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25화 (125/187)

◈ 제 125화

125화 깔끔하게 싱크홀

선우가 집 앞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순간이었다.

“저기요.”

선우가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다.

“혹시 혼자세요?”

선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이 다가와 있었다.

머리에는 모자를 썼고 하늘색 빛이 감도는 옷을 입었다.

‘설연이네.’

선우는 짐짓 모른 척, 낮게 목소리를 깔았다.

“예. 혼자입니다만.”

“그쪽이 맘에 들어서 그러는데, 저와 커피 한잔하실래요?”

“커피요?”

“네~”

‘풉~ 이게 어디서 약을 팔아?’

선우는 설연 옆으로 다가며 살짝 웃었다.

“커피 말고 차가 좋겠네요.”

“차요?”

선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커피보단 제가 즐겨 마시는 차가 있어서요.”

“무슨 차죠?”

“설록차의 동생 설연차요.”

“……!”

순간 잔잔한 충격이 설연을 휩쓸었다.

이 썰렁해진 분위기를 대체 어쩔 것인가!!

이때 설연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선우야, 너도 못하는 게 있었구나.”

“…….”

-치명적인 일격이 터졌습니다.

왠지 이런 메시지가 선우의 귓가에 들려오는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시간,

겉보기엔 언제나 같은 일상이다.

하지만 평창동에 위치한 강준영의 저택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처음엔 가사 도우미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바닥에 미끄러지는 바람에 허리를 다쳤다.

그 뒤엔 정원사다.

전지(剪枝) 작업을 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다.

그리고 오늘은 운전기사다.

신호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맞은편 차선에 있던 트럭 한 대가 들이받았다.

어찌 됐든 간에 그의 저택에서 상주하며 일하는 사람들에게 연달아 사고가 난 것이다.

“아이고,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래요?”

“그러게.”

세 사람 모두 한 달 이상을 입원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결과 임시지만 다른 사람들이 저택에 들어왔고 이들은 전에 일하던 사람들을 대신해 들어왔기에 상주하지 않고 사정에 맞게 출근과 퇴근을 반복했다.

-철컹!!

오후 3시가 되자 임시직 정원사가 퇴근한다.

저녁 9시가 되자 임시직 가사 도우미 2명과 운전기사 역시 퇴근했다.

밤이 깊어지고 자정을 넘어가자 복면을 쓴 선우가 평창동에 모습을 나타냈다.

“플라이.”

선우는 부유(浮游) 마법을 펼쳐 저택 지붕으로 날아갔다.

어둠을 틈탔고 날아왔기 때문에 누구 하나도 선우의 움직임이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실프.’

[꺄르르~ 네. 마스터.]

‘이것 좀 부탁할게.’

[네~~]

선우는 실프를 통해 수면 가스가 채워진 캡슐을 집 안에서 터트렸다.

-푸스스스!

그리고 그로부터 정확히 10분 후,

선우는 창문을 통해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그의 눈빛은 매우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

수면 가스의 효과인가?

강한의 의원과 그의 부인은 침까지 흘려가며 깊은 잠에 빠진 모습이다.

선우는 몸을 돌려 강준영의 방으로 이동했다.

강준영은 누군가가 자신의 목을 조르는 느낌에 눈을 떴다.

“누, 누구……?!!”

“사일런스!”

“……?!!”

다음 순간,

전신을 짓누르는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비명을 내지르려 했지만 어쩐 일인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오랜만이네.”

“……?!!”

“나, 누군지 알지?”

“…….”

강준영이 눈동자를 굴렸다.

“어이쿠, 눈알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서걱!

날카로운 비수가 그의 귀를 찢고 지나갔다.

‘아악!!’

입만 뻥끗할 뿐이지만 선우의 귓가로 그의 비명 소리가 느껴졌다.

“나 누군지 몰라?”

-푸욱!!

선우가 단검을 강준영의 허벅지에 쑤셔 넣자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오~ 안다고? 그럼 내가 왜 이러는지도 알겠네.”

선우는 비릿한 미소와 함께 단검을 비틀었다.

‘끄아아아악!!’

사일런스 마법 덕에 어떠한 소리도 나오지 않았지만 표정만 봐도 그의 고통을 알 수 있다. 침대 시트 역시 이미 피투성이였다.

“내가 절대 용서하지 않는 게 있어. 바로 내 가족을 건드리는 거야.”

선우는 잔잔한 미소를 지은 채 강준영의 남근을 잡았다.

-투두뚜뚝!

잔인한 음향과 함께 그의 남근이 뿌리째 뽑혀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준영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뇌리를 관통하는 고통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아기 송아지가 부뚜막에 앉아 울고 있어요~~”

선우는 동요를 부르며 저택 곳곳에 인화성 물질을 뿌려 놓았다.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엄마~ 엄마~ 엉덩이가 뜨거워.”

잠시 후,

저택에서 빠져나온 선우는 마법 완드를 쥔 채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둠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저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선물해 주어라. 디그(Dig)!”

-우우우우우웅!!

선우가 펼치는 마법은 일명 땅파기 마법이라 불리는 디그(dig) 마법이다.

디그(dig) 마법은 사실 2서클에 불과한 마법으로 그 위력 역시 크지 않다.

통상 가로 50cm 세로 1m의 구덩이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우는 이미 사전에 만반의 준비를 끝낸 상황이었다.

저택을 중심으로 마법진을 그려 놓았고 살아있는 양을 제물로 바치기까지 했다.

무려 한 달간이나 묵혀 놓은 결과 강준영의 저택은 현재 지독한 사기(邪氣)에 잠식당한 상태였는데 4서클의 마나를 통째로 집어넣은 덕에 땅파기 마법의 효과는 매우 강력하게 변한 상황이었다.

