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12화
112화 T&B 송년 파티에서 생긴 일(1)
“김경호라고 합니다. 대운 증권 출신으로 능력이 꽤 출중합니다. 저 사람을 스카웃하려고 세 번이나 찾아갔습니다.”
“그래요?”
선우는 씨익 웃었다.
능력자 왓슨이 세 번이나 찾아갔다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저 여자분은 누굽니까?”
서른 중반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TDS 증권의 부장이었습니다.”
“TDS 증권이요?”
“네. 가진 바 능력이 뛰어나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능력이 폄하되어 있었습니다. 저희가 제안하자 선선히 이직을 받아들였지요. 좋은 인재를 아주 쉽게 구했습니다.”
선우가 오른쪽에서 모니터를 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꽤나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보이는 서른 초반의 사내를 눈짓으로 가리키자 왓슨이 실소했다.
“스티븐 정, 한국 이름은 정예서입니다. 성격이 쾌활하고 능력 역시 발군인 친구입니다. 실버만삭스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한국 지사를 담당시켜준다니까 즉시 펜을 꺼내 고용 계약서에 사인하더군요.”
“호오~”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전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한국에 몹시 오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좋습니다. 세 명 모두 좋습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세 명에게 팀장의 직위를 주시고 각각의 팀을 만들어보라고 하십시오.”
“팀을요?”
“네.”
팀장의 권한은 막대하다.
비록 운용할 수 있는 자금에 제한이 있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팀장은 각각의 독립된 조직의 수장으로 팀원에 한해 인사, 연봉에 대한 전권을 가지기 때문이다.
후에 저들 세 사람은 한국 증시의 삼두마차(三頭馬車)라 불리며 주식시장에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되는데, 이것은 앞으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다.
“알겠습니다. 보스.”
왓슨은 존경심이 담긴 눈빛을 보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시간을 확인한 선우는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KBC Hall
KBC 홀에 스타들이 모습을 속속 드러내자 방청객들의 환호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는데, 실제로 초대 가수들의 공연이 이어지자 현장의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다.
“오랫동안 기다리셨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최우수 여자 연기상을 발표해 드리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
“조……수애 씨. 축하합니다.”
“축하드립니다. 수애 씨.”
-와아아~~~
조수애의 이름이 호명되자 스포트라이트가 터졌다.
“어…… 여기요. 저도 있어요. 사회자에게도 조명 좀 주세요.”
박동엽의 익살에 분위기는 더욱더 부드러워졌다.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마이크를 대자 조수애는 차분하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마이크는 다시 박동엽에게 전해졌다.
사회자 박동엽은 사람들의 환호가 잠잠해지자 다시 입을 이었다.
“자~ 그럼 오늘의 메인이벤트, 영예의 대상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두구두구두구!!
“영예의 대상은 도깨비의 신부의 설연!!!”
-와아아~
-꺄아아~~
“설연 양. 수상 소감 부탁드립니다.”
“먼저…….”
설연의 수상 소감이 발표되었다.
“……마지막으로 절 응원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설연 누나 사랑해요.”
“우유 빛깔 한설연~~ 와아아아!!”
이때 사회자인 박동엽이 설연을 향해 한마디 했다.
“아이고, 우리 설연 배우님이 정작 가장 중요한 분께 감사의 인사를 안 하셨네요.”
“네?”
“왜요~~ 그분 있잖아요. 그분! 노벨상~~”
“……!!”
-꺄아아아!!
-우워어어어어어!!
사회자의 말에 오히려 방청석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괴성과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음~ 늘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요. 사랑합니다.”
방청객들은 물론 TV를 통해 집에서 시청하고 있던 사람들은 설연의 수줍으면서도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꺄아아!! 짝짝짝~~짝!
-우와아아~~ 짝짝짝!
수상식이 끝나고 자정에 가까운 시간,
조수애는 사실상 순화 그룹의 후계자로 불리는 조영기 본부장과 만났다.
“최선우는?”
“철벽 방어예요. 대놓고 유혹했는데 꿈쩍도 하지 않아요. 사과하면서 기회를 보려고 했는데, 아예 전화도 받지 않아요.”
