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8화
108화 형이 돈이 없다고 해서 그래서 패고
-PEN 뉴욕 지사.
미국 맨하탄에 위치한 사무실에 선글라스를 쓴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주변을 슬쩍 살피더니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어서 오세요. 응?! 당신은?”
“네~ 우리 또 만났네요.”
“휘유~ 이번에도 대표님을 찾아온 거예요?”
“네.”
직원의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죠? 지금은 자리에 없는데요.”
“또 출장 가셨나요?”
“네.”
“해외?”
“그건 노코멘트입니다.”
“에이~~ 그러지 말고 좀 가르쳐 줘요. 왓슨 대표는 언제쯤 돌아오세요?”
“죄송합니다.”
“쳇~~”
남자는 삐진 척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분명 웃고 있었다.
“이거 드세요. 다음에 또 올게요. 참! 에서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꼭 알려주세요. 사례는 충분히 할게요.”
“…….”
투자회사 의 여직원 엘레나는 남자가 사라지기 무섭게 그가 건넨 커피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오전에만 12잔째였기 때문이다.
부자들이 하는 말이 있다.
처음 1억을 모으는 것이 가장 힘들지 그 다음부터는 쉽다고 말이다.
소위 말해 돈이 돈을 부른다는 얘기다.
누군가를 빗대어 한 말이 아니지만 지금 의 상황이 정확히 그러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조용히 숨만 쉬어도 의 자산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시각,
포브스의 직원들이 에 대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다.
“베일 부장님. 투자회사 의 주인은 대체 누구일까요?”
“그게 왜? 뭐가 그렇게 궁금한 건데?”
“천재 투자가잖아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 전부가 궁금해하고 있다고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가?
필립 과장이 부스스한 머리를 헝클어뜨리면서 나타났다.
“내가 얼핏 들었는데, 로스차일드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어.”
그러자 베일 부장이 그를 향해 눈꼬리를 치뜨며 말했다.
“그건 아닐 거야. 필립.”
“왜요?”
“……영국 왕실이 의 주주라는 소문이 있거든.”
“영국 왕실이요?”
“그래. 이건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서 얻은 정보야. 다들 입조심해.”
“……!!”
두 사람은 베일 국장의 말에 지그시 한 번 그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조금은 허탈하다는 듯이 필립 과장이 말했다.
“영국 왕실의 자금이라니, 뭐 나쁘지는 않네요.”
“뭐가 나쁘지 않아?”
“저들의 행보를 보세요. 지금까지 순수한 투자만 진행했잖아요. 저 사악한 헤지 펀드와는 다르게 말이죠.”
“후후후, 그건 나도 자네 말에 동의하네. 의 투자 방식은 매우 건전하면서도 특이하지.”
영국 왕실이 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남작 작위를 받게 된 선우가 회사의 주식 3%를 영국 왕실에 헌납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래를 위한 그의 포석이기도 했다.
한편 프랑스에서의 일정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출국을 하루 앞둔 선우가 조용히 호텔을 나섰다.
왜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왠지 마음이 동하는 날.
가면을 쓴 덕에 아랍인으로 변신하였고 덕분에 그를 알아보는 이 역시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늘은…… 기필코…… 후후후~”
선우는 더 말이 필요 없다는 듯 파리 물랭루주(Moulin Rouge) 근처로 걸음을 옮겼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관광객과 외로운 파리지앵들을 강하게 유혹하는 화려한 조명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라비냥가 13번지. 1900년을 전후하여 현대 회화와 현대 시가 탄생한 곳으로 파블로 피카소, 조르주 브라크 등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약했지.”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바라본 파리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선우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고 그의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을 발했다.
-뚜벅뚜벅!
아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선우는 주변의 풍광(?)을 감상하며 느긋하게 걸었다.
일단의 음성이 그의 귓가에 들려오기 전까지 말이다.
“안 돼요.”
“이런 미친년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닥쳐.”
“아악.”
“닥치라고 했지. 아XX릴 확 그냥!!”
외진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다급한 목소리다.
프랑스는 치안이 탄탄한 나라지만 유흥가의 사정은 사뭇 달랐다.
더욱이 지금은 늦은 밤이었다.
“왜 이렇게 심각해? 그냥 재미 한번 보자는 거잖아.”
선우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 그냥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한국말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문득 여동생의 얼굴이 떠올라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
선우는 비명 소리가 들려오는 골목길로 걸어갔다.
“오우~ 몸매 죽이는데!”
“헤헤헤헤~~”
어두운 골목길,
네 명의 남자가 두 명의 여자를 벽에 밀쳐두고 주물럭거리기 바쁘다.
“이봐.”
“……?!!”
선우의 출현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S’il vous plait aidez-moi, Help me!”(도와주세요!)
“Tais-toi Tu veux mourir?”(닥쳐. 죽고 싶어?)
“흑!!”
다음 순간,
두 명의 남성은 여성들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았고 나머지 두 명이 선우에게 다가왔다.
“어이, 아랍인 친구. 험한 꼴 당하지 말고 가던 길 가지 그래?”
“싫은데?”
“이봐. 좋게 말할 때 들어. 그러다 뒈질 수 있다.”
-철컥!
놈은 시퍼렇게 날이 선 잭나이프를 보이며 위협했다.
나이프를 빙글빙글 돌리는 폼을 보아하니 초짜가 아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프로의 냄새가 났다.
‘기관원, 군인?’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깊이 생각하진 않았다.
정체가 뭐든 감히 자신에게 칼을 보이며 위협을 가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우리 어머니가 말씀하셨지. 아랍인은 재수가 없다고 말이야.”
