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4화
134화 마블 그리고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무모한 도전인가 아니면 이유 있는 선택인가?
현재 사양 사업으로 추정되고 있는 만화 사업에 누군가 엄청난 거액을 투자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일부에서는 미쳤다는 말까지 흘러나왔을 정도였다.
“미친 것 아니야?”
“사양 산업인 만화책 사업에 누가 투자를 해?”
“마블의 주가가 얼만 줄이나 알아?”
하지만 얼마 후, 이번 투자의 주체가 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상황은 곧 반전됐다. 오히려 투자자들의 초미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 그동안 이 보여준 결과가 늘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특종 냄새를 맡은 기자들 역시 마블사에 우르르 몰려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마블, 영국계 투자회사 으로부터 10억 달러 투자 유치.
-영국계 투자회사 마블의 최대 주주 등극.
-마블이 보유한 5,000개의 캐릭터 영화화.
(소니에게 팔린 스파이더맨과 20세기 폭스에 팔린 엑스맨, 판타스틱4 제외)
언제나 같은 행보를 보인 만큼 투자회사 은 이번에도 마블의 경영권을 그대로 보장해 주었으며 만약 마블의 주식을 팔 경우 저들에게 우선권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리고 다음 날,
또 다른 특종이 흘러나왔다.
마블사에서 자사의 만화를 영화로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오디션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아이언 휴먼>, <아메리카 캡틴>. <녹색인간>, <번개 망치> 등.
사람들은 마블 스튜디오에서 발표한 첫 라인업에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대박!”
“얘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슈퍼맨과 배트맨의 시대는 이제 끝난 건가?”
“우와아!!!”
“누가 제일 셀까?”
“당연히 녹색인간이지.”
“무슨 소리. 번개 망치는 신이잖아. 신이 가장 강해.”
“아니야. 제일 강한 건…….”
영화의 제목만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장이 뛰게 만든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LA 다운타운.
“어서 와.”
“오래 기다렸나?”
“아니, 나도 좀 전에 왔어. 술은 뭐로 할래?”
“고맙군. 그런데 술은 됐어. 약물 치료 중이거든.”
로버트 다니엘 주니어는 술잔을 드는 대신 술병을 들었다.
“대신 내가 따라주지.”
-쪼르르.
“이태리 작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어?”
“이미 왔어.”
“그래?”
로버트가 고개를 돌리며 주변을 살피자 톰 제라즈가 말했다.
“중요한 전화가 왔다고 밖으로 나가더군.”
“중요한 전화?”
“와이프 전화.”
“웁스! 그것참 아주 중요한 전화로군. 큭!”
“후훗!”
몇 시간 후,
테이블에는 거액의 숫자가 담긴 계약서가 놓여 있고 5명의 사내들이 앉아 있었다.
선우를 비롯해 톰 제라즈와 로버트 그리고 두 명의 변호사다.
“총 10편에 대한 출연 계약서입니다.”
선우는 전속 계약서 2부를 내밀며 말했다.
“편당 출연료는 주인공일 경우 1,000만 불이며 조연으로 출연할 경우에는 500만 불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러닝 개런티는 물론 초상권 사용에 따른 비용도 따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음!!”
계약서를 살펴본 로버트의 입에서 짧은 신음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자신이 가진 이름보다 월등히 높은 계약 조건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면 그 순간, 최소 5,000만 달러를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영화가 히트한다면 러닝 개런티와 초상권 등으로 1억 불, 아니 그 이상도 벌 수 있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네.”
“놀랍군요. 한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말씀하십시오.”
선우의 허락에 로버트는 가만히 선우를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왜 저죠?”
“…….”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 질문이다.
톰 제라즈 역시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선우를 바라보았다.
선우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답했다.
“한 번을 생각해도 열 번을 생각해도 당신이 바로 아이언 휴먼이었기 때문입니다.”
“……!!”
로버트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는 펜을 들고 곧바로 계약서에 사인했다.
“감사합니다.”
“축하합니다. 우리 한번 잘해봅시다. 그리고 이건 당신을 위해 준비한 조그만 선물입니다.”
“선물이요?”
선우 품에서 조그만 약통을 꺼냈다.
“서, 설마?!!”
톰과 로버트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거 맞지?”
오히려 톰이 더 난리다.
“펜 의학 연구소에서 만든 거지? 그 뭐야!! 인간의 면역력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어 준다는 약!”
“맞아요. 톰.”
“내, 내 것은 없어?”
“후후후~ 톰. 당신 것도 당연히 있죠.”
선우가 한 통을 더 꺼내들자 만면에 그제야 환한 미소를 보이는 톰이다.
“아직 시판되려면 멀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이건 내부용이에요.”
선우는 두 사람에게 각각 한 통씩 건넸다.
“약물 치료 중이라 들었는데, 아마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180알, 삼 개월 분이니 하루에 한 알씩 꼭 챙겨 드십시오.”
“역시~ 내가 이래서 우리 선우를 좋아한다니까! 하하하!”
톰의 너스레를 끝으로 세 사람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 날의 만남을 이어갔다.
