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96화
96화 월드컵 우승(2)
후반 30분,
한국 팀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우오오오오~~~!!”
“나이스!”
선우의 패스를 받은 안성환 선수의 오른발 슛이 브라질의 골망을 가른 것이다.
“쪼옥~~!!”
그는 반지 세리머니를 보이며 관중석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다.
“성환 형!!”
“선우야~~!!”
최선우와 안성환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껴안았다.
한국 팀의 사기는 이제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고 선수들을 누르고 있던 무거운 긴장감은 이제 격한 흥분으로 뒤바뀌었다.
투지가 불타올랐고 그 중심에는 선우가 있었다.
이제 한 골만 더 넣으면 경기는 원점이다.
손에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흥분한 관중들 역시 마냥 자리에만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 목이 터져라 대한민국을 외쳐가며 경기를 관람하기 시작했다
“막아. 막으라고! 공간을 주면 안 돼.”
한편 대한민국의 두 번째 골이 들어가자 스콜라다니 감독 역시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꽤나 당황한 모습을 연출했다.
“반칙을 해서라도 최선우를 막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평소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툭! 뻐엉!
-타타탁!!
경기는 이제 후반전 40분을 지나고 있다.
선우를 전담 마크하고 있던 브라질 수비수들의 피로도 역시 극에 달할 무렵이었다.
“선우야.”
한명보 선수에게 공을 받은 선우가 스피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막아. 수비수들 라인 내려.”
“어서 달라붙어.”
선우가 하프라인을 넘자 스콜라다니 감독의 고함이 울려 펴졌다.
하지만 체력이 고갈된 수비수들은 선우의 빠른 스피드를 막아낼 수 없었다.
‘실프.’
[네~ 마스터.]
‘이번엔 나도 넣어보자.’
[꺄르르~~ 좋아요. 마스터.]
브라질 수비수 다섯 명을 앞에 두고,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드리블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헉!”
“아악!”
-꽈당!
“이런!!”
축구공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움직였다.
“막아!”
티바우도의 고성이 들려왔지만 누구도 선우를 막을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그라운드를 누비는 바람의 괴물과 같았다.
“반칙을 해서라도 막아!!”
“……!!”
아예 대놓고 반칙을 하라고 한다.
“선우야, 뒤!!”
동료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타타탁! 타타타탁!!!
“허억!!”
선우가 마음먹고 스피드를 올리자 어느 누구도 선우를 붙잡을 수 없었다.
반칙을 해서라도 공격의 맥을 끊으려던 브라질 수비수 루시우요의 손 역시 애꿎은 허공을 갈랐다.
루시우요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앞에 있었는데, 어느새 뒤로 처진 자신의 모습에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느꼈다.
골문까지의 거리는 이제 15미터.
선우가 발끝을 이용해 슛을 날린다.
한 박자, 아니 그것은 두 박자나 빠른 토킥(toe kick)이었고 골키퍼의 반응은 당연히 늦을 수밖에 없었다.
-뻐엉!
“와아아아아~~!!”
경기 종료를 정확히 2분 남겨놓고 마침내 3:3 동점이 되자 선수들이 득달같이 달려와 선우의 득점을 자축했다.
전후반 90분의 혈투는 종료 휘슬이 울릴 때까지 그대로 흘러갔다.
시계를 보던 주심이 5분의 추가 시간을 주었다.
하프라인을 넘긴 공이 탄바의 발 아래로 떨어지자 한국 선수들의 압박이 시작되었다.
“큭!”
“막아, 남일아. 공 뺏어.”
거센 충돌과 함께 치열한 경합이 이어졌다.
박진성, 봉종국이 끼어들어 중원에서의 싸움이 한층 더 격렬해졌다.
“하아…….”
“학…… 학…… 하아…… 학!”
선수들의 입에서 단내가 나다 못해 개똥…… 냄새가 날 정도다.
‘이런 젠장…….’
탄바는 분명 뛰어난 선수다.
하지만 그 역시 체력이 고갈된 상황, 수비수들의 압박을 벗어나기 어렵다.
탄바는 필사적으로 주위를 살폈고 호호우도와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의 짧은 시선 교환.
-툭!
“……??”
하지만 그때였다.
실프를 통해 경기장 전체를 주시하던 선우가 전광석화로 달려와 그의 패스를 가로챈 것이다.
