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7화
117화 무한의 성장과 강아지 해피
이제 겨우 이십 대 초반인 청년의 말에 한 기업이 움직일 리 없다.
하지만 그 청년이 기업의 대주주이자 세계가 인정한 사람이라면?
“이게 뭐죠?”
“향후 MC 소프트의 미래를 위한 계획서입니다.”
“……!!”
그것을 본 조택진 대표의 눈이 또다시 커다랗게 떠졌다.
MC 소프트의 조택진 대표는 정신이 없었다.
대체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몇 번이나 놀라고 있는 것인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마저 들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두 시간 전,
조택진 대표는 자신을 찾아온 사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노벨상을 수상한 이태리 작가가 의 대주주이자(사실은 주인이지만) 해피 그룹의 실질적 주인이라는 말에 놀라지 않을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필드가 하나로 연결된다는 말입니까?”
“네.”
“그렇다면…….”
“게임의 전체 맵이 동시에 로딩되겠죠.”
“아!!!”
언리얼 엔진2를 사용한 MC 소프트의 차기작 리나지 2에 대한 얘기다.
그는 선우가 말한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게임 전문가답게 선우의 말한 의미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유저들의 반응이…….”
“엄청난 재미와 게임이 가져다주는 중독성에 환호를 보내겠죠. 더욱이…….”
선우의 제안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리나지 1과 비교해 장비에 따라 더욱 화려해진 외형, 인챈트 레벨에 따라 반짝이는 무기는 곧 게임 안에서 보이지 않았던 치열한 경쟁과 계급 사회를 만들어내게 될 겁니다. 사람들은 기꺼이 지갑을 오픈할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
-꿀꺽!!
충격이 제법 컸던 모양이다.
조 대표는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침을 삼켰다.
“리나지 2의 출시 예정일이 언제인가요?”
“올해 10월로 예정 중입니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겠군요.”
“…….”
그렇다.
아직 시간적인 기회가 있었다. 그렇기에 더 늦기 전에 방향을 확정해야만 했다.
“리나지 2가 출시된다면 대한민국 게임 시장을 평정하게 될 겁니다.”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조택진 대표는 처음과는 달리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이미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그럼 이참에 인원을 더 확충하시는 게 어떨까요?”
“좋은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죠.”
조택진 대표의 승낙에 선우가 미소를 보이며 또 하나의 서류를 내밀었다.
“그리고 이것을 좀 검토해 주십시오.”
“이게 뭐죠?”
“MC 소프트의 미래를 위한 계획서입니다.”
“미래를 위한 계획서요?”
“네.”
“……!!”
선우가 그에게 건넨 계획서는 향후 스마트폰을 이용한 모바일 게임 시장의 무한한 가능성과 성장을 족집게처럼 예상한 10페이지짜리 보고서였다.
“이, 이게 가능할까요?”
서류를 살펴본 조택진 대표의 눈이 또다시 커다랗게 떠졌다.
“당연히 가능하죠. 전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미 구글은 전 세계를 상대로 플랫폼 사업을 시작했고 한국의 초록피아 역시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음!”
“10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십시오. 아니!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해 보세요. 단언컨대 세계는 몇 년 안에 스마트 시대를 맞이하게 될 겁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아니! 전 세계 게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합니다.”
“……!!”
대주주의 위치를 떠나서 세계가 인정한 남자의 말이다.
조택진의 얼굴에 순간 묘한 긴장감과 숨길 수 없는 기대가 어리기 시작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스마트 시대에 기술의 성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궁금한 그가 선우에게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물론이죠.”
선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조택진 대표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짧은 시간 안에 다가올 스마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조택진 대표는 이미 다양한 매체의 정보를 통한 풍부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후,
조택진 대표는 개발진 전체를 소집해 자사 브랜드의 인터넷 게임 사이트(N게임)를 준비하는 동시에 스마트 시대를 대비한 모바일 팀을 만들어 개발에 착수하였다.
그의 이와 같은 결정으로 인해 후일 MC 소프트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게임 회사로 성장하게 되고 동시에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거대 게임 기업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 * *
집에 돌아왔는데, 웬 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다가온다.
“엄마, 얜 뭐예요?”
“어? 선우 왔니?”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던 수연이 선우의 목소리를 듣고 거실로 나왔다.
“어머머? 얘가 나왔네.”
강아지를 확인한 수연의 눈에 이채가 흘렀다.
“뭐가요?”