“……천하의 조수애도 실패를 하는군.”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응?”
조영기가 연방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애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면서?”
조영기 본부장의 의문에 그녀는 도발적인 눈빛을 빛냈다.
“이번에 설연이 대상을 받았어요. T&B 엔터에서 주최하는 연말 파티에 최선우도 분명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그 자식을 유혹하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대신 그날 개망신을 줄 거예요. 가능하면 고소도 진행하고요.”
“어떻게?”
조영기는 은근 재밌겠다는 시선을 보냈다.
“저 연기자예요. 성추행범으로 몰아야죠.”
“호오~~”
“두고 보세요. 호호호~”
“후후후! 기대하지.”
며칠 후,
그녀가 예견한 것처럼 T&B 엔터의 주최로 설연의 대상 수상을 축하하는 동시에 다가오는 2003년을 기념하는 송년 파티가 모비딕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대한민국 유명 스타들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거 참석했다.
클래식의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가운데 조영기 본부장은 한 손에 와인 잔을 들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오늘 왠지 재미난 일이 있을 것 같지 않아?”
“재미난 일?”
“왜, 무슨 소스라도 있어?”
“소스는 무슨!!”
친구의 질문에 조영기는 피식 웃으며 별일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냥 한 해의 마지막인데~~ 조용히 지나가면 재미없잖아.”
“하긴~~!!”
“야! 그래도 눈이 호강해서 좋다. 역시 T&B.”
“그건 나도 인정. 후후후~”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던 중에 최선우가 등장했다.
“어! 최선우다.”
“그러네. 최선우가 왔네. 대박.”
“뭐가 대박이야?”
“야! 최선우 얼굴 보기 완전 힘들잖아. 일각에서는 대통령 만나기보다 더 힘들다는 소리도 있어.”
“그래?”
“야!! 야!! 저기 봐라, 저기 봐. 저 새끼 오니까 여자애들 다 달려간다.”
“헐!!”
무리 중의 한 사람이 놀란 듯 말했다.
“남부 그룹 박희진, 초원 그룹 윤초롱, 수연 건설 최희, 반호 기업 유…… 어이쿠! 죄다 몰려가네.”
“쳇! 재수 없지만 그럴 만도 하지. 잘생겼어. 능력 좋아. 돈도 많아. X발!! 축구하는 걸 보니 체력도 끝내주는 것 같던데! 내가 여자라도 달려갈 것 같다.”
“야~ 그래도 쟤 애인 있잖아.”
“그러게. 설연이랑 사귄다며?”
“응. 그러니까 여기 왔겠지. 송년회 겸 설연의 대상 축하 파티잖아.”
“하긴~~”
조영기는 선우를 중심에 두고 입방아를 찧는 친구들을 슬쩍 바라보고는 와인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재수 없는 새끼. 큭!!’
잠시 후에 벌어질 상황을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다. 잠자코 지켜볼 시간이었다.
한편 설연 덕에 대상을 놓친 조수애는 최선우가 나타나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오늘 유난스러울 정도로 자신의 외모와 의상에 신경을 썼다.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신과 친한 몇 명의 기자들을 파티에 불렀고 이미 적당한 인사도 나누었다.
불미스러운 일이 생긴다면 분명 자신의 편을 들어줄 것이다.
‘하이에나들이 몰려갔으니, 지금은 패스.’
그녀는 마치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는 암사자와 같은 눈빛으로 선우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시작했다.
“꺄아아~ 최선우 작가님!”
“사인 좀 해주세요.”
“이태리 작가님. 팬이에요.”
최선우와 이태리의 이름이 혼용되는 가운데, 다수의 여인들이 모여들었다.
“감사합니다.”
“여기요.”
“아시잖아요, 저 여자 친구 있습니다.”
“개인 번호는 곤란합니다.”
“네. 죄송합니다.”
여인들이 선우에게 집중되며 애원했지만 선우의 일관된 대답에 안타까움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 멋있어.’
‘내가 설연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당당하다.’
