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9화
99화 당신이 훈련소에 있는 사이
동화 작가를 꿈꾸고 있는 초보 작가 백유진은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창작 지원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긴가민가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녀는 연락을 받은 즉시 버스를 타고 문자로 받은 주소지로 향했다.
“여긴가?”
서울 시내 한복판은 아니지만 꽤나 땅값이 비싸다고 알려진 양천구 목동에 위치한 15층짜리 빌딩이다.
외관 역시 아주 깨끗하고 세련된 것이 신축 건물로 보였다.
“……창작 지원 센터 초록피아?”
1층과 2층에는 커피숍과 편의점이 입점해 있고 2층에는 은행이 보인다.
백유진이 입구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마침 경비원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녀를 봤다.
“혹시 작가님이세요?”
“네. 그런데요.”
작가냐는 질문에 그녀는 깜짝 놀라 답했다
“그럼 센터에서 연락받고 오신 거죠?”
“……네?”
“대부분 그런 시선으로 건물을 살펴보시더라고요.”
경비원은 뭔가 익숙한 듯 말했다.
“여기가 작가님들 지원하는 곳이 맞아요. 처음 오셨으면 저기 3층으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저씨.”
경비원의 도움에 3층으로 올라간 백유진은 곧바로 작업실 하나를 인계(引繼)받았다.
“여기가 제 작업실이라고요?”
적어도 12평은 되어 보이는 방이다.
“보증금도 없고 월세도 없다고요?”
“네.”
“……!!”
권 실장이라 소개한 남자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이곳에 들어온 작가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리비는 있습니다.”
“얼만데요?”
“한 달에 20만 원이요.”
“……싸진 않네요.”
그녀의 말에 권 실장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뇨. 20만 원이면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예요.”
“네, 20만 원이 공짜라고요?”
“20만 원이란 관리비에 전기세, 수도세, 인터넷 비용은 물론 여름철 냉방, 겨울철 난방비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참! 센터 지하 1층에 있는 헬스클럽도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고요. 그러니 거의 공짜나 다름없겠죠? 후후후~”
“……!!”
그의 말이 맞았다.
그가 얘기한 모든 것을 포함한 가격이 한 달에 20만 원이라면 이건 정말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여기.”
권 실장은 열쇠를 넘겨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열쇠를 넘겨받은 그녀는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후 수많은 작가와 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센터의 연락을 받았고 각자의 작업실을 선물로 받았다.
이날 저녁,
입주자들을 위한 간단한 포럼이 열렸다.
“저희 문화 콘텐츠 창작 지원 센터 초록피아는 작가님들의 창작 활동을 도와주는 동시에 계약서, 저작권, 법적 분쟁에 대한 법률적인 지원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3층에 위치한 저희 지원실을 찾으면…….”
권 실장의 설명이 끝나자 작가들의 질문 세례가 이어졌다.
“초록피아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곳인가요?”
“아니요. 정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그럼 어디에서 운영하는 겁니까?”
“운영은 초록별 출판사 측에서 하고 있습니다.”
“초록별 출판사요?”
“네.”
-웅성웅성!!
초록별 출판사라면 한국에서 수위에 꼽히는, 아니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출판사다.
“아~~ 그래서 초록피아구나.”
초록별과 초록피아.
두 개의 이름에서 깊은 연관성이 느껴졌다.
“초록별 출판사와 계약이 가능한가요?”
“물론입니다.”
“초록별 출판사와 무조건 계약해야 하나요?”
“그건 절대 아닙니다. 계약에 관련된 것은 전부 작가님들의 자유입니다. 단 작가에게 일방적으로 불공정한 계약이 진행되지 않도록 지원을 해주는 겁니다.”
“타 출판사와 계약을 할 경우에도 계약서를 검토해준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작가님들이 불합리한 계약을 맺지 않도록 법률적 지원을 해드린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계약서를 받으시더라도 무턱대고 사인을 하거나 도장을 찍으시면 안 됩니다.”
