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33화
133화 기적이 행해지는 곳
평택 고덕에 지어진, 최대 7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사람들로 인해 가득 찼다. 바로 오늘 이곳에서 선우와 설연의 결혼식이 거행되기 때문이다.
저 멀리 단상에 주례를 맡은 정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보이고 결혼식 사회를 맡은 MC 박동엽도 보였다.
좌측에 마련된 VIP 좌석에는 선우와 설연의 일가친척이 나란히 앉았고 우측에 마련된 VIP 좌석에는 얼굴만 봐도 알 수 있는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착석했다.
이들이 대동한 경호원을 제외하고 오늘 결혼식의 경호를 맡은 인력만 대략 천 명이 넘었다고 하니, 정말로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었다.
“자, 웃으세요. 치즈~~!!”
“다음은 신랑신부 직계 가족분만 나오세요.”
“친구님들 모두 나오세요.”
사진사의 적절한 멘트가 이어지는 가운데 사람들이 대거 몰려나왔다.
“어? 어…… 어……!!”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세계적인 명성을 지닌 사람들이 모두 선우의 친구를 자처하며 단상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일단은 작가님들부터 찍을게요.”
노련한 사진사는 곧장 사태를 수습하며 하객들의 웃음을 유도했다.
“자~ 다음은 할리우드에서 오신 분들입니다.”
“이번엔 가수분들 찍을게요.”
“그런데 누가 부케를 받죠?”
-번쩍! 번쩍!!
-번쩍!!
결혼식에 초대받은 국내외 기자들의 카메라 셔터가 연신 불을 뿜어냈고 선우와 설연은 사람들의 축복과 환호를 받으며 신혼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얼마 후,
스티븐 조이에 대한 기사가 전 세계 언론에 대서특필(大書特筆)되었다.
-[스티븐 조이 췌장암 재발]
-[조이, 펜 의학 연구소에 임상 대상자로 참여]
이것이 바로 기적의 연구소의 진정한 시발점이었다.
“자~ 이번엔 어떤 환자입니까?”
“홍경래. 남성, 54세. 반신불수입니다. 사 개월 동안 꾸준히 치료를 했고 많이 호전되었습니다.”
“한 달 후면 퇴원할 수 있겠군요.”
“네. 현재 상태를 보면 그렇습니다.”
-달칵!
차트가 넘어가며 다른 사람의 얼굴과 나이, 병명이 나왔다.
“이화연. 여성, 19세. 백혈병입니다.”
-달칵!!
“……스티븐 조이, 췌장암이 재발했습니다.”
MRI를 확인한 연구원들의 표정이 심각하다.
헛웃음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이건 꽤 심각한데요?”
“……완치가 가능할까요?”
“우린 최선을 다하는 거지.”
선우는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펜 의학 연구소를 찾았다.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소장님.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선우가 왔다는 소식에 허드슨 소장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그동안 불치병, 난치병으로 판정된 이들을 치료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그는 바로 최선우다.
허드슨 소장은 펜 의학 연구소에 취임한 후, 선우와의 첫 만남을 잊을 수 없었다.
“이게 뭐죠?”
“비타민입니다.”
“비타민이요?”
“네.”
잠시 후,
선우가 가지고 온 비타민을 살펴본 허드슨 소장의 턱이 빠질 듯 떨어졌다.
분자식과 작용 기전, 수용체에 작용하는 증상을 정확히 설명하며 그에 따른 해결책, 즉 개선 약물에 대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P-80c입니다.”
“P-80c?”
“네.”
“P-80c에 작용하는 메커니즘이 뭐죠?”
“메커니즘을 알려면 먼저 분자식부터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선우는 비타민에 포함된 P-80c에 대해 부연 설명을 했다.
“……?!”
“……!!”
“……?!”
허드슨 소장을 비롯해 의학 연구 분야에서 최고라 할 수 있는 여러 명의 부소장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그들의 눈에 커다란 파문이 일어났고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찾아왔다.
한마디로 압도적!
그 말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충격적이군요.”
