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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흑마법 작가다-103화 (103/187)

◈ 제 103화

103화 사랑의 징검다리

-사랑.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이름이지. 하지만 그것은 매우 이기적인 이름이기도 해.

누군가의 익숙한 음성이 상현의 귓가에 들려왔다.

“누, 누구야?”

-회사를 위한 너의 희생? 그것의 결말이 과연 행복일까? 미래는 만들어나가는 거야. 그 누구도 미래를 예견할 수 없지.

“누구야? 대체 누가 말하는 거지?”

-사랑하기에 보내준다고? 사랑하기에 헤어진다고? 개소리! 그런 개소리를 할 거면 집어치워! 사랑하면 쟁취해야지. 서로 사랑하는데 왜 헤어져!

정체불명의 목소리는 부드럽다가도 폭풍처럼 고함을 질렀다.

“누구냐고! 당장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어. 어서 내 앞에 나타나!”

-후후후. 그래. 날 그렇게 보고 싶다면 보여주지.

무거운 쇠사슬이 온몸에 묶여 있는 사람이 마침내 얼굴을 드러냈다.

“헉!! 너, 넌?”

-그래. 바로 너야.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 법이지.

“그 쇠사슬은?”

-내 스스로 묶은 거야.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참회하는 속죄의 의미지.

“참회의 의미?”

-잘 들어. 오늘 내가 너를 찾아온 이유는 우리의 X 같은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주기 위해서야.

“뭐?”

-시간이 없는 관계로 본론을 말해줄게. 너는 이제 곧 내가 겪은 그리고 앞으로 네가 겪어야 할 미래를 보게 될 거야. 명심해. 선택은 네 몫이라는 사실을!!

상현의 모습을 한 인큐버스가 어둠 속으로 둥둥 떠서 사라지는 동시에 주변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코리아나 호텔, 결혼식 장.]

“지금부터 기성 건설 유기성 회장님의 장남 유상현 군과 대산은행 김세윤 은행장님의 무남독녀 외동딸, 김하나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들은 속히 자리에 착석하여 주십시오.”

기뻐해야 할 날,

결혼식을 앞둔 신랑의 표정이 어둡다.

“……과연 이게 잘하는 짓일까?”

문득 한설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는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려. 유상현, 지금 누굴 생각하는 거야!’

설주의 얼굴이 떠올라 우울해졌지만 상현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김하나와의 결혼은 기정사실이었다.

“신랑, 신부의 행복한 미래를 위하여. 출발~!!”

그날의 성대하고 화려했던 결혼식이 끝나고 한 달, 두 달, 1년, 6년, 10년, 20년.

마침내 30년의 시간이 흘렀다.

“……!”

기성 건설 유상현 회장은 쓸쓸한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무엇으로도 감출 수 없는 짙은 허무와 분노가 깔려 있었다.

현재 그의 자택엔 아무도 없다.

부부의 침실에서 이름도 모르는 젊은 놈과 난교를 벌였던 그의 부인을 생각하면 지금도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것 같다.

현장을 잡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당했다.

“당신은 늙었고 더 이상 날 만족시키지 못해.”

“뭐라고?”

“그러니까 내게 신경 끄고 당신도 나가서 즐기라고.”

“……!!”

그녀의 적반하장에 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불안한 마음에 그는 아무도 모르게 두 자녀의 친자 검사를 의뢰했다.

[불일치, 친자 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줬던 끈이 끊어졌다.

유상현 회장은 성난 늑대처럼 울음을 토해냈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생지옥으로 변해버렸다.

회사는 쪼개졌고 그의 인생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화면이 바뀌었다.

여자의 얼굴을 본 순간 상현은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서, 설주?”

참으로 곱게 늙었다.

상현은 숨을 죽인 채 저들의 삶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그가 꿈꿔왔던 화목한 가정의 모습이었다.

상현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후회와 회한, 탄식이 섞인 눈물이었다.

