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3화
113화 T&B 송년 파티에서 생긴 일(2)
“저거 성추행 아니야?”
“헐! 최선우. 실망이다. 그렇게 안 봤는데…….”
“이야! 용기가 대단한 건지, 아님 무모한 건지 모르겠네.”
그리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몇몇 사람들이 선우를 향해 폭언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도대체 귀신은 뭐 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네.”
“그게 무슨 말이야?”
“노벨상을 받으면 뭐 해? 그래 봤자 성추행범이잖아.”
“어이, 말조심해. 그러다 듣겠어.”
“헐! 야! 지금 내가 조심해야 해? 들을 테면 들으라고 해. 이거 자존심이 상하네.”
-웅성웅성!
“저 새끼 영국 귀족이라고 했지? 귀족이면 뭐 해? 기본이 저런데!”
“쓰레기!!”
사실 지금 선우에 대해 불만을 토해내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부류였다. 젊은 나이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범접할 수 없는 외모를 지녔다. 어디 그뿐인가?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을 갈아치웠고 대한민국에 우승컵을 선물했다. 젠장! 막말로 돈이라도 없으면 모르겠는데 포니스의 발표에 따르면 추정 재산일 뿐이지만 재벌 3세인 자신들보다 재산이 많았다.
한마디로 부족한 게 없는 완벽한 남자의 표상이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해있던 찰나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선우에 대한 불만이 술술 튀어나오고 말았다.
“노벨상을 받으면 뭐 해? 저 새끼 고졸이잖아.”
“그건 그렇지. 큭!”
한국 대학교를 자퇴했기에 선우의 공식적인 학력은 고졸, 대학 중퇴가 맞았다.
하지만 듣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여기서 참아? 아니면 조져?’
잠시 망설이는 사이 결정타가 날아왔다.
사나이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X발! 설연이 아깝다. 설연이 아까워. 저런 새끼가 뭐가 좋다고…… 쯧쯧쯧!!”
“공 차는 것 안 봤어? 체력이 겁나 좋겠지.”
“훗! 결국 그런 건가?”
선우는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싸움을 걸어왔으면 받아주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말씀 참 재밌게 하시네요. 저도 한마디 드려도 될까요?”
“쳇! 말하고 안 하고는 자유 아닌가?”
“원한다면…… 해보쇼.”
다분히 도전적인 말투다.
“들어보니 방금 제 학력 가지고 뭐라 하시던데,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은 수능 만점을 받아보셨나요?”
“……!!”
“……!!”
수능 만점을 받아봤냐는 말에 아무런 대답이 없다.
“노벨상은요?”
“……!!”
“고졸도 받은 노벨상인데, 유학까지 다녀오신 분이 왜 못 받으셨어요? 그것참 별일이네요. 그렇죠?”
“이익! 성추행범 따위와 나눌 말은 없습니다.”
“나도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성추행범이라, 직접 봤나요? 아니면 확실한 증거라도 있나요? 증거가 없으면 명예훼손이에요.”
선우는 좌중을 향해 당당히 말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술 한 잔 마시지 않은 제가 저분의 엉덩이를 만졌다고요?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뭐, 뭐라고요? 이봐요.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요?”
“못 들었나요? 다시 한 번 말해줄까요?”
“이익!!!”
선우의 말에 모욕감을 느꼈는지, 그녀는 다짜고짜 따귀를 날렸다.
-철썩!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따귀를 맞은 선우는 정작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억울함이라든가 아니면 분노와 같은 감정이 떠오를 법도 한데, 선우의 얼굴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날 성추행범으로 모는 것. 이것이 당신의 의도였나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로애락의 감정이 철저하게 배제된 차가운 음성이 새어나왔다.
“……!!”
조수애는 얼음장처럼 차가운 음성에 알 수 없는 공포를 느껴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 순간 조수애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조영기 본부장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잘했어. 계속해. 어서 계속해.’
‘……!!’
-꿀꺽!!
성공에 대한 욕망이, 돈에 대한 욕심이 공포를 억제하고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켰다.
“쓰레기 같은 새끼. 월드컵 우승의 주역?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그게 뭐!! 그래 봤자 성추행범이야. 넌 이제 끝났어. 너 같은 색마 새끼는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해.”
그녀는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크게 외치며 선우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오~~ 잘하고 있어. 우리 수애. 연기 죽이네.’
이와 같은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조영기는 희열감에 빠졌다.
저 재수 없는 자식은 이제 성추행범이 되어 추락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의 거센 반격이 시작되었다.
“어이가 없군. 가만히 있는 내게 다가온 것도 당신이었고 그 냄새 나는 엉덩이를 내게 비벼댄 것도 당신이었잖아.”
“뭐!!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 역시 결코 지지 않겠다는 듯 성을 내며 반격했다.
“어디서 오리발이야?”
“오리발?”
“그래. 당신은 내가 이 자리에 왔을 때부터 날 쳐다봤어.”
“쳐다는 봤지. 내 옆으로 당신이 다가왔으니까 말이야. 그런데 말이야. 단순히 쳐다본 게 죄인가?”
“뭐?!”
“못 들었어? 단순히 쳐다본 게 죄냐고 물었어.”
“…….”
선우의 반문에 순간 그녀의 말문이 콱 막혀 버렸다.
“그, 그건 아니지만…… 그래! 맞아. 당신은 날 음흉한 시선으로 바라봤어.”
“하아. 그건 당신의 착각이고.”
한편 이와 같은 모습을 바라보던 김일환 대표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마디 하고 말았다.
“조수애가 완전히 미쳤군.”