“아직 완성품이 아닙니다. 다만 비타민을 환자들에게 꾸준히 복용시킨다면 그 효과는 놀라울 겁니다.”
“동의합니다.”
“이론상으로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저도!”
선우는 그들의 반응을 보며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실험을 해봐야겠죠. 이건 박사님들이 하셔야 할 숙제입니다.”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허드슨 소장과 부소장들이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만든 펜 의학 연구소가 아닌가?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 결과.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 결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와 관련된 논문들이 세계 3대 임상저널 학술지인 자마(JAMA), 란셋(Lancet), NEJM(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야?”
“마, 말도 안 돼.”
“헐!!”
이뿐이 아니다.
선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또 다른 연구진이 기존 신약 개발에서 가장 중요한 구조로 활용된 특정 단백질 구조가 신약 개발에 가장 적절한 모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새로운 모델까지 제시했다.
“G 단백질 수용체요?”
“네.”
“어떤 연구 기법을 사용하셨나요?”
“Pulsed labeling HDX-MS입니다.”
“……아!”
-G 단백질 수용체(GPCR)
의학 기자들이 펜 의학 연구소가 배포한 관련 자료를 정독했다.
이것은 전 세계 신약 개발의 패러다임을 바꿀 위대한 발견이었다.
“GPCR은 외부 신호와 결합해 세포 내 반응을 유도하기까지의 순차적인 구조 변화를 규명하고 약물 개발에 활용될 수 있는 G 단백질수용체의 구조를 제시합니다. 세포막의 문지기라고도 불리는 G 단백질 수용체는 외부 신호를 감지하면…….”
“믿을 수…… 없어.”
“……대박!!”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후,
유럽 연합의 공식적인 발표가 전 세계 의학계를 뒤흔들었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공신력이 실로 대단했기 때문이었고 이는 곧 불에 기름을 부은 형상이었다.
-[펜 의학 연구소에서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밀 검사를 한 결과 저들의 치료가 인간이 내제하고 있는 면역력,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시켰다는 점을 확인했습니다. 환자들의 손상된 DNA가 치료되었으며 면역력 역시 획기적으로 상승…….]
그동안 펜 의학 연구소에서 일어난 몇몇 기적에 대해 불신의 눈빛을 보내던 일부 의학자들 역시 유럽 연합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자 재빨리 태도를 바꿨다.
-[펜 의학 연구소에 대한 탐구]
-[면역력의 회복]
-[불치병, 난치병 환자들의 이데아]
-[서양의 의학과 동양의 의학이 만나 기적을 이루는 곳]
그리고 그로부터 6개월 후,
펜 의학 연구소에 대한 기사가 또 다시 전 세계 언론을 휩쓸었다.
-[스티븐 조이 완치]
“췌장암이 재발해 펜 의학 연구소에서 치료를 받던 스티븐 조이 씨가 오늘 오후 건강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 세계 의학계가 놀라고 있는 가운데…….”
기자들이 전한 빠른 소식에 사람들 아니 환자들이 대한민국 평택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펜 의학 연구소는 엄밀히 말해 병원이 아니다.
다시 말해 환자들이 찾아온다고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초대받지 않은 불나방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선배, 여긴 왜 이렇게 경비원들이 많나요?”
취재를 온 기자 한 명이 선배에게 물었다.
“많긴 하지. 근데 내가 듣기로 더 증원한다고 하더라.”
“여기서 더요?”
“응.”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일이라 이렇게까지 말하긴 싫지만 이게 엄청난 부가가치가 있는 사업이잖아. 치료제가 나와 봐. 내가 대통령이었으면 아예 이 옆에다가 군대를 주둔시켰을걸.”
“아!!”
그의 말이 맞다.
펜 의학 연구소가 보여주고 있는 행보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시점이었다.
전 세계의 기관과 거대 기업 등에서 나온 정보 사냥꾼들이 치료제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고 이 점 또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선우는 이와 같은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펜 의학 연구소를 아예 요새처럼 만들어 버렸다. 물론 가장 중요한 비타민 숙성 시설 역시 오직 선우만이 출입이 가능케 했고 말이다.
