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8화
118화 바마존(Bamazon)
“훌쩍~!”
“……!”
“으아앙! 해피가 불쌍해.”
선우의 신작, 그림 동화 <엄마, 어디 있어요?>는 출간되자마자 동화 부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이지만 이태리 작가라는 이름에 걸맞게, 초록별 출판사는 이례적으로 10만 부의 초판을 찍어냈는데, 벌써 수만 권이나 시중에 팔렸다고 한다.
[이탈리아]
“Happy, Ha incontrato sua madre?”(해피, 엄마를 만났어요?)
“Oh! La mia bambina.”(오, 내 아가.)
[프랑스]
“Le chiot est mort. C’est tellement triste. Maman.”(강아지가 죽었어요. 너무 슬퍼요. 엄마.)
“……Happy sera heureux.”(해피는 행복할 거야.)
“Ce livre devrait aussi etre vu par les adultes.”(이 책은 어른들도 봐야 합니다.)
[미국]
“It is a fairy tale ringing in my heart. And I’m ashamed.”(가슴을 울리는 동화입니다. 그리고 부끄럽네요.)
미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유럽에서 추가 주문이 쇄도했고 그 외의 수많은 국가에서도 자국어로 출판을 요청했다.
그저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 * *
젊은 남자.
그러나 브루스 웰레스의 머리 스타일을 닮은 남자.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컴퓨터가 놓여진 책상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흐음!”
그는 컴퓨터를 부팅하자마자 인터넷에 접속했다.
한쪽 화면에는 전자 상거래 사이트가, 다른 한쪽에는 주가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시황 그래프가 보였다.
“……85%가 빠졌군.”
남자의 정체는 바로 바마존을 만든 제프 베이거스다.
바마존(Bamazon)은 1995년 2월 소규모 창고 창업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서점인데 IT, 닷컴 열풍을 타고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하여 1999년 인터넷 출판 업계를 평정한다.
제프 베이거스는 기업의 모든 자금을 전자 상거래에 투자해 바마존을 전자 상거래 1위 브랜드로 이미지를 구축하는 동시에 투베이에 대항한 옥션 사업까지 병행하였다. 바로 사업의 다각화를 시도한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대박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바로 거품(버블닷컴)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었다.
한때 주당 100달러 이상을 기록했던 바마존의 주가는 버블로 인해 폭락하기 시작했고 100억 달러에 육박했던 제프의 재산 역시 작년(2002년) 기준 15억 달러로 내려앉았다. 이는 바마존의 주가가 6달러까지 추락한 결과였다.
선우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2003년! 올해부터 바마존이 이익을 기록하게 되지.”
원 역사에서 바마존은 2003년 창업 이후 최초로 3,5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인터넷 기업 거품 붕괴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알짜 기업으로 부상하였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제프 대표님.”
“……그런데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요? 작가님, 대표님 아니면 주주님?”
“작가요. 작가라고 불러주세요. 그 말이 제일 편합니다. 제프 대표님.”
“하하, 알겠습니다. 작가님.”
두 사람은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하였다.
“작가님이 직접 방문하신다고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셨나요?”
“네. 하하하~”
바마존은 꽤나 유망한 기업이었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TED에서의 강의, 잘 보았습니다.”
“아! 그곳에 계셨습니까?”
“아니요, 전 선약이 있어서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대신 동영상을 통해 작가님의 강의를 경청했지요. 역사에 남을 강의였습니다. 저 역시 느낀 바가 많았고요.”
“과찬이십니다.”
선우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에게 거액의 투자를 제안했다.
“1억 달러요?”
“네.”
닷컴버블이 끝났다고 하지만 1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니, 그야말로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역시 작가님은 과 관련이 있었군요.”
“……!”
선우 역시 제프의 말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해 눈을 치켜떴다.
“벌써 소문이 퍼졌나요?”
“모두 구글 덕분이죠.”
“……!”
사실 그가 약속되지 않은 미팅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투자회사 은 이쪽 바닥에서 굉장한(?) 위세를 떨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투자한 기업은 대부분 큰 성공을 거두었고 그들의 수익률 역시 엄청나다고 알려졌다.
“의 투자 기조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말인데, 기왕 투자를 결정하셨으면 하시는 김에 더 쓰시죠?”
제프는 선우를 빤히 쳐다보며 역으로 제안했다.
“더 쓰라니, 좋습니다. 얼마가 더 필요하십니까?”
“바마존은 세계 최대의 인터넷 서점인 동시에 세계 최고의 전자 상거래 기업이 될 겁니다. 10억 달러를 투자해 주십시오.”
“……!!”
10억 달러를 투자해 달라고 한다.
기껏해야 2~3배를 예상했던 선우는 그의 배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나자 선우의 입술이 열렸다.
“좋습니다. 제가 만약 바마존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몇 퍼센트의 지분을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30%를 드리겠습니다.”
“30%. 30%……라.”
선우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짐짓 깊은 생각에 잠긴 척, 연기를 선보였다.
‘10억 달러를 투자해 제프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30%를 받는다?’
선우의 기억에 따르면 제프는 후일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고 그의 재산 역시 1,000억 달러를 가뿐히 상회한다고 들었다.
10억 달러를 투자한다면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무려 30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 것이다.
지금 당장 쌍수를 들고 환영의 의사를 표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승부는 이제부터였다.
“50%.”