얼마 후,
아메리카 캡틴의 크라이스트 에반스, 녹색인간의 마크 버팔로, 번개 망치의 크리스 헴프스, 록키 히들스턴, 케이트 블레셋, 기네스 그린펠트로 등의 배우들 역시 선우가 제시한 계약서에 기꺼이 사인했다. 현재 저들이 받고 있는 대우보다 월등한 출연료에 흥행에 따른 러닝 개런티를 약속했기에 누구 하나 계약서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 * *
뉴욕 JFK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오는 사람들 중 한 청년이 눈에 띈다.
“하이, 마크.”
“하이~ 선우! 그동안 잘 지냈지?”
“그럼, 덕분에.”
선우가 만난 이는 바로 마크 주커스버그, 하버드 대학을 중퇴하고 얼굴-책을 개발한 천재다. 아마 2006년이었나?
선우는 얼굴-책에 투자하기 위해 직접 마크를 찾아갔었다.
-(마크)투자요?
선우가 제시한 금액을 듣는 순간 마크의 눈이 동그래졌다.
-(선우)당신에게 5억 달러를 투자하겠습니다.
-(마크)켁! 켁켁켁!!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예상한 투자 예상액은 약 1,000만 달러 정도였다.
그런데 5억 달러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회사를 창립한 지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고 사용자도 1,000만 명에 불과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선우)마크, 난 당신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마크)저도 저의 성공을 확신합니다. 다만 시간이 필요할 뿐이죠.
사실 마크는 얼마 전, 일본의 야호가 회사를 통째로 넘기라며 인수 자금으로 10억 달러를 제시한 일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마크는 그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그가 생각한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제 손을 잡으세요. 시간이라는 이름에 날개를 달아드리겠습니다.
-……!!
선우는 2004년 5억 달러, 2005년에 5억 달러, 2006년에 또다시 10억 달러라는 거금을 투자했다. 총 20억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돈이었고 그 덕에 얼굴-책 주식의 40%를 양도받았다. 물론 경영권은 마크에게 있고 말이다.
참고로 마크는 현재 얼굴-책 주식의 44%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상의할 게 있었는데, 마침 자네가 미국에 있다고 해서~”
서로 대화를 하면서 걷던 두 사람은 어느새 공항 밖으로 나왔다.
청사 밖에는 최고급 리무진이 정차해 있었는데 두 사람을 발견한 경호원들이 서둘러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탑승하자 차는 곧바로 출발했다.
“IPO를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IPO(Initial Public Offering), 기업공개를 말하는 거야?”
“응.”
“……!!”
선우의 개입에 의해 얼굴-책의 역사가 달라졌다.
무려 수년이나 기업공개가 앞당겨진 것이다.
“선우, 어떻게 생각해?”
“필요하다면 해야지.”
선우가 마크에게 물었다.
“기업 가치는 얼마나 나왔어?”
“800-1,000억 불.”
“지분율에 대한 변동이 있겠지?”
마크의 대답이 이어졌다.
“응. IPO를 하면 우리 지분율이 떨어질 거야.”
“예상은?”
“난 34%, 넌 30%.”
“1,000억 달러 기준이면 340억 달러와 300억 달러군.”
“맞아.”
20억 달러를 투자해서 300억 달러가 됐다.
사실 선우가 눈앞의 이익만을 쫓아 영악하게 투자를 진행했다면 수백 배의 이익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보다 마크라는 천재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선우 역시 알지 못했지만 다가올 미래 얼굴-책의 가치는 1,000억 달러에 그치자 않는다. 무려 5,00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이 흘러 대한민국에는 어느덧 대통령 선거 날이 다가왔다.
“이대박 후보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와아아~~”
“꺄아악!!”
“이대박! 이대박!!”
“이대박~~ 이대박!! 이대박~~!!”
한민족당의 당사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다.
“중앙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19일 오후 11시 15분 현재 이대박 후보는 968만 6,994표를 얻어 48.0%의 득표율로 2위인 정서형 후보와의 표차를 427만 7,859표까지 늘렸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17대 대선 결과를 지켜본 선우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정치를 해보지 않겠냐는 박강현 대통령의 제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정치, 정치라…….’
100% 생각이 없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선우 역시 아주 조금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27살에 불과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선우는 정치를 하려면 적어도 서른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논어 위정편에 따르면 20세는 약관(弱冠)이라 했다. 즉 갓을 쓰는 나이라는 것이고 30세는 이립(而立)이라 했다. 바로 마음이 확고하게 도덕 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나이라는 뜻이다. 불혹이나 지천명에 이르지 못하지만 적어도 이립이면 정치판에 나서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네.”
선우의 등 뒤로 설연이 다가와 꼭 안아주었다.
“그러게.”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기업인 출신이 대통령이 됐으니 우리나라 경제가 더욱 좋아지겠지?”
“……그렇겠지.”
선우는 조용히 뒷말을 삼켰다.
‘뭐,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니까 미래를 예단할 수 없겠지.’
“그런데 우린 언제 한국에 가?”
“언제 갈까?”
“일 다 끝났어?”
“응.”
“꺄아아~~”
“좋아?”
“응. 좋아. 이제 미국도 슬슬 지겨워질 참이었거든.”
“후후후~ 그럴 줄 알고 비행기 표 사놨지.”
“어머머! 이 센스쟁이 같으니~”
“모레 출발이야. 그러니까 내일은 하루 종일 쇼핑이나 하자고.”
“꺄아악~~ 사랑해~”
“나도 사랑해~~”
두 사람의 얼굴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서로의 입술이 포개어졌다.
그것은 깊고 진한 입맞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