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24화 (124/187)

◈ 제 124화

124화 (2)

한국에 들어온 지 10일.

이태리 작가의 신작 단편 소설 가 출간되었다.

은 출간이 되자마자 그야말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는데, 일본 정부에 의해 그가 불법적으로 억류되었을 당시 공항 유치장에서 집필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단편 신작 소설을 일본 공항 유치장에서 쓰신 것이 맞습니까?”

“네.”

“그럼 반나절 만에 쓰신 건가요?”

“……대략 5시간 정도 걸린 것 같습니다.”

“제목을 보면 SF소설로 판단되는데요?”

“미래이자 동시에 과거를 얘기하는 소설입니다.”

“호오~~”

“읽어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기자들이 호기심을 보이자 선우는 묘한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일본 정부에 대해 제소하실 생각이십니까?”

“……옛날 한 마을에 박 진사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

“……??”

선우의 동문서답과 같은 대답이 이어졌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사는 윤 생원에게 1,000원을 빌렸는데, 다음날 700원을 갚았지요. 그럼 이제 얼마를 갚으면 되겠습니까?”

“300원이요.”

“그렇죠. 300원이 남았죠. 그런데 박 진사는 이제 100원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1,000원에서 700원을 갚았으면 300원이 남은 게 아닌가요?”

“그렇죠. 그게 맞는 거죠. 그런데 박 진사는 1,000원에서 700원을 빼면 100원이라고 했어요. 막무가내로 말이죠. 이렇게 설명해보고 저렇게 설명해 봐도 박 진사의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결국 윤 생원은 마을 사또에게 찾아가 이를 고했죠. 사또는 박 진사와 윤 생원을 불러 일의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판결했죠. 박 진사의 계산이 맞다. 박 진사는 윤 생원에게 100원을 갚아라.”

“……?!”

“……?!!”

“박 진사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100원을 윤 생원에게 주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사또는 윤 생원을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자기의 잘못이 뭔지도 모르는 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대화를 시도한 자체가 윤 생원, 바로 자네의 잘못이다. 이 일을 통해 저자에 대해 잘 알게 되었으니 그것으로 200원의 가치는 한 것이다. 앞으로 저자와는 상종조차 하지 말게.”

“아!”

“오! 오!! 그렇군요.”

기자들의 밝아진 표정을 보며 선우가 마무리했다.

“일본은 뛰어난 나라입니다. 일본인은 매우 이성적이며 정직합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다른 것 같습니다. 그들의 행태를 보면 정작 말이 통하지 않습니다. 상식이 더 이상 상식이 아닌 것이 되어 버렸죠. 저는 박 진사와 같은 일본 정부와 상종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가…….”

“그럼 혹시 에 숨겨진 의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기자들의 다양한 질문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선우는 여유를 잃지 않고 질문에 적절한 답변을 내놓았고 작가는 글로 말해야 한다는 명언을 끝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회견장에 모인 각국의 기자들은 선우의 발언을 받아 적기 무섭게 기사를 송출했다.

* * *

“호오~”

“……이, 이건!!”

“대단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을 읽어본 독자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평소 신랄한 비평을 입에 달고 살던 평론가들 역시 선우의 신작 소설에 경의를 표하기도 하였다. <지평선이 보일 무렵>이 수작(秀作)이었다면 은 가히 명작(名作)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태리 작가는 에 한 가지 복선을 깔아놓았다. 바로 주인공의 이름이다. (평론가 최열)

-주인공 명환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전동주의 서시를 읊조린다. 왜 하필 전동주의 서시인가? 작가의 치밀함이 돋보였다. (문학가 정순도)

-한 장, 한 장, 책장이 넘어갈수록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빌런 클리츠)

-소설 <흑야>에 이어 일본 정부에 두 번째 빅(Big) 엿을 먹였다. (방송인 박구라)

-전동주의 아명(兒名)이 명환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난 소름이 돋았다. (비평가 강무열)

그야말로 장안의 화제다.

다큐멘터리 <독서를 말하다>는 물론 <유한 도전>, <무박 2일>, <뛰는 맨>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다.

