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9화
129화 환율 전쟁과 저격
모두가 잠든 시간,
선우의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이번 전쟁(?)을 주도하면서 다시 한 번 돈이 가진 위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슥슥슥!
“화폐는 사람이 만들어낸 상품이다. 그런데 화폐는 사람들이 만든 다른 상품과는 다른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넘어 개인과 인종은 물론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점이다. 좀 더 깊숙이 들어가 보면 종래에는 결국 화폐(발행권)를 통제한다는 것이 곧 모든 종류의 독점 중 최고의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 <최고의 독점>은 중견 금융 가문에서 태어난 주인공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거대 금융 자본가로 변모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인위적인 통화 팽창, 긴축, 거대 세력이 짜놓은 각본대로 움직이는 금융사들.
선우는 다니엘의 눈을 통해 금융계의 추악한 현실을 비판하는 동시에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서스펜스 스릴러를 가미했다.
하지만 소설의 명제는 하나다.
환율 전쟁, 주식 전쟁, 금융 전쟁에서 손해를 보는 건 언제나 개미(절대 다수의 국민)들이란 사실이다.
1부에서는 돈의 탄생과 세계 경제의 흐름을 보여준다.
2부에서는 전 세계를 덮친 각종 금융 위기를 논한다.
3부에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한 중국과 그에 따른 미국 월가의 대응을 예견한다.
그리고 시리즈 마지막 4부에서는 또다시 시작된 독점 전쟁을 이야기했다.
점심시간,
정장 차림의 비슷한 스타일의 사람들이 서점가에 몰렸다.
이들은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이태리 작가의 신작 <최고의 독점>은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필독 도서가 되어 있었다. 참고로 일부 대학에서는 이 책을 정식 교재로 삼았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돌기도 했다.
“와! 정말 똑똑하다.”
“대체 모르는 게 뭘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최고의 독점>을 하나의 소설로 읽고 감상했지만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거대 금융회사들이 권력과 결탁하면 나라를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공감할 수 있었다.
“헐!!”
“이거 우리나라 이야기 아니야?”
“……설마?”
“여기 봐봐. 꼭 1997년 우리나라가 겪은 IMF 얘기 같잖아. 시리즈 4부는 얼마 전에 일어난 일본의 얘기 같은데?”
“대박!!”
이와 같은 시각.
멀리 빌딩 숲이 보이는 오사카 시내 호텔에서 노년의 사내들이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번 일의 원흉이 작가 나부랭이라고?”
“그래.”
“하하하……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자네, 어디서 이상한 소문을 듣고는 믿는 건가?”
“내각조사실에서 확인한 사항이야.”
“……뭐라고?”
“미국과 영국 정부에서도 알고 있었어. 녀석들 모두가 함께 짜고 친 거야.”
“그게 정말인가?”
“내가 할 일이 없어서 자네를 찾아와 농담을 할 사람으로 보이는가?”
“…….”
두 사람의 정체는 바로 얼마 전까지 무소불위의 힘을 지녔던 도요토미 전 총리와 일본 열도를 양분하고 있는 야쿠자 오야붕 도야마 히데키다.
도요토미 총리는 현재 일본 대공황의 책임을 지고 정계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내 꿈이 모두 그 녀석으로 인해 물거품이 됐어. 모두 사라졌다고!”
“이……태리 작가, 최선우!!”
도야마 히데키의 기도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순간에 폭발적으로 살기가 일어난 것이다.
“만약 녀석을 없애버린다면?”
“우리가 비록 패했지만 완전한 패배는 아니겠지.”
“……!”
일본의 밤을 양분하고 있는 오사카의 호랑이 도야마 히데키는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의 시야에는 분명 사각이 존재한다.
우리의 눈이 전면을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180도 전부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것은 착각이다. 일반적으로 전문적인 훈련을 받지 않은 이상 보통 사람들은 100도의 각도 내에 들어오는 사물조차 정확하게 보기 어렵다.
“대상 확인.”
“대상 확인!!”