-이제 그…… 만 헤어…… 질 시…… 간…… 이 되었…… 군. 자네…… 가 부디 좋…… 은 결정…… 을 하길 바…… 라…… 네.

인큐버스의 음성이 점점 흐릿해져가기 시작했다.

마법이 끝나가는 것이다.

-땡!

어디선가 들려오는 종소리.

상현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꿈!! 꿈이었나?”

하지만 그가 꾸었던 꿈은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영혼에 새겨졌다.

다음 날,

유기성 회장은 묵묵히 앉아 있는 그의 아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너의 진심이냐?”

“네, 아버지. 죄송합니다.”

“…….”

파혼을 외치는 상현의 선언에 거실에 모여 있던 가족들의 표정이 엇갈렸다.

낙심과 절망 같은 표정이 보였으나 반대로 용기 있는 결단에 대한 감탄의 빛도 감돌고 있었다.

“상현아! 그게 정말이니?”

“네. 작은아버지.”

“너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 있어.”

“망하는 게, 왜 저 때문이죠?”

“뭐라고?”

상현이 작은아버지인 유기철 부회장의 말을 끊으며 쳐다보았다.

“그걸 몰라서 물어? 대산은행이 어음 만기를 연장해 주지 않으면 1차 부도야. 그럼 회사도 망하는 거야.”

기철이 거듭 말했다.

“잘 생각해라. 네 결정에 3,000명의 명운이 달려있어.”

“…….”

하지만 상현의 결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형. 정말 하나 씨랑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래. 명현아.”

‘내가 만약 그녀와 결혼한다면 이 결혼의 끝은 파멸이야.’

“형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너도 알지?”

“응. 설주 누나.”

유기철 부회장은 조카의 반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님, 형님이 설득 좀 해보세요.’

기성 역시 이미 마음을 굳힌 것 같은 아들의 모습에 잠깐이지만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 역시 대산은행에 한 가닥 희망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들의 모습을 보자 그는 자신이 뭔가 잘못 생각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음. 결국 순리대로 가는 건가?’

국회의원을 아버지로 둔 한설주의 집안은 사실 며느리로 삼기에 굉장히 좋았다.

하지만 기성 건설이 처한 상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유기성 회장 역시 강직하면서도 정직한 한상우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려무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유기성 회장에게 쏠렸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제 기성 건설은 회생하지 못할 것이다.

“혀, 형님!”

“그만, 기철아. 이제 그만하자.”

“이런.”

유기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혼인 동맹으로 인한 회사의 기적적인 회생이 깡그리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기철아. 우리가 언제부터 부자였니? 미래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어. 만약 회사가 쓰러진다 해도 우리 자식들이 다시 일으키면 되지 않겠어? 하지만 가정에 행복이 없다면 그 삶은 어떻겠니? 저주받은 삶이 되겠지.”

“…….”

“기철아. 우리 깔끔하게 퇴장하자.”

“……!!”

형의 진심 어린 말이 통하였을까?

유기철 부회장은 좀처럼 입을 떼지 못했다. 그저 형인 유기성 회장과 조카 유상현 실장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작은아버지. 죄송해요.”

“……아니다.”

죄송하다 말하는 조카를 향해 기철은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IMF를 대비하지 못한 우리들의 잘못이지.”

다음 날, 아침.

방송국 앞마당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설주, 설주야. 나야. 네게 용서를 구하고자 왔어.”

한 남자가 한 여자의 이름을 미친 듯이 외쳤기 때문이다.

남자의 정체는 유상현, 설주가 그의 전화를 받지 않자 성급한 마음에 그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설주야, 설주야!! 어디 있어?”

지금은 회사원들의 출근 시간, 상현의 이와 같은 기행(?)은 곧 방송국 내부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뭐, 누가 날 찾는다고?”

앞마당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돌아다니며 고함을 지른 덕에 이 같은 소식은 곧 그녀의 귀에 들어갔다.