‘히잉! 하루만이라도 좋으니 내 남자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진짜 멋지다.’
‘저분의 얼굴에서 마치 빛이 새어나오는 것 같아.’
칼 같은 거절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의 마음은 이미 홀라당 넘어가 있었다.
“그래도 작가님의 팬이 될 거예요.”
“저도요~”
“전 한 달 전에 작가님 팬클럽에 가입했어요. 호호호~”
여인들은 선우를 향해 마치 합창하듯 대답했다.
-쉬익.
그 순간,
누군가의 손이 빠르게 나타나 선우를 끌어당겼다.
“선우야~”
“어, 설연아.”
“흠흠!”
“험……험!”
설연이 등장하자 하이에나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어떻게 배우인 나보다 선우 네 인기가 더 많은 것 같다.”
“후후후~ 당연한 것 아닌가?”
“뭐~~어~~!!”
선우의 능청스런 대답에 설연의 얼굴에 질투심이 떠올랐다.
그러자 선우가 재빨리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농담이야. 농담. 아무리 인기가 많으면 뭐 해, 내 곁엔 네가 있잖아.”
“쳇~~”
선우의 말에 기분이 무척이나 좋아진 듯 설연의 얼굴에 미소가 만개했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눈길에는 숨길 수 없는 애정이 듬뿍 담겨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무르익자 파티의 주최 측인 T&B 엔터테인먼트의 김일환 대표가 단상 위에 올라 축사를 했다. T&B 소속 가수의 축하 공연이 이어지는 가운데 설연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그녀 역시 오늘 파티의 주인공이기에 선우 옆에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적당한 기회가 찾아왔다.
조수애는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선우의 근처로 다가선 그녀는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게 슬쩍 선우와 몸을 부딪치려고 했다.
‘어?!’
그러나 무슨 일인지, 허탕이다.
분명 몸을 기대었건만 몸에 닿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서둘러 뒤로, 하지만!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섰다.
‘부딪힐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짧았나?’
그녀는 다시 선우의 곁으로 두어 걸음 다가갔다.
‘실프.’
[꺄르르~ 네. 마스터.]
‘고마워.’
[별말씀을요. 꺄르르르~~]
“…….”
선우가 파티에 참석했을 때, 잠시 조수애와 눈이 마주친 적이 있었다.
뭔가 좋지 않은 기분에 실프를 소환했었는데, 만약 실프의 음성이 아니었다면 방금 전 그녀와 부딪혔을 것이 분명했다.
‘무슨 수작을 부릴지, 알 만하군.’
한 손에 든 와인 잔, 손을 살짝 대기만 해도 찢어질 것 같은 아찔한 드레스.
선우는 그 즉시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는 순간, 조수애가 선우에게 접근했다.
그녀의 계획은 단순했다.
자신의 뛰어난 연기력을 이용해 선우에게 성추행을 당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었다.
“꺄악!”
몸을 크게 휘청거리며 술을 쏟는다.
“지금 뭐 하는 짓이에요? 어딜 만져요?”
“네?”
선우는 눈에 빤히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헛웃음이 나왔다.
자신이 스스로의 옷에 술을 쏟고 몸을 교묘히 움직여서 사람들 눈에는 마치 선우가 그녀를 어떻게(?) 해서 옷이 벗겨진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당신이 날 만졌잖아요. 알 만한 분이 어떻게 이럴 수 있죠?”
조수애는 사람들이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헛.”
너무 어이가 없어 실소가 터져 나왔다.
“우, 웃어? 사과하면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려 했는데! 당신 정말 안 되겠네요.”
조수애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이해할 수 없네요. 난 잘못한 것이 없는데, 무슨 사과를 합니까?”
“조금 전에 당신이 내 몸을 만졌잖아요.”
“내가 당신의 몸을 만졌다고요?”
“왜요? 기억이 나지 않나요? 그럼 부위까지 말씀드릴까요? 그 더러운 손으로 제 엉덩이를 만졌고 가슴에…… 흑!”
-웅성웅성!!!
사람들이 두 사람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