미행하는 자들은 미행을 당하는 대상에게 시선을 향하지 않는다.
보지 않고도 추적이 가능해야 비로소 전문가인 것이다.
여기서 대상을 보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를 시야에서 놓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초점을 다른 곳에 집중한 상태에서 미행당하는 자를 잡아둘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선우야, 어디 아파?”
설연이 걱정스런 표정을 보이며 물었다.
그녀의 기억에 선우가 이런 표정을 계속해서 보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까부터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아니, 괜찮아.”
괜찮다고 말했지만 사실 전혀 괜찮지가 않았다.
‘휴우…… 왜 이러지?’
이런 요상한 느낌,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이다.
몸이 아픈 것이 아니다. 그냥 뭔가가 굉장히 거슬렸다.
“오늘 그냥 여기 있을까?”
설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묻는다.
“아니. 가자. 어떻게 얻은 시간인데~ 공항으로 출발하자고.”
선우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미소를 보이며 그녀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선글라스와 모자로 가볍게 변장하고 호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날씨가 좋다.
호텔 출입구에는 강렬한 햇빛이 비추고 있고 유럽 정원처럼 꾸며 놓은 호텔 앞 광장에는 분수들이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호텔 앞, 그러니까 광장의 끝에는 미리 대기시켜 놓은 차가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우는 갑자기 그 불쾌함이 엄청나게 증가함을 알았다.
불안감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다.
“실드!!”
선우는 본능적으로 설연을 감싸며 실드 마법을 펼쳤다.
-광!
바로 그 순간,
총성과 함께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저격이다. 엎드려!”
“작가님을 보호해.”
“저쪽이다. 13시 방향!”
경호팀이 소리치며 움직였다.
-광!!
또 한 번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
선우는 총알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실드 마법을 펼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실프를 소환해 총알의 궤적을 바꿨다.
무라카미 토오루는 조직의 저격수로 키워졌다.
그가 킬러가 되어 살아온 20년의 세월 중에서 오늘이 바로 가장 놀란 순간이었다.
그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이번 의뢰는 완벽했다.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소총에서 발사된 총알이 대상자의 심장을 관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저게 대체 무엇인가?
어떻게 저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두 번째 저격 순간에 보인 그 믿을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현상이 그를 더욱 놀라게 만들었다.
‘총, 총알이 뭔가에 막혔다?’
그것은 판타지 혹은 SF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기 때문이다.
“칙쇼!!”
무라카미 토오루는 어쩌면 결코 건드려서는 안 될 존재를 건드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다. 더욱이 이제까지 자신의 예상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그는 더욱 불안했다.
토오루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그로부터 얼마 후,
호텔을 나서던 이태리 작가가 괴한에게 피격(被擊)을 당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이태리 작가를 향한 저격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뭐라고?”
비서실장의 말에 집무실에 있던 박강현 대통령이 화들짝 놀라 일어섰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됐나?”
“다행히 생명에는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하아! 천만다행이로군.”
비서실장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어쩐 일인지 총알이 심장에 이르기 직전 멈췄다고 합니다.”
“멈췄다고? 그게 가능한 건가?”
“의료진들조차 이런 경우는 처음인지라 의아해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종종 일어나지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심장에 이르기 직전 총알이 멈췄다는 겁니다.”
“……기적이 일어난 거로군.”
“네. 한마디로 정의하면 기적이라 할 수 있죠.”
“저격수는 잡았나?”
“죄송하지만 아직까지 특별한 소식이 없습니다.”
“음! 필요하다면 국정원의 모든 정보력을 이용하더라도 범인을 꼭 찾아내도록 하게.”
“네. 대통령님.”
이와 같은 시각.
이미 언론을 통해 이태리 작가가 피격을 당했지만 생명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식을 접한 도야마 히데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라카미 토오루가 실패했단 말인가?”
그는 조직이 키운 특급 저격수였다.
“토오루가 실패하다니, 믿을 수 없습니다. 혹시 저들이 기만책을 쓰는 것이…….”