모두가 잠든 밤,

‘우르르’하는 소리와 함께 순간 땅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마침 새벽 예배를 가려던 강숙자 여사와 그녀의 딸 박은조는 땅이 토해내는 괴성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엄마, 저기 좀 봐요.”

“……엇! 저게 뭐지?”

다음 순간,

모녀의 눈에 강준영의 저택이 사라지는 광경이 목격되었다.

불과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그 커다란 저택이 땅속으로 통째로 빨려 들어간 것이다.

“에구머니나!!!”

“꺄악!!”

결국 비명을 지르고 마는 모녀.

모녀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곧이어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었다.

* * *

임호 검시관은 차가운 물에 세수를 한 덕인지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다.

“정말 맨정신으로 보기 힘들다. 에휴.”

그는 눈이 퀭한 동료 검시관을 보며 이죽거렸다.

“너도 가서 세수라도 좀 하고 오지.”

“됐어.”

“너 얼굴 좀 봐라. 어후~ 다크서클!! 니가 무슨 판다 곰이냐?”

임호의 도발에 동료 검시관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됐다고! 암튼 넌 세수를 30분이나 하냐?”

“아이~ 간 김에 볼일도 보면서 담배 한 대 피웠다.”

“쳇!”

능글맞은 대답에 성질을 부리기도 난감하다.

이때, 임호 검시관이 물었다.

“야, 근데 뭐 좀 발견했냐?”

“아니.”

“하긴 시체마저 모두 불에 타버렸는데 거기서 뭔가를 발견하면 그게 인간이겠어?”

집이 무너지며 가스 누출(국과수 추정)로 인한 연쇄 폭발까지 일으켰다.

“그나저나 난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다.”

“뭐가?”

“평창동에 싱크홀이 말이 돼? 거긴 화강암이라고!!”

“…….”

-따르릉!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임호 검시관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

“네, 소장님.”

-…….

“……네…… 네…… 네…….”

-달칵.

임호 검시관은 수화기를 내려놓은 뒤에 크게 한숨을 쉬었다.

현역 국회의원과 재벌가의 딸 그리고 그들의 아들이 죽은 사건이다.

이들이 가진 배경으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대형 싱크홀이 발생되었습니다.

-3선 국회의원 강한의 의원 가족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는 가운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에 임했지만 범인은 나오지 않았다.

천재지변에 무슨 범인이 있단 말인가?

수사는 그렇게 흐지부지되었고 결국 수많은 의문만을 남긴 채 종결되고 말았다.

-한 가족의 생명을 앗아간 놀라운 사건입니다.

-경찰의 발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천재지변으로 인한…….

-서울시는 지질학계의 자문을 받아 서울시 전체에 대한 지반 검사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뉴스를 통해 이번 사건을 지켜보던 중,

선우는 뜻밖의 방문객을 만나게 되었다.

-똑, 똑.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설주 누나의 남편이자 얼마 전 기성 건설의 부사장이 된 유상현이었다.

“기성 건설의 유상현입니다.”

“네. 몇 번 뵈었죠.”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존대했다.

만약 선우가 설연과 결혼을 하게 되면 그는 선우의 손위 동서가 되지만 아직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는지요?”

선우의 질문에 유상현 부사장은 진지한 표정을 보이며 다짜고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

“작가님이 도와주신 것 맞지요?”

“……!!”

음! 아무래도 눈치를 챈 것 같았다.

“얼마 전에 미국 출장을 갔었는데, 우연히, 정말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귀국하자마자 이렇게 약속도 없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혹시 실례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역시나 호쾌한 남자였다.

“이미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더군요. 한국에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 같습니다.”

“……네. 그렇겠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닙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운이라뇨? 능력입니다.”

“…….”

선우는 유상현 부사장의 말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이미 알게 모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었고 곧 모두가 알게 될 사실이었다. 더욱이 한집안 식구가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그냥 인정하고 말았다.

“참! 신혼 생활은 어떠세요?”

“하하하~ 작가님 덕분에 매우 행복하답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가는 눈빛이 한층 따뜻해졌다.

“……대체 못하는 게 무엇인지요?”

“아이고~ 못하는 것 저도 많습니다.”

“막내 처제와는 언제쯤?”

“하하하~”

두 사람의 개인적이며 즐거운 대화가 이어졌다.

“야당은 시장 경제가 밑바닥이니, 서민이 체감하는 경기가 최악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기업의 이윤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DJ 정부 때보다도 높죠?”

“네. 그렇습니다.”

유상현 부사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앞으로의 한국 경제를 어떻게 보시나요?”

“일단 한국 경제의 상황은 낙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성삼 전자의 약진(躍進)이 두드러질 겁니다.”

“성삼 전자요?”

“네.”

다양한 주제와 더불어 시시콜콜한 사적 대화도 많았지만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경제 분야에 대한 이야기가 다른 주제에 비해 많았다.

“해피 타운 건설은…….”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질 겁니다.”

“융복합의 시대를 통해…….”

한 시간 정도의 유익한 대화였다.

“설주와 식사하기로 했는데, 같이 가시죠? 막내 처제도 합류하기로 했답니다.”

“설연이가요?”

“네. 제가 작가님과 함께 있다고 했더니…….”

“설주 누나가 연락한 모양이네요.”

탁 듣는 순간 상황이 이해가 됐다.

“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하하!”

눈빛만으로도 통했는지 유상현 부사장이 환하게 웃어 재꼈다.

그리고 선우 역시 한껏 미소를 머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