잠시 뒤,

동료에게 소식을 들은 한설주가 모습을 드러냈다.

“상현 씨?”

“설주야!”

상현과 마주한 설주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설마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사람이 그였을 줄은 짐작도 못 한 탓이다.

“서, 설주야…… 한설주…….”

상현은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얼떨떨한 기색의 그녀를 와락 끌어안아 버렸다.

“지금 이게 뭐……!!”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나쁜 놈이야.”

용서를 구하는 상현의 모습에 그녀의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상현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바보야. 내가 잘못했어. 변명으로 들리겠지만 회사를 살리기 위해 네게 못되게 말했어. 미안해. 제발 날 용서해 줘.”

“…….”

“부모님께도 말씀드렸어. 용서도 구했고 말이야.”

“…….”

“앞으로 너만 바라보며 살게. 제발 날 용서해주지 않겠니?”

상현의 고백에 흔들리던 설주의 몸이 눈에 띄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또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자신에게 이별을 고했다는 말에 그에 대한 오해도 풀렸다.

“사, 상현 씨…….”

상현의 진심 어린 고백에 마침내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사람들의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잃어버렸던 사랑을 다시 찾았으니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격하게 포옹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와 같은 시각,

선우는 멀리서 두 사람의 화해와 격한 포옹을 지켜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오늘 아침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이제 마무리만 해주면 되겠군.”

선우는 왓슨에게 전화를 걸었다.

-모비딕 호텔.

“보내준 서류를 검토해 보셨나요?”

“한국의 기성 건설이라면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만 꽤 건실한 회사였더군요.”

“……IMF를 예상치 못한 결과겠죠?”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개입한다면 어떤가요?”

기성 건설에 대한 투자는 원래 계획조차 없었지만 설주 누나의 일이었다.

기왕지사 도와주기 시작한 것, 확실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다.

-촤악!

선우는 지도를 펼쳤다.

“……90만 평이요?”

“네.”

선우의 엄청난 스케일에 왓슨은 깜짝 놀랐다.

이건 아예 도시를 만들자는 것이 아닌가?

-꿀꺽!

“어디까지나 생각입니다. 일단 편하게 한번 들어보세요.”

선우는 그가 구상한 사업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일단 현재 엄청나게 잘나가고 있는 해피 그룹은 해피 PC방으로 인해 발생된 여러 사업으로 인해 전국에 지점이 산재했지만 이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는 본사가 없었다. 때문에 내년이나 내후년쯤 본사를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참에 기성 건설에 해피 그룹의 본사 건설을 맡기자는 것이 이번 계획의 시작이었다.

“평택은 미군 부대가 있습니다. 후에 서울 용산에 있는 미군 기지가 이전하게 된다면 1순위로 거론되는 곳이 바로 평택이죠. 또한 평택항이 있어 성삼 전자, RG 전자의 지속적인 투자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여기서부터…….”

선우의 설명은 한참이나 이어졌다.

“펜 의학 연구소에서 차로 30분 거리군요.”

“네, 펜 의학 연구소를 통한 난치병, 불치병 전문의 국제적 종합 병원 건설, 외국인 의료 관광 유치와 그로 인해 발생할 호텔, 리조트, 관광 사업. 여기에 평택항의 역할을 한층 더 증대시킬 수 있는 크루즈 사업을 연계하고 물류 유통의 중심이자 장치 해피 그룹 계열사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겁니다.”

“음……!!”

선우의 주장은 꽤나 신빙성이 있었다.

“소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땅입니다. 한국 정부에서 과연 허락할까요?”

“물론이죠. 정부는 물론 지자체 역시 쌍수를 들고 환영할 겁니다.”

IMF를 극복하고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었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해외 투자에 목마른 상황. 게다가 윤대중 대통령과 선우는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

“90만 평을 모두 개발하게 된다면 해피 타운이 되겠군요.”

“……어쩌면 타운을 넘어 국제적인 도시가 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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