“우리 어머니도 말씀하셨지. 아랍인에게선 참을 수 없는 누린내가 난다고 말이야. 큭큭큭~~”
“푸헐헐헐!!”
선우는 그들의 도발에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대꾸했다.
“Les bebes. Quand ton frere dit de bonnes paroles, vas-y.” (아가들아. 형이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가라.)
“Quoi?” (뭐?)
“Tu n’as pas d’argent. Donc, je frappe et je ne le dis pas, je frappe, et un gars a un mauvais visage. Les enfants qui sont frappes par un tel frere sint les deux roues du pavillon en quadrature. Maintenant mon frere est fatique. C’est une bonne opportunite. Allez doucement.” (……돈이 있으면 있다고 패고 없으면 없다고 해서 패고 ……그래서…… 연병장이…… 어쨌든 지금 형이 많이 피곤하거든? 좋은 기회니까 조용히 가라.)
선우는 과거 그가 재밌게 봤던 영화 <공공의 나쁜 놈>에서 주인공 강경구가 목욕탕에서 만난 깡패에게 읊은 명대사를 그대로 따라했다.
“N’est-ce pas fou?” (이거 미친 놈 아냐?)
선우의 말에 사내들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놈이 동료들을 향해 눈치를 줬다.
“야! 저 새끼 미친놈이다. 그냥 조져.”
기세 좋게 달려들던 사내들이 깜짝 놀랐다.
무심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던 선우의 눈이 한순간 강렬하게 빛났기 때문이었다.
선우는 오른손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세웠다.
아랍인의 얼굴에 진득한 웃음이 번지며 그의 입이 붕어처럼 벙긋거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개자식! 네놈의 주둥이를 찢어주겠다.”
“됐고요. 엿이나 처 드세요.”
“저놈이?!”
놈이 달려들었다.
마치 선우의 품에 놈이 안기는 듯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선우가 번개 같은 움직임으로 놈의 어깨를 잡아 좌우로 흔들고 곧바로 놈의 상체를 휘어감은 것이다.
-콰당!
눈 한 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놈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충격이 꽤 컸는지 몸을 일으키는데, 눈이 풀려 있었다.
“어, 어?!”
그사이 선우의 몸이 좌측으로 꺾이더니 놈들 사이를 헤집기 시작했다.
베르하젤 체술이 펼쳐진 것이다.
-퍽, 파파파팍!!
“크엑.”
턱이 홱 돌아가며 뒤쪽으로 튕겨나갔다.
물론 반격이 있었다.
하지만 선우가 기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어느새 놈의 공격을 피하며 손목을 잡았다.
다음 순간 선우의 몸이 쭉 늘어나는가 싶더니 강력한 일격이 날아갔다.
-쾅!!
명치를 가격당한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러고는 땅바닥에 사정없이 처박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두 명의 동료가 쓰러진 것이다.
“미첼, 조심해.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놈이야.”
맨 뒤에 있던 놈이 외쳤다.
상황은 완전히 역전되어 있었다.
-씨익!
선우는 두 놈을 바라보며 미소를 보였다.
놈들은 선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어 보이자 순간 소름이 끼쳤다.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히 어리고 있었다.
각설하고 놈들은 운이 없었다.
하필이면 선우에게 시비를 걸다니 말이다.
“자! 2라운드, 시작해 볼까? 드루와! 드루와!!”
선우는 가벼운 풋워크로 몸을 이동하며 녀석들을 향해 손짓했다.
“안 와? 그럼 내가 간다.”
선우의 목소리가 왠지 은은하다?
마치 여자 친구에게 말하는 것과 같은 애정(?)이 담겨 있어 오히려 놈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었다.
‘제길!’
늘 그렇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승부의 결과가 눈에 빤히 보였지만 그렇다고 동료들을 버리고 갈 순 없었다.
선우를 응시하는 놈들의 눈빛은 가히 비장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으아아!!!”
“죽어라.”
놈들이 달려들었다.
선우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움직였다.
마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의 무하마드 알리를 연상케 했다.
-퍽, 퍼퍽!!
선우의 주먹이 놈들의 얼굴에 작렬했다.
“윽!”
“아악!”
거리를 벌리려 해도 소용이 없다.
선우의 기묘한 발걸음이 그들 사이의 간격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휙! 휙휙! 휙!!!
그 순간 선우의 상체가 8자를 그리기 시작하며 미친 듯이 흔들렸다.
원투, 원투!! 라이트, 레프트, 훅!
휘어지듯 쓰러지듯 바람을 가르는 폭풍 같은 주먹에 놈들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알고 보니 이미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여긴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걱정 말고 가세요.”
“그,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오늘 일은 잊어버리고 숙소로 돌아가세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푹 자는 겁니다. 내일 아침 일어나면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겁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건 제 연락처예요. 꼭 사례하고 싶으니 연락주세요.”
“네.”
명함을 건넨 여성은 아쉬운 얼굴을 뒤로하고 선우의 손을 놓았다.
‘실프.’
[꺄르르~ 네. 마스터.]
‘숙소에 잘 들어가는지, 확인해 줄 수 있어?’
[물론이죠.]
‘그래. 그럼 그렇게 해줘.’
[네~~]
선우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내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남자가 술을 먹으면 이성에게 접근할 수 있다.
조금 심하면 달라붙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선을 넘었다.
더욱이 이들은 절대 일반인이 아니었다.
마법 완드를 잡은 선우의 손에서 짙은 어둠의 포스가 흘러나왔다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고 솜털이 곤두선다.
어쩌면 이미 정신을 잃은 것이 다행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