“저기…….”
자그만 체구의 여자 작가가 손을 들었다.
“네, 질문하십시오.”
“구체적으로 초록피아가 하는 일이 뭔가요?”
그녀는 초록피아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인터넷 플랫폼입니다.”
“인터넷 플랫폼이요?”
“네.”
-웅성웅성!
생소한 단어에 사람들이 어리둥절 하는 모습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인터넷 출판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터넷 출판사요?”
“하이원이나 천리텔을 말하는 건가?”
“…….”
사실 권 실장 역시 인터넷 플랫폼 사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직장인의 비애, 위에서 까라고 하니 할 뿐이다.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니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앞으로 다가올 스마트폰 시대와 플랫폼의 시대를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세상을 움직이는 극소수의 사람들, 예를 들면 마이크로미터소프트의 빌 게이트 회장은 1999년 이렇게 예언했다.
“사람들은 작은 기기를 들고 다니며 어디서든 업무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친구들과 가족을 위한 개인용 웹사이트가 보편화될 것이다.”
각설하고 초록피아의 권 실장은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며 다음 질문을 유도했다.
“뭐~~ 초록피아는 빠르게 발전해가고 있는 인터넷 세상에 대비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네요. 이 질문은 여기까지 받고 다른 질문을 받겠습니다. 네! 거기 남자분이요.”
질문과 답변.
시종일관 화기애애(和氣靄靄)한 분위기 가운데 문답이 오고 갔다.
“초록피아에서 작가님들에게 바라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멋진 작품을 만들어 주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꼬~~옥 성공하셔서 당당하게 센터를 나가시는 겁니다.”
“하하하하~~”
“호호호~~!”
성공해서 센터를 나가달라는 말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 말의 의미는 초록피아의 정관에 나와 있다.
센터 소속 작가의 연 수입이 육천만 원을 넘기면 그 작가는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해 6개월 후, 창작 지원 센터 초록피아에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센터에 들어오게 될 후배 작가들을 위한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추리 소설 작가를 꿈꾸는 이천우입니다.”
“안녕하세요. 전 웹툰 만화 작가가 되고 싶은 노현세입니다.”
“와우~ 웹툰 만화 작가요?”
“네.”
“혹시 준비 중인 작품이 있나요?”
“네. 바둑과 인생을 논하는 사회 초년생의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바둑과 인생이라, 소재가 좋은 것 같은데요? 제목이 있나요?”
“바둑판의 인생이요.”
“…….”
여담이지만 센터가 만들어진 지 한 달이 지나기 전에,
500번째 작가가 초록피아에 들어왔고 겨울이 오기 전, 1,000명의 작가들이 모두 자리를 차지했다.
참고로 센터에 들어온 작가 전원은 초록피아의 지원 아래 지속적인 작품 활동에 매진하기로 약속했다.
* * *
“1억. 착수금이야. 어때?”
국내 10대 그룹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순화 그룹의 조영기 본부장이 느긋한 목소리로 은밀한 제안을 던졌다.
“만약 그를 유혹하는 데 성공한다면 10억 주지.”
조영기 본부장의 말에 여인의 눈빛에 탐욕이란 감정이 떠올랐다.
“아차! 잊을 뻔했군. 옵션이 하나 더 있어.”
“옵션이요?”
“응. 녀석이 당신과의 열애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면 두 배를 주겠어.”
“……정말인가요?”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침대 위에 누워있던 여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물론이야. 어때, 생각 있어?”
최선우는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2002년 월드컵을 우승으로 이끈 대한민국의 슈퍼스타다.
영국의 가디언지에 따르면 <태리 포터> 시리즈로 돈방석에 오른 수앤 K 롤링의 재산이 1억 달러를 넘는다고 밝혔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유추해보면 최선우의 재산은 몇 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 추정되었다.
상대는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거기다 명예까지 갖춘 상대였다.
“호호호~ 당연하죠.”
여인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조영기의 품에 파고들었다.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이 크게 한 번 출렁이며 조영기의 음심(淫心)을 자극했다.