“이태리 작가의 신작 단편 소설 에서 주인공 명환의 이름은 1번 김소월, 2번 한용운, 3번 이상화, 4번 윤동주.”

“정답~~ 1번 김소월.”

-땡!

“정답 2번 한용운.”

-땡!!

“아우~ 이 바보들.”

“하하하하~~”

바보들의 행진이 이어지자 결국 특별 게스트가 출현해 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명환은 비록 죽음을 맞이하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목소리를 찾아줍니다. 미소를 보이며 하늘의 별이 되었죠.”

“…….”

“…….”

“명환의 동료들은 대한의 독립을 위해 싸운 열사, 의사들을 말합니다. AI 인공지능 가이아는 일본 총독 혹은 천황을 뜻하는 것이고요.”

“그럼 비밀 요원들은?”

“네. 그렇습니다. 일제에 부역했던 순사들이죠.”

“아!!!”

“……음!!”

그의 강연은 비록 짧았지만 출연자는 물론 TV를 시청하고 있던 많은 시청자들을 감탄케 했다.

방송 후,

방송국 게시판에 수많은 글이 올라갔다.

-그들의 삶과 여정을 기억하겠습니다. 오늘 최고였어요.

-웃다가 울다가…….

-오늘 인터넷으로 주문했어요.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하늘은, 바람은 그리고 별과 시는.

-잘 보았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역시 이태리 작가님. 작가는 글로 말한다. 일본에 제대로 한 방 날려 주신 듯.

한편 방송국 게시판이 이렇게 뜨거운 가운데 정작 소설을 집필한 우리의 주인공은 강준영과 그의 가족에 대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내가 나가기 전에 가져와야지. 간단하지 않아?

-죽여 버릴 거야. 이 거지 같은 년아.

-야! 야! 야! 이리 와. 안 와?!! 짜악!!!

보고서에는 그들의 헤아릴 수 없는 갑질이 적혀 있었다.

“쓰레기군.”

도를 넘은 행태가 정말 가관이었다.

세 사람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그 가운데 1등을 뽑자면 강준영의 모친이다.

한국대 미대를 졸업하였고 대외적으로 꽃과 정원을 좋아하는 여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삿대질과 욕설은 기본이요, 상습적으로 폭력과 폭행을 가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었다. 어렵게 구한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재미있군.”

오디오가 지원되지 않아 음성을 들을 수 없었지만 뒷걸음을 치며 피하는 여직원을 집요하게 추적해 삿대질과 고성을 지른다. 그뿐이 아니다.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여직원의 팔을 거칠게 잡아 끌고 따귀까지 때린다.

여러 사람(남성 포함)이 있지만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않는다.

이뿐이 아니었다.

과거 그 집에서 일한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매일 욕설을 내뱉었고 그것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을 땐 직접 손을 썼다고 했다. 한 번은 호텔 지배인에게 손님들이 많은 로비에서 3연속으로 따귀 세례를 선물해 준 적도 있다고 했다. 그 이유는 손님으로 온 외국인 꼬마가 호텔 로비에 있는 소파 위에서 놀다 쿠션을 떨어뜨려놓고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아우, 거지 같은 놈들. 아예 세트로 다 잘라버려야 해.

-이 새끼야. 저 XX놈의 새끼, 나가!!

-X발! 죽어. 죽어. 나가 죽으라니까. 이 빌어먹을 새끼들아.

다른 경로로 얻은 음성 파일에도 욕설과 폭력이 난무했다.

강준영의 부친 역시 깨끗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인자한 척, 정의로운 척, 서민을 위하는 척했지만 각종 이권에 개입하였고 정기적인 성상납을 받은 정황이 있었다. 물론 강준영 역시 말할 것도 없는 쓰레기였고 말이다.

“후후후~”

보고서를 살펴본 선우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마음속으로 그들에 대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이미 해가 완전히 져서 어둑어둑해진 가운데 복면을 착용한 선우가 평창동에 나타났다. 한눈에 보기에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한 고급 주택들이 즐비하지만 선우의 기준에서 보면 허술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꽤 좋은 땅이군.”