“아까 혜진이가 데리고 왔는데, 계속 나오지 않고 있었거든. 근데 이상하다. 우리 선우가 오니까 이렇게 나왔네? 반가운 듯, 꼬리마저 흔들고 말이야.”
수연의 얼굴에 희색이 어렸다.
‘……설마 유기견인가?’
선우는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엄마, 혜진이는요?”
“화장실에 있어.”
“아!! 네.”
말하기 그렇지만 동생은 약간의 변비가 있었다.
-왕~ 왕왕!!
“어머, 얘 좀 봐봐. 선우야. 널 보고 반갑게 짖는다. 네가 좋은가 봐~”
마나의 향기 혹은 정령의 냄새 때문인가?
강아지는 마치 애교를 부리듯 꼬리를 흔들며 선우에게 다가왔다.
“손.”
-척!
“엥? 오른손.”
-척!
“와우!”
“어머머머!!”
그냥 한번 해봤는데,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왠지 아주 똑똑한 강아지로 보였다.
“좋아. 그럼 이번에는…… 빵!”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한 후, ‘빵’ 소리를 내자 이 녀석은 정말로 총을 맞은 것처럼 발라당 쓰러졌다.
“와우!”
“대~~박!”
이 녀석의 명연기(?)에 수연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일어서.”
-벌떡!
선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아지는 바닥에서 일어났다.
“앉아.”
-스윽!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앉고 마치 ‘나 잘했죠?’라고 말하는 것 같다.
“엄마야~~!”
어느새 화장실에서 나온 혜진 역시 강아지의 이 같은 행동에 감탄을 토해내고 말았다.
잠시 후,
남매가 가까운 동물 병원을 찾았다.
“어서 오세요!”
상냥한 말씨를 가진 간호사다.
하지만 남매를 슬쩍 한 번 쳐다보고는 사무적인 어조를 보였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변장이 통한 모양이다.
“강아지 때문에 왔는데요.”
“미용인가요? 아니면…….”
“건강 검사를 받으려고요.”
“건강 검사요? 예약하셨나요?”
“아뇨, 예약은 못 했는데…….”
“그럼 잠시만요. 원장님께 여쭤볼게요.”
“네~”
간호사는 원장실로 직행했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오세요.”
간호사는 선우와 혜진을 향해 원장실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KCF 할아버지와 비슷한 풍채를 지닌 인상 좋은 원장님은 강아지를 요리조리 살펴보더니 이내 말문을 열었다.
“유기견인가 보죠?”
“……!”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
강아지의 상태를 보더니, 한눈에 알아차렸다.
“네. 제 여동생이 데리고 왔는데, 건강 상태가 어떤지 궁금해서요.”
“혼자 벌벌 떨고 있더라고요. 씻지도 못해서 지저분했고요.”
“네. 그랬군요.”
원장 선생은 안경을 한 번 고쳐 쓰더니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생분의 마음씨가 참 예쁘네요.”
“네?”
“요즘 같은 세상에 자기 강아지도 아니고, 버려진 유기견을 데리고 와서 이렇게 검사까지 해주는 분은 별로 없거든요.”
“……아! 네.”
선우 역시 착한 마음을 지닌 혜진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혜진은 쑥스러운 듯 고개를 살짝 돌리며 얼굴을 붉혔다.
“자~ 욘석아. 잠시만 가만히 있어 보렴.”
원장 선생님은 마치 손주를 보는 할아버지와 같은 미소로 강아지의 피를 뽑았고 엑스레이를 찍었다.
“흐음. 다행히 큰 병은 없네요. 체력이 떨어져 있지만 잘 먹이고 잘 쉬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강아지의 주인을 찾습니다.]
혜진은 동네에 광고(주인이 잃어버린 강아지일 수 있으니)를 냈지만 열흘이 지나도록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혜진의 강권적인 애원, 부탁, 요청에 의해 강아지는 선우의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히릿!”
-…….
“케럴라잇!”
-…….
“삐우삐롱!!”
-……!!
“해피?”
-왕?
“해피야!”
-와~~앙!!
여러 가지 이름이 본선에 올랐지만 결국 강아지의 본인에 의해 해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즐겁게 놀다가도 하얀색 SUV가 지나갈 때면 해피는 멍하니 서서 자동차를 쳐다보았다.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말이다.
“……!”
뭔가 사정이 있어서 버렸겠지만…….
그럴 때면 왠지 슬퍼 보이는 해피의 눈망울을 보며 선우는 오랜만에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엄마, 어디 있어요?>
오랜만에 떠난 바깥나들이.