“아니! 아직까지 소식이 없는 것을 보면 실패한 것이 맞을 것이다.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안가(安家)에서 잠수를 타고 있겠지.”
“…….”
다음 날,
이태리 작가의 피격 소식이 모든 신문의 1면을 차지했다.
스포츠 전문지도 예외가 아니다.
각 신문의 1면에는 커다란 글자로 헤드라인을 장식한 문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총기를 이용한 저격 사건과 대한민국이 더 이상 총기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국가라는 내용이었다. 참고로 기사가 나간 이후 전국에 산재한 조직들에 대한 검거가 시작되었고 이번 일과 하등의 상관도 없는 조폭들만이 줄줄이 끌려갔다.
-한국대 병원 특실.
“헙!”
미모의 의사 김지현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토해냈다.
TV와 잡지를 통해 봤지만 실물을, 그것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알 수 없는 흥분에 사로잡힌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남자가 이처럼 아름답다고 느낀 적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아무도 없었다면 저 탐스러운 머릿결을 쓰다듬고 싶을 정도였다.
여의사의 얼굴이 붉게 변하자 규용이 물었다.
“선생님. 무슨 문제가 있나요?”
“아, 아니요. 모든 차트가 정상으로 나왔습니다.”
“그렇습니까?”
“네. 아마 오늘 중으로 곧 깨어나실 겁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뭘요~.”
김지현은 규용의 감사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밝은 미소를 보였다.
“그럼 다음에 또 뵙도록 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여의사의 말처럼 선우가 깨어났다.
“……선우가 깨어났다며?”
“어때?”
“선우야! 정말로 일어났어요? 어……?”
한편 선우가 정신을 차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선우야!”
“선우야. 괜찮아?”
“최선우!!”
안동혁, 최원석 그리고 설연이다.
특히 설연은 선우의 품에 안기다시피 달려들어 통곡했다.
“흑흑흑! 선우야. 난 네가 잘못되는 줄 알고…… 흑흑흑!!”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 앞으로 몰려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온 선우의 쾌유를 기원하는 시민들이었다.
“우리 선우! 진짜 난놈은 난놈이다.”
“뭐가?”
“너 한 번만 더 쓰러지면 아주 난리가 나겠더라. 저것 봐라.”
창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열자 벌 떼처럼 몰려든 사람들의 모습이 선우의 눈에 들어왔다.
“보이지?”
“저게 뭐야?”
“뭐긴 뭐야. 다 너의 쾌유를 비는 사람들이지.”
“……!!”
-드르륵!
창문이 열리면서 선우가 나타나자 병원 밖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꺄아아악! 선우다. 최선우다!”
“우와! 저기 좀 보세요.”
“와아아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도 최고예요.”
“꺅꺄아악!!”
사람들은 선우의 모습을 보고 열렬하게 환영했고 이것은 병동에 있던 간호사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최선우 작가님이다. 호호, 귀여워~”
“난 작가님의 실물을 이처럼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야~”
“수진아. 네 말이 맞았어. 진짜 연예인 저리 가라더라.”
“비교가 안 돼.”
간호사들은 선우의 쾌유를 열렬하게 환영했다.
그 환영의 방식이라는 것이 좀 특이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번엔 내가 들어갈게.”
“야! 내가 먼저거든.”
“이것들이 선배 무서운 줄 모르네.”
이때 간호사들을 바라보고 있는 한 떼의 무리들이 있었다.
“지금 뭐 하고 있는 겁니까?”
특히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 있는 여의사의 모습에 간호사들의 안색이 굳어졌다.
“헉!”
“엄마야!”
간호사들은 순식간에 좌우로 흩어지며 저마다 딴청을 부렸다.
“지금 이 시간부터 저 방은 우리들이 들어갑니다. 간호사 선생님들은 얼씬도 하지 마세요. 알겠습니까? 분명히 말했습니다.”
“……!”
“……?!”
“……!!”
여의사 김지현은 간호사들의 질투 어린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