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101화
101화 아시아의 다이아몬드
서울에 도착한 선우는 적당히 허기가 돌자 주저 않고 식당을 찾았다.
한 달 만에 먹는 사제(私製)밥이다.
이런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흐음~ 뭘 먹을까?”
터미널 주변이라 그런지 꽤 많은 식당이 보였다.
“일단 한식은 패스하자.”
훈련소에서 자주 먹었더니 한식보다는 양식이 더 먹고 싶었다.
선우는 그중 그런대로 깨끗해 보이고 큼지막한 곳에 들어갔다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꽤 붐비는 모습이다.
선우는 서둘러 빈자리에 앉았다.
“여기 수제 돈가스 하나 주세요. 음료수는 콜라로 주시고요.”
“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밑반찬이 나왔는데, 그것조차 맛있다.
이때 옆자리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진짜 연예인이 되고 싶어?”
“당연하지.”
제법 위엄을 가장한 목소리다.
소년과 소녀는 목소리를 낮춰 도란도란 얘기하고 있었지만 흥미를 느낀 선우의 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주아야. 너도 우리 댄스 팀에 들어올래?”
“어? 내가?”
“응.”
“우리 팀에 들어오면 오빠가 맨날 떡볶이 사줄게~”
‘주아?’
선우는 남매의 얼굴, 특히 소녀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런. 정말 주아잖아, 어떻게 한다?’
그녀는 몇 년 후,
아시아의 다이아몬드라 불리게 되는 가수였다.
그러고 보니 오빠를 따라 오디션에 갔다가 캐스팅되었다고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오디션에 통과했지만 오빠는 동생과 경쟁하기 싫어 기획사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리고 주아는 몇 년 후 슈퍼스타가 되었지.’
잠시 머뭇거리던 선우는 이윽고 생각을 정했는지 T&B의 김일환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선우는 권숭동, 권주아 남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정면으로 받게 되었다.
“형이 그렇게 유명한 작곡가란 말이에요?”
“그럼. 내게 곡을 받으려는 사람을 일렬종대로 세우면 운동장 한 바퀴야.”
“그렇게나 많다고요?”
“응”
“누, 누가 있는데요?”
“*현정, 조*필, 신*훈, *건모, 현*영. 너무 많아서 얘기하기도 힘들다.”
원래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훈련소에서 막 나온 덕인지, 아니면 주아의 초롱초롱한 눈망울 때문이었는지 선우는 이야기보따리를 술술 풀어 놓기 시작했고 주아는 그런 선우의 말을 무척이나 재밌게 듣고 있었다.
“우와~~!”
‘헐! 이 형 사기꾼 아니야? 이름 있는 가수면 죄다 말하잖아. 기가 막혀서…….’
한편 주아의 오빠 순동은 선우의 허풍(?)에 눈을 게슴츠레 뜨며 그를 쳐다보았다.
“아! 동혁이 알지?”
“동혁이요?”
“응. 안동혁.”
“당연히 알죠.”
“걔 히트곡도 내가 써줬어.”
동혁의 노래를 작곡했다는 말에 순동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들었다.
“에이, 뭐예요?”
“뭐가?”
“형이 얌전한 고양이라는 말이잖아요.”
“어.”
“네, 그랬군요. 형이 얌전한……?!”
순간 순동의 입술이 크게 벌어졌다.
그리고 깜짝 놀란 그 모습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선우의 옆으로 두 사람의 남성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 명은 T&B 엔터의 김일환 대표였고 다른 한 명은 선우의 절친 안동혁이다.
“선우야.”
“욥~ 브로!!”
“대표님, 오셨어요? 동혁아, 너도 왔네.”
선우는 순동의 놀란 표정을 보며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누가 부르셨는데, 안 오겠어?”
“일단 앉아. 대표님도 여기 앉으세요.”
“어.”
“그래.”
동혁이 선우에게 물었다.
“훈련은 잘 받았냐?”
“오냐.”
“암튼 축하한다. 이제 군대는 너와 아무 상관이 없겠구나. 진짜 부럽다.”