엄마는 아침부터 흥이 났는지, 날 데리고 나와 붕붕이에 태웠어.
“이얏호! 엄마. 엄마. 저 기분이 좋아요.”
“…….”
“기분이 너무 좋아 날아갈 것 같아요.”
기분도 좋고 날씨도 좋고~ 헤헷!
오늘은 정말로 멋진 하루가 될 것 같았어.
창문을 통해 느껴지는 바람도 어찌나 상쾌하던지, 눈을 뜨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한참을 간 것 같아.
엄마는 어느 한적한 길가에 붕붕이를 세워 놓았어.
그리고 나와 함께 나와 꽃구경을 했지 뭐야~
그날따라 엄마는 맛 좋은 간식까지 듬뿍 주셨어.
“엄마. 엄마~~❤❤”
난 신이 나서 맘껏 뛰어다녔어.
“엄마, 엄마도 같이 놀자~~”
어?!!
그런데 무슨 일이지?
한참을 놀다가 고개를 돌렸는데,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
붕붕이도 없었고 말이야.
“……엄…… 마?”
난 주위를 살피며 엄마를 불러봤어.
아무래도 내가 너무 멀리 온 것 같아.
“엄마! 붕붕아! 엄마! 엄마!!”
난 엄마를 부르며 미친 듯이 주변을 뛰어다녔어.
“엄마, 미안해요. 내가 빨리 찾아갈게요.”
난 코가 아주 예민해.
아마 우리 집에서 내가 가장 냄새를 잘 맡을 거야!
“……!!”
난 7년을 함께한 엄마의 냄새를 떠올렸어.
그리고 무작정 뛰기 시작했어.
날 걱정하며 울고 있을 엄마를 떠올리니까, 달리기를 멈출 수가 없더라고!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저 멀리 초록색 대문이 보이기 시작했어.
마침내 집에 돌아온 거야.
“엄마. 나야. 내가 왔어.”
“…….”
“엄마.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
그런데 뭔가 이상해.
엄마가 날 보고도 모른 척해.
“엄마. 나야. 나라고.”
그때였어.
집 앞으로 아주 큰 붕붕이가 왔어.
그리고 엄마는 날 외면한 채 그 큰 붕붕이에 올라타셨어.
“엄마. 날 두고 가지 마세요. 앞으로 말 잘 들을게요.”
난 크게 외쳤어.
혼신의 힘을 다해 말했어.
“엄마! 엄마, 제발…… 요.”
엄마가 떠났어.
혹시나 해서 엄마를 기다려봤지만 엄마는 돌아오지 않으셨어.
그래도 난 포기하지 않았어.
엄마에게 무슨 사정이 생겨 잠시 날 두고 간 것일 수 있잖아.
난 계속 기다렸어.
그리고 계절이 바뀌었어.
노랗고 빨간 나뭇잎이 떨어지더니 어느새 겨울이 다시 찾아온 거야.
추위와 배고픔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지만 그래도 떠날 수 없었어.
만약 엄마가 찾아왔는데, 내가 없으면 안 되잖아.
엄마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도 견뎌야지 다짐했어.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참 달게 느껴지네.
“…….”
“…….”
“…….”
“해…… 피……야. 해피…… 야~”
-어, 엄마?
“해피야~~”
-엄마! 엄마~~!!
저 멀리 엄마의 모습이 보이자 해피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엄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간밤에 내린 폭설로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답니다.
“아이고, 이걸 어째?”
“무슨 일인데?”
“저기, 초록 대문 집에서 키우던 댕댕이 한 마리 있잖아요.”
“응.”
-소곤소곤, 수군수군!!
“아이고! 맨날 그 자리에서 떠난 주인을 그렇게 기다리더니, 기어코 하늘나라로 갔구먼. 불쌍한 것…….”
“영감. 우리가 양지바른 곳에 묻어 줍시다.”
“그래. 그렇게 하자고.”
“댕댕아, 고생했다. 이제 그만 푹 쉬어.”
“…….”
-End.
선우는 마지막 장을 완성하며 동화책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 하루에 수백 마리의 강아지가 버려지고 있습니다.]
-귀찮아서.
-사정이 안 돼서.
-여행을 가야 해서.
-강아지에 질려서.
-단순하게 싫증이 나서.
-다른 반려동물이 좋아져서.
[잊지 마세요. 강아지가 아닙니다. 우리의 소중한 가족입니다.]
선우는 원고지를 덮으며 조용히 고개를 돌렸다.
발라당 누워, 편해 보이는 자세 그대로 잠을 자고 있는 해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