선우는 일단 지르고 봤다.
“……!!”
50%를 달라는 말에 제프의 표정이 무지막지하게 구겨지려 하자, 눈치 빠른 선우의 다음 제안이 이어졌다.
“만약 50%의 지분을 주신다면 향후 10년 동안 제가 가진 지분의 의결권을 대표님께 모두 위임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바마존의 주식을 매각할 경우, 우선 매입권 역시 대표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떻습니까?”
“……!!”
매력적인 조건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50%의 지분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35%.”
“45%”
“38%”
“42%”
“……40%. 더 이상은 불가합니다.”
선우는 몇 번의 협상 덕에 자신의 지분율이 증가하자 내심 쾌재를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이와 같은 시간,
초록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사이트가 있다.
소속 작가들의 근황이나 출판사의 신작 소설을 홍보하는 차원에서 관리하는 사이트다.
-딸깍!
이태리 작가의 이름이 적힌 메시지 박스에 새로 온 메시지가 무려 30,291통이다. 오늘 하루에만 말이다.
“역시…… 세계적인 작가는 다르네.”
너무나도 고맙지만 이건 사람이 읽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전 직원이 달려든다면 모르겠지만 그녀 혼자서는 하루 종일 읽어도 모두 읽을 수 없는 양이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은 일부를 읽기도 하고 답장을 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이때, 노년의 한 남성이 초록별 출판사를 찾았다.
“혹시 최규용 대표님, 안에 계신가요?”
“누구시죠?”
“네. 전 이런 사람입니다.”
최규용 대표를 찾은 노년의 남성은 한 장의 명함을 직원에게 건넸다.
-[인권 변호사 이재훈]
“대표님과 약속하셨나요?”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전해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직원은 수화기를 들고 내선을 연결했다.
-대표님.
“응. 무슨 일인가?”
-인권 변호사 한 분이 찾아오셨는데요.
“인권 변호사?”
“네. 이재훈 변호사님입니다.”
직원의 말에 규용이 고개를 갸웃했다.
변호사, 그것도 인권 변호사가 무슨 일로 자신을 찾은 것인가?
의아함이 떠올랐지만 일단 그러라고 했다.
“들어오시라고 하지. 차 좀 준비해 주게.”
“알겠습니다. 대표님.”
잠시 후,
대표실의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역시나 규용이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변호사 이재훈입니다.”
“네, 안녕하세요. 최규용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감사합니다.”
노년의 변호사 이재훈이 의자에 앉았다.
“실례지만 무슨 일로 절 찾으셨는지요?”
“정확히는 아드님 일로 찾았습니다.”
“선우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규용의 질문에 그가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혹시 이것을 기억하십니까?”
“어?! 우리 선우의 옛날 명찰이네요.”
규용의 말에 이재훈 변호사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최선우 작가님이 예전에 재경 중학교를 다니셨죠?”
“네.”
“여사님의 말씀이 맞았네요.”
그는 가지고 온 가방을 열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류를 꺼냈다.
“이게 뭔가요?”
“김옥분 할머니의 유언장입니다.”
“유언장이요?”
“네.”
이재훈 변호사의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김옥분 여사가 누구고 자신이 어떤 이유로 선우를 찾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변호사님의 말씀에 따르면 제 아들이 10년 전 길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의 생명을 구해드렸다는 말씀이네요.”
“네. 그렇습니다.”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왜 지금에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명찰에 적힌 이름만 가지고 작가님을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수소문한 결과 그 당시의 작가님을 의사 혹은 의대생이라고 말했거든요.”
“……!!”
“한 3, 4년쯤? 최선우라는 이름을 가진 의대생과 인턴, 20대 초반의 의사들을 모두 전수 조사했죠. 그런데 일치되는 친구가 없었어요. 더욱이 할머니가 쓰러지셔서 조사 역시 중단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달 전쯤 할머니가 기적적으로 눈을 뜨셨어요. 또한 병실 TV를 통해 작가님의 얼굴을 보게 되셨죠. 저희들 역시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무척이나 놀랐답니다.”
이재훈 변호사의 설명은 한참이나 이어졌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기적적으로 깨어난 할머니가 그로부터 얼마 후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고 했다.
“사람들은 여사님을 욕쟁이 할머니라 불렀지만 사실 그분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하셨지요. 남몰래 가난한 자들을 도왔고 부모 없는 고아들을 후원하셨습니다.”
변호사가 건넨 서류를 살펴본 규용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잠시만요. 도대체 이게 뭐죠?”
이재훈 변호사는 규용의 말에 뭔가를 생각하는 듯하다 곧 알았다는 듯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작가님께 남긴 유산입니다. 전 재산을 상속하셨어요.”
“……!!!”
서류를 살펴보자 땅과 빌딩 그리고 친절하게도(?) 현 시세에 따른 추정 금액이 산정되어 있었다.
“200…… 억이요?”
“네.”
할머니가 남긴 유산은 무려 200억에 육박했다.
“유족이 없으셨나요?”
“네. 한 분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단 할머님께서 남기신 유산을 받으려면 최선우 작가님 본인이 오셔야 합니다. 작가님께 따로 남기신 편지와 유언장이 있거든요.”
“……네.”
규용은 잠시 침묵을 유지하다가 말했다.
“지금 선우가 외국에 나가 있어서 당장은 곤란할 것 같습니다. 일단 귀국하면 변호사님께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