“그럼 난 이제 끝이지. 넌 나중에 가야 하고 말이야. 후후후.”
“쳇! 놀리는 거냐?”
“응.”
일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선우야. 네가 말한 애들이 이 아이들이니?”
“네.”
김일환 대표는 순동, 주아 남매를 빠르게 스캔했다.
‘……아시아의 다이아몬드가 될 거란 말이지. 흠!’
지금까지 선우의 얘기를 듣고 손해 본 일이 있는가?
단언하건대 한 번도 없었다.
“안녕, 아저씨는 이런 사람이야.”
일환은 명함을 꺼냈다.
“어? T&B 엔터의 대표세요?”
“응. 우리 회사를 아니?”
“당연히 알죠.”
“오~ 그랬구나.”
짐짓 인자한 척 미소를 보이며 부드럽게 말하는 일환을 보고 동혁은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입술을 주꾸미처럼 내밀었다.
“선우에게 들었는데, 가수가 되고 싶다고?”
“네.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일환은 웃음을 터트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하하하. 좋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다니, 그럼 실력 한번 볼 수 있을까?”
“네, 지, 지금이요?”
“응. 지금.”
김일환 대표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조 실장.”
-네, 대표님.
“지금 갈 건데, 연습실 하나 비워놓게.”
-알겠습니다. 대표님.
전화를 끊은 그가 물었다.
“참! 그러고 보니 너희들 이름도 안 물어봤네. 얘들아. 이름이 뭐니?”
“전 권순동이라고 해요.”
“예쁜 여동생은?”
“궈, 권주아요.”
“그래~ 이름이 아주 멋지구나. 주아는 예쁘고~”
선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몇 시간 후,
선우는 일환의 사무실에서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었다.
“어땠어요?”
“순동이는 노래보다 댄스 실력이 좋더라.”
“그럼?”
“내년이나 내후년쯤 데뷔할 아이돌 그룹을 키우고 있었는데, 일단 그쪽에 넣으려 해.”
“주아는요?”
“주아는…….”
김일환 대표의 시선이 TV로 향했다.
불과 몇 시간 전, 연습실에서 찍은 주아의 영상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직 개화하지 않았지만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어쩌면 선우 네 말처럼 아시아의 다이아몬드가 될지도 모르겠어.”
‘믿으세요. 주아는 분명 아시아의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선우야,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
“저녁이요?”
“응.”
“대표님, 지금 몇 시죠?”
“6시가 다 됐네. 왜?”
6시가 됐다는 말에 선우는 즉시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우! 어서 일어나야겠네요.”
“왜?”
“왜긴요. 오늘 퇴소했잖아요. 저녁은 가족과 먹어야죠.”
선우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훈련소 퇴소식에도 못 오게 했는데, 저녁까지 따로 먹으면 엄마한테 죽을 거예요.”
“어, 어. 그래. 어서 가봐라. 우린 담에 같이 먹자.”
“네. 대표님.”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선우를 보며 그는 실소를 참지 못했다.
그로부터 얼마 후,
선우의 모습을 확인한 수연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눈물마저 글썽거렸다.
“어마마마~~”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군대라는 특수성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들~~”
“오빠~~”
“선우야!!”
오히려 난감한 표정이 된 규용이다.
아내와 딸이 보여주고 있는 분위기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자칫 자신에게 엄청난 피해(?)가 올 수도 있었기에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선우를 끌어안았다.
“아부지, 숨 막혀요.”
“허엄. 그, 그래?”
“네!”
“자~ 어서 밥 먹으러 가자. 선우 네가 좋아하는 음식은 다 있어.”
규용의 호언장담처럼 맛있는 음식이 한가득이다.
“어서 먹어. 아들~~”
“오빠. 잡채는 내가 한 거야. 한번 먹어봐.”
“……!”
역시 집이 최고고 가족이 최고였다.
오늘은 매우 기분 좋게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출퇴근 시간이면 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서울의 도심.
한눈에 봐도 수억을 호가하는 고급 승용차들이 연이어 고층 빌딩 속으로 들어간다.
“어서 오십시오.”
“이쪽입니다. 대표님.”