선우가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그의 말대로 이렇게 보는 눈이 많은 공개된 장소에서 그런 짓을 했겠는가?
더욱이 그는 오늘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연회장 내부에 교묘히 설치된 수십 대의 보안 카메라의 존재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은 T&B 대표인 그가 대관 계약을 맺을 때, 총지배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상황이었다.
때마침 누군가가 연회장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그의 시선에 잡혔다.
“이제 끝났네.”
최병혁 총지배인과 그의 뒤에 따라붙은 몇 명의 호텔 직원들이다.
“무슨 일이십니까?”
“댁은 누구시죠?”
“모비딕 호텔 최병혁 총지배인입니다.”
“그래요? 잘됐군요.”
조수애는 총지배인이 나타나자 최선우가 성추행을 했으며 그 피해자가 자신이라 밝혔다.
“……성추행 사건이란 말씀이시죠?”
“네.”
“확실한 겁니까?”
“물론이죠. 저 새끼가! 절 만졌어요.”
“그게 정말입니까?”
“네. 사실이에요.”
조수애의 설명을 듣던 최병혁의 눈매가 조금 찡그려졌다.
“음!! 일단 양측의 말을 모두 들어봐야 하니까, 이번엔 작가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양해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수애 씨.”
“……쳇! 그렇게 하세요.”
상대가 타당한 이치를 대며 정중하게 나오자 그녀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하지만 큰 걱정은 없었다.
그녀의 경험상, 이런 종류의 사건에서 남자가 늘 약자였기 때문이다.
“실례지만 여성분의 신체를 만지셨습니까?”
“아니요. 그런 일 전혀 없습니다.”
선우 역시 그의 입장에서 차분히 설명했다.
두 사람의 입장에서 모든 자초지종(自初至終)을 들은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분께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정확히 이 위치에서 벌어진 일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선우와 조수애의 대답에 총지배인의 눈빛이 강해졌다.
“두 분께서 주장하시는 내용이 극히 상반되니, 이렇게 되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네요.”
“방법이 있다고요?”
“네.”
“어떤 방법입니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이곳 연회장에는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수십 대의 보안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 보안 카메라요?”
“네.”
보안 카메라, 그것도 수십 대의 카메라가 있다는 말에 조수애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그렇군요. 카메라의 화질은 어떻습니까?”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 있는 보안 카메라와 동급입니다.”
“……!!”
최병혁이 무전기를 들고 누군가를 호출하자 조수애가 긴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카메라가 공개되면 큰일이었다.
어서 빨리,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수습해야 했다.
-지지직, 보안 카메라 영상 확보되었습니다.
마침 총지배인의 무전기에서 준비가 되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준비가 됐다고 하네요.”
“그럼 어서 가서 확인하도록 하죠.”
“네. 그럼 두 분 모두 이쪽으로…….”
“자, 잠시만요.”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전 이미지가 생명인 여배우예요. 더욱이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모두 사회적인 위치가 높은 분들이죠. 더 이상 시끄럽게 만들고 싶지 않네요. 여기서 그만두죠.”
“네?”
최병혁은 조수애의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쉽게 끝낼 것이었으면 도대체…….
-웅성웅성!!
“전 싫은데요. 영상을 보러 가시죠.”
선우는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릴 때부터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파렴치한 성추행범으로 몰리고 모욕까지 당했습니다. 아! 따귀도 맞았죠. 전 이대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가시죠.”
등을 돌린 선우가 한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다급함이 느껴지는 조수애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자, 잠깐만요. 어쩌면…… 제가 착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선우가 그녀를 쳐다보며 눈을 부라렸다.
“이봐요. 조수애 씨.”
“네.”
“전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보기 싫으면 당신은 가지 마세요. 하지만 영상의 결과에 따라 전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겁니다.”
무엇을 상상했을까?
조수애는 자신의 비참한 미래를 예상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제, 제가 사과할게요.”
“됐고요. 전 법대로 할 겁니다.”
선우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가 왜 이런 일을 벌였을까?
단순한 질투심? 그런 것이 아니다. 분명 누군가의 사주(使嗾)를 받았을 것이다.
한편 선우의 엄포에 가뜩이나 하얗게 질려버린 그녀의 얼굴이 완전히 창백하게 변해 버렸고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경멸에 가까운 눈길을 그녀에게 던졌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니, 누구의 잘못인지가 명명백백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쯧쯧쯧! 그렇게 자신만만해하더니.’
그 모습을 지켜보던 조영기 본부장 역시 혀를 끌끌 차며 마뜩잖은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곧이어 벌어진 상황에 그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우우웅!!
‘거짓과 진실의 저울! 당신의 마음속에 있는 진실만을 말할지어다.’
마음속 진실을 토해내게 하는 마법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조수애 씨. 혹시 내게 망신을 주라고 누가 시켰나요?”
말을 마친 선우는 연회장 내부를 휘휘 둘러보았다.
“…….”
하지만 조수애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선우의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의 입술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
“조영기가 시켰어요.”
“헐! 대박!”
“뭐, 뭐라고? 조영기?!!”
“에이, 설마…….”
조영기의 이름이 귓속을 파고드는 순간 사람들의 눈이 일제히 반짝거렸다. 호기심이 동한 것이다.
-웅성웅성!!
“누가 시켰다고요?”
“조……영기 본부장이요. 순화 그룹의 조영기 본부장이 제게 시켰어요(악!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그녀는 물론 조영기 본부장 역시 경악하리만큼 놀랐다.
‘저, 저런 미친년! 지금 뭐라는 거야?’
어찌나 크게 놀랐는지 그의 눈은 찢어져라 부릅떠지기까지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