걸음을 멈추고 한 곳을 응시하던 선우가 행동을 시작했다.

“미안하다. 내세에는 동물로 태어나지 말고 인간으로 태어나렴.”

-후두둑!

뭔가가 뿌려지는 듯한 소성과 함께 붉은 피가 흩날리며 저택의 주변에 뿌려졌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차를 가지고 저택 입구에 도착한 운전기사 강수일의 눈이 급격히 커졌다.

“의, 의원님. 사, 사모님!!”

그의 눈은 경악과 공포에 젖어가고 있었다.

잠시 후,

강준영을 비롯해 그의 부모와 그들 가족의 가사 도우미 두 명, 운전기사 강수일과 정원사가 대문 밖으로 나왔다.

“욱! 냄새!”

“이게 무슨 냄새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린내가 코를 찌른다.

담벼락 전체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어, 엄마야!”

색깔이 붉은 것이 아무래도 피비린내 같다.

그리고 싸늘하게 식은 동물의 사체가 그들의 눈에 들어왔다.

“헉!!”

“저, 저게 뭐야?!!”

동물의 정체는 바로 처참하게 목이 잘린 양이었다.

* * *

“단서가 나왔나?”

경찰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무정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음성의 주인은 날카로운 눈빛을 소유한 중년인이었다.

“팀장님.”

“아직 특별한 것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변을 살펴보며 말했다.

“사진 다 찍었으면 일단 저것부터 치워.”

“네. 팀장님.”

남자가 명령을 내리자 형사들은 양의 사체를 차에 실었다.

지금 즉시 국과수로 옮겨질 것이다.

“CCTV는?”

“확인했지만 날이 어두웠던 탓에 용의자의 용모 파악이 어렵습니다.”

말을 이어나가던 형사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화질도 좋지 않고요.”

“그래.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키나 몸무게 정도는 알 수 있잖아?”

“네.”

“일단 데이터부터 뽑아봐.”

“알겠습니다. 팀장님.”

이때 팀장의 시선이 벽을 향했다.

“저 그림은 뭐지? 저것도 확인해 봤나?”

“네. 확인해 봤습니다. 하지만 피가 흘러내려서요. 일단 추정 가능한…… 가능성을 위주로 알아봤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

보고서를 확인한 팀장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라틴어, 오망성, 별자리, 해석이 불가능한 숫자, 도형, 그림?”

“네. 팀장님.”

보고서를 작성한 형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무슨 호러 영화 속에 나오는 의식 같습니다. 보시다시피 양을 제물로 썼고요. 자주는 아니지만 전에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 대부분 사이비 종교와 관련된 사건이었지.”

“…….”

비슷한 시기에 큰 사건이 터져 금방 묻혔지만 사이비 종교에 빠진 십여 명의 사람들이 인류의 종말을 외치며 자살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한의 의원이 연관이 있을까요?”

“그럴 수도!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사이비 종교인들과의 만남도 거부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일단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그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저편에서 경찰서장과 함께 강한의 의원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그렇게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 같았다.

CCTV에 나온 윤곽만으론 범인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에구머니나!!”

강남의 용한 무당이 평창동을 찾았다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흐윽.”

그녀는 마치 가슴을 관통당한 사람처럼 심장을 움켜쥐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선녀님, 선녀님. 무슨 일이십니까?”

“빠, 빨리 가. 여기서 빨리 떠나.”

-부우웅!!

운전기사는 엑셀을 밞아 그 자리를 떠났다.

“헉, 헉!!”

그제야 무당은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추릴 수 있었다.

이미 그녀의 얼굴은 땀범벅이었지만 말이다.

“대체 그건 뭐였지?”

사기(邪氣).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끔찍하고 사악한 기운이 폭발할 듯 모여 있었다.

하루, 이틀, 사흘…….

무슨 일일까?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요 입맛조차 없다.

육체마저 푹 젖어버린 솜뭉치처럼 무력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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