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27화
127화 Earthquake
“일본이요?”
자리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선우의 발언이 그만큼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네. 일본입니다.”
“그 말씀은 일본에 대공황이 온다는 말입니까?”
“……전 확신합니다.”
일본에 대공황이 올 것이라는 선우의 말에 엘리스펀 의장을 비롯해 좌중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웅성웅성!!
“그,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음!”
“이해할 수가 없네요. 일본입니다. 일본! 동남아시아에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지금이 무슨 1950-60년대도 아니고 21세기다.
그리고 일본은 현재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경제 대국이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 대공황이 올 거라고?
아무리 그가 의 수장이라지만 이것만큼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후후~ 그래. 이해해. 나라도 믿을 수 없지.’
선우는 원탁에 앉은 7명의 사람들을 차례대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일본의 대공황은…….”
모든 것을 밝힌 것은 아니지만 꽤나 구체적인 이야기는 선우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었고 사람들의 표정 역시 좀 전과 다르게 한결 밝아진 얼굴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일단 저희에게 손해는 없겠군요.”
“……오히려 이익만 볼 뿐.”
“하지만 이번 일은 무엇보다 보안이 생명입니다.”
“맞습니다. 상대는 일개 기업이 아닌, 일본 정부니까요. 대신 공격이 시작되면 모두 함께 움직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환율 전쟁과 일본 주식시장의 폭락.
선우의 말대로 일이 진행된다면 대공황이 올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러면 이 일을 주도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태국의 IMF, 한국의 IMF를 보라.
모르긴 해도 천문학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좋습니다.”
“그래요. 저희는 과 함께하겠습니다.”
선우의 제안에 엘리스펀 의장과 미국의 재무장관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미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 적자는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재밌는 일에 빠지면 안 되겠죠.”
“이 가장 큰 위험을 지겠다는데, 전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호호호~ 저희도 동참하겠습니다.”
미국의 참여하겠다는 말에 나머지 사람들 역시 동참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이 주도하는 전쟁이었다.
그들이 가장 큰 위험을 갖고 진행하는 일이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갖게 될 리스크가 매우 적었다.
이 같은 기회를 놓칠 바보는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스윽!
선우는 조용히 일어나 미리 마련한 서류를 배포했다.
“비밀 유지 협의서입니다.”
그것은 마치 연판장과 같았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없듯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협의서로 인해 적어도 몇 년은 비밀이 유지될 것이다.
참고로 이날의 회의는 아주 늦게까지 이어졌다.
서로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나눠졌고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했다.
밤을 꼬박 보내고 아침이 밝아온 후에야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선우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3개월 후,
일본은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얼마 후,
15명으로 꾸려진 해저 지형 탐사대가 미국 정부와 NASA의 지원을 받고 동아시아 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지형, 지질, 지진을 연구하는 탐사 활동이었기에 해당 지역의 나라들은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탐사대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과학자로 위장한 선우가 탐사선에 탑승해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마법으로 얼굴을 바꾸었지만 말이다.
“반갑습니다. 그렉입니다. 지질학 박사입니다.”
“해저 잠수부 조쉬입니다.”
“음파 전문가 헤나예요.”
“NASA 연구원 스미스입니다.”
탐사대는 음향탐지기, 해저면 영상 탐사기, 심해 전용 다중 빔 등의 각종 장비를 이용해서 정밀한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일본은 네 개의 지각 덩어리(유라시아, 필리핀, 태평양, 북아메리카 판)가 만나는 접점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태생적으로 지진이 많이 일어나는 나라다.
일부 호사가(好事家)들은 일본의 지정학적 위치를 보며 운이 없다고 하지만 사실 이런 위치에 있기에 일본이 생겼다는 것이 더 과학적인 설명이다.
‘이제 끝났다. 다음은…….’
* * *
“청장님, 후쿠다 청장님.”
“무슨 일인가? 요시다 연구원.”
“여기 좀 보십시오. 뭔가 이상한 게 잡힙니다.”
“이상한 게?”
“네.”
후쿠다 청장은 지진청을 관리하는 베테랑답게 쉽게 흥분하지 않았다.
“불의 고리군.”
“네. 청장님.”
“흥분하지 말게.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잖아.”
“그런데 이 수치 좀 보십시오.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
후쿠다 청장의 안색이 변하며 지진청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시각.
해외 유수의 언론사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본 대지진에 대한 경고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일본 대지진의 위험성 높아.
-되살아나는 관동대지진의 공포.
-불의 고리.
-NASA의 연구진에 따르면…….
-지질학연구소 역시 쓰나미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
-일본 대지진.
일본 대지진에 대한 뉴스가 알려지자마자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과학자들의 열띤 설전이 오고 갔으며 지진에 대한 소식이 언론사의 주요 뉴스로 다루어졌다. 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반응은 크지 않았다. 그들은 늘 지진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그래. 아직은 그렇겠지. 후후후~”
감자 칩을 먹으며 뉴스를 시청하던 선우가 조용히 수화기를 들었다.
“좋아.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해 보자고.”
-매도.
-매도.
-매도.
선우는 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양의 엔화를 매도하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누가 엔화를 대량 매도했네!”
“어? 여기 또 매도가 체결됐어.”
“어이구, 환율 시장에 호구가 나타났네.”
“아는 곳이야?”
“아니. 모르는 곳이야.”
“근데 왜?”