차에서 내린 이들은 대부분 20대에서 30대로 보인다.
“1호 엘리베이터 올라갑니다.”
“2호, 3호 엘리베이터도 올라갑니다. 준비하세요.”
연회장에는 2~30대의 젊은 남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순화 그룹 주최, 각 분야에서 차세대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주역으로 선정된 이들이 오늘 모임에 참석했다.
“뵙겠습니다. 공희상입니다.”
“대진의 안세환입니다. 반갑습니다.”
“반가워요. 소은영이에요.”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안면이 없는 사람들은 저마다 명함을 꺼내며 자신을 소개했다.
선우 역시 주최 측의 간곡한(?) 초대를 받아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차를 몰고 왔다.
“7호! 7호 엘리베이터입니다.”
-땡!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한국이 낳은 톱스타 조수애가 안에 있었다.
“이태리 작가님?”
“네.”
“꺄아아~~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 작가님 팬이에요.”
“네. 안녕하세요. 저도 조수애 배우님의 팬입니다.”
“어머머! 영광이에요. 지금 파티에 가시는 거죠?”
“네.”
“설연에게 작가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설연과 친하세요?”
“네. 조금요~~”
조수애는 만면에 화사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가진 능력도 대단하시지만 아주 따뜻한 분이라고 들었어요.”
“아이고, 걔가 별소릴 다 했네요.”
설연이 칭찬을 했다니, 티 내지 않았지만 은근 기분이 좋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작가님과 단둘이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네. 그러셨군요.”
“그리고 저도 작가님에게 관심이 있어서 나름대로 알아봤는데, 알아볼수록 관심이 가더라고요.”
“네?”
이건 뭔 소리지?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저 작가님이 좋아요. 저랑 사귀어 보지 않을래요?”
선우는 순간 당황했지만 그의 결정은 길지 않았다.
“재미없는 장난이네요.”
“네?”
“설연이랑 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설연과는 상관없어요. 그리고 걔 모르게 사귀면 되잖아요. 전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 않을 거예요.”
“하아~ 불쾌하군요.”
선우는 가장 가까운 층에 내린 다음, 다른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그러곤 곧장 지하 주차장의 버튼을 눌렀다.
“어, 설연아.”
-응. 선우야.
“지금 어디야?”
-강변북로야. 10분 후면 도착할 것 같은데~
“그럼 나랑 영화나 보러 갈래?”
-영화? 갑자기 웬 영화?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응. 그냥 너랑 보고 싶은 영화가 생겨서.”
-그래. 영화 보러 가자. 설주 언니에겐 내가 문자 넣을게.
“설주 누나가 있었어?”
-응.
“그럼 다음에 볼까?”
-싫어. 난 선우 너랑 같이 영화 볼래. 파티 따윈 참석하지 않아도 돼~
“그래. 알았어. 그럼 호텔 입구에 있을게.”
-오케이~
이와 같은 시각,
사람들은 그룹을 이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언급된 주제를 살펴보면 단연코 해피 그룹이다.
해피 그룹이 보유한 토지와 건물의 규모가 얼마 전 증권가 정보지를 통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대체 해피 그룹의 현금 보유 능력이 어디까지야?”
“해외 자금이 뒤에 있다고 하던데?”
“혹시 ?!!”
“그래. 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해피 그룹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결국 으로 확장됐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 대부분이 재벌가의 자녀들이다.
이들은 영국계 투자회사 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럼 영국계 자본이 헤피 그룹의 주인인가?”
“그건 나도 모르지.”
“확실한 건 그들과 연관이 있다는 거야.”
“투자회사 펜이라…….”
영국계 투자회사 <펜>.
시대의 흐름을 잘 만난 덕인가?
IMF 시절 모두가 몸을 사릴 때, 이들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한국 경제에 투자했다.
이들이 헐값에 사들인 건물과 토지는 현재 수배에서 수십, 어떤 곳은 수백 배나 올랐고, 일반에게 공개되진 않았지만 대한민국 수많은 기업들의 주식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이들이 아직까지 적대적 M&A를 실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단 한 번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