1조라는 천문학적인 비자금을 찾아냈다.
이제 이 돈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 만약 사용되었다면 어디에 사용되었는지 알아내야 한다. 숨겨진 돈을 찾는 것이 가장 힘들지 돈의 사용처를 찾는 것은 그보다 수월했다.
김유승 조사관은 하이에나와 같은 눈빛으로 숫자와 전쟁을 이어갔다.
그렇게 한참이 흐른 순간, 그의 눈이 반짝였다.
“후후후~ 여기다!!”
본능적으로 일종의 감이 느껴졌다.
마우스를 터치하는 그의 손길이 빨라졌다.
-틱, 틱틱, 틱! 틱! 틱!!
“……?!”
그런데 무슨 일일까?
마우스를 클릭하면 클릭할수록 그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게 뭐지?”
-꿀꺽!!
경악할 만한 사실을 확인한 김유승 조사관은 곧바로 그의 직속상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보고를 받은 국세청장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