“불쌍해서 그러지. 요즘 같은 시기에 엔화를 대량으로 매도하다니! 나중에 후회할 것 아냐?”
“신경 꺼. 이렇게 잃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우리처럼 버는 사람도 있지, 안 그래?”
“하긴…….”
이와 같은 시각,
일본 환율 시장을 유의 깊게 살펴보고 있는 자들이 있었다.
“시작됐군.”
“호오~ 확실하게 하는데.”
각설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매도 행렬이 다음 날과 그 다음 날에도 이어지자 마침내 일본 정부가 움직였다. 환율 방어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사흘을 넘어 일주일째 매도 폭탄이 이어지자 외환시장은 그야말로 혼돈에 빠져 들고 말았다.
“칙쇼!”
“대체 누구야?”
“누가 엔화를 이렇게 던지는 거지?”
그리고 선우의 두 번째 공격이 이어졌다.
“어, 어?”
“저게 뭐지?”
“……?!!”
“쓰, 쓰나미다. 모두 피해.”
미야기현과 이와테현 등…….
일본의 동북부 지역에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한 것이다.
이것은 1945년 히로시마 원폭의 2,700배에 달하는 위력이었다.
한편 NASA의 예상대로 지진이 일어나자 일본인들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했다.
-쓰나미 공포.
-일본, 불의 고리 위협.
-이번 지진은 시작에 불과하다?
-NASA 관계자 일본에 추가 지진 가능성 높다고 판단.
이와 같은 기사가 뜨자 동북부에 거주하고 있던 일본인들의 자제력이 무너졌다.
마트에서 물건을 사재기했고 정든 고향을 떠나 타 도시로 탈출했다.
당연히 사회 기능이 제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선우는 주식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이 보유하고 있던 일본 기업들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도한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다음 날 터져 버렸다.
“우리도 이제 움직여볼까?”
“날세.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엔화를 앞으로 사흘 이내에 모두 팔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본 기업들의 주식, 모두 시장에 풀어.”
“100억 엔, 엔화 매도.”
“요도타 주식, 전량 매도.”
선우가 제시한 시나리오대로 일이 벌어지자 그와 손을 잡았던 이들이 일본 공격에 참여한 것이다
주식 시장에는 이런 말이 있다.
투자자는 투기꾼을 이길 수 없고 투기꾼은 세력을 이길 수 없다.
무수한 소문이 돌고 도는 가운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엔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 기업 주식을 보유한 이들이 모두 매도 행렬에 동참했다는 것이었다.
-매도!
-매도!!
-매도!!!
-매도!!!!
일본 기업의 주가가 미친 듯이 하락했다. 아니! 폭락했다.
“축하드립니다.”
“짜릿한 승부였습니다.”
“정말로 그 타이밍에 지진이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군요.”
“모두 과학의 힘이죠.”
“하하하~~ 맞습니다. 과학의 힘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가 끊이지를 않았다.
“자! 우리 모두 축배를 듭시다.”
“하하하~ 좋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일본은 두 달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환율 전쟁의 패배와 함께 일본 주식시장의 붕괴는 곧 경제적 연쇄를 통해 일본 사회 전체에 파급되어 대공황을 불러왔다.
1997년, 한국에 찾아온 국가 부도 사태와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의 위력이 일본을 덮쳤다. 그리고 그 결과 을 위시한 해외 자본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일본 기업을 마치 마트에서 쇼핑하듯 사들였다.
잠을 자고 일어나면 기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해외 자본을 비난하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 정부조차 말이다.
그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수많은 기업들이 파산했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수많은 실업자가 넘쳐 났다.
앞으로 10년, 아니 최소한 10년!
일본은 불황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뭐라고 말 좀 해봐요. 말 좀!”
“……!!”
질책에 가까운 총리의 호령에도 다들 꿀 먹은 벙어리마냥 조용하다.
일본 경제가 파탄이 났지만 해외 자본의 유입 외에는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들 벙어리예요? 이렇게 모였으면 어떤 대화라도 오고 가야 할 것 아닙니까?”
“…….”
도요토미 총리는 내각 대신들의 얼굴을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러나 아무도 그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칙쇼!! 제기랄!!! 하루에도 수십 개의 일본 기업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요도타면 뭐 합니까? 쏜니면 뭐 합니까?”
화를 참지 못해 욕설마저 흘러나왔다.
“주인이 바뀌었어요. 200대 기업 중에 절반 이상이 말입니다. 대체 이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모두가 IMF 때문이다.
그들이 일본의 법을 바꿨기 때문이다.
“……일단 미국 측에 자금을 요청했습니다.”
“호오! 미국이요?”
“네.”
“이봐요. 이시하라 장관. 미국 놈들이 돈을 빌려줄 것이라 생각합니까?”
“총리 각하. 아시다시피 미국은 우리 일본에 가장 가까운 동맹…….”
“그만하세요.”
“네?”
“그만하라고요.”
“……?”
이시하라 장관은 여전히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 일본 기업을 가장 많이 사들이고 있는 곳이 어딘지 모르십니까? 바로 미국이에요.”
“헙!”
“오죽하면 월가에 ‘일본 기업이 싸다. 압도적으로 싸다. 지금 사라. 사지 않으면 바보다.’ 이런 소문이 돈다고 합니다. 유럽 국가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가까운 한국과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요. 모두들 우리 일본을 뜯어 먹으려고 하이에나처럼 달려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