“아, 안 돼!!”
선우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보이며 치고 달리기 시작했다.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이미 하프라인을 넘고 있다.
“막아, 막아!”
스콜라다니 감독이 목이 터져라 외쳤다.
‘실프, 이번엔 무회전으로 가자.’
[네. 마스터. 준비됐어요.]
모두들 선우가 골문을 향해 달려갈 것으로 여겼다.
막강한 드리블 실력을 가졌고 이제 막 그가 하프라인을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우는 모두의 예상을 비웃듯 그 자리에서 슛을 때렸다.
-광!!
축구공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브라질 골대를 향해 날아갔다.
갑자기 날아온 슈팅에 브라질의 수문장 마데쿠스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침착하게 공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으로 축구공의 궤적이 그려졌고 충분히 막을 자신이 있었다.
‘잡을 수 있다.’
그러나 선우의 슈팅은 일반적인 슛이 아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브라질의 수문장 마데쿠스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어…… 어?!!”
-저, 저게 뭐죠?
-무회전 슛 같습니다,
차범군 해설 위원이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선수들이 찬 공은 대부분 어느 한 방향으로 회전을 하며 날아가기 마련인데, 무회전 슛이라는 것은 이름 그대로 어느 한 방향으로 회전이 거의 발생되지 않아 공의 진행 방향대로 날아가는 슛을 말하죠.
-야구의 ‘너클볼’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네, 맞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공이 됩니다. 골키퍼 입장에선 공이 상하좌우로 흔들리고 갑자기 뚝 떨어지기도 하거든요.
-헐! 그러면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말씀인가요?
-네. 이론적으론 그렇습니다.
차범군 해설 위원이 설명이 끝나기가 무섭게 축구공의 궤적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상하좌우, S자를 그리며 요동치는 궤적에 마데쿠스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철렁!!
“……악! X발!!”
골망이 크게 출렁이는 소리에 심장이 멎는 듯했다.
“우워어어어어~”
“꺄아아아아!!”
역전골이 터졌다.
그것도 추가 시간 종료 직전에 나온 슈퍼(Super) 골이다.
“허…… 참.”
스콜라다니 감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역시 선우의 실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짝…… 짝짝…… 짝!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나온 17골의 기록.
과연 이 기록이 깨질 수 있을까?
불멸의 대기록을 작성한 선우는 경기장을 둘러보았다.
7만 명의 관중들이 그를 향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태극기가 휘날렸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가슴 언저리가 뜨거워졌다.
선우는 관중들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감……사합니다.”
어느새 몰려온 대한민국 선수들 역시 선우와 나란히 서서 관객들을 향해 절을 올렸다.
월드컵이 끝나고 엄청나게 많은 방송 출연과 인터뷰 제의가 쇄도했다.
그러나 선우는 공식적인 인터뷰와 광화문 카퍼레이드 그리고 청와대 만찬 행사를 끝으로 더 이상 TV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일정이 생겼기 때문이다.
-논산 훈련소.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논산 훈련소를 찾았다.
교복을 입은 어린 소녀부터 카메라를 맨 파란 눈의 외국인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 하나다.
월드컵 우승으로 군 면제를 받은 선우가 바로 오늘 훈련소에 입소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우리 속담에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어차피 맞을 매라면 뒤에서 맞는 모습 보면서 불안에 떠는 것보다 차라리 일찍 맞아버리면 시원하다는 뜻이다.
선우의 마음이 정확히 그러했다.
어차피 받을 훈련이라면 질질 끌지 말고 후딱 해치우려는 마음에 그는 훈련소 입소를 신청했다. 이제 4주간의 기초 훈련만 받으면 병역의 의무에서 완전히 완벽하게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오, 오빠…… 흑흑흑흑!”
“……4주 동안 여기서 기다릴게요.”
“사랑해요. 최선우~ 우유 빛깔 최선우~~”
선우는 자신을 위해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 준 팬들에게 감사의 뜻을 담아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훈련소 입소하기 전, 그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전 세계 팬들을 위해 짧은 기자회견이 열렸다.
“작가님, 오늘 입대하시는데 기분이 어떻습니까? 떨리진 않습니까? 하하하~”
기자의 질문에 불쑥 옛(?) 기억이 떠올랐다.
1분이 1시간 같고 1시간이 하루와도 같은 그 기억.
