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흑마법 작가다-115화 (115/187)

◈ 제 115화

115화 사주(社主) 일가의 퇴진과 전문 경영인 출범

마법사는 우주의 근원이자 자연을 이루는 마나(mana)를 다루는 자다.

저서클 마법사는 상관없으나 지구처럼 마나가 부족한 곳에서 고서클 마법사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에 치우치지 않고 정(精), 기(氣), 신(身)이 모두 합(合)을 이뤄야 한다.

저녁 11시.

모래주머니와 철괴(鐵塊)를 전신에 두르고 전력으로 산을 타는 일은 선우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어가자 다리에 힘이 풀려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다리가 천근처럼 무겁고 심장이 터질 것만 같다.

숨을 쉬는 것조차 괴로운데 소금기를 먹은 땀방울이 마치 바늘처럼 눈알을 콕콕 찌르는 느낌에 지금이라도 멈추고 싶은 유혹이 그를 괴롭혔다.

“이익!”

하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마법사라는 사실이 그의 이를 악물게 했고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어느 순간부터 기묘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넘어질 듯 넘어지지 않고 달리는 자신의 모습이 생경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리에서 느껴지는 고통이 없다.

아니, 감각이 없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근육이 찢기는 것 같았던 격통과 터질 듯 요동치던 심장박동 역시 안정되었다.

선우는 무아지경에 빠져 들고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단지 아주 신선하고 처음 맛보는 황홀감이 그의 심장에 느껴졌다.

아직은 씨앗에 불과한 정도로 작았지만 뿌리를 내렸다는 의식만큼은 분명했다.

-번쩍!!

눈을 뜨자 어느새 하늘이 밝아오고 있었다.

“킁킁!”

땀범벅이 된 몸에서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해질 정도의 심한 악취가 났다.

“실프~”

[꺄르르. 네, 마스터.]

“근처에 몸을 씻을 수 있는 계곡이 있을까?”

[물론이죠. 절 따라오세요.]

“그래. 고마워.”

선우는 실프가 이끄는 방향으로 달려갔고 차가운 계곡물에 몸 전체를 담글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날 오후,

왓슨이 도착했다는 소식에 선우가 모비딕 호텔로 이동했다.

“작가님?”

“……네?”

왓슨은 선우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 좋은 것 드십니까?”

“왜요?”

“뭐랄까, 음. 말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데, 분위기, 외형, 뭐 그런…….”

“혹시 기도(氣度)요?”

“네. Presence!!”

적당한 단어를 찾은 모양이다.

“작가님의 프레젠스(presence)가 전에 비해 훨씬 좋아진 것 같아서요.”

“흐음.”

아마도 4서클에 오른 영향일 것이다.

암튼 각설하고 선우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알아보셨나요?”

“네. 여기 있습니다.”

선우는 왓슨이 건넨 자료를 살펴보았다.

순화 그룹의 총자산, 총부채, 당기순이익은 물론이고 주력 사업의 진행 상황을 포함해 오너가의 사생활까지 총망라된 보고서였다.

“조 회장의 경영 능력은 괜찮습니다. 점수를 매기자면 B++ 혹은 A-입니다.”

“하지만 인성이 쓰레기네요.”

“네.”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다.

선우는 왓슨을 향해 단호하게 말했다.

“순화 그룹의 주인을 바꾸죠.”

“적대적 M&A입니까?”

M&A는 어떤 기업의 주식을 매입함으로써 소유권을 획득하는 경영전략이다.

기업합병(M)은 매수한 기업을 해체하여 자사(自社) 조직의 일부분으로 흡수하는 형태를 뜻하며, 인수(A)는 사들인 기업을 해체하지 않고 자회사ㆍ관련 회사로 두고 관리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M&A는 크게 적대적 M&A와 우호적 M&A로 구분할 수 있다. 우호적 M&A는 인수 회사의 독단이 아닌 피인수 회사와의 합의에 의해 이루어지며 주로 기업 성장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에 적대적 M&A는 피인수 회사의 의사와 관계없이 인수 회사가 독단적으로 취하는 경우로 공개 매수 방식이나 주식 매집을 통해 이뤄진다. 우호적인 M&A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진행되는 만큼 세인의 관심이 덜하지만 적대적 M&A의 경우 ‘남의 경영권을 빼앗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 주목받는 경우가 많고 그 파장도 큰 편이다.

“네. 적대적 M&A입니다.”

선우의 그렇다는 대답에 왓슨이 다시 물었다.

“직접 경영하실 생각입니까?”

“아뇨. 예전에도 그랬지만 경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럼?”

“쓰레기 같은 주인을 바꾸고 적당한 주인을 찾아줘야죠.”

선우는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가장 빠르고 가장 확실하게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보스.”

그 후 왓슨은 순화 그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자본들에게 은밀히 연락을 취해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순화 그룹 주식에 대한 위임장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

만 하루가 지났지만 어느 누구에게도 즉답이 없다.

하지만 거절의 의사도 밝히지 않아다.

다시 말해 지금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기고 있다는 뜻이었다.

[칼라일 그룹]

“마침내 이 움직이는 건가요? 재밌네요.”

“글쎄요.”

왓슨의 두리뭉실한 대답에 상대는 피식 웃었다.

“시간은 얼마나?”

“……한 달. 오래 끌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국의 순화 그룹을 한 달 안에 끝장내겠다! 역시 답군요.”

켈라힐 그룹(Kellarlyle Group) 로커스타인 의장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창가로 이동했다.