“왜, 또 땡겨?”
“어머머~~”
“후후후! 이리 와.”
조영기는 그녀의 허리를 잡아 당겼다.
“어휴! 짐승~~”
이와 같은 시각,
규섭이 초록별 출판사를 찾았다.
“규용아.”
“예, 형님.”
“형이 이번에 새로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아이템이 정말 끝내주거든. 네가 투자 좀 하는 게 어때?”
“…….”
투자를 하라면서 그 흔한 사업 계획서 한 장 없다.
더욱이 지금까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대며 빌려간 돈이 수억에 달했다.
규용의 재산 규모를 보면 규섭이 가져간 돈은 사실 없어도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식은 곤란했다.
“……형님.”
“응. 그래.”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리세요.”
“뭐?”
규섭은 동생의 말에 적이 당황했다.
“너, 너 지금 뭐라고 했냐?”
“정신 좀 차리시라고 했습니다. 형님.”
“이, 이놈이!!”
규섭이 눈을 치켜뜨며 고성을 질러댔다.
“이 자식이!! 네가 그깟 돈 좀 번다고 형한테 이럴 수 있냐? 내가 그냥 달라고 했어? 사업 아이템이 좋으니까 투자해달라고 하는 거잖아.”
“사업 계획서조차 없는 사업 아이템이요?”
“뭐, 뭐?!!”
규용의 눈엔 확고한 빛이 서려있었다.
-툭!
“이, 이게 뭐냐?”
“그동안 형님이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 하셨던 겁니다.”
“뭐?!!”
“두 번은 동업자라는 분에게 사기를 당하신 거고 한 번은 그냥 절 속이셨더군요.”
규용의 말에 규섭의 얼굴이 갑자기 멍해졌다.
“그, 그건…….”
“더욱이 저와 선우의 이름을 팔아 친척들에게 돈을 빌리셨고요.”
“…….”
애초의 당당함과는 달리 규섭은 불안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이 제게 거짓말을 했건 사기를 쳤건, 그건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선우의 이름을 판 건 저 역시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참을 수 없습니다.”
“젠장! 그래. 인정한다. 인정해! 그래서 형이 어떻게 해줄까? 이 자리에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
규용은 할 말이 없었다.
비록 지금은 저렇게 망가졌지만 어렸을 땐 그래도 괜찮은 형이었다.
“형님. 형님께서 친척들에게 빌린 돈이 무려 10억이에요. 하아! 그 돈은 제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사업에 대한 욕심은 이제 그만 접으세요. 형님과 더 이상 얼굴을 붉히고 싶지 않습니다.”
“뭐 인마. 더 이상 얼굴을 붉히기 싫어?”
규섭은 규용을 향해 차갑게 반문했다.
“자식새끼 잘 만나서 벼락부자가 된 주제에! 지금 날 가르쳐?”
얼마나 목청을 돋웠는지, 사무실 바깥에 있는 직원들이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야, 이 싸가지 없는 동생아. 니가 잘나서 돈 벌었어? 니가 잘나서 돈 벌었냐고!!”
규섭은 규용이 잘난 아들을 둔 덕에 벼락부자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군가?
벼락부자가 된 규용의 단 하나뿐인 형이자 최선우의 하나뿐인 큰아버지가 아닌가?
규섭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 역시 그 덕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돈 주기 전엔, 여기서 한 발짝도 못 나가!!”
“……!!”
-웅성웅성!
“저분은 대체 누구세요?”
규섭을 처음 본 여직원 하나가 옆자리에 앉아 있는 선임에게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장님의 형이에요. 친형.”
선임의 목소리에서 짜증감이 배어 나오는 것을 보니, 이렇게 찾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녀 역시 알 수 있었다.
“저게 형제야? 원수지. 쩝!”
“……!”
누군가의 낮은 소리에 주위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돈 앞에서 형제간의 우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각설하고 규용 역시 규섭의 막무가내 행태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채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