그 기억을 떠올리자마자 마음이 급격히 울적해졌다.
‘저런 시베리아 허스키가 뜯어먹는 십장생이…….’
하지만 곧이곧대로 진심을 말할 수 없다.
“어…… 음, 대한민국의 남자로 태어났으니 군대에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국민들의 응원으로 인해 면제를 받아 4주간의 기초 군사훈련만 받게 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 성실하게 임하겠습니다.”
“이번 월드컵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셨는데요, 정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왜죠? 전 세계가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네.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아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우는 주위를 한 번 둘러보며 말을 이어갔다.
“축구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축구에만 집중할 수 없기에 포기하는 것입니다. 놔주는 것도 사랑이니까요.”
“그럼 이제 다시 작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돌아가다니요, 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월드컵 축구 경기가 이어졌던 날에도 늘 작가였습니다.”
“……!”
“……!!”
“축구로 군 면제를 받은 만큼, 국대 일정을 소화해야 할 텐데요?”
누군가의 날카로운 질문이다.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선 희동구 감독의 확답을 받은 상태(선우가 거부한다면 출전을 강요하지 않기로 말이다.)였지만 기자들에게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
“네. 그 문제는 희동구 감독님과 천천히 상의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꼭 필요한 경기라면 출전해야겠지만…… 제 마음은 일단 그렇습니다.”
“…….”
“……!!”
한동안 짙은 침묵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선우의 말에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다만 축구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선우의 은퇴가 영원한 은퇴가 아니길 두 손 모아 기도할 뿐이었다.
“그럼 이만 기자회견을 끝내겠습니다.”
4주간의 이별이다.
가족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근데 쟤는 여기에 왜 온 거야?’
분명 어제 작별 인사를 나눴는데, 설연이 모습을 나타냈다.
“어? 저거 설연 아니야?”
“맞네. 설연이다.”
“부모님과 같이 왔나 본데? 가족이나 친척이 군대에 가나?”
혼자 오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언니~~”
“어, 혜진아~~”
“형님.”
“오! 동생.”
혜진이 먼저 설연을 알아보고 알은체하자 규용 역시 한상우를 발견하고 손을 들었다.
“아이고, 여기까지 어떻게…….”
“하하하~ 우리 선우가 군에 간다는데, 당연히 와야지.”
두 가족의 만남에 사람들 모두가 놀랐다.
기자들은 좋은 장면을 발견했다는 듯, 너도나도 렌즈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어댔다.
“두 분이 친구셨나요?”
“가족분들까지 이렇게 친하시다니!! 언제부터 친하셨나요?”
“두 분, 혹시 친구 사이 이상이 아닌가요?”
“초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 고등학교도 동창입니다.”
선우는 그와 설연이 사귀는 것은 맞지만 여배우의 입장을 고려해 아직 공개적으로 밝힐 생각이 없었다.
“저흰 어렸을 적부터 친했습니다.”
나름 수습을 하려고 이렇게 얘기했지만 설연의 폭탄 발언이 이어질 줄은 몰랐다.
“저희 사귀는데~”
“……네?”
한 기자의 반문에 설연이 다소곳이 입술을 가리며 미소를 보였다
“아직 100일은 안 됐지만요. 호호호호~~”
“……에에에?!!”
“대, 대박!!!”
그녀의 폭탄 발언에 자리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T&B의 김일환 대표는 그의 한 손을 이마 위에 얹고 입을 벌렸다.
수습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습할 수 있을까?’
순식간에 일대가 혼란에 빠져버렸다.
사방에서 질문 세례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선우는 조용히 훈련소 안으로 들어갔다.
훈련소 생활의 처음 며칠은 선우에게 달콤한 휴식으로 다가왔다.
외부와의 단절과 훈련의 부재(不在)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뭔 놈의 장군님들이 그리 많은지, 선우를 비롯해 이번 훈련병들을 보기 위해 하루에 몇 번씩 헬기가 날아왔기 때문이다.
2시간짜리 훈련이나 수업은 진행되었지만 소위 빡센 훈련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환하게 웃으십시오.”
“찍습니다.”
“한 번 더~~”
“좋습니다.”
선우는 그들과 담소를 나누며 사진도 찍고 식사도 하고 어떨 때는 바둑까지 두기도 했다.
훈련소의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