그는 팔짱을 끼고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왓슨 대표님. 전 비즈니스맨입니다. 우리 회사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죠. 그런데 에게 위임장을 주는 것이 이익일지는 모르겠군요.”

“금전적인 이익이 얼마나 발생할지, 그건 저도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칼라일 그룹에 신세를 졌다는 것이죠. 때론 무형의 가치가 유형의 물질보다 유익할 때가 있습니다. 저희는 결코 칼라일의 호의를 잊지 않을 겁니다.”

“…….”

로커스타인 의장의 표정이 한결 밝아지는 것이 왠지 왓슨의 설득이 먹힌 것 같았다.

“……좋습니다. 위임장을 드리죠.”

위임장을 주겠다는 로커스타인 의장의 말에 왓슨의 입가가 올라갔다.

썬스타를 선두로 실버만삭스, 블랙스톤, 셀마&헤이엑 그리고 켈라힐 그룹까지 위임장을 얻어냈다.

사무실에서 빠져나온 왓슨은 곧바로 선우에게 연락을 취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스.”

-지금부터 순화 사냥을 시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 * *

순화 그룹 경영 본부가 발칵 뒤집혔다.

“뭐야? 주가가 왜 이래?”

비이상적인 주가의 흐름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벌써 일주일째 오르고 있어. 대체 왜 이러는 거지?”

특별한 호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주가의 상승폭이 너무나 또렷했다.

“부장님. 큰일 났습니다. 이걸 보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온 천 과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썩은 표정이었다.

-투자 전문 그룹 , 순화 그룹에 대한 적대적 M&A 선언.

표면적으로 왓슨이 이끌고 있는 그룹은 선우의 의지에 따라 적대적 M&A를 공시하면서 순화 그룹 경영진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1. 순화 그룹 이사진의 총사퇴.

2. 순화 화학 매각을 통한 재벌 구조의 해체.

3. 조명준 회장 일가의 경영 퇴진.

4. 순화 그룹의 경영 투명화, 전문 경영인 체제 확립.

5. 임원에 대한 5년 의무 고용, 직원에 대한 10년 의무 고용.

선우는 언론사를 통해 순화 그룹 경영진, 특히 사주 일가의 부정부패를 폭로하며 초장부터 유리한 여론전을 펼쳤다.

-9시 뉴스입니다. 오늘 오후 1시. 영국계 투자회사 의 존슨 부사장이 순화 그룹 주식의 16.7%를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단일 주주로 최대이며…….

서울시 평창동.

수백 평의 대지에 세워진 2층집.

이곳은 순화 그룹 조명준 회장의 자택이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서슬 퍼런 고함 소리가 집 안을 울렸다.

“우호 지분이 없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해외 자본은 그렇다고 쳐. 역시 해외 자본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국내 기업은 다르지. 해외 자본의 공세에 우리 순화가 넘어가면 다음은 어디겠어?”

“…….”

하지만 조명준 회장이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이 암중에서 순화 그룹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너희 주식 보유하고 있는 것 알지?)

(응.)

(그럼 가만히 있어. 미리 말하지만 우린 경영에는 관심이 없어.)

(지금 순화 그룹의 경영권을 노리는 게 아니야?)

(응. 아니야.)

(…….)

(조용히 지켜봐 봐. 그럼 나중에 떡 하나 줄게.)

(알았어.)

그때였다.

조명준 회장이 기다리던 손님이 그의 자택에 도착했다는 전갈이 왔다.

“어서 오십시오. 권 사장님.”

“오랜만입니다. 조 회장님.”

모습을 나타낸 자는 성삼 전자의 권학수 사장이다.

“그동안 격조했습니다. 이희건 회장님은 정정하시죠?”

“네. 덕분에요.”

잠시 두 사람 사이에서 담소가 오가는 가운데 마음이 급한 조명준 회장이 먼저 본론을 꺼내들었다.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해외 자본의 적대적 M&A가 들어왔습니다.”

“네. 영국계 투자회사 이죠. 뉴스를 봤습니다.”

“겉으로는 한국 기업에 도움을 주는 친구인 척했지만 보십시오, 믿고 있던 친구의 등에 다가와 비수를 꽂았습니다.”

“…….”

“그래서 말인데…….”

조 회장이 바라는 것은 성삼 그룹이 순화 그룹의 백기사가 되어 주는 것이었다. 성삼이 중심이 되어 순화의 손을 들어주면 국내 기업들 역시 순화의 편을 들어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또한 의결권이 없는 순화 그룹의 주식을 성삼이 매입해 달라고 요청했다.

“의결권이 있는 자사주를 매입하기 위해서입니까?”

“네.”

조 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M&A 방어에 성공하면 성삼에서 매입한 주식의 금액에 20%의 인센티브를 더해 재매입하도록 하겠습니다.”

“음!”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권학수 사장은 조명준 회장의 제안에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지만 내심은 달랐다. 이미 이희건 회장에게서 순화 그룹이 어떤 요청을 하더라도 절대 불가라는 답을 듣고 왔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의 부사장 미스터 존슨이 이희건 회장과 만나 성삼 전자 반도체 사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제 선에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군요. 내일까지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다음 날 늦은 저녁,

권학수 사장의 메시지가 조명준 회장에게 전달되었다.

-죄송하지만 저희 성삼은 이번 M&A에 대해 중립적인 위치를 고수하기로 했습니다.

“……?!!”

권학수 사장의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기 무섭게 조명준 회장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말만 무심하게 들려온다.

그의 안색이 무겁게 가라앉기 시작했고 그의 눈엔 불안, 초조, 당혹과 같은 감정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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