“그러게. 치료제가 나오면 진짜 대박이겠다.”
“임상 실험이 성공했으니 당연히 준비하겠지. 비싸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흐흐~”
“그러게.”
펜 의학 연구소가 있는 평택의 해피 타운은 한국인은 물론 전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는 외국인으로 인해 도시 전체가 북적이기 시작했다. 모두 의학 연구소의 임상 대상자가 되기 위해서다.
“여기, 병명을 적어 주세요.”
“1주일은 기다리셔야 합니다.”
“현재 난치병, 불치병 환자 위주로 임상 대상자로 받고 있습니다.”
“네,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죄송합니다. 심사 대기자가 많아서요.”
평택 소재 호텔 객실 점유율은 거의 100%에 육박했고 외국인들로 인해 인근 도시(천안, 병점, 오산, 수원 등)의 관광 수입마저 수직으로 상승했다.
한편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정치인들의 눈빛에 참을 수 없는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황금 알을 낳은 거위군요.”
“쳇! 그러면 뭐 합니까? 당최 만나주질 않아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아주 버릇이 없어요. 전화하면 맨날 해외에 있다고 하고! 이건 뭐 성삼의 박건희 회장보다 만나기 힘듭니다.”
“하하하. 진정하십시오. 우리만 못 만나는 것아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알아보니 대통령을 제외하면 그 어떤 정치인과도 교류가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대박 후보의 말에 분위기가 진정되는 느낌이다.
“한상우 의원은요?”
“하하하~ 거긴 예외로 쳐야죠.”
“쩝! 아무리 그래도 이건 우리 당과 후보님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박 의원님. 전 괜찮습니다.”
“아닙니다. 지금은 잠시 넘어가지만 후보님께서 당선만 되시면 그때 한번 봐……야죠.”
“허허허, 전 괜찮다니까……요.”
이대박 후보는 여전히 사람 좋은 미소를 보이고 있었지만 사실 그 역시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섣불리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세계적인 명성과 천문학적인 재산을 뒤로하고도 영국 귀족이라는 신분에 그는 미국 시민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간.
박강현 대통령의 예기치 않은 방문에 선우가 깜짝 놀랐다.
“대통령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하! 나는 그냥 작가님 얼굴 보러 오면 안 됩니까?”
그는 선우의 놀란 모습에 소탈한 웃음을 터뜨렸다.
“안 되긴요. 언제든 와도 좋습니다.”
“하하하! 말만으로 고맙소!”
그의 얼굴에 주름이 한가득이다.
선우는 내심 사람 좋아 보이는 저 주름진 웃음이 박강현 대통령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쪼로록!
박강현 대통령은 선우가 직접 따라준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들이킨 후, 그를 찾아온 용건을 밝혔다.
“최 작가는 혹시 정치에 관심이 있나요?”
“정치 말입니까?”
“그래요.”
박강현 대통령이 눈빛을 반짝였다.
“내가 운이 좋아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번에는 결과가 다를 것 같아서 말입니다.”
“…….”
하긴 이번 대선에서 야당은 이대박 전 서울 시장을 대선 후보로 확정했다.
그는 현재 각종 여론 조사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나이도 어리고 아직 할 일도 있어서요.”
“그렇겠죠.”
느닷없는 정치 얘기에 선우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괜한 얘기를 해서 곤란하게 만든 것 같군요.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씨익!
“참! 이건 개인적인 질문인데 곤란하면 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펜 의학 연구소에서 만든 치료제가 있지 않습니까? 언제쯤 출시되는 겁니까?”
“…….”
박강현 대통령의 질문에 선우는 한 박자 쉰 다음 답했다.
“현재 준비 중에 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시중에 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오~ 좋은 소식이군요. 알겠습니다.”
사실 상급 마나석을 구하기 전까진 대량 생산이 어렵지만 그렇다고 사실을 곧이곧대로 얘기할 순 없었다.
각설하고 박강현 대통령은 사람 좋아 보이는 그 주름진 미소를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선우는 돌아가는 대통령의 뒷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